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자 (출 17:8-16)

첨부 1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자 (출 17:8-16)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사는 성도들은, 비록 몸은 이 땅에 살지만, 하늘나라의 백성이다. 그래서 (빌3:20上)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지라…”했다. 마귀는 이 세상의 임금이기에,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를 괜히 미워한다. 

악한 마귀가 자꾸 싸움을 걸어오기에, 구원받은 성도는 영적 싸움을 하지 않고, 좀 편하게 믿거나 지낼 수 없다. 마귀는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이기에,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다. 마귀와의 싸움은, 이 세상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했다. 인간 차원의 싸움이라면, 이 세상에서 쌓아온 지식과 경험과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머리를 짜내서 싸울 수 있다. 

그러나 영적 싸움이기에, 인간의 방법은 아무 소용없다. 이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영적 싸움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이길 수도 없다. 이 세상 모든 것들(종교, 도덕, 철학, 과학…)이,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속한 것으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다. 

오직 이 땅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으로, 마귀를 이길 수밖에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적 싸움을 인간의 방법으로 하려고 하기에, 영적 싸움에서 실패한다. 착하게 살거나, 의롭게 살면, 구원받을 수 있나?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잘 빠지면, 구원을 받을 수 있나?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나? 이런 방법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성령도 받을 수 없다. 영적 생활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이다. 따라서 항상 감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이렇다. 

(출14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탈출하자, 바로는 군대를 보내서 추격한다. 하지만 홍해에서 추격하는 군사들이 모두 수장된다. 그래서 (15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격하며, 감사와 찬양으로 영광 돌린다. 그 기쁨도 잠깐 뿐,  그 후에 사흘 동안, 물을 얻지 못한다. 

그러다 물을 발견했는데, 물이 쓰다고 모세를 원망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자, 하나님이 지시한 나무를 물에 던져 넣으니, 물이 달게 변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다면, 어려움이 다가오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16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땅에서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하며, 노예 시절이 그립다며, 먹고사는 문제로 원망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원망하는 백성들을, 배불리 먹여 주셨다. (17장)에서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또 마실 물이 없게 된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생수가 토자도록 만들어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 앞에서 떨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르비딤에서 마음껏 샘물을 마시고 휴식할 때, 뜻하지 않게 아말렉 군사들이 공격해 왔다. 

1. 아말렉의 정체 

이스라엘을 헤치려는 ‘아말렉’은, 장자의 명분을 빼앗기고, 야곱을 대적한 ‘에서’의 후손이다. 에서의 후예는 항상 하나님의 자녀들을 괴롭히다가, 끝내 멸망하고 만다. ק󰗝󰗪󰘥(아말렉)은 ם󰘞(하나님의 백성) + ק󰗛󰗪(부수다, 비틀다)의 합성어다. 하나님의 백성을, 비틀고 부수는 자들이다. 

바로 마귀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틀고, 부수는 자이다. 예수님은 (요10:10上)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했다. 싸움에서 정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말렉은 항상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행동을 했기에, 모세는 그들이 행한 일을 기억하라고 했다. 

(신25:17-19)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모세는 아말렉은 어떻게 행동했기에,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고 했나? 

(1) 하나님을 두려워(א󰙟󰖷 경외하다)하지 않았다(신25:18下).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가는, 소문을 듣고서도, 감히 이스라엘을 대적했다. 이는 하나님을 과소평가한 행위요, 하나님의 주권을 정면으로 도전한 행위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우습게 본다. 

사람들이 죄악을 범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피상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우리와 함께 하지만, 그렇게 믿지 않기에 범죄 한다. 설교는 말만 가지고 되지 않는다. 삶이 뒤따를 때, 말씀의 능력이 나타난다. 성경 지식만 소유하면, 교만하게 된다. 

마귀는 경박한 신학을 만들어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하게 만든다. 잘못된 신학은 하나님을 이론적으로는 믿지만, 실질적인 생활에서는, 믿지 못한다.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심을, 느끼지 못하기 만든다. 경박한 신학의 근본은, 인간의 교만이다. 

(2) 피곤하고 연약한 자를 친다(신25:18上).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은 (사42: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다. 

연약한 자를 돕는, 자비롭고 정의로운 하나님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유랑하면서 살 때, 매우 피곤하고 지쳐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연약할 때에 도와주지 못할망정, 아말렉은 숨어서 피곤에 지친 연약한 자들의, 뒤통수를 쳤다. 정의롭지 못하고 항상 비겁하고, s치사하다. 

