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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들으라! 하나님의 백성아(3) (신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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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라! 하나님의 백성아(3) (신 6:4-5)

: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합시다!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연양리 남한강변 금은모래강변공원에 “갑돌이와 갑순이” 테마파크가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 테마파크를 조성하게 된 것은 갑돌이와 갑순이가 여주에 살았던 인물이라는 주장 때문이라고 합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김세레나가 불러서 한 때 국민가요가 되었습니다. 서로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말도 못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가슴아파하는 슬픈 사랑의 노래입니다. 어떤 분은 이 노래에 한국인의 정서인 한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노래를 생각하면 흥겨움보다 아쉬움이 적지 않습니다. 흘러간 가요의 노랫말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별의미가 없겠지만 그래도 생각하여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1절 가사는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더래요 / 둘이는 서로 서로 사랑을 했더래요”로 시작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한 마을에 살면서 서로 서로 사랑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되는 가사는 “그러나 둘이는 마음뿐이래요 / 겉으로는 모르는 척 했더래요 / 모르는 척 했더래요”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데 마음뿐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사랑하면서도 겉으로는 모르는 척하는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는 은근의 정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뿐인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2절입니다. 

“그러다가 갑순이는 시집을 갔더래요 / 시집간 날 첫날밤에 한없이 울었더래요 / 갑순이 마음은 갑돌이뿐이래요”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으면 그만이지 왜 웁니까! 남편보다 더 사랑하는 다른 남자를 마음에 두고, 아내보다 더 사랑하는 다른 여자를 두고 사는 것은 비극입니다. 차라리 “겉으로는 안그런 척 했더래요 / 안그런 척 했더래요”가 다행스럽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사랑한다면 사랑한다고 표현하여야 합니다.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표현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사랑을 안다면 모르는 척, 안 그런 척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 모압 평지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을 ‘가르치라’는 교육에 대한 명령입니다.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고 크게 번성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행복으로 초청하신 것입니다.  

I. 초청  

신명기 6:4-9 말씀은 모든 유다인들의 정신적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유다인이라면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말씀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1. 하나님의 백성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끝임 없이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그러나 들어야 할 사람이 듣지 않는 것은 저주입니다. 들을 귀가 막혀서 말귀가 어둡다는 것은 저주입니다. 우리는 들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듣기를 사모하여야 합니다. ‘들으라’는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사람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이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부르는 데 자신을 부르는 것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이 그 분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양은 그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목자의 인도에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듣지 못하면 그 분의 백성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들어야 할 말씀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어야 할 내용입니다. 

3. 하나님의 백성은 믿어야 합니다.

신앙은 그 어떤 형식이 아니라, 무엇을 믿고 있느냐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 하나님으로 믿고 섬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지으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예배하여야 합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듣고 순종하여야 할 진짜 말씀이 이어집니다. 여호와를 유일하신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들이 하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II. 사랑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하려는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유일한 분이시기에 이 분만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 분께만 최고의 사랑을 드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사랑[bh'a;;/아하브]’은 ‘사랑하다, 좋아하다’를 뜻하는 가장 일반적인 말입니다. 

이 말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무한한 애정에서부터, 게으른 대식가의 육체적인 식욕에까지 그 범위가 넓습니다. 이 말은 남녀 간의 사랑을 나타내기도 하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표현할 때도 사용합니다. 그리고 종이 주인을 사랑하는 것이나,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표현합니다. 특별한 단어가 아닙니다. 매우 친밀하고 일반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그 분만을 사랑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모든 방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5절 말씀입니다.
: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먼저, ‘마음을 다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마음[bb;l/레바브]’은 ‘내부 인간, 마음, 정신, 이해력, 의지’ 등을 폭넓게 가리키는 말입니다. 신약[kardiva/칼디아](마 22:37)에서도 ‘영적 생명의 중심 자리, 영혼, 생각, 열정, 욕망, 식욕 등의 원천’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란 그 사람의 중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그 사람의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라는 말입니다. 

1.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십시오.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을 가장 쉽게 이해하는 것은 마음이 없는 사랑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그 일이 사실은 ‘체면’ 때문에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습관’ 때문에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많지는 않겠지만 ‘이익’ 때문에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없는 겉치레일 수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펴던 선교사들로부터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한 족장이 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얼마쯤 달렸을까 족장이 달리던 걸음을 갑자기 멈추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달리기를 멈추고 기도하는 족장의 행동이 선교사는 궁금했습니다. 선교사는 족장이 기도를 다 끝내기를 기다렸다가 ‘왜 갑자기 달리기를 멈췄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이 질문에 족장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물어본다는 눈초리로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진지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너무 빨리 달려와서 나의 영혼이 나를 따라오지 못한 것 같아서 내 영혼이 나를 따라 잡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기도하였다.”

