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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혹시 구원을 소홀히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히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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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구원을 소홀히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히 2:1-4)

오늘은 아주 예민한 문제에 대하여 설교하게 되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지옥에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너무나 예민하고 어려운 질문입니다. 짧은 시간에 제대로 다룰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단 논쟁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를 강해하려면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저는 성경 구절을 하나 하나 살펴보는 자세로 이 문제를 다루고 싶습니다.
성경은 도대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문제가 되는 그 구절이 나옵니다.

히 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바를 더욱 굳게 간직하여,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일이 없어야 마땅하겠습니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로 추정되는 로마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큰 핍박을 당하다가 견디다 못해 예수 믿기를 포기하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를 쓴 것입니다. 

2-3절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효력을 내어, 모든 범행과 불순종하는 행위가 공정한 갚음을 받았거든, 하물며 우리가 이렇게도 귀중한 구원을 소홀히 하고서야, 어떻게 그 갚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천사들이 전해준 율법을 어겨도 돌에 맞는 일이 생기는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주신 구원을 소홀히 여기는 자가 어찌 멸망을 피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구원을 져버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이 왜 구원을 잃어 버리냐? 박해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도 귀중한 구원을 소홀히 한”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구원이 무엇입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천국가는 티켓”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구원, 천국가는 기차가 있다면 그 기차를 타는 티켓을 가지고 있느냐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속죄주임을 믿고 세례를 받은 것’이 구원이라고 여깁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구원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광주갈 일이 있어서 기차표를 사실 때 어떻게 하십니까? 기차표를 일단 사놓았으면 갈 때 가서 기차 탈 일만 남은 것입니다. 그동안 영화를 보든, 잠을 자든, 일을 하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한번 구원받았으면 잊어버리고 살다가도 죽을 때 다시 찾아 천국가는 표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구원을 생각하니 구원을 잃어버리는 일도 생기는 것입니다.

구원은 티켓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받는 그 순간부터 천국 열차에 올라 타, 천국을 향하여 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천국의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내가 천국가는 기차 속에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혹시 딴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잘못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구원받았다는 여러분의 삶은 천국 생활 같습니까?
온 가족이 다 구원받은 여러분의 가정은 천국 같습니까?
그렇게 말할 수 없다면 여러분은 천국가는 티켓만 가지고 있는 것이지, 천국가는 기차에 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천국가는 티켓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구원 대신 예수님이라는 말로 대신하면 정확하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도 귀중한 구원을 소홀히 했다”는 말은 결국 “이렇게도 귀중한 예수님을 소홀히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서 구원의 확실한 근거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주님이 처음 말씀하신 것이고, 그것을 증인들이 전해주었고, 하나님께서 기사와 표적으로 증거하셨는데, 결정적인 증거는 우리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성령의 선물이란 구원받은 자는 누구나 성령님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 안에 계시던 영입니다. 그 성령님이 이제 우리 안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과 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이것을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신 것으로 말씀하십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구원의 증거는 예수님과 친밀히 교제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음에 오셨고, 한 생명이 되셨으니 이 보다 어떻게 더 친밀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 은혜는 정말 엄청난 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소홀히 여긴다면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혹시 구원을 소홀히 여기고 살지는 않습니까?
그 말은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소홀히 여기고 살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기차표는 간수만 잘하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관계는 소홀히하면 깨어지는 것입니다.

한일 장신대 박화경목사“저에게 아들이 하나 있습나다. 그 애가 7살쯤 되던 초가을에 자전거를 잃어버렸습니다. 아이는 자전거를 다시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바로 샤주는 것은 교육적이 아닌 것 같아서 그 다음해 어린이 날 사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아이는 가을 내내 자전거 타는 애들울 부러워했고, 저에게 어린이날의 약속을 확인하면서 어린이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겨울 어느 날, 그 아이와 상가를 지나가는데, 한 쪽펀에 100원찌리 동전을 넣으면 각종 선물이 나오는 기계가 놓여있였습니다. 1등은 로봇, 2등은 시계 등 거창한 선물이 나오지만, 꽝을 하면 고무공이 냐옵니다. 아이는 그 기계를 보더니 100원 달라고 졸랐습니다. 딱 한번만 하기로 하고 100원을 주었더니 고무공이 냐왔습니다. 