남의 약점을 붙들고, 살지 말라. 마귀는 영물이기에, 우리의 약한 부분들을 잘 안다. 돈에 약한지, 명예에 약한지, 성에 약한지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약한 부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든지 약점을 깨닫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2. 성도가 마귀에게 공격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자꾸 원망하기에, 마귀에게 공격당하게 된다. 자꾸 원망하자 외적이 쳐들어왔다. 마귀는 원망과 불평을 우리 마음에 집어넣어서 이간시키고, 우리 욕심을 자극해서, 미혹시키는 일을 한다. 

(17:1-3)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그렇기에 자꾸 원망하게 되면, 마귀에게 공격당하게 된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고 외쳤다. 이 소리를 들은 사울의 마음은, 몹시 상하게 되었다. 여인들을 원망하고, 다윗을 원망했다. (삼상18:10上)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하나님의 부리신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게 되어, 정신없이 떠들고,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손에 쥐게 되었다.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는데, 사울처럼 마음이 상하여, 자꾸 원망하는 자를 찾는다. 우리의 마음에 원망이 없다면, 마귀는 작전개시를 못한다.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서, 먼저 원망하게 만든다. 불쾌한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달될 때에는, 반드시 범죄로 연결된다. 원망과 불평은, 악한 마귀가 오는 지름길이 된다. 그러므로 불쾌한 마음과, 우리의 입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잠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성장하지 못하는 교회를 보면, 교인들의 마음 가운데, 이상한 배신감이 자리 잡고 있다. 목사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든지, 성도들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저 사람을 믿었는데, 왜 저러나!”하면서, 서로가 배신감으로 충만해지면, 반드시 무너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믿고, 원망하지 않는 삶이 필요하다. 그렇기 위해서, 감사하는 습관을 가져라. 원망은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데도, 원망하고 불평하겠는가? 

물론 지금 우리의 환경이 어렵다.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원망할 만하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이 우리를 괴롭게 해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지키신다. 

(2) 삶이 편안해질 때, 마귀는 공격한다(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그 때는 반석에서, 샘물이 터질 때이다. 반석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광야의 젖줄이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생수다. 

르비딤(םי󰕉י󰘫󰙣)은 ד󰘩󰙜 “(침대를) 펴다, 기운을 회복하다, 위로하다”라는 말에서 왔다. 장막을 치고 쉬려고 할 때에, 기운을 회복하려고 할 때, 그들이 소유한 생수의 반석을 빼앗고자 하였다. 맹수가 먹이를 공격할 때도, 힘 있다고 아무 때나 공격하지 않고, 반드시 공격할 때를 찾아서 공격한다. 

악령도 마찬가지다. 때를 잘 맞춰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때가 바로 편안할 때다. 우리는 고난의 시절에는 하나님을 붙든다. 어려우면 하나님께 잘 매달린다. 그러나 고난의 때가 지나면 잊어버린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시절에는, 죄를 짓지 않고, 실수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이 다 끝나고, 국가가 안정되고 나라가 평정된 뒤에, 그만 유혹에 넘어져 죄를 짓고 말았다. 이처럼 마귀는 항상 하나님의 축복과 이적을 경험한 후, 이제는 됐다며 쉬려고 할 때, 악령의 교묘한 역사와 공격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3)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때, 마귀는 공격한다. 

이스라엘이 아말렉 지역으로 가까이 오자 공격했다.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마귀의 꼬임에 빠져, 죽은 인간을 도로 살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래서 영원히 죽은 인간들을 구출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기에, 마귀의 진영은 비상 걸려있다. 마귀는 자기 나라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해 오기에, 영적 싸움은 항상 일어난다. 

우리는 싸움으로 인한, 잠시의 고난은 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는, 우리 것이니,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예수님은 (요16:33下)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다. 성도는 반드시 마지막에는, 승리자가 된다는 말씀이다. 

악한 영들이 접근해올 때, 마귀의 전술을 파악하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되자.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엉뚱한데 우리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악한 마귀가 달려들어도, 겁내지 말고 전진하자. 


