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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탈출(5) : 실패로부터 (신 32:5-15,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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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5) : 실패로부터 (신 32:5-15,45-47)

언젠가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950번 만에 합격한 할머니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69세인 차 할머니는 2005년 4월 13일 첫 필기시험을 본 뒤 계속 낙방했지만 950번째 도전하여 2종 보통 필기시험에 커트라인인 60점으로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고 합니다. 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차 할머니는 생업을 위해서 운전면허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환갑이 넘은 나이에 도전했답니다. 

올해도 반년하고 한 달이 지난 8월 첫 주일입니다. 매년 연초가 되면 공부, 다이어트, 금연, 사업 등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올해는 꼭 담배를 끊겠다. 다이어트를 하겠다. 합격하겠다. 전도하겠다. 예배에 참석하겠다.'라고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되고, 수십 번 도전해도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역시 난 안돼!'라고 실망하기도 합니다. 실패라는 것은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일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계속 실패하면 학습 무기력증에 걸려 의욕도 없고 도전도 하지 않고 자포자기 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 신앙인들을 실패로 인생을 마감해서는 안 됩니다. 99번 실패해도 1번 성공하면 인생은 달라집니다.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수많은 실패를 한 이스라엘 백성 12지파에게 축복을 해 주시면서 결론적으로 주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돌아가시기 전 유언적으로 주시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33장 29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 33:29)” 수없이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우리 성도님들 올해도 많이 실패했을 지라도 스스로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올해도 수없이 실패했는데 무슨 행복한 사람이야 실패한 사람이지”라고 속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많은 실패를 하고 살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천국 백성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도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영광의 칼이 되어 결국 우리를 승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실패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성공으로 마감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과정으로 다가오는 어떤 실패의 현장에서도 낙심하고 좌절하며 포기하지 말고 실패의 자리에서 탈출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실패의 자리에서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모세의 노래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오늘 32장의 말씀은 모세의 유언 노래입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도 하나님이 백성이 부를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후대에 성전에서 예배드릴 때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 노래의 일차적 목적은 하나님께 반역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출애굽 1세대처럼 출애굽 2세대가 다시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노래를 영원히 부르게 한 의도가 47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가 가나안 땅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세가 임의대로 부른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것입니다.(31:19)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실패하지 않도록 가르친 것입니다. 실패로부터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과거의 실패를 “독”이 아니라 “약”으로 받아들여 실패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시입니다. 노래입니다. 산문이 아니기 때문에 운율이 있고 구조가 있습니다. 구조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진노(20-33)를 중심으로 대칭되어 있습니다. 양쪽으로 이스라엘의 배반을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의 배반(15-19), 이스라엘의 배반(34-38) 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민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7-14)과 이스라엘 심판을 위해 사용한 열강의 심판(39-42)을 말씀합니다. 처음 시작은 들으라는 요청(1-6)으로 시작하고 마지막 마무리는 즐거워하라는 요청(43)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이스라엘의 배반이 대비되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주시는 말씀을 실패에서 탈출이라는 주제로 해석하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요약하면 모세가 돌아가시기 전에 가나안에 들어가 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잘 믿어 실패하지 말고 성공적 삶을 살아라는 유언적으로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조상들처럼 실패하지 않고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같이 읽겠습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신 32:7)” 

진정 가나안에서 실패하지 않고 행복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과거 실패를 통해 교훈을 받고 다시는 그 실패의 길로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7-14절에 나오는 말씀은 태초에 열국이 나뉘어지고, 그 가운데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출애굽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기억하라(제코르)’라는 단어를 16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거듭되는 인간의 배반의 역사입니다. 실패의 역사입니다. 출애굽하여 지금 이곳 모압평지에 온 것만 보십시오. 10가지 재앙으로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홍해가 다가오자 그들은 원망합니다.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출14:11)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14:12)” 홍해 앞에서 믿음 생활에 실패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에 실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홍해를 건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너 수르 광야로 들어가 3일 길을 걸어갔습니다. 물이 없는 것입니다. 마라에 이르니까 물이 있는데 쓴 물입니다. 또 백성들이 원망하여 신앙에 실패합니다. 

