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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소서 (시 40:1-3, 마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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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을 반석 위에 두소서 (시 40:1-3, 마 4:5-7)

18세기 토프래디목사님은 토질이 좋지 못하고 기후가 고르지 못한 시골교회를 목회하는 목사였습니다. 흩어진 성도를 심방하면서 위로하고 권면하며 힘을 주고 위로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어느 날 가정을 심방한 후 귀가하는 가운데 갑자기 큰 폭풍우가 몰려왔습니다. 목사님은 피할 곳을 찾다가 큰 바위 밑에 들어가 잠시 몸을 숨겼습니다. 그런데 그 바위 밑에서 말할 수 없는 평안함을 느꼈습니다. “여기가 그리스도의 품이구나”. 목사님은 종이를 꺼내어 적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이 모진 폭풍우 가운데서 아름다운 찬송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피할 바위이십니다. 시편 18:2에는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든든한 것은 모두 동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든든하심을 묘사하기에는 태부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만세 반석’(Rock of Ages)이심은 토프래디 목사님 시대(1776)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그러합니다. 그래서 ‘만세’(all ages)라고 합니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하나님께서는 반석이십니다. 견고한 바위이십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땅이 견고할 것 같지만 땅도 안전치 못합니다. 땅도 언제 요동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밟고 사는 이 땅도 언제 꺼질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는 갑자기 땅이 꺼져 지나가던 택배 오토바이가 빠져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운전자가 죽었습니다. 지진이 나서 고가도로 무너져 마치 도로가 엿가락처럼 휜 것도 보았습니다. 대형 쓰나미로 동네가 쑥밭이 된 것도 보았습니다. 발을 잘못 디뎌 발생하는 실족 사고는 매일 발생합니다. 실족이란 우리 주변 이야기입니다. 우리 땅은 결코 우리가 안전하게 살만큼 견고하지 못합니다. 
  
정글지대에는 늪이 있습니다. 늪에는 한 번 빠지면 나오기 힘듭니다. 늪에 빠진 짐승이나 사람이 허우적거리다가 점점 빠져 들어가 죽는 것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빠지면 나오지 못하는 늪이 곳곳에 널려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글과 같습니다. 그래서 늪도 많고 빠지기 쉽고 빠지면 나오기도 힘듭니다. 
  
우리가 땅을 밟고 다닐 때에 발이 닿는 곳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 발을 딛기 위해서는 주위에 엄청난 땅이 필요합니다. 주위에 많은 안전한 땅이 필요합니다. 주위에 반석과 같은 든든한 땅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4장에는 예수님의 시험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마귀의 유혹입니다. 마귀는 성경을 인용하여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걸음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넘어지지 않고, 돌에 부딪치지 않고, 빠지지 않게 하십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빠지게 하고, 말씀에 유혹받게 합니다. 
  
시편 40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그의 삶에서 웅덩이와 수렁을 수없이 만났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자신의 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건지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웅덩이와 수렁을 겁내지 않습니다. 오늘의 시편 말씀은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합니다. 오늘의 말씀이 다윗을 따라 우리가 함께 부를 노래이기를 바랍니다. 다윗을 건지신 하나님은 우리도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지실 것을 믿으며 이 노래를 힘차게 함께 부르는 거룩한 이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우리의 발은 가만히 두면 웅덩이와 수렁에 빠집니다. 

시편 40:2 상반절에는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라고 합니다. “끌어올리시고”라는 것은 이미 빠졌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자주 웅덩이와 수렁에 빠집니다.  왜 하나님의 사람이 웅덩이와 수렁에 빠집니까? 세상 곳곳에는 하나님의 사람까지도 빠질만한 함정이 수두룩합니다. 웅덩이와 수렁이 널려 있습니다. 세상에는 유혹과 시험이 끊이질 않습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올무가 수없이 많습니다.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우리가 따라 흘러가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고, 웅덩이와 수렁이 즐비합니다. 
  
“기가 막힐”이란 말은 히브리어의 ‘솨온’이란 말입니다. 이 말은 소음을 뜻합니다. 이 말은 결국 죽음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동양의학에서는 기가 막히면 죽는다고 합니다. 기가 뚫리고 잘 통해야 삽니다. 
  
“웅덩이”는 히브리어로 ‘보르’인데 이 말은 감옥 혹은 무덤을 의미합니다. 구덩이에 빠진 것 같은 재앙을 당한 상태를 뜻합니다. “수렁에서”란 말 ‘미티이트 하야이인’은 문자적으로 “웅덩이의 밑바닥으로부터”라는 뜻입니다. 이 모든 말을 종합해 보면 설 수 있는 단단한 기초가 전혀 없는 곳을 뜻합니다. 세상은 이런 설 수 없는 늪과 암초투성이로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시편 69:2에는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렁이란 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 이치에 따라 살면 절로 수렁에 빠집니다. 세상에는 함정도 많고 수렁도 많아 하나님의 사람들까지 삼키려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사람들도 악의 수렁에 빠지기도 하고,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평소에 건강하시지 못했습니다. 운동도 제대로 하시지 못할 정도로 허약하셨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신 후 2킬로미터 채 못 되는 거리를 팔을 흔들면서 걸으시는 것이 운동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문안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걷다가 넘어지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병원에 가서 정밀 촬영을 해보시라고 권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촬영을 해보니 뇌에 콩알만 한 종양이 다섯 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후로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뇌에 종양이 생겼는데 왜 발을 헛딛습니까? 머리가 상하면 발을 헛딛습니다. 우리 영혼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상하면, 머리가 상하면, 생각이 상하면 발이 웅덩이와 수렁에 빠집니다. 우리의 발은 머리가 제대로 되어 있으면 절대로 빠지지 않습니다. 머리가 잘 못되면 금방 발이 빠지게 됩니다. 
  
