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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이용하나요? 사랑하나요? (요 21: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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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이용하나요? 사랑하나요? (요 21:15-17)


로스엔젤레스 북쪽에 빅 베어 산이 있습니다.
척 스미스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갈보리 교회 수양관이 그 산꼭대기에 있습니다. 
그 곳으로 200여명이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24시간 동안 침묵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200여명이 24시간 동안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모임은 처음이었습니다. 24시간이 끝나는 때에 나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눈이 30cm 가량 쌓여 있었습니다. 눈위에서 앞에 나무를 붙들고 섰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24시간 침묵을 지킨 입술로 제일 먼저 무슨 말을 할가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주님! 사랑해요.”
그리고 눈위에 엎어졌습니다.
“주님! 사랑해요.”

그리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주님 이용하여 은혜도 받고, 지혜도 얻고, 기도도 응답되고, 남보다 머리가 될 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주님을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로 제일 먼저 가셨습니다. 흩어진 제자들을 다시 찾고 계신 중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부활 후 다시 만날 때도 역시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을 때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 하였기에 주님이 오셨는데도 주님인 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고기가 153 마리 잡혔습니다. 그 때 한 제자가 예수를 예수로 알아보고 외쳤습니다.
“주시다.”
베드로는 고기를 잡다가 이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예수님에게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같이 생선을 구워 떡과 함께 조반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베드로와 오고갔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이 것이 오늘 대화 내용입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주님을 이용하였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곁에서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신비로웠습니다. 주님 곁에서 진리를 듣는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도 하였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시매 내가 뉘게로 가오리까?”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백도 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위한 주님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한 내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팬이었지만 주님의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베드로는 이제 주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군중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이용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인산 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병고침을 받으려고 몰려 든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되었는 지 성경은 한 마디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하고 병고침받고 끝났습니다.
예수님이 해외에 꼭 한번 가셨습니다. 마가복음 7장 이야기입니다. 두로 지역입니다. 한 여인이 와서 애걸하였습니다. 딸이 귀신들렸는 데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들으시고 고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모두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이들만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이용하였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하시는 것을 보니 왕이 될 것같았습니다. 인기가 최고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행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하고 계셨습니다. 오병이어 시간 후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와서 요청하였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주세요.”
예수님이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장관자리 하나 하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이들뿐이었습니다. 오늘 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지 많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어떤지 한번 점검하는 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이용하나요? 사랑하나요?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일가요?

1.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신 7:9)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예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분을 사랑한다는 말은 그 분의 말을 잘 따르는 것이 그 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느 성도가 전도를 하였습니다; 한 명이 빤질빤질하면서 도저히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끈질기게 찾아갔습니다. 그 사람은 귀찮아서 떼어 버려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래침을 뱉아 놓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이 가래침을 먹으면 내가 한번 교회 나가 주지요.” 그 순간 십자가 환상이 나타나며 주님이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영혼을 구원하려고 십자가에서 죽었는 데 그까짓 것을 못 하겠니?”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두 손가락으로 그 가래침을 들어 입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서슴치 않고 삼켰습니다. 그 사람은 엄청난 감동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무엇이기에 내 가래침을 삼키는가?”
그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가장 큰 명령은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아끼는 것이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이 얼마 전에 베스트 셀러였습니다. 그 곳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사회학과 교수가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로 가서 청소년 2백 명의 생활환경을 조사하라는 숙제였습니다. 학생들은 빈민촌으로 들어가서 청소년들을 조사하여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조사서를 만들어 제출하였습니다. 평가서는 거의 동일하였습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전혀 미래가 없다. 너무 가난하여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25년이 지났습니다. 이 학교에 사회학과 교수가 우연히 이 연구 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학생들에게 2백 명의 청소년들이 25년이 지난 현재 모습을 조사하여 오라는 숙제를 냈습니다. 조사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동안 죽은 아이와 이사간 아이가 20명이었습니다. 나머지 180명 중에서 1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변호사, 의사와 사업가등 상류층이 많았습니다. 교수는 놀라서 그 조사를 더 진행시켰습니다. 교수는 그들을 한 사람씩 만나 직접 물어 보았습니다. 

"당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답은 모두 한결같았습니다. 
"여 선생님 한 분이 계셨지요." 
그 여교사가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교수는 수소문 끝에 그 여교사를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떻에 아이들을 가르쳤기에 빈민가의 청소년들을 이처럼 성공적인 인생으로 이끌었습니까?”
늙었지만 아직도 빛나는 눈으로 여교사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비결은 정말 간단합니다. 그 아이들을 사랑했답니다." 
사랑은 놀라운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제일 계명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느 병원에서 생긴 이야기입니다. 임종하고 있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노인은 심장 마비를 치료하느라고 강한 진통제가 들어가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습니다. 노인은 마지막으로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희미하게 말했습니다. 그 때 해병대 군복을 입은 청년이 들어섰습니다. 간호원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할아버지! 기다리던 아들이 왔어요.”

노인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군인은 그 손목을 꼭 잡았습니다. 그런 상태로 시간이 흘렀습니다. 간간히 간호원이 들어 와서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 갔습니다. 그 군인은 밤새도록 그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간호원이 들어와서 그만 하고 눈 좀 붙이라고 하여도 말없이 노인의 손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노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청년은 간호원에게 물었습니다.