하나님은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 인생길에 홍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크고 작은 마라의 쓴물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믿어 구원은 받았는데 남편의 쓴 물이 있습니다. 자식의 쓴물이 있습니다. 아내의 쓴 물이 있습니다. 동업자의 쓴물이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의 쓴 물이 있습니다. 기대했는데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쓴 물들이 시시 때때로 다가옵니다. 신광야에 이릅니다. 먹을 것이 떨어진 것입니다. 

또 원망합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16:3)” 

결핍이 다가온 것입니다. 음식의 결핍, 만족의 결핍, 건강의 결핍, 물질의 결핍, 명예, 지식, 권력의 결핍 등 갖가지 결핍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결핍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주어 배부르게 하였습니다. 배부르니까 만나만 준다고 또 불평을 합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민 11:5)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민 11:6)“ 그 좋은 것도 계속 먹으니까 실증이 난다는 것입니다. 한 목사에게 10년 설교를 들으니까 지루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그 말이고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내가 잘 해 주었는데 그렇게 남편이 잘 해 주었는데 지루하다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메추라기를 줍니다. 결정적 실패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을 눈앞에 놓고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었을 때입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자신들은 메뚜기에 불과하다하며 반역을 합니다. 백성들이 밤새도록 통곡합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다른 지도자를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리고 38년을 광야에서 방황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광야에서 죽게 된 것입니다.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니 제 2세대인 너희들은 조상들이 겪었던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실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다는 말씀입니까? 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9).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특별히 택하였다는 말씀입니다. 보호하는 하나님이십니다(10).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11).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2).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들어가 살 출애굽 제 2세대에게 어떻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13, 14절을 보십시오. 풍요로운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풍요를 누리게 되니까 어떻게 한다는 것입니까? 또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업신여긴다는 것입니다. 과거 실패를 교훈삼아 앞으로 이런 실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패는 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실패는 독이 되면 안 됩니다. 흔들리지 않고 자라는 나무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은 1만 번 이상 넘어진 후에야 겨우 걸음마를 배운다고 합니다. 바람이 있어 연을 날릴 수 있는 것이며, 강렬한 햇빛이 있기 때문에 곡식은 여무는 것입니다. 강풍을 두려워하면 물은 파도를 만들지 못합니다. 서핑을 즐기는 사람은 높은 파도를 기다립니다. 영웅은 평상시에 나오지 않고 위기에서 나옵니다.

몇 번의 실패로 말미암아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계속 실패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등학교 성적이 나쁘다고 인생성적도 나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못한다고 축구도 못하는 것 아닙니다. 실패하면 성공하지 못하는 방법 하나를 더 터득한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농구선수로 인정받은 마이클 조던은 "나는 농구를 시작한 이후로 9,000회 이상 슛을 놓쳤고 500회 가까운 패배를 기록했다. 승패를 결정하는 슛을 놓친 것도 26회나 된다. 나는 인생에서 수없이 실패를 거듭했다.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다."라고 말합니다. 한 번의 실패로 절망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핸리 포드는 서른아홉에 두 번의 도산으로 폭삭 망했지만 다시 일어나 "실패는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준다. 그것도 좀 더 영리하게 출발할 기회를."이라고 말했습니다. 실패의 경험은 독이 아니라 약입니다. 실패의 경험은 거침돌이 아니라 디딤돌입니다. 


