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여호와를 경외하는 좋은 일꾼이 됩시다 (잠 31:30)

첨부 1


여호와를 경외하는 좋은 일꾼이 됩시다 

(잠 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 훌륭한 예술품이라고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가 있다합니다. 그 그림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자, 그림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로 인해 코펜하겐은 늘 붐비게 되었다합니다. 한 유명한 화가도 그 초상화를 보기 위해 코펜하겐을 방문했다합니다. 기대감을 가지고 그는 그림을 면밀히 조사해 보았으나 그림의 기법이나 색채감이 별로 특별하지도 않아 실망하고 말았다합니다. 

그래서 그가 함께 온 친구에게 느낀 소감을 이야기하자, 친구는 “여보게. 그것은 자네가 잘못 본 걸세. 그 그림은 마주 서서 보는 것이 아닐세. 어떻게 우리가 구세주인 그리스도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겠나? 무릎을 꿇고 앉아서 다시 보게. 그러면 그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알게 될 걸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들은 화가는 다시 경건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그 그림을 올려다 보았다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말할 수 없는 자비와 사랑의 모습이 그의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감동한 화가는 언제까지나 그 그림을 황홀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에 따라 영원이 결정되는 사실을 증거 합니다.
특히 잠언은 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고 선포합니다.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거만하고 교만한 자는 주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며 주의 지혜와 훈계를 멸시합니다. 그러나 그 결국은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무관심합니다.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롬 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대 심판 때에 영원한 불 못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살후 1:7-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또한 한 때 하나님을 믿는 것 같고 따르는 것 같지만 하나님을 저버리고 배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잃은 자들입니다. 그들의 특징 역시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심판의 심각성을 우습게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멸절시키라고 명한 아말렉 족속에 대해 주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말렉 왕도 살려주고 좋은 짐승들도 살려둔 후에 몰래 남겨두었습니다. 그 사실을 선지자 사무엘이 지적하자 그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기 위해 좋은 동물들을 남겨둔 것이라고 둘러대었습니다. 이때 사무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울에게 선포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삼상 15:26) 

유다 왕 요아스 왕은 그의 말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를 버리고 하나님을 업신여겼습니다. 이때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유다 백성 앞에서 예언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대하 24:20)

하지만 요아스는 이렇게 참된 예언을 하는 하나님의 종을 우습게 여기고 신하를 시켜 스가랴를 여호와의 성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는 요아스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기는커녕 철저하게 하나님을 업신여긴 행동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적은 무리의 아람 군대를 일으켜 요아스의 큰 군대를 패하게 하신 후 요아스의 신하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켜 요아스를 죽이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여호와를 멸시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하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주께로부터 받은 명령을 의도적으로 불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주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지 도전을 받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성경을 읽고도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는 도리어 성경을 읽은 것 때문에 더 교만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2-25)

그러므로 사람은 성경을 대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대하여야 하며 또한 주신 말씀을 주를 경외하는 마음 가운데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마음이 강퍅하여지면서 불순종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되는데 이때는 아무리 귀한 말씀을 들어도 변화가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자세를 분명하게 하라는 요구를 더욱 강력하게 할 것입니다. 즉, 주 하나님을 향한 자세에 있어서 회색 지대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멀리하던지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 외에는 다른 중립의 길이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멀리하는 것은 주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저버리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그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상주시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무슨 뜻입니까? 이 의미를 제대로 모르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에 대해 오해할 때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거나 금욕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또는 하나님을 심하게 오해하여 평생 까다로운 하나님을 달래기 위해 노력하면서 두려움으로 지내는 자들도 있습니다. 경외는 단순한 두려움과는 다릅니다. 

