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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 (슥 1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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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 (슥 14:6-11)

6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7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10 온 땅이 아라바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편 림몬까지 미칠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11 사람이 그 가운데 거하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안연히 서리로다 

스가랴 14장은 내용이 어렵고 난해하며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말씀을 증거하고 있으며, 신약시대에 이루어질 교회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14장 1절에 보면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슥 14:1)고 했습니다. 

또한 스가랴 14장 7절을 보면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슥 14:7)고 했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여호와의 날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어로 정관사 ‘the’를 붙여 “the day of the Lord”, 여호와의 날로 번역되는 것이 있습니다. 정관사 ‘the’가 붙게 되면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의 날 혹은 심판의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가랴 14장에서 말하고 있는 여호와의 날은 “a day of the Lord”로써 여호와의 한 날입니다. 정관사 ‘the’ 대신 부정관사 ‘a’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7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날은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심판의 날이나 재림의 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어떤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슥 14:7). 이것이 달력상으로 24시간이라고 한다면 “낮이 지나고 밤이 지날 것이다”라고 되어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니라는 말씀은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달력상으로 한 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은 스가랴 12~13장에 계속 등장하고 있는 “그날에는”과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그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날,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신약시대, 메시아시대가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라는 것은 신약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핍박 가운데서도 신약의 교회가 성장하고 있는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본문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사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은 스가랴서 14장 7절 후반에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고 했습니다. 이천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세상은 영적으로 어두운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백여년 동안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사백년 동안 하나님이 단 한 명의 선지자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두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때를 신구약 중간시대라고 부릅니다. 또한 이방인들도 로마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도 그들의 종교에 완전히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신비종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이 만들어낸 철학종교, 갖가지 신화로 이루어진 신화종교까지 이방인들은 세 가지 종교를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로마 사람들이나 그리스 사람들이나 다 그들의 종교에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몇 백 년 동안 그들의 종교를 믿었지만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영적으로 공백이 생긴 흑암의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방인들도 어둡고 유대인도 어두운 시대에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빛도 없고 모든 광명한 자들이 떠난 시대에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오신 시대는 신약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은 신약시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Ⅰ. 교회는 세상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누르고 최고의 종교, 진리의 종교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스가랴 14장은 신약시대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교회에 관해 세 가지 신비한 방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교회는 세상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누르고 최고의 종교, 참된 진리의 종교로 우뚝 서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온 땅이 아라바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편 림몬까지 미칠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슥 14:10). 

이 말씀은 예루살렘이 지리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가운데로 우뚝 솟게 되고 예루살렘 주변 땅은 평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원래 예루살렘 지리는 예루살렘 주변이 산이고 예루살렘이 낮습니다. 시온산이 산 중에서 제일 낮은 산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주변 산이 다 낮아지고 예루살렘이 가운데 우뚝 솟아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아라바라는 것은 평지를 말합니다. 온 땅이 평지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편 림몬까지 평지처럼 된다고 했습니다.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편 림몬은 예루살렘을 제외한 나머지 땅들을 통칭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주변 땅들은 다 낮아져서 평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그 자리에서 높이 들린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서쪽에는 베냐민 문이 있고 동쪽에는 첫문 자리가 있고 성 모퉁이 문은 북서쪽에 있고 하나넬 망대는 북쪽에 있고 남쪽에는 왕의 포도주 짜는 곳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동서남북으로 올라와서 높은 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의 지리가 변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동일한 예언을 했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사 2:2). 여호와의 전인 시온산이 말일이 되면 우뚝 솟을 것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도 예언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높은 산인 것처럼 뽐내고 있습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자기가 높은 산인 것처럼 뽐내고 있습니다. 다 높은 산인 것처럼 자랑을 하지만 하나님이 다 낮춰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다 낮춰버리고 오직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복음 진리만이 최고의 종교, 참 진리의 종교로 우뚝 서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스가랴 14장 11절에 보면 예루살렘에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거하고 또 예루살렘에는 저주가 없고 어떤 원수의 공격에도 끄떡없는 안전한 곳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고 교회는 우뚝 솟은 진리의 센터가 되고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더 이상 저주를 받지 않게 되고 악한 사탄이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안전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다시는 저주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신약의 언어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3~35). 

하나님의 택함 받고 예수 믿는 우리는 저주도 없고, 송사할 자도 없고, 정죄할 자도 없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도 없게 됩니다. 교회는 일류역사 가운데 진리의 센터, 구원의 센터, 하나님 통치의 센터가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슥 14:9). 

여호와 하나님은 홀로 하나이시며 구원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시고 구원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적인 존재는 없으며 여호와 하나님은 특별한 분이고 필적할만한 다른 존재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이것을 신약의 언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은 나쁘게 사는 것보다 좋습니다. 하지만 구원은 받지 못합니다. 죄 용서를 받고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10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진리의 센터로 인류의 역사 가운데 우뚝 설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있고 이것은 지난 이천년 동안 충실하게 실현되어 왔습니다. 


Ⅱ.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축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둘째, 스가랴가 예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축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복의 근원이라는 말입니다.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슥 14:8). 