3. 승리의 비결 

지금 이스라엘은, 아말렉과 전투를 한다. 밑에서는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전투하고, 산꼭대기에서는 모세가 기도한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1) 배후의 기도(9-11).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가 배후에서 기도했을 때, 이스라엘이 이겼고, 기도를 쉬었을 때, 아말렉이 이겼다. 그렇다면, 진짜 싸움의 승패가 갈라지는 곳은, 기도가 있는, 영적인 싸움을 하는 곳이다. 

산 밑의 여호수아가 아니고, 산 위에서 모세가 기도하는 자리에서, 승부는 결정 났다. 여호수아는 단지 전리품을 수거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기도하는 곳이, 영적 싸움의 최전방임을 항상 잊지 말라. 베드로의 경우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입증된다. 그는 능력 있는 사도였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3천 명씩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할 때,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역사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나? 베드로는 원래, 학문 없는 범인이요(행4:13),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능력 있는, 사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기도 때문이다. (눅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어거스틴의 경우도, 도덕적으로 방탕하고, 신앙적으로 마니교 이단에 빠졌던 그가, 역사상 최대의 신학자요, 또한 목회자가 될 수 있었음은, 그의 배후에서 16년 동안, 눈물로 기도를 드렸던, 어머니 모니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배후의 기도는, 이렇게 능력이 나타난다. 

우리가 자녀와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직장과,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싸움의 승패는 이미 갈라진다. 따라서 자녀와 부모님을 위해, 아내와 남편을 위해, 형제자매를 위해, 또한 교회와 회사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 바란다. 

(2)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하다(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모세가 피곤하여 기도하지 못했을 때, 이스라엘은 패했다. 피곤했다는 말은 기도를 쉬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가정을 위해, 나라를 위해, 자녀를 위해, 기도를 하지 못할 때, 영적 싸움에서 실패하게 된다. 

사무엘은 (삼상12:23上)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라고 했다. 우리는 피곤하다고, 기도를 쉬면 안 된다. 피곤하기에 기도를 쉴 수 있지만, 피곤하다고 기도를 쉴 때, 영적 싸움에서 패하게 된다. 지속적인 기도, 끈질긴 기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한두 번 기도한 후에,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로 말씀했다(눅18:1-8). 악한 재판관도 끈질기게 간구할 때 들어주는데, 하물며 좋으신 하나님이, 밤낮 부르짖는 택한 자들의 기도를, 들어 주지 않겠는가? 

기도의 사람 엘리야도, 비오기를 위해 기도할 때, 응답이 올 때까지 했다. 인간의 육체는 피곤을 느끼게 되므로, 너무 피곤하게 만들지 말라. 피곤하다고 할 일을, 안할 수는 없다. 피곤하다고 문도 안 잠그고 자나? 신자가 할 일은, 기도하는 일이다. 피곤하다고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가 틈탄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 제자들에게 (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서, 다 자고 있었다. 얼마 후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고 말았다. 

베드로는 영적전투에서 져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따라서 피곤하지만, 기도는 하자. 피곤해도 기도하면 새 힘을 얻고, 승리한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3) 합심기도가 필요하다(12). 

기도가 쉬울까? 생활전선에서 일하는 일이 쉬울까? 기도는 쉽다고 생각되지만, 기도해보면 기도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아론과 훌이 곁에서 손을 붙들어 주며, 기도에 동참할 때, 모세는 계속 기도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같이 기도하는 일이 필요하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했다. 합심하여 기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회가 함께 모여서 기도하자,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듣고, 천사를 보내 풀어주셨다. 그래서 이 영적 전쟁을 위하여, 승리하도록 돕는 천사들을 붙여주신다. (행6장)을 보면 사도들은,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겠다.’고 하였다. 

이처럼 주의 일은, 혼자서 하는 법이 없다. 항상 협동해야 한다.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자꾸만 눈에 거슬리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방이 지저분하면, 먼저 자신이 치워라. 교회에 빈자리가 많아서, 보기 싫으면, 주님께서 그 자리를 나에게 채우라고 보여주셨다. 

불쌍한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을 도와주라. 주님께서 내가 그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나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항상 악령들이 노리고 있음을 기억하고, 깨어 기도하면, 하나님은 ‘여호와 닛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찬양하게 된다. 

원망과 불평하던 백성들이, 외적이 쳐들어오자,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했다. 지도자를 신뢰하고, 서로 협동하는 법을 배웠다. 함께 기도함으로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축원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