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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에' 는 '이에' 로 답하신다 (단 2: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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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는 '이에' 로 답하신다 (단 2:14-19)


■ 다니엘 2장 14절 ~ 19절
(14절) 그 때에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이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러 나가매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15절)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에게 물어 이르되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냐 하니 아리옥이 그 일을 다니엘에게 알리매
(16절)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17절)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알리고
(18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19절)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요즘 접하는 사건마다 늘 어두운 면이었는데 모처럼 밝은 뉴스가 날아들었습니다. 그것은 암 사망률이 전년보다 0.8%p 줄었다는 희소식입니다. 하지만 우울한 뉴스는 여전합니다. 43.6명, 이 숫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자살하는 자 수치입니다. 10년 전과 비교해 119.9% 증가했습니다. 

자살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아니한 사람이 있을까요? 설령 자살에 이르지는 아니했다할지라도 그 문턱까지 가본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때, 삶의 무게가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짓누른다고 생각할 때 그만 끈을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수없이 떠오릅니다. 왜 이렇게들 아까운 목숨을 끊을까요? 이게 과연 정답일까요? 진정한 원인과 해결방안은 무엇일까요? 도대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스무 살도 채 되지 아니한 저들 앞에 큰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느부갓네살 꿈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왕의 명령이 내리매 지혜자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죽이려고 찾았더라”(단 2:13).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면 무엇을 택합니까?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적들은 쫓아오는데 중상까지 입었습니다. 그때 그는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져 죽었습니다(삼상 31:4).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위협 속에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왕상 19:4). 가룟 유다, 그는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마 27:5). 

다니엘, 똑같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급박한 상황에서 명철하고 지혜로운 말로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알려드리겠다’고 요청합니다(단 2:16). 박사와 술객들을 향하여 ‘시간을 지연시키려 한다’(단 2:8)고 윽박지르던 왕을 향하여 말입니다. 그는 지금 위기 앞에서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이런 말과 이런 행동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잊어버리고, 되살리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고난과 위기의 과정을 통해 놀랍게도 자신 안에 숨겨져 있던, 그래서 잊혀 있던 꿈을 발견하게 됩니다(단 1:17). ‘모든 사건에는 항상 양면이 있구나. 특히 고난은 또 다른 한 면을 가지고 내게 다가오는구나!’ 그가 이 귀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고난과 위기 가운데 깨달은 것은 바로 양면(兩面)의 진리였습니다. 

이런 그에게 느부갓네살 꿈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때 그는 다시 양면의 진리를 떠올립니다. 그는 당황하거나, 누굴 원망하거나, 지레 겁을 먹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거나, 생명을 접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한 면이 분명히 있다. 그 면을 기어이 보게 될 것이다.’ 이 믿음을 가졌던 그가 어떤 액션을 취합니까?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알리고”(단 2:17).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라는 표현입니다. 단순히 먹고 자고 쉬는 자기 집일까요?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그가 총총 걸음으로 간 곳은 단순히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기도의 장소였습니다. 그가 기도의 장소를 찾았다는 뜻입니다. 그는 기도의 골방을 찾아갔습니다. 

둘째로 ‘그가 집으로 돌아가서’ 이 말의 의미는 혼자 기도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곳에서 기도의 동지들과 함께 기도 제목을 나누며 기도했습니다. 그는 사건 앞에서 사건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기도의 장소를 찾아 기도의 동지들과 함께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또 다른 면을 보여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단 2:19).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다니엘이 ‘이에’로 시작합니다(단 2:17).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에’로 답하십니다(단 2:19). 구체적으로 ‘이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가장 적절한 때, 가장 적절한 방법, 가장 적절한 축복을 의미합니다. ‘이에’는 반드시 ‘이에’로 답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건이든지 항상 양면이 있음을 믿는다면,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이에’ 한다면, 하나님은 ‘이에’로 반드시 답하십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쉽게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절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습니다. 

최근 “With You 당신에게 힘이 될게요”(손경미, 생명의말씀사)라는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주인공 손경미 씨는 유방암과 뇌종양 환자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엎드렸습니다. ‘이에’ 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이에’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이 또 다른 고통을 치유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암환자라는 사실 때문에 다른 암환자에게 다가가 진실한 소통을 하며 위로를 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시골의 한 통나무집에 병약한 남자가 홀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산사태로 큰 바위 하나가 집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때부터 바위를 매일 밀기 시작하여 8개월이 되었지만, 한 치도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난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 한 적이 없다. 그냥 바위를 밀라고 했을 뿐이다. 집에 들어가 거울을 한 번 보렴.” 거울 앞에는 웬 근육질의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변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앞에 문제의 큰 바위, 그리고 태산이 가로 놓이고, 난관에 봉착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더 이상 살아서 뭐하는가? 깨끗하게 끝내버리자!’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사건에는 또 다른 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 면은 지금 내가 만나는 사건과 전혀 다른 또 한 면이란 사실을 아십니까? 그 면을 나에게 보여주실 분이 하나님이시란 사실을 아십니까? 

진정 그렇다면, 이 사실을 믿는다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이에’하는 것입니다. ‘이에’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에’로 답하십니다.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가장 적절한 축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놀라운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면서, 그 하나님의 방법을 기대하면서, 그 하나님의 축복을 미리 내다보면서, 하나님 앞에 다니엘처럼 ‘이에’ 합시다. 하나님 전에 나아가 ‘이에’ 합시다. 하나님께서 ‘이에’ 답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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