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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들으라! 하나님의 백성아(1) (신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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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라! 하나님의 백성아(1) (신 6:1-3)

: 1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 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 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성령님의 이끄심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자신을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 5:25)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성령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성령의 이끄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까? 여기에 대한 보편적인 답은 ‘성경말씀’입니다.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여야 합니다. 말씀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이미 길을 주셨는데 다른 길을 달라고 고집을 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며칠 전 태풍보다 더 끔찍한 사건을 접하였습니다. 집에서 자고 있는 7세 어린이를 납치해 성폭행한 뒤 태풍 속에 버린 것입니다.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였습니다. 붙잡힌 범인은 이웃집 남자였습니다. 범인은 평소 어린이가 출연하는 일본 포르노물을 즐겨 봤다고 합니다.

우리가 자주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영성을 결정합니다. 아이들이 서슴없이 찌르고 죽이는 게임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에게도 칼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칼을 휘두르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우이겠지만 폭력적인 게임에 빠지면 심성이 비뚤어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청소년들이 음란물에 빠져 가상과 현실을 혼동합니다. 욕구를 해소시킨다는 성인물들이 성범죄의 주범이 되었습니다. 성인들은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 취하여 이상한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잘 살고 있는 친구를 보고 ‘아직도 그 남편하고 살고 있느냐’고 농담을 한답니다.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속에 더러운 생각을 하고 있으면 성령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러운 생각이 들어 올 때, ‘주여!’라고 말해야 할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넣어야 합니다. 

우리교회 호산나 찬양대가 악보를 보지 않고 찬양하는 것은 찬양할 때도 중요하겠지만, 찬양대원 자신들의 영성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악보를 외우려면 얼마나 여러 번 보고 생각하여야 하겠습니까? 아마도 보고 싶은 TV 다 보면서는 못할 것입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그 사람을 인격이자 영성입니다. 구약성경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늘 읽고 생각하는 사람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읽고 생각하는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유일한 길은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생각하는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확실한 길입니다.   

이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길,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려고 합니다. 구약성경 신명기 6장을 중심으로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생각하려고 합니다. 

먼저, 1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1a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에굽을 출발한지 4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가나안이 건너다보이는 모압 평지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세는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정리하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내용인 바로 구약성경의 다섯 번째 책인 신명기입니다. 그 내용은 백성을 가르치는 명령입니다. 여기에서 ‘가르치다[dm'l;/라마드]’는 말은 본래 ‘뾰족한 막대기로 찌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의 매로 때려가면서 가르쳐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가르치라고, 즉 엄한 교육을 명령하셨습니다.  

I. 교육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명령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가르치라는 명령은 누구의 명령입니까? 다시, 1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1a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것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가르치라고 나에게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입니다.”[새]고 하였습니다. 이 명령을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1. 교육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조상의 명령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조상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가문을 세우기 위하여 자식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교육을 민족의 명령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중년들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 세대일 것입니다.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느라고 땀을 흘렸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4학년(1968년) 겨울 방학을 앞두고 이것을 외우느라고 무진 애를 썼던 기억이 지금도 있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이 비판받을 점이 있고,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한 시대의 정신적인 기둥이었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민족이 추구하는 교육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교육을 가족이나 민족의 요청이라고 보는 것을 훨씬 뛰어넘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명령이라면 거부할 수 있겠지만, 민족의 명령이라도 시대에 따라서 변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거부할 수 없고 변경할 수도 없습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은 반드시 하여야 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누가 교육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또 1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1a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명령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명령을 들은 사람은 모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을 명령을 듣고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이 명령을 받은 사람은 바로 ‘너희’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나에게 명령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너희는 누구입니까? 2절 말씀에 보면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너 자신을 가르치고, 너의 아들을 가르치고, 너의 손자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을 가르치라는 것은 아버지의 역할입니다. 손자들을 가르치는 것은 할아버지의 역할입니다. 즉 교육은 가정에서 부모가 하여야 할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2. 교육은 부모의 몫입니다.

현대 교육의 맹점은 소위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하여야 할 몫까지 학교교사에게 맡겨버렸습니다. 물론 학교 안에서의 교육은 교육전문가가인 교사가 맡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성교육까지 학교에서 책임질 수 없습니다. 사실 공교육이 무너졌다는 말이 나온 것은 먼저 가정교육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학교교육은 가정교육이 안 된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고 합니다. 가르치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가슴을 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부모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1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1b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여기에서 우선 ‘행할 것이니’라는 말씀을 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어떻게 행동할지 삶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삶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그렇게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3. 교육은 자신들이 행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뛰어나다는 것은 다 잘 아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 중요한 하나는 부모의 가정교육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약 1900년 동안 나라 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밤마다 두꺼운 성경을 읽어주며 자녀들을 잠자리에 들게 했습니다. 눈만 뜨면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삶으로 자식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친 것입니다.