어느 위대한 왕이 궁전을 지었습니다. 궁전의 벽들을 수백 개의 거울로 덮었습니다. 그 궁전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어느 날밤 우연히 개 한 마리가 길을 잘못 들어 궁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개는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수백 마리의 개를 본 이 개는 너무나 겁이 났고 무서웠습니다. 어찌나 겁이 났는지 개는 들어온 문이 어디 있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수백 마리의 개가 사방에 있으니 틀림없이 죽음을 당할 터였습니다. 개가 짖기 시작했더니 수백 마리가 따라서 짖기 시작했습니다. 개가 공격할 자세를 취하니 수백 마리의 개 역시 공격할 자세를 취하였습니다. 개는 벽들을 향해 덤벼들었습니다. 아침에 보니 개가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개 한 마리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누구나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그릇된 판단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마 10:28)여야 합니다.
  
우리의 현주소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을 향한 경외하는 심정과 자세를 지니고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우리에게 없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러한 자들을 버리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를 깨달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신앙 자세는 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엄위와 위대함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에 대한 감사를 느끼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뿌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닌 자들은 주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려고 전심을 다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주의 사랑 앞에 무한한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깨달을 때 나타나는 마음은 정확하게 주를 경외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의 근본이며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시초와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의 눈이 복음을 깨달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즉, 십자가에 달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향해 진노하시며 공의로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을 보게 되면서 피할 길이 없어서 두려워 떨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에 대한 두려움은 지옥에 대한 두려움처럼 큽니다. 참으로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실체를 느끼면 말로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십자가의 예수님을 통해 동시에 발견하게 되는 것은 거룩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무한한 사랑을 가지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주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죄 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던 우리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달으면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두 가지의 감정을 공존하여 느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입니다. 즉, 십자가의 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극한 거룩하심과 지극한 사랑하심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무한한 경외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하심을 깊게 깨달을수록, 즉 나의 죄악됨과 비참함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갖게 되지만, 동시에 그 거룩하시고 공의하신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시는 것을 볼 때, 오직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만이 나의 구원의 길이며 피난처임을 알게 되면서 한없는 감사의 눈물로 주 앞에 서는 것이 바로 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세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복음을 바르게 알고 깨달은 자들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신앙 자세가 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악을 보면서 ‘나야 말로 지옥불에 합당한 죄인이로다’라고 진정으로 인정하며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을 마땅한 처우라고 인정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로 인하여 새롭게 일어서게 되면 그 마음에는 늘 이렇게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음은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인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때 그 마음에 주를 향해 무한한 감사와 사랑이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깨달은 자들마다 “죽을 죄인, 지옥에 합당한 이 죄인, 그럼에도 주의 은혜와 자비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렇게 구원 얻게 되었습니다.”라고 노래합니다. 이것이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노래이며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한결 같이 똑같은 신앙 고백의 찬양을 부릅니다.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7-13) 
이러한 마음 자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자세를 지닌 자는 언약과 맹세를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전도서 5장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의 자세를 말하는데 그 자세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어 맹세하지 않는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전 5:2-8)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약속을 어기는 것을 밥 먹듯이 행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께나 사람에게 약속한 것은 뭐든 반드시 지킵니다. 그러므로 교회 일꾼인 집사를 세울 때에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딤전 3:8-10)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언약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언약이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동반하는 약속을 뜻합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은 훌륭한 왕이었지만 아합 왕과 언약을 맺음으로 인하여 다윗 왕조에 큰 오점을 남기는 실수를 범하였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악에 속한 자들과 언약을 하지 말 것을 명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4-18)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를 지닌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하며 성경에 뭔가를 더하거나 감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세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였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렘 23:16-1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3:31-32)
  
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하신 위계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권위 질서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 아내가 남편에서 순종하는 것, 성도가 하나님의 종에게 순종하는 것, 동생이 형에게 순종하는 것, 사회에서 직원이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 백성이 관원들에게 순종하는 것 등등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위계 질서를 지키는 행위입니다. 성경은 겸손한 척하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 실제 인간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지키며 자신에게 해당하는 위치에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을 겸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부 및 권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을 잃을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느브갓네살의 신상에 절하지 않고 사자굴에 갇혔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는 불의에 동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권력을 가진 자들은 우리가 불의에 동조하지 않을 때 핍박을 행하고 불이익을 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권력에게 굴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오직 주께만 우리의 온 마음과 삶을 다 드려 충성하는 것을 뜻합니다.

