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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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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 23:1-6)


저는 지난 주 호주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화요일이 귀국이었는데 여러분들도 아시는 바와 같이 그날이 큰 태풍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역대 5위 권 정도의 강력한 태풍이라는 예고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지금 말라위에 가 있는 큰 아이와 한국에 있는 아이들이 걱정하는 문자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그것이 걱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 비행기가 과연 갈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를 판단하여야 하고 그리고 그 비행기를 제가 몰아야만 한다면 아마 걱정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해야 할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항공사나 아니면 기상청 같은 곳에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저들은 저하고는 다른 시스템과 기술로 항공기가 이착륙을 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터인데 요즘 실력과 수준을 생각하면 그것은 크게 염려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비행기는 예정보다 약 30분 정도 늦게 출발을 하였습니다. 태풍 때문이었습니다. 착륙할 때에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항공사의 시스템과 그리고 지금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는 기장이 오랜 비행경력을 가지고 있는 베테랑이니 조금도 염려하실 것이 없다는 멘트였습니다. 비행기는 평시와 다름없어 보이게 잘 착륙하였습니다. 제 생각과 판단이 옳았습니다. 항공사와 기장을 믿었었는데 제 믿음대로 된 것이었습니다.

살다보면 태풍과 같이 큰일들이 우리에게 불어 닥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 그리고 판단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우리를 위협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합니다.

요즘 저를 가장 두렵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범행들입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입니다. 제게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손녀 딸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저는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저희 아이들 생각을 합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저도 저희 손녀 딸 아이들을 사랑합니다.

생명을 걸고서라도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 생명이 그 일에 별로 큰 힘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큰 힘이 아니라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 힘과 능력 밖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제 큰 아이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큰 아이는 지금 말라위에 가 있습니다. 저희 재단이 사역하고 있는 곳에서 약 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서 에이즈 퇴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재단 직원들은 그물리라에 있고 저희 아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들은 대양누가병원 안에서 기숙사와 사무실을 얻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말라위의 상황이 참 쉽지 않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거의 지난 일 년 내내 경제가 워낙 좋지 않아서 주유소에 휘발유 공급이 제 때 되지 않았습니다.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기 위하여 보통 서너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서너시간을 서도 앞에서 기름이 끊기면 그냥 돌아와야 하는 상상 할 수 없는 일들이 말라위에는 있습니다. 요즘은 수도국이 파업을 하여 수돗물이 끊겨 어렵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크게 염려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편한 일일 뿐이지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힘이 없으니 공권력도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가 제일 걱정하는 일은 치안문제입니다. 말라위 사람들은 품성이 착하답니다. 그래도 그 착한 품성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경제가 너무 나쁘기 때문입니다. 저희 재단도 그물리라 사역을 인수하기 바로 직전 사무실에 강도가 들어 모든 것을 다 털어 갔었습니다.

저희 큰 아이가 있는 대양누가 병원도 벌써 세 번이나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수사조차 이루어지 않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제 새벽에는 병원 기숙사에 하이에나 떼가 나타나 주차해 놓은 자동차 타이어를 다 물어 뜯어 놓고 갔답니다.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제 아들과 저희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들을 위하여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냥 다 포기하고 돌아오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큰 태풍이 있었지만 그냥 뚫고 한국으로 귀국하였듯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태풍 같은 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며 살아가려 할 것입니다.

항공사와 조종사를 믿듯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저는 이 신앙고백이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말 그 신앙고백처럼 하나님을 믿습니다.

꽤 오래 전 어머니께서 영동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방광이 늘어져서 자꾸 소변을 지리셔서 그 방광을 제 자리로 올려 붙이는 수술이었습니다. 수술하기 전 사촌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형, 고모 그 수술을 받으면 안 돼’ 자기 장모가 똑같은 수술을 받으셨는데 경과 좋지 않아 고생을 하신 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생의 말에 의하면 방광을 일 미리가 올라가도 안 되고 내려와도 안 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수술 후에도 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경우 동생을 믿지 않고 의사를 믿습니다. 동생 말이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의사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수술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동생의 전화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는 누구에게 사적인 부탁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그런데 그 때는 좀 달랐습니다. 병원에 누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병실에 주보가 한 장 있었습니다. 병원에 원목실이 있고 환자들을 위한 예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보에 목사님 성함과 연락처가 있었는데 그 옆에 원장님 성함도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성함을 보니 제가 잘 아는 장로님이셨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원장실로 달려갔습니다. 원장실이 2층인가 그랬었는데 계단을 올라가다가 멈추었습니다.