살망한 아이는 한 번만 더 하겠다교 졸랐습니다. 이번이 끝이라고 말하고 100원을 주었더니 또 고무공이 나왔습나다. 그러나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꼭 좋은 것이 나올 것이니 한 번만 더 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졸라도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더니, 심각하게 제안을 했습나다.“아빠, 내가 내년에 자전거 얀살테니 100원만 줘!"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하더니 100원에 눈이 어두어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기가 막혔지만 자전거를 안사겠다는 다점을 받고 다시 동전을 주었습나다. 당연히 고무공이 또 나왔습니다. 
우리가 이렇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을 모르면 어처구니 없이 잃어 버리게 됩니다.

구원의 증거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너무 감사하면서도 예수님을 천국 기차표 정도로 여기는 사람은 장롱 속 깊숙이 넣어 두고 맙니다. 기껏 해야 급한 일이 생길 때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죄책감에 눌리거나 병들었을 때, 예수님의 보혈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완전 물건 취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을 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분명히 계시지만 의식하지도 않고 교제도 없습니다. 존재감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 천국가야 할 순간, 아무리 찾아도 예수님은 찾아지지 않습니다. 기름준비 못한 다섯 처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예수님이 마음에 오신 것을 믿고 영접한 사람은 다릅니다.
예수님이 정말 오셔서 영원히 함께 사시는 것입니다. 손님이 아니라 주님입니다.
이것을 정말 믿으면 삶이 완전히 바뀝니다. 가정생활 뿐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도 완전히 바뀝니다.
이것이 구원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 주님이 재림해 오실지 모르니 준비하고 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도둑같이 오신다고 하셨는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심판을 받을 자에게나 도둑같이 오신다는 것이지, 구원받을 자에게는 결코 도둑같이 오시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살전 5:2~8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계시록 3장 1절부터 보면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에 편지하시면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시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님이 도둑같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계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도대체 사데 교회 교인들이 어떻게 신앙 생활하였기 때문입니까?
복음을 몰랐습니까? 교리를 몰랐습니까? 

계 3: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예수님이 지적하신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생활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지만, 부부 관계가 안 변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원수이던 사람이 여전히 원수입니다. 애들에게 물어봐도 우리 아빠, 엄마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답니다. 기도도 유창하게 잘하고 봉사도 잘하는데, 직장과 가정에서 인정을 못 받습니다. 예수 믿고도 여전히 돈이 좋고, '어떻게 하면 화끈하게 잘 놀아볼까' 하는 생각만 하고, 급한 일만 닥치면 세상 방법만 찾습니다.
이런 사람은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준비하고 사는 것은 예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것입니다.
살전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주님과 늘 동행하는 자는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영성일기를 쓰시는 어느 집사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땅에서 주님을 늘 바라보고, 주님과 늘 교제하며 살고자 몸부림치는 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구나!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할 때 주님이 생소하지 않겠구나! 주님을 직접 만난다는 설레임은 환희와 기쁨으로 변하겠구나! 주님은 이미 내 마음에 계시고, 나를 다 아시니,  주님도 내가 생소하지 않겠구나. 그래 언젠가 분명 직접 주님을 뵐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안에 계신 주님과 충분한 교제를 나누어야겠다. 매일 매일, 시간 시간, 분분마다”

성도 여러분, 불안하게 예수믿으면 안됩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임종 때, 빌리 그레함 목사를 급히 불러“하나님을 만날 확신이 없소! 지금 숨을 거둔다면 천국에 갈 확신이 없소!" 고백한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어설픈 구원에 머무르면 안됩니다.

이렇게 불안한 이유는 예수님과 친밀함이 없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만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모른다 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안에 오신 주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고 바라보면 됩니다.

