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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 (막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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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 (막 14:1-2)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이제 우리는 마가복음을 세 장 남겨 놓고 있습니다. 이들 마가복음의 세 장, 곧 마가복음 14장과 15장 그리고 16장은 마가복음의 결론에 해당합니다. 마가복음 전체를 성전에 비유한다면, 이제 우리는 마가복음의 지성소에 이른 셈입니다. 

이들 세 장의 주제는 한 마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14장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의 일들을 설명합니다. 15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일 자체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16장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난 직후의 일들을 말씀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이는 우리의 구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전2:2 말씀과 같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요1:29과 1:36에서 세례 요한이 반복적으로 말씀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어린 양이 하나님께 열납되려면, 반드시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린 양은 죽임을 당해 그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결코 우연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필연적인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필연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음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막14: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일점 일획도 의미 없이 기록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오늘 본문은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고 말씀합니까? 바로 그 때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할 하나님의 때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유대인들의 절기 두 가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입니다. 먼저 유월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내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의 장자들을 치실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그들의 집 문에 뿌리게 하셨습니다. 그 피를 보고서, 애굽의 장자를 멸하는 사자는 그들의 집을 넘어갔습니다. 여기서 유월절이라는 명칭이 생겨났습니다. 유월이라는 말이 넘어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이스라엘 자손은 각자의 집에서 누룩을 제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칠일 동안 누룩이 없는 떡 곧 무교병을 먹어야 했습니다. 누룩은 영향을 뜻합니다. 따라서 무교병을 먹는다는 것은 옛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유월절이 되면, 곧이어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막14:12 말씀과 같이, 유월절은 무교절의 첫 날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눅22:1 말씀과 같이, 때로는 유월절과 무교절이 하나의 절기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오후 세 시부터 성전에서 유월절 양들이 죽임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성전에서 유월절 양들이 죽임을 당하는 바로 그 시각에 맞추어,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도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에,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시도가 이미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헤롯 왕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베들레헴 근처에서 태어난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은 다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헤롯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 죽이려 하는 사실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요셉에게 그의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아기 예수님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막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입니다. 누가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자신의 고향 나사렛에 있는 회당에서 겪으셨던 일이 나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으로 그들의 죄악상을 지적하시자, 그 곳 나사렛 사람들은 크게 화를 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밀쳐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뜨려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적을 행하셔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지를 못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베데스다 못 가의 서른 여덟 해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하자,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요5:18 말씀과 같이, 그들은 당장에라도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때도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지를 못했습니다. 

이외에도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시도했습니다. 막3:6과 11:18 그리고 12:12에도 같은 시도가 나옵니다. 그래서 요7:25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 당시 사람들 사이에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라고 불리기까지 했습니다. 

아무튼 이제까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시도들은 모두 다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 이유를 요7:30과 8:20 말씀은 이와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아직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언제입니까?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유월절이 되는 바로 그 날 곧 금요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유월절 양들이 죽임을 당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시각인 오후 세 시에 예수님은 숨을 거두셔야 했습니다. 

고전5:7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우리의 유월절 양이 되셔서 자신을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리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인 유월절에 이루어져야만 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십자가는 결코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요10:18 말씀과 같이,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예수님의 목숨을 빼앗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가 찼을 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한 때가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합시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때에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였습니다. 

막14: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예수님이 감람 산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마26:3 말씀과 같이, 그 때 백성의 장로들도 함께 모였습니다. 그들이 모인 곳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정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때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정에서 공회가 열린 것입니다. 헬라어로 공회를 산헤드린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산헤드린 곧 공회는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 기관이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공회원들이 무엇인가를 의결하기 위해 그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그 날의 의제는 오직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죽일 방도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방치해둘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죽일 방도를 모색하기 위하여 공회를 열었습니다. 

왜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참을 수 없게 여겼을까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열렬하게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 때 그들은 온 백성의 마음을 예수님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면서,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은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임의로 내쫓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의 허락도 없이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일들이 겹쳐지면서, 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예수님을 잡아죽일 방도를 구하려고 함께 모였던 것입니다.  

