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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반드시 응답되는 기도 (마 7: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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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응답되는 기도 (마 7:7-11)
  

들어가는 말

 제 50회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가 10월 7일부터 21일간 진행됩니다.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를 시작하기 전에 워밍업으로 기도에 대한 말씀을 두 주간에 걸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 매일 아침마다 기도하는 한 주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3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교회에 와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하늘에서 “그래, 아들아 오늘은 무슨 일이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주교는 그 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답니다.
주교는 습관적으로 기도를 드렸지만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고 응답하실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가 지어낸 얘기겠지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교훈을 줍니다.
‘당신은 기도를 드리지만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셔서 당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믿는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면 머뭇거리는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세 단계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 단계로 8절에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9-10절에서 비유를 듭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구절을 여러 번 읽어보았습니다.
이 말씀의 분위기가 어떻습니까?
당신께 나아오는 자를 빈손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으시려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가 확신을 가지고 여러분께 간증할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제가 그분께 나아갈 때 섭섭하게 빈손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기도할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당신께 나아오는 자를 섭섭하게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11절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 아버지는 자식과 대화하고 싶어 합니다. 

아무리 말이 없고 무뚝뚝한 부모라 할지라도 일단 아이를 낳아 기르면 말이 많아집니다. 
어머니는 하루에도 수천수만 번씩 아이에게 말을 건넵니다. 
아이가 들을 만한 아주 단순한 단어들로 아이에게 끊임없이 말을 합니다.
“맘마 줄까요?” “엄마 왔어요.” “도리도리” “아이고, 예뻐라 내 새끼!”
그러다가 가끔씩 아이가 옹알이 비슷하게 한두 마디 반응을 하면 아이가 말을 했다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예쁘게 키운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입을 딱 다물어요. 
말을 하지 않아요.
그러면 어떻게 하든 말을 하게 하려고 부모는 온갖 아양을 다 떱니다. 
그래도 입을 열지 않아요.
어떤 자식이 부모를 행복하게 하느냐 하면, 부모와 정답게 대화하는 자식입니다. 
그런 자식에게 부모의 마음이 갑니다.

이 개념을 전제하고 성경을 읽다 보면, 왜 하늘 아버지께서 그토록 우리에게 기도를 요구하시는지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가까이하시리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 
자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시고 대답을 기다리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히 묻어나지 않습니까? 
자녀가 예쁘게 대답만 해준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 주고 싶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 엿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그토록 기다리십니다.

2. 아버지는 자식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녀들을 축복하기 원하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사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훨씬 뜨겁고 애틋합니다.

그 마음이 잘 표현된 곳이 바로 아론의 축도로 널리 알려진 민수기 6장 22-2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아론의 축도에서 ‘원하고’라는 말씀을 주목해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길 원하는 마음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길 원하는 마음이 훨씬 크고 강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가지신 모든 것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아낌없이 우릴 위해 내어놓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축복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늘 아버지는 자식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실까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 응답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우리의 시나리오대로 상황이 풀려갈 때 그것을 기도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하면 내 입맛대로 인생이 풀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기도 응답은 일단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 자체입니다.
하나님이 문제를 검토하시는 순간부터 기도 응답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일하기 시작하신다.” 
이제 기도응답의 유형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이럴 때에는 이렇게 응답하시고, 저런 때에는 저렇게 응답하신다고 유형별로 정리해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기도응답 받은 것을 잘 관찰해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① ‘그래(yes)' ② ‘기다려 (wait!)’ ③ ‘이 길이야 (this way!)’ ④ ‘안 돼! (no!)’ 

1) ‘그래!(yes)’ 라고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면 그대로 응답받는 경우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초신자들에게는 비교적 신속하고 명확하게 기도응답을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아마 이제 막 신앙생활을 하는 어린 신자들에게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라는 사실을 확신시키려는 하나님의 배려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초신자 여러분, 기도 많이 하시고, 응답 많이 받으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시길 축원합니다.

천안대학교 기독교 학과장이었던 유호준 박사의 간증입니다.
미국에서 한인교회를 섬겼는데 교회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느 날 서재에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한숨을 쉬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두 살 박이 아들이 기저귀를 차고 뒤뚱거리면서 서재를 왔다 갔다 하면서 뭔가를 웅얼거립니다.
가만히 들어보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라는 복음성가였습니다.

