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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창 46: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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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창 46:8-34)

* 창 46:8-27절까지는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 70명의 명단입니다. 오늘 말씀의 본문은 28-34절 말씀인 셈입니다.

살다보면 종종 어머니의 품에서 엉엉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굳은 살 배긴 손끝을 느껴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은 영원한 고향입니다. 영원한 사랑의 보금자리입니다. 요셉이 그리운 아버지를 만나 아버지 품에서 위로를 받고 사랑을 느끼는 감격의 눈물이 본문에 있습니다. 이 눈물의 상봉은 요셉이 형님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가는데서 시작이 됩니다. 

요셉의 노예생활은 사람의 생활이 아니고 짐승의 생활입니다. 노예는 쇠고랑으로 묶어서 소처럼 도망가지 못하도록 묶어 놓고 일을 시키는 것은 보통이었습니다. 요셉의 노예 생활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요셉의 손목과 발목에는 상하고 굳은살이 배겨 있었습니다. 

사람이 편할 때는 잃어버렸다가도 힘들고 괴로우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분이 부모님이십니다. 조금은 죄송스럽지만 잘 나갈 때는 부모님 생각이 잘 안 나고 인생을 즐기며 교만 합니다. 그런데 힘들고 일이 어려워지면 부모님이 생각나고 그 품이 그리워집니다. 요셉이 형님들에 팔려 노예의 고통스런 나날을 보낼 때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에 얼마나 울었을까? 생각하여 봅니다. 

"해는 저서 어두운 데 찾아오는 사람없고 밝은 달만 쳐다보니 눈물만 흐르네" 

아마 요셉이 그 노래를 알았더라면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 눈물과 괴로운 시절이 13년이 지난 어느 날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내도 있고 자식도 생겼습니다. 그래도 고향과 부모님 생각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요즘도 종종 6.25고아로 외국에 입양을 갔다가 외국에서 성장하여 한국말도 못하고 한국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어도 어렵게 한국에 찾아옵니다. 찾아오는 이유는 부모님을 찾아서 만나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그 부모는 버렸지만 그들은 자기를 버린 부모님을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 사실입니다. 

요셉이 총리로 일을 하고 있는데 마침 중동 전역이 가뭄이 극심하여 굶어 죽는 예가 비일비재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총리로 나라를 다스리는 애굽은 요셉의 지혜로운 정치 때문에 곡식이 풍족합니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 왔습니다. 곡식을 사러 온 사람 중에 글쎄 요셉을 애굽의 종으로 팔아 버린 요셉의 형님들이 요셉이 총리인줄도 모르고 곡식을 사러 요셉에게 온 것입니다. 

요셉은 몇 번 확인을 한 후 에 자기가 요셉인 것을 알리고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애굽의 고센 땅에 도착하던 날 요셉은 급히 쫓아가서 그토록 그립고 또 그립던 아버지를 만나서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동안이나 울었습니다. 얼마나 아버지가 보고 싶었을까요?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이것은 정말 말로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요셉을 제일 사랑하던 아버지인데 그 아버지를 끌어안고 우는 요셉의 마음은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하면서 요셉이 아버지께 효도하는 마음에서 우리의 효도를 생각하여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효도는 자식이 잘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일편단심 자식이 잘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 되는 일이라면 아낌이 없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그토록 흐뭇한 것은 요셉이 살아 있다는 것이며 또한 살아 있기만 하여도 좋은 아들이 애굽의 총리로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야곱에게는 너무 너무 기뻤을 것입니다. 잘 사는 자식을 보면 부모님은 자기가 힘들어도 자랑합니다. 

시골에 부흥회를 갔는데 어느 할머니가 식사를 대접합니다. 외모가 왜소한 할머니집사님이셔서 대접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무슨 돈이 있을까? 하고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최고 좋은 식당에서 최고 비싼 음식을 잡수시라고 하시면서 이래 뵈도 내가 부자입니다. 하라시며 아들 자랑을 하시는데 끝이 없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얕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 되는 것이 부모님에게는 최고의 자랑이고 기쁨입니다. 자식이 잘 되지 않으면 부모님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전에 어떤 어른을 만났는데 그분과 자식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자식이 다섯인데 모두가 다 잘 사는데 한 아들만 너무 고생을 많이 합니다. 그 어른은 고생하는 그 애만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답니다. 저는 부모님께서 효도하는 것은 돈 버는 일이라고 하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요셉이 성공하여 애굽의 총리까지 된 데는 그 비결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요셉이 형통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요셉이 형통하여 애굽의 총리까지 성공하는 데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복을 받고 성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복을 받고 성공하여 총리까지 되었으니 그것이 축복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축복은 부자가 아니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진실하게 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자라도 도망 다니고 쫓겨 다니면 축복이 아닙니다. 혹시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녀로 인하여 흐뭇하여 하십니다. 