그 동안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예수님을 죽일만한 아무런 혐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흉계로, 그러니까 거짓된 일을 조작해서 예수님을 잡아죽일 방도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그 때 열린 공회의 광경을 좀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11:47 말씀입니다.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말하자면 그들은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죽일 방도를 구하기 위해,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정에서 공회를 열었던 것입니다. 48절 말씀입니다.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그들은 온 백성의 마음이 예수님에게로 향할까봐 두려웠습니다. 만일 온 백성이 예수님의 힘을 믿고서 로마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면, 로마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현재 누리고 있는 지위를 잃고 말 것입니다. 

이어서 49절과 50절 말씀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참으로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발언은 예수님에게 죄가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어야 모든 사람이 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위하여 예수님이 죽는 것이 유익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의식중에 그 사실을 밝혔습니다. 말하자면 그 순간 하나님이 그를 주장하셔서, 그의 입에 진리의 말씀을 담아주신 것입니다. 

그 내용이 51절과 52절 말씀입니다.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마지막으로 53절 말씀입니다.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그 날 공회에서 내린 결론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흉계를 써서라도,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꾸민 흉계는 무엇이었습니까?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끌고 가서, 거짓으로 예수님을 고발했습니다. 

눅23:1~2 말씀입니다.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당시 로마는 식민지 백성의 종교에 대해서는 관대했습니다. 어차피 로마인들의 종교가 다신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식민지 백성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지 않거나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면, 그 때는 아주 잔혹하게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당국자들은 이 두 가지와 관련해서 흉계를 꾸몄습니다. 먼저 그들은 예수님이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한다고 고발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분명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이 자칭 왕 그리스도라고 한다고 고발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백성을 선동해서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물론 이것도 그들의 거짓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눅23:4, 14, 22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또한 헤롯 왕도 눅23:15에서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대제사장 가야바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 그대로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사실을 잘 말씀했습니다. 

사53:6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죄악을 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그리고는 사53:10 말씀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상함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고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53:5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와 같은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것이었습니다. 

막14: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명절인 유월절을 맞아,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에게서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 또는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배불리 먹은 사람들,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그들이 중심이 되어 예수님을 열렬하게 맞이했을 것입니다. 이미 공회는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죽이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지지하는 자들이 민란을 일으킬까봐, 명절에는 하지 말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명절이 지나면, 각자가 자기 집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죽이더라도, 민란이 일어날 소지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대로 실행하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때를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그 즉시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더니 이번에 그들은 명절만큼은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때의 시도도 역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깊은 밤중에 사로잡히셨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새벽에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금요일 오전 아홉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세시 곧 유월절 양들이 죽임을 당하는 시각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같은 날인 금요일 해지기 이전, 예수님은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당일도 하루로 계산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금, 토, 주 곧 죽으신 지 사흘만인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당국자들이 무리를 너무 과대 평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국자들은 예수님을 흉계로 잡아죽일 방도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명절에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으로 인해, 무리가 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틀 후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실 때였습니다. 빌라도가 무리에게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무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이처럼 무리는 변덕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 때 당국자들만 무리를 과대 평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때 사탄도 역시 무리를 과대 평가했습니다. 흔히들 사탄이 가룟 유다를 이용하고 또한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사실은 그 정반대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죄인들의 구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사탄은 광야에서 예수님을 세 번 시험했습니다. 목적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사탄은 베드로를 이용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으려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사탄의 시험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이와 같이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사탄이 바라던 바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함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사탄은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가 예수님을 배신하게 만들었습니까? 당국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탄도 무리를 과대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빌라도가 무리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사탄은 무리가 예수님을 향하여 열렬하게 환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무리가 예수님을 놓아주기를 바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무리를 이용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리는 바라바를 원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십자가를 막으려던 사탄의 시도는 또다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또한 그리함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고후5:21 말씀을 읽어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십자가를 일컫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예수님이 우리의 죄악된 삶을 사신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심판하셨습니다. 그 대신 이제 하나님은 마치 우리가 예수님의 온전한 삶을 산 것처럼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십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의 사랑에 푹 파묻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우리 모두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예수님을 존귀하게 하며,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리는 복된 한 주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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