2. 어떤 실패도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실패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아이는 넘어지면서 걷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잘 걷는 사람이 없습니다. 실패 없이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실패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패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실패를 통해 내성을 길러야 합니다.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실패는 거름이 되고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게 하고 자신의 강점을 개발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때로 결정적인 실패는 인생을 처참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단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것이 끝나버릴 수 있고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실패는 한 번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에덴에서 추방되었고, 인류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실패도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것으로 자살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으로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온전한 순종과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십시오. 15절 이하를 보십시오. 예언적 말씀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성공합니까? 실패합니까? 살만하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업신여깁니다.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되자 발로 차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깁니다. 근래에 일어난 새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옛 신은 지루한 것입니다. 신선한 새로운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도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하지도 않습니다.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극히 사랑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배은망덕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그들의 배교와 패역함에 따라 무서운 징계가 임한다는 것입니다(19-25) 두고두고 보시다가 마침내는 징계를 한다는 것입니다. 계속 기회를 주지만 그래도 돌아오지 않으면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19절에 보십시오. 하나님이 보신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이 관여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유기한다는 말씀입니다(20) 22절을 보십시오. 분노의 불이 사르게 됩니다. 재앙이 임합니다(23) 독한 질병이 임합니다(24) 극심한 기근과 각종 질병, 그리고 전쟁(25)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패배의 결과는 처절하지만 하나님은 그 실패의 현장에서 그대로 방치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대적들을 멸망시키신다는 말씀입니다(36-43) 

41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이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신 32:41)” 실패에서 벗어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실패를 과정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43절을 보십시오. “너희 민족들아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들에게 복수하시고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신 32:43)” 

즐거워하라는 말씀입니다. 누구에게 즐거워하라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열방들입니다. 세계 만민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의 실패의 과정을 통해 결국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속죄해 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되고 모든 민족이 구원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적 실패도 결국 인류 구속의 과정이 되게 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에도 다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실패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실패에서 탈출하여 더욱 하나님을 잘 섬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의 인물들을 보십시오.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 아내를 누이라고 두 번이나 속인 사람입니다. 모세는 어떻습니까? 살인죄를 지고 도망간 사람입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간음하고 살인 교사죄를 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으로 망하지 않았습니다. 실패를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일어났습니다. 

실패를 끝으로 보느냐 과정으로 보느냐에 따라 파괴적인 독이 될 수도 있고 창조적인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 실패의 내성을 길러야 합니다. 더 자신을 성찰하고, 더 자신의 장점을 개발하고, 더 적응력이 뛰어나고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본에서 '실패학 바람'을 일으킨 도쿄대 하타무라 요타로 교수는 그의 저서 『실패를 감추는 사람, 실패를 살리는 사람』에서 "성공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실패를 다루는 태도에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 교수의 『무력감 이론』에 의하면 낙관적인 사람과 비관적인 사람은 실패에 대해 변명하는 태도가 상반되며, 실패 친화도가 높을수록 역경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했습니다. 계획을 많이 세운 사람일수록 더 많은 난관에 부닥치게 마련이고 그만큼 실패 역시 많아집니다. 문제는 실패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실패는 끝이 아닙니다. 과정에 불과합니다. 실패를 과정으로 받아들이면 얼마든지 실패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진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다. 이제 늙어 끝이라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의 종반전에는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80이 넘어서야 대작을 만들어 냈으며 '최후의 만찬'도 8년 동안 2천 번이나 스케치한 결과입니다. 타티안은 98세에 그의 거작 "르판트의 전쟁"을 그렸으며 모세는 80세 때에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80세가 넘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였습니다. 인생의 종반전에도 역전승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고목에도 꽃이 피는 것입니다. 

꺾인 나무에도 새순은 돋아납니다. 일본 체조 선수 호시노 도미히로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교사로 부임 후진을 양성하였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그에게 불행이 다가왔습니다. 운동 중에 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의사들은 가족들에게 장례를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9년 동안의 투병 생활 중 그의 인생을 가장 변화하게 한 것은 성경을 선물 받은 것입니다. 