할머니가 무릎에 앉혀놓고 불렀던 복음성가를 어린 아들이 무심코 웅얼거린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아들의 찬양을 자기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 마음에 평안이 넘치고, 용기가 솟아났습니다.
기도하면 그대로 응답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2) ‘기다려! (wait!)’라고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면 ‘좀 기다려!’라고 응답하십니다.
계6:10-11절에 보면 주님께 순교자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그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축복을 주시는 타이밍과 축복의 양을 절묘하게 컨트롤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축복을 감당할만한 그릇으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40년 광야생활에 지친 이스라엘은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마음이 급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정복 전쟁을 끝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몇 년에 걸쳐서 차근차근 땅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깊은 하나님의 배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출 23:29-30).
땅은 정복하기보다 다스리고 일구는 것이 더 힘듭니다. 
400년 동안 노예 생활만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이 갑자기 광활한 땅을 갖게 되면 속수무책으로 정복한 땅을 방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 땅이 황폐해지고 순식간에 들짐승들이 들끓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민족을 조금씩 좇아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성공하고 있을 때 교만하지 않도록, 잘 될 때 죄 짓지 않도록 하나님은 브레이크 장치를 곳곳에 설치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장애물들이 나타날 때 우리는 감사하며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기도 응답의 일부분인 것입니다. 
목마른 나그네에게 물을 줄 때 급하게 마시다가 체하지 않도록, 버들잎 몇 개를 물에 띄어 주었다던 유명한 이야기를 아시지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3) ‘이 길이야 (this way!)’ 라고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길은 다 막으시고 다른 길을 열어주십니다. 
‘이 길이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 또한 기도응답의 한 형태입니다.

역대상 17장에 보면, 다윗 왕이 평생에 한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기도도 많이 했고, 이 일을 위하여 준비도 많이 했습니다. 
그 일이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대답하신 줄 아십니까?
역대상17:4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그리고 다른 길을 보여주셨는데,

역대상 17:12 “솔로몬 왕이 나를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길이야!’라고 응답하실 때 기도하는 자의 바른 자세는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입니다. 
그러면 복이 됩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재량권 하에 둔다.’는 뜻입니다.
시간의 재량권, 물질의 재량권, 재능의 재량권, 지위의 재량권, 생명의 재량권, 자녀의 재량권을 하나님께 드려서 그분이 원하는 대로, 그분이 사용하게 하는 것을 ‘순종’이라고 합니다.

4) ‘안 돼! (no!)’라고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끔씩 ‘안 돼!’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이 ‘안 돼’라는 것도 하나님의 응답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안 돼’라는 응답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고후12:7-9에는 바울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 -그것이 어떤 질병인지는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때문에 세 번 주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주님! 이 육체의 가시를 지고 살기에는 너무 힘이 듭니다.” 
그때 주님께서 뭐라고 응답하신 줄 아시지요?
“안 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12:9)

어머니는 부엌에서 칼로 모든 요리를 다합니다.
시금치를 다듬기도하고, 무를 자르기도 하고, 생선의 배를 가르기도 하고, 질긴 고기를 먹기 쉽게 칼집을 내기도 하고, 뭉텅뭉텅 자르기도 하고, 깊고 가늘게 쓸기도 하고, 자잘하게 다지기도 합니다.

아이가 보니 어머니는 칼의 마술사입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칼놀림에 흥미를 느끼고, 자기도 해보고 싶어 칼을 달라고 합니다.
“아이가 칼을 달라고 하면 줄까요?
“그래, 재밌지? 한번 해봐라. 칼을 이렇게 잡고.......”
어린 아이에게 칼을 주는 분은 한 분도 안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이와 같이 ‘안 돼!’ 라고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 기도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는 ‘안 돼!’라고 할지라도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능력을 추호도 의심치 않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나가는 말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응답 받기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훨씬 더 우리에게 응답해주고 싶어 하십니다. 
평생 고아들을 키우면서 5만 번이 넘는 기도 응답을 받았던 조지 뮬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란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하나님에게 억지로 조르는 게 아니다. 기도란 우리를 기꺼이 축복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마지못해 머뭇머뭇하시는 하나님을 억지로 끌어내는 일이 아니라, 축복이 가득 찬 하나님의 손길 아래에 내 머리를 들이미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번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에 반드시 참석하셔서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길 권면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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