누가복음 17:1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라고 합니다. 실족하게 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실족하게 하는 자는 시험하는 자입니다. 마귀를 말합니다. 마귀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 세상 끝까지 존재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람까지도 실족하게 합니다.  
  
“실족하게”라는 말은 헬라어 ‘스칸달론’이란 말인데 덫에서 미끼가 붙여지는 부분을 말한다고 합니다. 길에 덫을 놓는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길에 덫을 놓아 사람들의 발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족”(失足)이란 말은 문자적으로 발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발을 잃으면 나아갈 수 없고, 넘어지게 됩니다. 발이 없이는 가지 못합니다. 발을 잃으면 길을 잃습니다. 가고 싶어도 못 가고, 갈 곳을 알 수도 없습니다. 다리에 힘이 없어지든지 아니면 실수하면 발을 헛딛어 넘어지게 됩니다. 실족은 무서운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되는 것입니다. 
  
실족사란 말은 우리가 흔히 듣습니다. 고장준하 선생의 실족사가 실제로 실족사인지 다시 사인규명이란 문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올해 지난 1월에는 유망한 젊은 프로야구선수가 숙소에서 실족사하였습니다. 고미영대장, 박영석대장 등 등산가가 등반하산 중 실족사하였다고 합니다. 실족은 단순히 쓰러지고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족 그 자체가 죽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성경에서 말하는 실족이란 죽음을 뜻하며 파멸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 18:22에는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구덩이를 팠고 내 발을 빠뜨리려고 올무 놓았음이니이다”라고 합니다. 원수가 구덩이를 파고, 올무를 놓은 까닭이 무엇입니까? 발을 빠뜨리려고 한 것입니까? 잡으려고 한 것입니까? 결국은 죽이고 파멸시키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어디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말을 합니다. 사업에 발을 들여 놓았다,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조폭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표현합니다. 발을 들여놓았다고 하는 것은 그 일을 시작하였다거나, 그 일에 깊이 빠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발을 어디에 들여놓느냐 하는 것은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가만히 두면 우리의 발은 웅덩이와 수렁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 발을 웅덩이와 수렁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녀들, 아이들, 젊은이들에게 세상에 빠질만한 웅덩이와 수렁이 너무 많습니다. 악의 세력이 너무 활개 칩니다. 악한 손에 끌려가기 너무 쉽습니다. 담배나 술이나 마약, 섹스와 도박과 게임과 폭력 등 아이들을 꼬이는 웅덩이와 수렁이 너무나 많습니다. 아이들만이 아닙니다. 어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어른들을 꼬이는 웅덩이와 수렁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내 발이지만 내 발을 내 맘대로 할 수 없고, 내 발이라고 안심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밤중에 물위를 걸어오셨습니다.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셨고 베드로는 물위를 용감하게 걸어갑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물결을 보는 순간 물에 빠졌습니다. 베드로가 왜 물에 빠졌습니까? 물이니까 빠졌습니다. 사람은 물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물에 빠지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정상입니다. 세상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절대 안 빠지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웅덩이나 수렁도 반석처럼 만드시고, 바닷물 위도 바위처럼 걸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가면 세상의 웅덩이와 수렁도 반석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발을 반석 위에 두사 견고하게 하십니다. 

시편 40:2 하반절에는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고 합니다. 우리의 걸음을 견고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발이 견고함은 건강한 표시이고, 하나님의 축복이며, 은혜이며, 감사의 조건입니다. 일반적으로 몸이 약해지면 다리에 힘이 풀립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바로 서지 못하면 끝납니다. 발이 견고한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선배 목사님이 참 재미있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목회는 다리로 하는 거야!” 실제로 목사는 서 있는 시간이 참 많습니다. 심방할 때도 다리로 걷는 것이 많고,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할 때도 서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설교시간에는 모두가 앉아 있지만 설교자는 서 있습니다. 건강하려면 다리가 강해야 하는 법입니다. 
  
권투나 격투기선수들을 보면 상대방에게 얼굴을 정통으로 맞으면 다리가 주저앉습니다. 잘못 맞으면 일어서지도 못하고 길게 누워있습니다. 얼굴을 맞는데 왜 다리가 비틀거리고, 다리에 힘이 풀립니까? 얼굴을 맞으면 다리에까지 영향이 바로 미치는 것입니다. 
  