조재진목사 아들 흠준, 초등학교 5학년 오락실에 빠짐 타이름, 1만원 회초리 세대 만져주고 약 발라 주고 안아 주고 그런데 또 만원 5대 너를 사랑해서 약 발라 주고 그런데 세배돈 용던 모아 만들어 준 통장 70만원 아이들 나누어 주고 빚 갚고 했다고 얼마나 화가 나던지 집에 들어오자 마자 방에 넣고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교육적으로 회초리로 다 소용없어 왜 이러세요 나중에 살려주세요. 그런데 성령님 그런다고 고쳐지겠느냐? 

말 좀 하자, 목사 아들이 목사 싫어요 예수님 믿는 사람이 예수님도 싫어요
너 오락실에 갈 때 무섭지 않던? 무서웠어요. 그런데 왜 가냐? ... 그게 죄의 힘이야. 안된다 알고 무섭다 느끼지만 자꾸 끌려가는 것이야, 그러다가 큰 죄짓고 감옥가고 지옥가는 것이야 마귀가 그렇게 하는 것이야
그러나 예수믿으면 죄에서 구원받아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로 죄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 위하여 살고 다른 사람들 구원하고
예수믿고 싶지 않으니, 믿고 싶어요. 기도하자, 그 때 눈물의 기도, 회개의 기도, 방언의 기도 터짐, 지금 전도사가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지옥은 악한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악했던 사람 중에도 천국에 간 사람이 많습니다. 
지옥은 생명의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사람이 가는 것입니다. 주님과 낯선 사람, 서로 잘 모르는 관계인 사람이 가는 것입니다.

지옥 가고 싶으세요? 그렇다면 주님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살면 됩니다. 웃고 떠들고 먹고 놀고 드라마 보고 영화 보고 여행다니고 싸우고 살면 됩니다. 
예수님, 나중에 생각하면 됩니다.
사탄은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이렇게 홀리고 있습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야!
이렇게 우리를 저 죽음의 골짜기로! 구원받은 은혜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여러분, 구원을 천국 티켓으로 여기면 큰 일입니다.
그러면 핍박 중에 구원을 잃어 리게 됩니다. “순교할 자신이 없어요. 순교만은 하지 않게 해 주세요.” 교리나 지식은 결코 우리를 핍박 중에 붙잡아 주지 못합니다.
구원은 예수님과 친밀해지는 것입니다. 전에는 원수였으나 이제는 아버지와 자녀요, 예수님과 한 생명이 된 것이 구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핍박이 와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순교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첫 설교하던 주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주일 새벽, 아니 밤 12시 30분 경이었으니 새벽도 아니지요,‘죽어도 좋을 만큼 예수님 한 분이면 좋은가!’하는 강한 음성에 잠이 깼습니다.
주일 설교 중에 전할 말씀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주일에“예수님을 믿되, 예수님만 함께 하시면 죽어도 좋습니다!’이렇게 믿어져야 예수님을 제대로 믿은 것입니다. 이렇게 간절히 그러면서도 확신을 가지고 설교를 하였습니다.
주일은 늘 일정이 빠듯하지만 어제 주일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몸이 많이 피곤했습니다.

그러나 주일에 주님이 주신 말씀을 전했다는 기쁨이 있어 집에 들어오기 순간까지도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교회 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들어왔는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선교사님께서 피살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도미니카 공화국 싼티아고에서 선교 사역을 하시던 이성철 선교사님께서 제가 설교하던 바로 그 시각에 피습당하고 결국 소천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차려준 저녁식사를 하는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한 밤중에 주님이 주신 말씀이 이 소식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갑자기 모든 피곤이 다 몰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죽어도 좋으냐?”
설교할 때 제 표정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설교를 즐겼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선교사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모님과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설교를 했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저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잠에 빠져들고 싶었습니다.
그 때, 이성철 선교사님께서 천국에서 주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선명히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성철 선교사님이“예수님이 최고입니다!”고백하셨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누운 채 눈물이 났습니다! 주님, 아멘입니다!
문제는 선교사님의 유족들입니다. 그들도“예수님이 최고입니다!”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혹시 구원을 소홀히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입니다. 두려워서 묻는 것입니다.
자신을 한번 돌아보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해 무관심하지는 않습니까? 땅의 일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닙니까? 

과거의 예수님은 압니다. 미래의 예수님도 압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구원은 지금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기를 힘씁시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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