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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땅을 고치게 하는 기도 (왕상 18:41-46)

첨부 1


이 땅을 고치게 하는 기도 (왕상 18:41-46)
  

들어가는 말

다음 주 10월 7일 주일새벽부터 제 50회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가 시작됩니다.
다 아시다시피 우리교회는 40일 새벽기도회를 매년 1회씩 14회, 그리고 봄, 가을로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를 35회 진행해왔습니다.
올해로 제 50회 새벽기도회를 맞게 됩니다.
우리교회가 40일 새벽기도회를 시작할 때 한국교회는 소위 ‘특새’라고 불려지는 ‘특별새벽기도회’에 그리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월간 목회’란 잡지사에서 우리 교회를 특별 취재할 정도였습니다.
다니엘 새벽기도회는 우리교회의 전통 있는, 그리고 의미 있는 신앙운동입니다.
따라서 우리교회에 몸담고 있는 우이가족들은 봄, 가을로 드리는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반드시 참여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농부는 겨울철 내내 저수지에 물을 가득히 채워놓습니다.
농번기가 시작되면 저수지의 수문을 열어 때를 따라 저수해 놓은 물을 사용합니다.
저수지에 물이 그득하면 가뭄이 들어도 걱정이 없습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한해 농사를 잘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수지에 물이 없어 바닥을 드러내면 농부의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비가 조금만 적게 와도 안절부절, 허겁지겁, 당황하게 됩니다. 

논바닥이 갈라집니다. 
농부의 마음도 갈라집니다.
곡식이 타들어갑니다.
농부의 마음도 타들어갑니다.
영적인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어려운 환경에 처하여도 어떤 사람은 여유롭게 극복하지만, 어떤 사람은 전전긍긍합니다.
그 차이는 평소에 영적 저수지에 얼마나 많은 은혜를, 능력을 비축해놓았느냐에 따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번 새벽기도회를 영적저수지에 넉넉하게 영적인 자원을 비축하는 기회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안 믿는 사람들의 가장 확실한 차이점 중의 하나는 기도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자기 힘만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늘 기도하며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힘만으로 사는 사람들은 자기 수준만큼 밖에 못삽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수준으로 살 수 있습니다.
수영을 잘하면 한강 정도의 너비를 헤엄쳐 건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평양은 절대 못 건넙니다. 
태평양을 건너려면 배를 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작은 문제는 내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구나 만나는 인생의 결정적인 문제는 하나님께 업혀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업히는 것입니다.

1. 이스라엘 땅이 병들게 된 이유는?

이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병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땅에 창궐한 바알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왕상16:30-33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재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그 바알 숭배 때문에 가나안 땅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왕상17:1절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이 병들었습니다.
그 땅이 기근에 헐떡거리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17, 18장에 그 흔적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예를 몇 군데 들어보겠습니다.
왕상 17:7절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오래된 가뭄으로 그릿시내가 말랐습니다.

왕상17:12절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어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 죽으리라.”
얼마나 기근이 심했든지 밀가루 통의 바닥을 긁어 생의 마지막 음식을 준비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왕상 18:5절 “아합이 오바댜에게 이르되 이 땅의 모든 물 근원과 모든 내로 가자 혹시 꼴을 얻으리라 그리하면 말과 노새를 살리리니 짐승을 다 잃지 않게 되리라 하고”
왕의 짐승을 먹일 꼴이 없자 왕이 직접 나서서 샘 근원을 찾아야 할 정도로 온 땅이 바싹 말랐습니다. 

2. 어떻게 그 땅을 회복시켰습니까?

그런 병든 땅이 어떻게 회복되었습니까? 
엘리야가 기도함으로 그 땅을 회복시켰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왕상 18:42절입니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여기에 ‘올라간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단어 ‘알라’가 두 번 나옵니다.
성경은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여 각 등장인물의 성격과 역할을 뚜렷하게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아합은 먹고 마시기 위하여 올라간 세속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기도하기 위하여 올라간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가뭄으로 가쁜 숨을 헐떡이는 이스라엘에 생명을 가져다 준 사람은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아합왕이 아니라 기도하는 엘리야였습니다.
기도가 아합왕을 왕이면서도 이끌려가는 사람으로, 엘리야를 들사람이었지만 역사를 이끌어가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얼굴을 무릎에 묻고!’
여러분, 억지로라도 한번 얼굴을 무릎에 묻어보십시오?
이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까?
그 절박함,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엘리야의 이런 기도 자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열망하는 겸손의 극치입니다.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43절)
히브리인들에게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입니다. 
여리고 성도 일곱째 날에 일곱 번 돌 때 무너졌습니다.(수6:1-21)
아람 군대 장관 나아만도 일곱 번 요단강에 몸을 담갔을 때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일곱’이라는 숫자는 인내의 한계를 상징하는 숫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가 그 사환에게 ‘일곱 번까지’ 확인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시리라고 확신하고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44절) 
손바닥 만한 작은 구름으로는 큰 비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먹구름이 밀려와야 큰 비를 기대할 수 있지요?
‘손바닥 만한 작은 구름’이라는 표현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는데 작은 희망의 꼬투리라도 끝까지 잡고 늘어지는 믿음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간절한 기도의 결과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왕상18:45절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3. 기도하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본문이 우리에 던지는 강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영적인 회복이 일어납니다.
기도하면 심령의 회복이 일어납니다.
기도하면 육체의 회복이 일어납니다.
기도하면 얽히고설킨 삶의 회복이 일어납니다.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이 시간에는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영혼의 치유가 일어납니다.

