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들으라! 하나님의 백성아(2) (신 6:4-5)

첨부 1


들으라! 하나님의 백성아(2) (신 6:4-5)

: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합시다!

성도는 마땅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께 인도하심을 받는 기본적인 방법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듣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로운 왕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무엇이었습니까?

솔로몬이 기브온이라는 곳에 가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물을 천 마리나 바친 것입니다.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이 때 솔로몬이 구한 것은 ‘지혜로운 마음’(왕상 3:9[개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새로 번역하면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지혜로운 마음’을 ‘듣는 마음’(개역개정)이라고 고쳤습니다. 지혜로운 마음과 듣는 마음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히브리어 성경에는 ‘레브 솨마[[m'v; ble]’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레브’는 마음이란 뜻이고, ‘솨마’는 듣는다는 뜻이니, ‘듣는 마음’이 정확한 번역일 것입니다. 그러나 듣는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니 지혜로운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듣는 마음, 이것이 솔로몬이 구한 지혜였습니다. 솔로몬은 백성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구하지 않는 부귀영화도 주셨습니다. 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지혜이자, 지혜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바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모압 평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을 ‘가르치라’는 교육에 대한 명령이었습니다.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고 크게 번성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행복으로 초청하신 것입니다.
  

I. 초청  

신명기 6:4-5 말씀은 모든 유다인들의 정신적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인이라면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말씀입니다. 그러나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기억하여야 할 말씀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복을 받고 크게 번성하는 길로 초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4절 말씀을 통하여 함께 생각하려고 합니다.
: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우리말 성경과는 달리 히브리어 성경에서 4절 말씀은 ‘들으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들으라[[m'v/솨마]’는 말이 바로 그 유명한 ‘쉐마’ 또는 ‘솨마’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기본적으로 ‘듣다(hear)’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경청하다(listen to)’ 또는 ‘순종하다(obey)’ 뜻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귀를 기울이다’는 것입니다. 우리식으로 ‘이스라엘아’하고 부르고 나서 ‘들으라’고 명령할 수 있지만, 히브리식으로 먼저 ‘들으라’고 선포하여 듣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반드시 들어야 할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백성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끝임 없이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신 것은 들으라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사 28:23)고 하였습니다. 또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사 44:1)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사 55:3a)고 간절하게 외쳤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 역시 “야곱의 집과 이스라엘의 집 모든 족속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또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렘 7:23a)고 안타깝게 외쳤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겔 6:3a)고 하였습니다. 또 멋대로 예언하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겔 13:2b)고 경고하였습니다. 

다른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도, 아모스 선지자도, 미가 선지자도, 모든 선지자들은 들으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선지자들은 들으라고 외쳤지만 들어야 할 사람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백성의 지도자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슥 7:11)라고 고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사 1:3)고 탄식하셨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세운 지도자들 가운데 스데반이 있습니다.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고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복음을 전하다가 공회에 잡혀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스데반은 구약의 말씀을 일일이 들어가면서 그 예언이 예수님께 이루어졌다고 하였습니다(행 7:1-53). 스데반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마음에 찔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쳐 죽였습니다(행7:54-58).

양심이 찌르는 소리를 듣고도 귀를 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실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의 외치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 뜻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외치는 소리를 들었지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들어야 할 사람이 듣지 않는 것은 저주입니다. 들을 귀가 막혀서 말귀가 어둡다는 것은 저주였습니다. 성경에서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시 58:4)는 저주 받은 자의 상징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재미있게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른 아침에 벼를 심은 논에 물을 보러 나갔습니다. 논에 나갔다가 이웃에 사는 어른을 만났습니다. 어른을 만났으니 “논 물 보러 오셨어요?”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른은 귀가 많이 어두운 분이었는지, “꿩 알이란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어른이 논에 나왔다가 꿩이 낳은 알을 주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무엇이냐고 묻는 줄 알고 ‘꿩 알이란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논 물 보러오셨냐’ 는데 ‘꿩 알이란다’ 하니, 다시 “몇 개래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갈란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꿩 알을 주었다’니 ‘몇 개를 주었느냐’고 물었는데, ‘뭐하느냐’고 묻는 줄 알고 ‘집에 가겠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동문서답입니다. 

“논 물 보러 오셨어요?” - “꿩 알이란다!”

