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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 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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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시편 100:1-5) 

작년 그리고 그 전년도에도 추석을 겸한 추수감사절을 이웃들을 청하여 섬기는 잔치로 열다가 금년에는 식구들끼리 조용하게 지내려 했는데 처음에 마음 먹었던 대로 안됩니다.  금년에 우리 교우들이 다른 해보다 이동이 많았고 유난히 여름 여행을 부지런히 다니느라 피곤해하는 것 같아 조용하게 지내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었습니다.   다음 달에 남전도회 주관 바자회 준비도 있어 힘을 비축하시라는 뜻에서 조용히 지내자 그랬는데 엄살이 좀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 ‘내 어린 자녀와 새끼 달린 짐승들을 하루만 과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을지 모른다’고 엄살을 부렸던 것처럼 금년 감사절에는 우리 교우들을 너무 힘들지 않게 해드리려 조용히 지나가자 했는데 역시 추석은 큰 명절입니다.  

오늘 이렇게 여러 선교사님들도 오시고 신학기를 맞아 이곳에 막 도착한 학생들이 교회를 찾아왔고 그리고 가족 방문 교우들도 오셨으니 우리 교회 추수감사주일은 역시 이웃들과 함께 하는 잔치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흩어져 있던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감사절 잔치를 열 수 있는 이것도 외국에서 나그네 삶을 사는 우리가 감사드려야 할 좋은 이유가 아닐까요?  

우리가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까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처럼 너무 당연한 질문이 되어버립니다.  누군가 쓴 글에 이런 감사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감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느날 아들이 아버지에게 ‘오늘 저에게 대단히 감사할 일이 있었어요’ 그게 무엇이냐 묻는 아버지에게 ‘제가 차를 몰고 집으로 오다가 차가 일곱 바퀴나 굴러 차가 폐차될 정도로 망가졌는데 저는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요.’ 아들의 말을 들은 아버지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후 잠시 생각하더니 ‘아들아 나는 오늘 너보다 더 크게 감사할 일이 있다’했습니다.  아들이 깜짝 놀라 ‘아버지도 차가 굴렀어요?  몇 번이나요?  혹시 여덟 번이나 굴렀나요?’  아버지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굴렀다’ 

감사는 무엇을 크게 이루었거나 얻었거나 혹은 어떤 큰 사고와 위험으로부터 건짐 받아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상의 평안을 감사로 여기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뜨고 아무 일 없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그것을 감사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한 번 큰 일을 겪고나면 그제서야 놀란 가슴 쓸어내리고 ‘하나님 감사합니다’합니다.   오늘 감사절 아침에 우리는 어떤 감사를 드려야 할까 생각해봅시다. 

저도 개인적으로 감사할 일이 많지만 몸의 건강을 유지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는 아내와 가끔 집에서 가까운 Cutteslowe Park을 운동삼아 걷습니다. 요즘 그곳에 가면 말밤나무에서 떨어진 밤톨들이 풀밭에 많이 흩어져 있습니다. 열매가 밤알처럼 생겼다 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나도밤나무라고 부르는 이 Horse Chestnut 나무는 마로니에라고도 부르고 잎이 일곱개 달렸다고 칠엽수라고도 부르는데 요즘 한창 껍질이 터져 열매가 땅에 떨어지는 시기입니다.   알밤의 색깔이 예쁘고 또 껍질이 반질반질하여 참 보기 좋은데 먹을 수 없어 좀 아쉽습니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JR 병원에서 6년째 정기적으로 복부 초음파와 혈액검사 등 건강체크를 받으면서 건강에 대한 감사가 더 절실하고 계절의 변화에도 감정이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느낍니다.  봄이나 가을이 때가 되어 자동적으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이 아름다운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을 건강한 몸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하신 주의 사랑에 대한 감사가 해마다 새롭습니다. 풀밭에 떨어진 흔하디 흔한 말밤, 먹을 수도 없어 발로 툭 차버리는 그 밤톨 하나를 볼때 반갑기도 하고 아! 또 한 해가 저물어가는구나 하고 내 나이를 셈하며 내년에도 또 지금처럼 건강을 이만큼 유지하며 이 예쁜 밤톨을 만져볼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져봅니다.     

우리 교회를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 참 많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큰 어려움 없이 평안한 가운데 예배드리고 친밀한 성도의 교제와 함께 주의 복음을 나누며 살았으니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중에도 때마다 일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으니 참 감사할 일입니다.  신앙생활에 자칫 방만하고 게을러지기 쉬운 외국생활이지만 우리 교우들이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감사합니다.   

우리 교우들 중에는 비자 연장 문제, 자녀의 건강과 진로, 본인의 진로문제로 마음에 그늘이 진 분들이 있습니다.   그 일만 잘 해결되면 그 외에는 아무 염려가 없을 듯한 분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견디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한 고비 지나면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이 또 우리를 기다리겠지만 그래도 주 안에서 견디며 소망을 가지고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그 모습이 든든하고 감사합니다. 