어머니의 수술이 완벽하게 되는 일이 원장 손에 달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냥 도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일층 의자에 기도를 하려고 앉았습니다. 그때 오늘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오늘 본문 말씀 시편 23편이 머리에 떠 올랐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다는 말씀이 그렇게 마음에 와 닿을 수가 없었습니다.우리 어머니의 방광을 일 미리도 올라가지 않게 내려가지도 않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 밖에 없으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 수술하는 의사의 손을 붙으시사 우리 어머니 방광 일 미리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게 해 주세요” 우리 어머니 수술은 제 기도대로 되었습니다.

다윗은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의 생에는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특 A급 태풍이 많이 불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하태평이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3편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리로다. 내가 누워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으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시 3:1-6)

오늘 본문의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정말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에게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다윗은 조금도 그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하태평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실제로 살았습니다. 골리앗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벌벌 떨 때에도 소년 다윗은 그 상황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막내가 다섯 살 때 손을 잡고 골목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골목 맞은 편에서 5학 년 짜리 아이 하나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보자 제 막내가 저에게 일렀습니다. “아빠 저 형아가 나 때렸어” 복수해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못들은 척 그냥 지나가려 했더니 막내가 제 손을 뿌리치고 내려가 그 5학 년 짜리를 발로 한 대 차주고 왔습니다. 그때 제 막내의 그와 같은 모습을 보면서 저는 다윗이 골리앗을 어떻게 이겼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 여섯 살, 골리앗 5 학년, 하나님 80kg !!!...."

저는 제 손녀 딸들의 앞날과 안전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저는 말라위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아들과 직원들의 안전을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 손이 미치지 않는 일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습니다. 저는 다윗처럼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맞으십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우리에게 부족한 일이 많이 생깁니다.

왜 그럴까요?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목자이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했는데 왜 그런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목자가 아니시기 때문일까요? 누구에게는 목자가 되어 주시고 누구에게는 목자가 되어 주시지 않으시기 때문일까요? 하나님이 사람을 차별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에게도 능치 못하실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우리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23편의 모든 고백은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구절에 달려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말은 다윗과 하나님의 관계와 사이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다윗과 하나님의 사이는 양과 목자의 사이라는 것입니다.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적인 것입니다. 짝 사랑으로 결혼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나도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도 나를 사랑했기에 결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내는 나를 사랑했지만 내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거나, 나는 아내를 사랑하는데 아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결혼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변함이 없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자 되심은 우리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을 때에만 작동이 되는 진리입니다.

독일 뤼벡교회의 낡은 벽에 붙어 있는 돌 판에는 ‘주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라는 시가 새겨져 있답니다.

‘너희는 나를 주라 부르면서 따르지 않고, 너희는 나를 빛이라 부르면서 우러러보지 않고, 너희는 나를 길이라 부르면서 따라 걷지 않고, 너희는 나를 삶이라 부르면서 의지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존귀하다 하면서 섬기지 않고, 너희는 나를 강하다 하면서 존경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의롭다 하면서 두려워하지 않으니, 그런즉 너희를 꾸짖을 때에 나를 탓하지 말라.’

저는 제 손녀 딸의 안전과 행복을 위하여, 말라위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아들과 직원들의 안전과 사역의 성공을 위하여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하는 믿음의 고백에 승부를 걸겠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믿음의 관계에 집착하겠습니다.

늘 주라 부를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을 따르겠습니다. 늘 하나님을 빛이라고 부를 뿐 아니라 우러르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늘 길이라고 부를 뿐 아니라 실제로 그 길을 따라 걷겠습니다. 하나님을 삶이라 부를 뿐 아니라 실제로 의지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존귀하다 말로만 하지 않고 진심으로 그리고 전심으로 섬겨살겠습니다. 하나님을 강하다 강하다 말로만 하지 않고 진심으로 믿고 존경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의로우신 분이시라고 말로만 하지 않고 늘 두려워하며 살겠습니다.

그래서 다윗처럼 저도 여호와가 저의 목자가 되게 하겠습니다. 저의 모든 삶을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결정하시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모든 삶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게 하겠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7절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믿음이 능력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요 실상입니다. 저는 믿음에 생명을 걸고 싶습니다. 항공사와 조종사에게 결정과 판단을 맡기고 강력한 태풍이 지나가는 당일 비행기를 타고 비행기에서 잠이 들듯, 내 인생을 단 번 무너트릴 강력한 태풍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께 내 인생과 삶을 내어 맡기고 주가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목자이십니다.
여러분들에게도 하나님이 여러분의 목자이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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