기도하면 먼저 우리의 영혼에 치유가 일어납니다. 

① 사죄의 확신

기도하면 사죄의 확신을 갖게 됩니다.
아무리 사죄를 선언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사죄의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죄의 용서는 영혼을 자유롭게 합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에 따르면 만약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자신들이 완전히 용서 받았다는 사실만 확신한다면 그들 중 절반은 더 이상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영혼은 그토록 간절히 용서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적 유전자 안에는 거룩을 갈망하는 끝없는 목마름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죄를 지으면 우리의 영혼은 결코 편안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집니다. 
감정적으로 예민하고 폭력적이 됩니다.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내적 평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란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롭다는 것은 내가 의롭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죄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죄가 감추어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덮어 주신 것입니다. 
바로 갈보리 언덕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시고, 의롭다 선언하신 것입니다. 
영원토록 효력이 있는 용서, 하늘과 땅의 그 누구도 더 이상 뭐라 반박할 수 없는 엄청난 용서, 이 사죄의 확신은 기도할 때 주어집니다. 

② 기쁨

기도하면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새벽기도를 끝내고 나오는 성도들의 얼굴 표정을 관찰해보십시오. 
기도하러 올 때와 기도를 끝내고 나갈 때의 표정이 완연히 다릅니다. 
왠지 모를 자신감에 차서 나가는 모습들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현실은 여전히 힘들지만 이제 하나님이 그 문제에 개입하시는 것을 확신하니까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표정이 바뀌는 것입니다. 
기도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성령의 열매 9가지 중에서 첫째가 사랑이고, 그 다음이 기쁨입니다. 
크리스천의 기쁨은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순도 100% 천국산 기쁨이기 때문에 이 땅의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③ 용기

기도하면 거룩한 용기로 무장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도 실패, 고난과 역경이 닥칠 수 있습니다. 
갑자기 큰 병이 들었다고 진단 받을 수가 있고, 사업이 무너지고, 친구가 떠나가는 등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토록 충성했던 조직에서 매몰차게 쫓겨나기도 합니다.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것 같은 위기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간이라도 빼 줄 것 같던 사람이 정작 어려울 때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설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말할 수 없이 서럽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거룩한 용기를 얻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 못하는 사람입니다.

2) 세상을 치유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다음으로, 기도하면 세상을 치유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90년대 말, 뉴저지 지역에 미국 목회자들의 기도 모임이 있었습니다. 
백인, 흑인, 남미계, 아시아계 할 것 없이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미국 목사님들 수백 명이 모여서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지역사회의 변화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알다시피 미국의 뉴욕 지역은 미국에서 살인, 강도, 마약, 강간, 절도 같은 범죄가 가장 극심한 지역 중의 하나였으며, 무너진 가정과 불량 청소년, 도시 빈민 문제가 극에 달한 지역이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지 7년이 되던 해에 그 모임을 지도하는 목사님이 뉴욕타임스에 난 기사를 소개했습니다. 
지난 7년간 뉴욕시의 살인 사건과 같은 중범죄 사건이 반으로 줄었다는 통계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 주셔서 뉴욕 땅을 고쳐주고 계셨습니다. 
집을 나간 청소년들은 돌아오고, 무너진 가정들이 회복되고, 범죄는 줄어들고, 경제는 살아났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세상을 치유하는 역사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야고보는 그 사실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약5:17-18절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정신 차리고 기도하면 이 땅의 위기, 이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는 축복의 비가 쏟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중국처럼 인구가 많습니까? 
일본처럼 돈과 기술이 대단합니까? 
우리 민족은 기도하지 않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특히 요즈음 한국의 자살률이 OECD국가 중 1위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립니다.
기도함으로 자살의 영을 몰아내야 합니다.
한반도에 드리워진 분열의 영도 기도함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이 절망하는 땅에 기도함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영을,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1941년, 나치 독일군에 쫓긴 5-60만에 가까운 영, 불 연합군이 프랑스 해안에 집결해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철수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히틀러의 100만 나치 대군과 압도적 공군력이 이를 가만 놔둘 리가 없었습니다. 
이 때 영국 국민들이 교회로 달려 나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바다사자 작전(Operation Sea Lion)'이라 명명된 이 작전이 벌어진 당일 새벽, 짙은 안개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던 독일 공군은 폭격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고깃배와 뗏목 등 물에 뜰 수 있는 것은 다 동원한 영, 불 양군의 결사적인 노력으로 거의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연합군은 무사히 영국으로 철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병력은 후에 시실리와 아프리카에 투입되어 전세를 뒤집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는 기도하는 자가 만듭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지만 기도를 통해 비를 오게 함으로 땅을 고쳤습니다. 
기도하면 회복됩니다.
여러분의 크기는 기도의 크기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거니 생각하지 마시고, 제발 이번 다니엘 새벽기도회에 참여하길 주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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