성경을 받고 그는 몇 주일 동안 망설이다가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병상에서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를 간호한 간호사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에게 인생의 가장 귀중한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입에 펜을 물고 퇴원하는 환자에게 주는 기념모자에게 사인을 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그는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그의 작품은 도쿄 전시장에 전시되었습니다. 그의 그림이 서점에 진열되었습니다. 

그는 퇴원하였지만 다시는 체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그리스도를 전해 주고 삶의 희망을 준 그 간호사는 그와 결혼을 하여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휠체어를 탈 수 밖에 없는 그를 격려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 도미히로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있는 30여개의 도시에 그림을 전시하고 그의 수기는 수천만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꺾인 나무에도 새순은 돋아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실패할 지라도 물을 주고 상처를 품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사42:3)"는 분이십니다. 

실패는 인생의 과정입니다. 실패는 아픔을 동반하지만 패배를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입니다. 패배를 성공을 위한 거름으로 생각하면 패배도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3. 실패를 통해 “적당히”가 아니라 “철저히” 말씀 순종의 순도를 높여 실패로부터 탈출하여 성공의 대로로 가야 합니다. 

사람이 실패하는 것은 대부분 방법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건설에서 실패는 90%는 기술적 정보의 부족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절차적 실수 또는 착오에 의해 발생한다고 합니다. 서비스 사업을 하면서 실패하는 이유는 서비스 품질이 낮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소비자의 실용적 동기와 쾌락적 동기를 동시에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적당히 믿고 차도 덥지도 않은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하니까 실패하는 것입니다. 

런던 올림픽 유도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김재범 선수가 "죽기살기로 하니까 졌는데 죽기로 하니까 이겼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무릎 연골이 나가고 어깨와 팔꿈치가 성하지 않아 경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해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이뤄냈습니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우승하였습니다. 

실패할 때 적당히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실패로부터 탈출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유언적으로 노래를 통해 예언한 모세는 마지막으로 백성들에게 어떤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까? 실패로부터 탈출하여 진정 성공이 보장받을 수 있는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모세 자신의 실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느보산에 올라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합니다. 모세도 40년 동안 고생하며 달려온 곳인데 얼마나 그 땅을 밟아 보고 싶었겠습니까? 요단강만 건너가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땅에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51절을 보십시오. 므리바에서 범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적당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물이 없자 백성들이 원망합니다. 차라리 하나님 앞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어찌하여 광야에 이끌어서 목말라 우리와 짐승을 다 죽게 만드느냐고 원망합니다. 수많은 기적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또 원망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민 20:5)” 그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시합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민 20:8)”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쳐 물을 내게 됩니다. 명령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순종하지 않고 적당히 자신의 방식대로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실패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의 실패의 경험을 마지막 유언적인 모세의 노래를 부르면서 붙여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무엇을 말씀합니까? 46절 이하를 크게 소리 내어 읽어 보겠습니다. 진정 성공하는 길이 무엇이라는 말씀입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자녀들이 진정 성공하는 길이 무엇이라는 말씀입니까? 자녀들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철저히 행하라는 것입니다. 순종의 순도를 높이라는 것입니다. 헌신의 순도를 높이라는 것입니다. 열정의 순도를 높이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순도를 높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47절을 보십시오. 생명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장구하는 보장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그것이 성공이 보장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실패로부터 탈출하여 성공이 보장된 길을 가는 최선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씀하시는 지 잠언 3장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잠 3:1)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잠 3:2)” 장수하며 평강을 누리시길 원하십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 3:3)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 3:4)” 세상에서 명예를 얻고 싶습니까? 남에게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고 싶습니까?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 3:5)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6)”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싶습니까? 말씀대로 행하면 됩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잠 3:7)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잠 3:8)” 

건강하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됩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잠 3:9)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 3:10)”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됩니다. 

실패에서 탈출하려면
과거의 실패를 독이 아니라 약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실패도 끝이 아니라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실패를 통해 “적당히”가 아니라 “철저히” 말씀 순종의 순도를 높여야 합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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