이런 해괴한 이야기가 어디 있습니까? 사람이 달리기를 하는데 그 사람의 영혼이 뒤따라오지 못하다니요. 영혼 없는 육체가 빨리 달리고 영혼은 뒤처져서 늦게 따라온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이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말에도 ‘정신없이 뛰었다’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없이 앞을 향하여 뛰다보니 무엇을 위하여 그리고 어디로 그렇게 열심히 뛰고 있는지, 방향도 목적도 잃어버린 경우들이 있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였는데 어느 날 문득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허둥지둥하였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라며 열심을 부렸다는데, 하나님께서 ‘아니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럽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마 7:22-23) 이런 낭패가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생각하여야 하겠습니까?

여기에서는 마음을 ‘관심’이라는 말로 줄여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서 하나님이 받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내 생각대로 행동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자주 깜짝 깜짝 놀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 그런 말씀 중에 하나가 시편 50편 말씀입니다.

시편 50편 중간에 ‘들으라’(솨마)는 말로 새로 시작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들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고 말씀하십니다.(:7) 하나님께서 그들이 듣기를 원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예배를 잘 드리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항상 수소를 잡아서, 숫염소를 가져다가 열심히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시인은 매우 격앙된 표현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가령 주려도’(시 50:12) 이런 것들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소의 고기를 먹지 않으시며 염소의 피를 마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시라는 것입니까?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시 50:14-15a)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입으로는 율법을 전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외우지만 하나님의 교훈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뒷전으로 버려두는 사람들을 악인이라고 하십니다. 거룩한 제사를 드리면서도 도둑질하는 사람과 한 패가 되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간음하는 자와 한 통속이 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책망하십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전혀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머무는 그곳이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온통 내 생각과 내 관심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어야 하고, 그래서 성령님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까?

또, 5절 말씀입니다.
: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두 번째로 ‘뜻을 다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뜻[vp,n</네페쉬]’은 ‘호흡’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신약[yuchv/프쉬케](마 22:37)에서도 역시 ‘호흡’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호흡은 우리가 살아있는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마음을 다하여서나, 뜻을 다하여서나 모두 우리 존재 전체를 다 드려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일부로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부로써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뜻을 다하여 사랑하십시오.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앞에서 마음을 관심이라고 줄여서 생각하였던 것처럼, 이번에는 뜻을 ‘열정’으로 줄여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 관심을 지속시키는 힘을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예배하는 분들 중에 예배에 깊은 관심이 없던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모두 다 한 때는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형식적인 예배드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습관적으로 기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서 멀어진 것입니다.

지난 번 ‘지방 평신도 화합 한마당’에서 나온 난센스 퀴즈 중에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돈은 무엇이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영어로 돈을 ‘머니’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답은? ‘할머니’였습니다. 머니 머니해도 머니가 최고라는 세상에서 ‘할머니’도 머니인 모양입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좋아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머니가 있습니다. 뇌물이 아닙니다. 사체이자를 쓰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인지 아닙니까? ‘슬그머니’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던 사람이 슬그머니 예배에 빠지기 시작하면 큰일입니다. ‘슬그머니’가 위험한 것은 표시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번 빠지고, 두 번 빠지고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이단들이 교인들을 유혹하는 방법도 ‘슬그머니’입니다. 교인들에게 슬그머니 접근합니다. 그리고 교회에는 절대로 알리지 말고 자기들의 모임에 한번 참석해보라고 슬그머니 유혹합니다. 슬그머니 뒤에서 한 일들이 신앙에 독이 된다는 것을 모든 성도는 기억하여야 합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신앙에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미끄러져서 내용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거기에다 뜻을 다하여야 합니다.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스포츠, 음악, 예술, 학문 등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그것은 열정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열정 없는 성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특히 예배에 대한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예배를 향한 마음과 관심뿐만 아니라, 뜻과 열정이 식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식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다시 불을 붙이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까?
다시, 5절 말씀입니다.

: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세 번째로 ‘힘을 다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힘[daom/메오드]’은 본래 ‘열렬함’을 의미합니다. 앞에서 말한 열정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힘은 체력과 정신력, 기타 무슨 힘이든지 다 가리킵니다. 신약에서[diavnoia/디아노이아](마 22:37)는 ‘깊은 사고’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 ‘힘’ 역시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드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힘을 다하여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어떻게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마음이 관심이라면, 뜻은 열정으로 그리고 힘을 ‘태도’로 줄여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관심이 가는 것이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마음을 쏟는 것이 뜻을 다하는 것이자 열정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에 마음을 가졌다고 해서, 열정을 쏟았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관심을 가지고 열정을 쏟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좋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도 최선을 다하였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잘못된 태도나 자세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수영의 박태환 선수나, 피겨의 김연아 선수처럼 세계적인 선수에게도 코치가 중요하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코치를 만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코치에 따라서 훈련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세, 어떤 방법을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그 다음 행동을 위하여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동작이든지 한 동작은 그 다음 동작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동작의 변화가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저 정성을 다하고, 열심을 다하기만 하면 모두 좋은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고 소박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을 당해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에는 좋은 태도를 가지는 것도 포함합니다. 최선을 다하였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바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여기에 대하여 계속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되 바른 태도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올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힘을 다하여, 좋은 태도로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복 받는 자리로 초청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38)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의 길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오직 영광 받으실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십시오. 이것이 진정으로 행복의 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여러분에게 성령님께서 지혜와 용기와 능력을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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