주일예배와 성도의 교제를 위해 남보다 일찍 와서 부지런히 섬기는 일군들을 보면 감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 거의 삼분의 일 이상은 시내 밖에 거주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도 그 먼 거리에서 더 일찍 서둘러 교회로 찾아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원하여 기쁨으로 섬기는 그 섬김이 얼마나 감사한지 …  이렇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섬기며 수고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매주일 아침 허둥대거나 마음이 부산하지 않고 기쁨으로 예배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어린이 주일학교와 청소년들을 위해 헌신하는 교사들이 있어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편안히 맡기고 예배드리고 봉사할 수 있으니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매주일 친교당번들이 맛난 음식을 준비해주시고 여전도회 임원들이 앞장서 수고해주시니 비빔밥을 먹으며 나누는 성도의 교제가 참 정겹습니다.   음식을 준비하시는 분들의 사랑스런 섬김 덕에 우리는 물론 잠간 들려 예배드리고 가는 손님들에게까지 따뜻한 위로와 아름다운 추억이 되게 합니다.   이런 것들이 매주일 우리 교회에서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이처럼 사랑으로 섬기는 일군들이 있으니 감사치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감사드려야 할까요?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감사의 이유를 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인 것을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그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감사의 이유가 또 있을까요?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면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알게 되고 우리의 감사는 곧 따라나옵니다.  그분이 나의 창조주시며 나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며 그의 기르시는 양임을 깨달았을 때 내 속에 차오르는 든든함과 소망 이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오늘의 본문 시편 100편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감사찬송하는 것처럼 시편 여러 곳에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노래가 나옵니다.  시편 136편은 하나님의 창조와 역사에서 보여주신 놀라운 일들을 노래합니다.   스물여섯 절 모든 절이 댓구형식으로 되었는데 앞부분에‘하나님께 감사하라’한 다음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로 화답하는 대표적인 감사의 찬송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까요?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놀라운 복은 우리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거저 얻는 은혜입니다.  

어떻게 감사할까요?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추수감사절에 우리의 감사를 찬양으로 표현하는 성도들의 마음에 이런 기쁨이 충만하리라 믿습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하라’는 구절을 읽으면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는 순례객들의 감사절 분위기가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문을 들어설 때 그 마음이 감사로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궁정 즉 하나님의 집, 성전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입술은 찬송으로 가득합니다.   

예배는 이렇게 준비되어야 합니다.  매주일의 예배가 이런 마음으로 드려지기 바랍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마음을 단정하게 고르며 예배당으로 오는 길이 벌써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예배당 문을 들어설 때 내 심령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가득해야 합니다.  이렇게 준비된 심령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수처럼 공급되고 입술로 부르는 찬송은 마음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고백이 됩니다.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매주일 드리는 예배의 은혜가 매번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구태여 말씀드리지 않아도 우리 자신이 잘 압니다.   감사로 준비된 예배와 허둥지둥 분주하게 지내다 의무감 때문에 끌려나와 드리는 예배는 확실히 다름을 우리의 경험으로 압니다.   혹시 예배당에 오기 전이나 오던 길에 차 안에서 가족들과 한바탕 언쟁이라도 벌이며 온 날은 말 그대로 죽을 쑤는 날입니다.  이유가 어떻든 내 마음이 상하고 뒤틀려 감사가 빠져버린채 드리는 예배는 이렇게 은혜가 줄어듭니다.   

성도들이 주의 집에 모여 한 마음으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며 말씀을 듣고 서로 축복하는 이 예배가 하나님께 올리는 나의 가장 소중하고 복된 시간이며 즐거움이 되기 바랍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했던 고라 자손의 노래가 여러분의 찬송이 되기 바랍니다.    

미가서에 이런 대화가 나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께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드릴까?  일년 된 송아지를 번제물로 가지고 그분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과 만만의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벗겨주십사 구하기) 위하여, 내 영혼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내 몸의 열매인 내 맏아들이라도 드려야 할까?’ 그에 대한 대답이 무엇입니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을 너에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6-8) 입니다.

어떻게 감사드릴까요?  지난 주일 호세아서에서 ‘내가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처럼 나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 그분을 바로 알고 그 마음에 합당한 자녀로 살아갑시다.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했습니다.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사람의 겸손한 찬양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제사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하신 말씀을 따라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선택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땅히 찬양받으셔야 할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모든 성도들은 매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물론 매일 하나님을 찬양해야만 한다는 것이 율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하루 중 몇 시간씩 감사와 찬양을 드리라는 계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판에 새겨진 법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옳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은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감사의 찬양을 기뻐 받으십니다.

매년 추수감사절에 부르는 찬송 ‘날 구원하신 주 감사’를 오늘 또 부릅니다.   지난 일년 동안 이곳에 새로 오신 분들이 있어 혹시 이 찬송을 잘 모를까 하여 지난 주일에 미리 불러보았는데 오늘 다시 불러봅니다.   저는 지난 주간 이 찬송을 수십 번은 부른 것 같습니다. 일하다가 흥얼대고 설교준비하다 생각나면 또 한 소절 불렀는데 참 따뜻한 내용을 가진 찬송입니다. 이 찬송의 가사를 보면 우리의 감사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나올 수 있는 전천후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토록 변함이 없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그 성실하심을 감사하며 우리 함께 불러봅시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풍성하게 맛보는 복된 날, 기쁨의 날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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