어느 날 런던의 한 클럽에서 문학인들이 만나 역사에 빛나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만일 밀턴이 지금 이 방안으로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자 "그가 살아있는 동안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것을 생각해서라도 열렬하게 환영해 주고 싶은데"라고 대답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온다면요" 라는 물음에는 "그에게 모두 일어나 영광의 관이라도 씌워주고 싶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 들어오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두들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발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경배드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9-10)
  
또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지혜를 얻게 되면서 더욱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잠 2:4-8)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심판 때에 상을 얻을 것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 22: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시며 책임지시기 때문에 그 마음에 확신과 평안과 감사가 넘칩니다.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주께서 깨어 있는 마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죄악을 피하며 더욱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외롭고 좁은 길을 꾸준하게 걷는 삶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을 마음 속에 두고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나아가며 마음의 소망은 주 앞에 섰을 때 ‘충성된 종아’라는 주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가장 지혜로운 삶인 것을 믿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친히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 본을 보이시며 이 땅에서 사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려면 내가 죽고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를 알고 주의 생명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심령은 성령 충만한 삶을 살므로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넘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삶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성령의 열매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만방에 드러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구속된 자들로서, 우리의 구속자이신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아야 마땅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시니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니 그분을 경외하며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그 사랑에 감격하여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늘 영광을 간절히 소망하며 나그네의 성결생활에 힘쓰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경외합시다. 우리의 죄악을 향해 오래 참으시며 우리가 변화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경외합시다. 하나님만을 의식하며 사람들이 인정하든 말든 외롭고 좁은 참된 신앙의 길을 꾸준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 알렉산더 클라크 목사님이 한 번은 사자에게 물려 거의 죽게 된 흑인의 상처를 치료해주었습니다. 치료받은 흑인은 선교사를 떠나서 자기 갈 곳으로 갔습니다. 석 달 후에 그 흑인은 선교사에게로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프리카 정글의 법칙을 아시지요. 아프리카 정글법은 구속된 자는 구속한 자에게 소속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죽었으나 지금은 살아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여기 여섯 명의 아내와 자녀들과 내 가축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를 마음대로 사용하십시오.' 
   
'현숙한 여인'에 대해 22개의 구절로 되어 있는데 각 절의 첫 글자를 외우기가 쉽도록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이 가지고 있는 부인의 덕행이 남편과 가정에 얼마나 큰 힘을 미치고 있는가를 잘 나타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이란 지혜로운 여인을 의미하는 이 지혜로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옵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 31:30)

육체의 아름다움은 세월이 갈수록 사라져 가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그녀를 고매한 품위를 지니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은혜임에 틀림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인은 마지막에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여인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칭송을 받습니다.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가정을 돌보는 여인은 귀한 어머니와 아내로서 칭찬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롭고 현명했던 여인들이 개인적으로 행복하지 못했던 것을 제도적 탓으로 돌리기에 앞서 신앙의 차원에서 거듭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과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여성이 모든 것에 앞서 신앙으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하는 여인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명절 때 마다 명절 증후군이란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의 사람은 주님을 섬기는 자세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더욱 겸손하게 헌신 하고 봉사할 때 칭찬 받는 자리에 함께 할 줄 믿습니다.  

박샤론 자매는 2006년 미스코리아 선이며, 다일공동체 캄보디아 시암리아프 밥퍼 사역의 홍보대사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밥퍼 사역 홍보대사답게 틈만 나면 열정적으로 홍보에 나서며, 평소에도 서울 청량리 밥퍼 사역 현장이나 보육원, 양로원 등 이웃돕기 자선행사에 자주 참가합니다. 평소에 성경도 열심히 읽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성경공부 순장으로 순원들과 애경사를 함께하기도 합니다. 요즘 그녀의 기도제목은 ‘처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자’라고 한다 합니다.

이 세상의 사라질 아름다움을 소망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아름다움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좋은 일꾼들이 됩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