바로 서지 못하면 몸에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발을 반석 위에 세우십니다. 허약한 발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발이 비틀거리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발을 반석 위에 세워 든든하게 하시면 비틀거리지 않고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맨홀뚜껑이나 환풍구가 길에 있으면 그 위를 밟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들을 밟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간혹은 거기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빠질만한 위험한 곳이 많습니다. 죄인의 길이 있습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널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발을 그런 사망의 길이 아니라 든든한 반석 위에 두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발을 견고하게 하시고, 세상의 웅덩이와 수렁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물결에 흔들리지 않게 하십니다. 
 
시편 121:3에는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실족하지 않게 하십니다. 위험한 길을 걸어 다닐 때에 발을 헛디디지 않게 하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반석은 무엇입니까? 성경의 반석은 하나님을 말하며 예수님을 지칭합니다. 성경에서 돌 혹은 반석이라고 하면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0:4에는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라고 합니다. 반석은 예수님이시며 그러므로 든든합니다. 
  
“내 걸음을 견고하게”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단단한 땅 위를 걷듯 발걸음을 든든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 앞에 웅덩이나 수렁이 없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웅덩이나 수렁을 없이 하십니까? 웅덩이와 수렁을 매워 든든하게 하십니다. 
  
오래 전 사막의 수도원에 갔을 때 수도사들이 칠흑 같은 밤에 사막을 산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그들과 함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에 나가 밤에 걸어보았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발을 내딛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지 모릅니다. 발을 떼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발에 이런 두려움이 없이 견고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시편 62:2에는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 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시편 62편은 다윗의 시인데 다윗의 시에는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라는 고백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반석이 되는 이것이 삶의 희망입니다. 삶의 용기입니다. 
  
맨하탄은 뉴욕의 대표적 지역입니다. 흔히 뉴욕의 사람들이란 뜻의 ‘뉴요커’(New Yorker)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맨하탄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합니다. 맨하탄이란 인디언 말로 ‘돌 언덕’이란 뜻이랍니다. 문자 그대로 바위 위에 세워진 동네입니다. 

맨하탄에는 미국의 대표적 큰 마천루들이 즐비합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있고, 록펠러센터도 있고, 지난 911사태 때에 파괴된 무역센터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곳에는 고층빌딩도 지하 1-2층만 기초를 해도 된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위에 기초하고 있으니 빌딩들이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교회 ‘가나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나의 집 바닥 전체가 암반입니다. 기초가 바위여서 공사할 때는 아주 힘이 들었지만 기초가 아주 견고합니다. 기초가 든든하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아무리 근사한 집이라도 기초가 든든하지 못하면 흔들리고, 무너집니다. 우리 주님은 반석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기초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견고하고 확실합니다. 
  
예수님을 반석으로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예수님 위에 선다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기초로 하고 그 위에 선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주옥같은 교훈인 산상보훈의 결론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24에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반석 위를 걷기에 발이 견고하고 든든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넘어지지 않고 망하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8-9에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을 바위 위에 두셔서 견고하게 하시면 세상의 손에 싸이지 않고, 세상의 힘에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여수의 손양원목사님 기념관이 있는 애양원이 가면 백범 김구선생님께서 손양원목사님에게 써준 친필이 있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지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우리의 살아온 발자국을 보면 우리의 삶이 견고한지 흔들렸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할 바위이십니다. 산성이십니다. 든든한 요새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구세주이십니다. 하나님을 우리 삶의 기초로 모시고, 우리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지 말고, 요동치는 물결에 뒤집히지 말고 견고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영국의 윌리엄 4세가 죽던 날밤, 궁중의 한 처녀가 왕으로 간택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빅토리아여왕입니다. 영국 역사상 가장 강성한 나라를 만들었던 왕입니다. 지금도 빅토리아풍이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 잭’은 해질 날이 없다는 말을 할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빅토리아는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성경을 폈습니다. “하나님, 내가 왕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치하게 해 주소서”. 

이 때 영국이 지배하던 나라는 세계 도처에 있었습니다. 그 나라들이 빅토리아라는 이름을 많이 썼습니다. 아프리카에도 빅토리아 폭포가 있고, 빅토리아 섬도 있고, 빅토리아 주도 있습니다. 빅토리아는 64년 동안을 왕위에 있었습니다. 1901년 1월 22일 세상을 떠났는데 세상을 떠날 때에 모든 신하들을 다 내보내고 남편인 앨버트공과 함께 손을 잡고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찬송하며 숨을 거두었다는 말이 남아 있습니다. 빅토리아의 평생에 하나님은 견고한 삶의 기초였습니다. 만세반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빅토리아의 든든한 통치의 힘이었습니다. 
  
우리의 발이 내 딛기 힘든 무거운 발걸음입니까? 우리의 발걸음이 웅덩이와 수렁이 없이 견고합니까? 하나님께 우리의 발걸음을 맡기고 험하고 요동하는 이 세계에서 반석 위를 걷는 견고한 발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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