『밥퍼』라는 책으로 알려진 청량리에서 빈민 선교하시는 최일도 목사는 늘 거지들을 상대로 목회를 하니 힘들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어머님이 믿음 좋으신 분인데도 아들 목사에게 "너는 왜 그렇게 힘들게 목회하니 좀 다른 목사들처럼 편안하게 존경받으며 목회를 할 수 없니"하면서 아들을 잘 보려고도 아니하였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목사가 되니 네가 옳았다고 좋아 하신답니다. 부모님이 좋아하시고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그저 부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순종하며 사는 사람을 좋아하시고 그 안에 형통하여 복을 받으면 언제 부모님을 뵈옵는다 해도 부모님을 즐거워하며 부모님을 끌어안고 울면서 효도하며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형제간에 우애가 좋아야 합니다. 

요셉은 분명히 성공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아버지를 흐뭇하게 한 효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효자라도 부모님의 소원은 형제들끼리 우애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애굽을 다스릴 뿐 아니라 전세계가 식량난으로 고생을 하고 식량을 구하러 애굽으로 애굽으로 모여듭니다. 요셉은 모여 드는 사람들에게 지혜롭게 식량을 판매합니다. 그런데 그 식량을 구하러 온 사람중에 요셉을 노예로 판 형님들이 있습니다. 몇 번 형님들의 신실성을 확인하고 나서 요셉이 형님들 앞에서 정을 억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밖에 나가라고 하고 요셉이 엉엉 웁니다. 그리고 형님들을 가까이 오게 하고 말하기를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 다지요?" 

이 말에 형님들이 놀라 자빠졌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살려 달라고 몸부림칠 때 매정하게 노예로 팔아 버린 요셉 차라리 죽었으면 속이 편할 걸 살아서 이렇게 높은 자리에 앉았으니 이젠 죽었다 생각을 하고 얼굴이 사색이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때 요셉이 형님들을 안심을 시킵니다. "형님들 나를 이곳에 팔았음으로 너무 근심하거나 한탄 하지 마세요 도리어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먼저 이곳에 보내신 것입니다." 안심을 시킵니다. 

그런데 이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요셉이 좀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까?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던 그가 얼마나 수많은 날들을 고생하였습니까? 형님들 생각하면 이가 갈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 형님들에게 아무런 허물을 묻지 않고 안심을 시켜 놓고 이때를 위하여 하나님이 자기를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만일을 생각하여 보세요. 형님들이 왔는데 형님들을 옥에 가두고 매일 같이 옥에 찾아가서 형님들에게 당신들은 죽어도 싸 내가 당한 고생을 생각하면 지금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바늘로 한번씩 꾹 찌르고 나오고 또 찾아가서 괴롭히고 그리고 아버지와 동생 베냐민만 끌어안고 사랑하면 아버지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버지를 기쁘게 할 뿐 아니라 형님들에게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어느 집사님이 말씀하시는데 전에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울 때 동생이 많이 비웃었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왜 그렇게 고생을 하느냐 예수 믿고 나은 것이 무엇이 냐"며 계속 핍박을 합니다. 목사에게 와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어려움을 당하니까 핍박이 너무 심해요 어떻게 해요 하면서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세가 완전히 역전 되었습니다. 그 동생은 부도가 난 데다가 보증까지 잘 못서서 완전히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형님이 아무 말 없이 돈을 한 뭉큼 쥐어 주면서 힘내라 하였더니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는 형님 어려울 때 비웃기만 했는데 죄송해요 하면서 받더랍니다. 그러니 형제간의 우애는 자연히 된 것 아닙니까? 만일 내가 힘들 때 핍박하더니 잘 한다. 너는 예수 안 믿더니 뭐 잘 된 것 있냐 하고 묻는다면 볼장 다 본 것입니다. 포기 할 때 포기하고 권리를 포기하고 위해 주면 쉽게 해결이 됩니다. 요셉이 자기권리를 포기하고 형님들 입장에서 이해하고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니 우애가 좋아지고 그러니 아버지는 더욱 마음의 좋은 것입니다. 

요셉은 이와 같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권리를 포기함으로 형제간에 우애가 두터웠지요 그러니 아버지 마음이 얼마나 흐뭇하셨겠습니까? 그러니 아들의 목을 안고 하염없이 울도록 좋았던 것입니다. 

신약의 탕자는 아버지가 부르지만 부끄러워서 아버지 앞에 나아 갈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앞에 죄송하면 아버지를 그렇게 감격적으로 뵈올 수가 없습니다. 일을 저질러 놓고 냄새가 나면 그 좋은 엄마한테도 갈 수가 없습니다. 냄새나는 죄인은 하나님이 부르셔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탕자는 아버지께 갈 수가 없어서 고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친히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속해주셨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품에 안겨서 웁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신앙생활 하고 서로서로 양보하며 우애하며 부모님 품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위로 받으며 효도 할 수 있는 자녀들이 되시되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육신의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죽어도 좋은 만족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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