“몇 개래요?” - “갈란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일상의 대화라면 그냥 불편한 것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듣는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말씀하셨는데, “죽을까 하노라”(창 3:3)고 알아들은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시를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농담(창 19:14)으로 여긴 사람들은 그 도시와 함께 멸망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귀와 한 입을 주신 것은 우리가 말하는 것의 두 배만큼 듣기를 해야한다고 해석하였습니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들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듣기를 사모하여야 합니다. ‘들으라’는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누가 듣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또, 4절 말씀입니다.
: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이번에 관심을 가지려는 말은 ‘이스라엘’이라는 말입니다. 먼저 들으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을 지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laer;c]y/이쓰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새로운 이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야곱의 후손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이 이룬 나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 즉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꿈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게 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안다는 것은 단지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이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안다는 말은 남편과 아내가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아는 것과 같이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듣지 못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그 분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않는 이들을 향하여 선지자 호세아는 외쳤습니다. 그것은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호 1:9)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이 백성이 아닌 것입니다. 이름뿐인 백성은 백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여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마 3:7)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독사의 자식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마 3:9). 그러니 단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교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등록된 교인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또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호 1:10)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셀 수 없는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유다인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더 많은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새로운 길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사랑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거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스스로에 대한 생각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신 사실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선언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힘과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온 몸으로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빌립보 가이사랴 길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시라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하였습니다(마 16:16). 그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하나님께서 알려주셨기 때문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예수님을 알아보게 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하신 일입니다(엡 3:5).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오늘의 교회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7 등등)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성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교회는 사회단체나 정치적인 모임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사모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님께 이끄심을 받기를 사모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그 분의 음성을 들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시 한 번, 4절 말씀입니다.
: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오늘 말씀은 먼저 ‘들으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들어야 할 사람들을 ‘이스라엘’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일한 여호와에 대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백성은 믿어야 합니다.

신앙은 그 형식이 아니라 내용입니다. 어떤 형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내용을 믿느냐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형식이 아무리 비슷해도 믿는 내용이 다르면 다른 종교입니다. 비록 형식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믿는 내용이 같다면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믿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애굽의 왕자로 자라난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 40년을 지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이스라엘의 해방자로 애굽으로 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주신 그 분의 이름이 ‘여호와’였습니다(출 3:15). 여호와는 누가 만들어서 있게 되신 분이 아닙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이십니다(출 3:14). 여호와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창 1:1). 인간을 만드시고 그 속에 생기를 넣기를 넣으시고 생령이 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창 2:7).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우리나라 애국가 1절의 가사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사’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하느님이 보호하사’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보호하사였는데, 지금은 ‘하느님’이 보호하사가 정식 가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맞느냐, 하느님이 맞느냐는 논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통일한다고 해도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내용이 다르면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라고 한다고 해도 다 같은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이번에 죽은 문선명을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정명석이나, 안상홍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아버지’라는 말도 교회에서 사용하면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고, 집에서 사용하면 ‘아버님’을 가리킵니다. 북한에서 사용하면 ‘아바이 수령’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시고 복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그 분의 자녀에게 보증으로 성령님을 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말은 ‘유일한[dj;a,/에하드]’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유일성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 하나님으로 믿고 섬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그 어떤 것에도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을 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뉴스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달 통계청에 따르면 혼외 출생은 지난해보다 3.3%(320명) 늘어난 9,959명이라고 합니다. 조사를 시작한 1981년 이후 최대치라는 것입니다. 2001년 이후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올해 혼외 출생은 1만 명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은 소중합니다. 그리고 모든 아가들은 가정에서 따스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의 잘못된 결정으로 말미암아 아기들의 권리를 빼앗는 것은 이 사회의 불행입니다.

그 불행의 원인 중에 하나는 서로 살아보다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헤어지자고 결혼 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지만,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헤어지기 위해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부부라면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미친 짓입니다.

사랑은 질투할 수 있을 때라야만 진정한 사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아내가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면 질투가 나야 합니다. 자기 남편이 자기 보다 더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면 질투가 나야 합니다. 유일한 사랑은 바로 하나님을 위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 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 34:14)고 하였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야 서로를 더욱 섬기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영광 받으실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복 받는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리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새 소리나 사람의 소리는 듣는 데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영적 청각장애를 가진 것입니다. 성경을 문학작품으로는 읽으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입니다(고전 2:14). 우리는 영적 청각 장애에서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여러분, 성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성경이 말씀하시는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오. 오직 영광 받으실 한 분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오.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귀가 아니라 마음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마음이 아니라 영으로 말씀을 듣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사모하는 영혼에 좋은 것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