이런 말씀 앞에서는 저도 부끄럽습니다. 저는 어머님에게서 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식들에게 교회 일로 분주한 모습을 보였지만,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한 것입니다. 그 어떤 지식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씀을 배우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머리를 써야 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자녀에 대한 교육은 기회를 놓쳤다 해도 자신을 위해서는 지금도 배우고 스스로를 가르쳐야 합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자신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령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교육은 언제를 위한 것입니까? 다시 1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1b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지금, 모세는 요단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지금 여기 모압 평지에서 필요한 말씀이 아닙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지금을 위해서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4. 교육은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교육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적응시키는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지금의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중 둘째 목표가 더욱 중요합니다.(C. 델리슬 번즈)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미래를 위하여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한 때, 우리나라 대학을 상아탑이라는 말 대신에 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부른 적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소 팔아서 자식을 대학에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교육에 투자를 하였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모들이 자식의 미래를 위하여 투자한 것입니다.

사막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돌멩이를 주워 주머니에 넣는다면, 당신은 내일 기쁘면서 또 후회스러울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그 사람은 귀찮았지만 길에 떨어진 돌멩이 몇 개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다음날 주머니에 열어 보니 그 돌멩이들이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같은 보석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어제의 그 목소리처럼 기쁘면서 후회스러웠습니다. 기쁜 것은 그 돌멩이들을 가져 왔다는 것이고, 후회스러운 것은 좀 더 많이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육이란 이와 같다고 합니다. 공부할 때는 귀찮고 힘들고 어렵지만 나중에야 그 즐거움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지나고 난 뒤에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도 됩니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자신이 배우고 또한 자녀를 가르치는 것은 영원한 미래, 천국을 위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은 바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며, 영원한 천국을 위하여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라는 명령을 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교육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II. 목적  

이어 지는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가르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는 오늘은 간단하게 말씀만 읽고 지나가겠습니다.

2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2a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말씀은 앞에서 가르치라고 명령하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그 목적으로 첫 번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외하다[arey:/야레]’는 말은 ‘두려워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서운 줄 알고 살라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열 살 전에 사람됨을 가르쳐라’라는 책에서 문용린은 “요새 들어 젊은 부모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고, 내가 가장 크게 문제 삼는 말이 있다. ‘애들이 다 그렇지요 뭐.’”라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즘 교육이 아이 중심으로,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것을 무조건 하게 해 주는 것은 위험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의 말을 다 들어주는 것이 결국 아이의 사람됨을 망치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야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무서운 분인 줄 알아야 합니다.  

백성을 가르치는 목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2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2b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한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들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지키다[rm'v;/솨마르]’는 말은 본래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 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곧게 지키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들은 이후에 나오는 신명기의 내용들로 이웃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이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이웃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이웃을 사랑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옛사람들은 출세하기 위하여 공부하였습니다.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떨치는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선한 뜻을 세상에 펼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칫 자기중심적일 수 있습니다. 기껏해야 가족을 위한 배움 정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내용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배워서 남 주느냐?’고, 자기를 위해서 공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배워서 남 주라고, 세상을 섬기기 위하여 배워야 한다고 하십니다.

유대인 엄마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네가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겠니? 그렇게 공부를 하지 않고 어떻게 남을 도와줄 수 있겠니?”라며 꾸짖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라’(신 6:5)는 계명과 ‘네 이웃을 자신과 사랑하라’(레 19:18)는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34-40)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적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명령을 잘 가르쳐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섬길 수 있게 됨으로써 얻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III. 결과 

이것은 단순히 교육의 결과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이것도 오늘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3절 전반절 말씀입니다.
: 3a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복되다[bf'y:/야타브]’는 ‘좋게 만들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건전하고 아름다운 삶, 행복한 삶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1. 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옆으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복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3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3b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심껏 지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잘 되고 크게 번성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2. 크게 번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크게 번성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불순종하면 망한다는 말씀 그대로 망하고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보증으로 유대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지나간 100번이 넘는 노벨상 시상식에서 유대인 수상자가 빠진 적이 거의 없었다니 말입니다. 인구 600만 명의 작은 이스라엘, 전 세계에 흩어진 1,500만 명의 디아스포라가 이러한 엄청난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위한 보증으로 복을 주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작지만 큰 민족임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령님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뜨겁기는 한데 말씀을 모르면 광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성령이 없는 말씀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위하여 말씀을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의 숨결을 담고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심을 기도하여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성경을 배워야 하고, 성경을 배우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하여 성경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말씀을 깨닫기 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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