생수는 축복의 상징이고 생수가 흐르는 땅은 비옥한 땅이고 열매가 풍성하고 농사가 잘 되는 축복된 땅입니다. 생수는 축복의 원천입니다. 생수의 근원이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가 축복의 근원, 생수의 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동일한 예언을 했습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겔 42:1~5). 

요엘 선지자도 성전에서 샘이 흘러나온다고 했습니다.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욜 3:18). 스가랴는 예루살렘이 생수의 근원이라고 했고 에스겔과 요엘은 성전이 생수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과 성전은 신약시대에 교회에 대한 예표적 표현인 것입니다. 

이 생수는 절반은 동해로 흐르고 절반은 서해로 흐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축복을 주시되 팔레스타인 땅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동서사방 온 세계에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생수는 동해도 흐르고 서해도 흐를 뿐만이 아니라 여름에도 흐르고 겨울에도 끊임없이 흐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세상을 축복하시는 방식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 7:37~39). 

교회는 축복의 소유자고 예수 그리스도는 축복의 근원이고 성령의 부으심은 축복의 내용인 것입니다. 이 축복의 생수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사도바울을 통해 유럽으로 건너갔고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아시아로 흘러온 것이 지난 이천년 교회역사입니다. 아시아에서 생수를 받은 우리는 이 생수를 다시 전 세계로 흘려보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교회는 복의 근원입니다. 교회는 생수의 근원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이 만든 어떤 기관이 있어도 생수의 근원이 되는 기관은 없습니다. 생수의 근원은 교회로부터 흘러나오며 교회가 이 복음을 세상에 증거하는 것이 생수를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와 선교를 통해서 축복을 나눠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 주신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받은 복을 가둬두고 있으면 썩지 않겠습니까? 복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동해로 서해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가 세계선교의 중심센터가 되기를 바랍니다. 

Ⅲ. 하나님은 핍박과 환란 속에 있는 교회를 끝까지 보호하신다 

셋째,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에서 핍박을 당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보호하신다는 진리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슥 14:1~2). 이는 예루살렘을 열방이 침공해서 약탈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읍 백성들을 죽이고 포로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슥 14:4).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발이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에 서니 감람산이 쫙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 절반이 북쪽으로 옮겨가고 산 절반이 남쪽으로 옮겨가서 예루살렘의 남은 백성들이 감람산 갈라진 길로 아셀이라는 곳까지 피신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아셀이라는 말은 지리적인 위치가 아닙니다. 문자적으로 ‘고요함, 평안함, 안전함’이라는 의미입니다. 예루살렘을 열방이 핍박해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피할 길을 내사 안전한 곳으로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열국은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교회를 공격해서 승리하는 것 같지만 도리어 하나님이 승리하시고 남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인하여 피하게 되고 살아나게 되고 도리어 승리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슥 14:16). 예루살렘을 치러왔던 백성가운데 남은 자가 도리어 개종을 해서 여호와를 경배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열국은 교회를 핍박했는데 교회는 하나님의 보호로 죽지 않고 살아남고 도리어 치던 사람들이 개종을 해서 여호와를 경배하게 되더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해서 핍박을 당해왔습니다. 핍박당하는 소수자요 약자였습니다. 교회가 정치적으로 강자가 된 적은 없습니다. 교회가 정치적으로 강자가 된 것이 중세인데 그것은 썩고 부패한 교회이기 때문이지 참된 교회는 언제나 소수이고 약자였습니다. 약한 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 가운데 평안을 누리고 열국을 향해서 복음을 증거함으로 도리어 핍박하던 열국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는 승리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핍박하던 열국은 패배자가 되고 핍박당하던 교회는 도리어 승리자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역설적인 진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하나님은 교회를 지키시고 피할 길 내시고 살게 하시며 도리어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질그릇 같이 약한 성도이지만 복음의 보배를 갖고 있으므로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이단들과 정치적인 파워를 가진 사람들이 교회를 해치려합니다. 이것이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입니다. 짐승은 정치적인 파워를 가지고 교회를 핍박하는 자고, 영적인 거짓말인 이단사설을 가지고 교회를 핍박하는 자 입니다. 짐승들이 교회를 아무리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의 발이 서시면 감람산도 갈라지고 홍해도 갈라지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스가랴 14장 전반부는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교회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하나님은 교회와 복음진리를 높은 산이 되도록 높여주셨고 교회는 진리의 중심이 될 뿐만 아니라 생수를 흘러내는 축복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약하여 넘어질 것 같고 곧 망할 것 같아도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승리자의 반열에 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모르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입니다. 교회를 업신여기는 사람은 진리도 없고 축복도 없으며 승리자가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업신여기는 사람은 패배자가 될 뿐입니다. 현세도 패배하고 내세는 영원히 패배합니다. 교회를 공격하고 치고 약탈하는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있을 뿐입니다.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슥 14:12).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핍박하는 자는 결국 살도 썩고 눈도 썩고 혀도 썩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핍박하고 욕하고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스가랴 14장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생수의 근원이고 축복의 근원의 역할을 해야 하며 우리가 생수를 흘려보내는 참된 교회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아무리 답답한 일을 당하고 세상에서 소수자로 핍박을 받을지라도 결코 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축복자고 우리가 승리자입니다. 우리 교회가 생수를 세계로 흘려보내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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