“이 분이 누구신가요?”
간호원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당신 아버지가 아닌가요?”
청년이 말했습니다.
“전혀 아닙니다.”
“그러면 왜 손목을 그렇게 꼭 잡고 밤을 새우셨나요?” 청년이 말했습니다.
“내가 이 분의 손목을 잡자 이 분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내 손을 꼭 쥐어 주었습니다. 나는 그 눈빛을 실망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임종까지 붙들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이용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기에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갈보리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몇 년전 미국 텍사스 달라스에서 성막 쎄미나 171기를 하였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 교회에서 4년간 일하시던 전 송자 전도사님을 만났습니다. 호텔보다 더 좋은 집이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호텔비가 하루에 223불이었습니다. 그래서 싼 모텔로 나가려는 데 그럴 바에는 그 집에서 머믈자고 하여 그 집에서 5일을 머믈렀습니다.

그 때 김 대중이라는 분과 같이 그 집에서 머믈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주 독특한 분이었습니다. 몸에 암이 6가지나 있어서 6번 수술을 하였습니다. 달라스에서 10시간 정도 거리인 뉴올리언스에 살고 계신 분인 데 달라스 병원에 특별한 관계가 있어서 치료 받으러 와서 이 집에서 머믈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한국 정계에서, 그리고 미국 정계에서 알아 주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는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습니다. 지금도 죽을 고비를 순간 순간 넘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 주시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알려 주셨습니다. 홍제동에서 가난할 때 교회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 때 산기슭에 무허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브럭크로 교회를 세울 때 수 주를 모든 일을 전폐하고 현장에서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 때의 열정이 가끔 그리워집니다. 나는 죽을 둥 살 둥 수없이 많은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 때 교회를 세운 공로를 하나님이 인정하셔서 지금의 위기를 이기게 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교회 사랑이 예수님 사랑입니다.

나는 쏘련 카자크스탄 가라간다 교회에서 성막 쎄미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성막 쎄미나 역사상 가장 많이 모였고 가장 인상깊은 쎄미나같습니다. 5000명 가량이 모였습니다. 담임목사는 김 인걸 목사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두 번 오셨었습니다. 형은 사할린에서 기차를 타고 오다가 얼어 죽었습니다. 그런데 김 인걸은 살았습니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고혈압으로 세 번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선교사 유 의경 목사님이 오셔서 전도하고 안수기도를 하였는 데 깨끗이 나았습니다. 신학교에 갔습니다. 목사가 되었습니다. 

큰 교회를 하나님이 이루어주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런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라간다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지금 3,000명이 모이고 있습니다. 30만 가라간다를 구원하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쏘련 전역에 10,000 교회를 세우자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3,000명 들어가는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또 혈압으로 쓰러졌습니다. 다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끝이라고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조금만 거동할 수 있으면 미국 워싱톤으로 가서 세계 최고의 의술로 수술을 한번 해보자고 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안정되었을 때 비행기를 탔습니다. 비행기가 공중으로 치솟자 다시 혈압이 극도록 올라서 다 죽게 되었습니다. 비행기에 누워 사모님은 붙들고 기도만 하였습니다. 목사님도 오직 예수님만 불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심장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말했습니다.

“무엇하러 왔습니까? 이상이 한 곳도 없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교회를 사랑하며 1,000 교회를 지으려고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나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는 완벽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여 주십니다. 교회 사랑이 예수님 사랑입니다. 우리 갈보리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3.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2)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1)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여 영혼을 구원하라고 하시는 명령이었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 우리의 최초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유언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 옛날 이야기 중에 청개구리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모말을 듣지 아니하는 청개구리가 있었습니다. 동으로 하라면 서로 가고, 이리 오라면 저리 가는 청개구리었습니다. 단 한 번도 부모말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어느날 부모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양지 바른 곳에 묻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양지에 묻어 달라고 하면 청개구리는 물가에 묻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유행하였습니다.

“아들아! 내가 죽으면 시냇가의 묻어 다오”
부모에게 오늘들은 청개구리는 평소에 순종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유언만은 들어주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정말 부모의 시신을 시냇가에 묻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비가 오기만 하면 부모 시체가 떠내려 갈까 두려워 개굴개굴 울어 대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유원은 듣는 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유언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18-20)
부모의 유언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의 유언은 더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은 영혼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전도팀이 있었습니다.
금요일마다 모여서 전도 나가는 데 전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금요일 목사님이 전도팀을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오늘 전도를 못 하면 우리 교회 나올 생각하지 말아요. 그리고 나를 목사로 부르지도 말아요.”
전도하고 돌아 와서 그들이 둘러서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뭐 하는 거예요?”
그들중에 한 명이 말했습니다.
“아저씨! 우리 어느 교회로 갈가 의논중이예요.”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유언을 이루어 드리는 사랑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영혼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 어떤 마을에 얼굴이 아주 험상궂은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그 노인을 싫어하고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한 소녀만은 얼굴이 흉한 그 노인을 늘 웃음으로 대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전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소개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 노인은 지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은 40만 불(5억 원)의 재산을 자기에게 늘 미소를 보내며 전도하여 준 그 소녀에게 남겨 주었습니다. 

전도는 서로 축복입니다.
양 병희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영안 교회 집회하면서 들은 은혜의 이야기입니다.

옆에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에서 어느 날 소방 훈련이 있었습니다. 4명 여자들이 사닥다리 차 바구니에 들어 가서 9층 높이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바구니를 유지하고 있던 쇠줄이 끊어져서 바구니가 거꾸로 되었습니다. 4명 여자들이 그대로 쏟여져 내렸습니다. 3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한 명 이 혜숙 집사님만 살았습니다. 그런데 전도의 사명을 받은 집사님이었습니다. 전도 열심히 하는 그 집사님만 살아났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전도 잘 하니까 하나님이 데려가기 아까워서 살려 주셨다.” 
전도 잘 하면 자기가 상급을 받습니다. 전도는 주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이용하지 말고 사랑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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