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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에' 이후에 '이에' 하라 (단 2: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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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이후에 '이에' 하라 (단 2:19-25

(19절)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20절)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21절)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22절)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23절)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
(24절) 이에 다니엘은 왕이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라 명령한 아리옥에게로 가서 그에게 이같이 이르되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지 말고 나를 왕의 앞으로 인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 해석을 왕께 알려 드리리라 하니
(25절) 이에 아리옥이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되 내가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찾아내었나이다 그가 그 해석을 왕께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우리는 한반도라는 작은 땅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지역마다 특성이 있고, 즐겨 쓰는 저들만의 언어, 사투리들이 있습니다. 호남사람들은 예향의 고장답게 ‘함축적’입니다. ‘거시기’, 이 거시기는 정말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충청도 사람들은 말이 느린 반면 긴 말을 짧은 시간 내에 해야 하니까 그런지 ‘단축적’입니다. ‘했시유.’ ‘개혀?’ 이런 식으로 단축하여 표현합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일단 발음이 억셉니다. ‘욕받제, 직인다.’ 그러면서 음의 높낮이를 가지고 의사를 표현합니다. 

이렇게 지역마다, 언어마다 특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대할 때도 이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그리고 아람어로 쓰였습니다. 다니엘 2장 4절 후반부부터 7장 28절까지 아람어란 글자로 쓰였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바벨론이 아람어를 사용했기에 다니엘서 일부가 ‘아람어’로 쓰인 것입니다. 

‘아람어’도 나름의 특징이 있습니다. 본문을 유심히 살피면 즐겨 등장하는 ‘이에’란 단어를 발견합니다(단 2:17,19,24,25). 2장 46절, 3장 3절에서도 나옵니다. ‘이에’(@yId'a,,,,, 에다인)란 아람어는 기원과 의미가 불분명하면서도, 대단히 다양한 의미로 즐겨 쓰이는 단어입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그때에, 이후에, 그 후 곧, 그때부터’라는 뜻을 가지면서 특별히 문맥의 맥을 잡고, 이어주는 중요한 접속사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아람어로 쓰인 부분을 다룰 때는 이 단어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이에’는 ‘이에’로 답하신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단 2:17,19). 오늘의 설교제목은「‘이에’ 이후에 ‘이에’하라」로 잡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에’란 단어가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계속 문장과 문장, 사건과 사건을 쉴 새 없이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단 2:19). 다니엘이 기도하여 드디어 기도의 응답이 나타났습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이 생겼습니다. 자신 안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한센 병을 앓고 있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았지만, 저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7). 옥에서 나온 베드로를 본 로데라는 여자아이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기는커녕 문을 미처 열지 못한 채 방안의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습니까?(행 12:13) 

이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이지만, 분초(分秒)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단 2:19).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단 2:20). 그런데 아람어 원문에 보면 20절에 ‘yD’(디)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접속사인데 번역자들이 간과해 버렸습니다. 이 단어는 ‘그때에, 그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단어도 ‘이에’로 번역해야 합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이에’ 이후에 다니엘은 다시 ‘이에’하고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이에’는 어떤 ‘이에’입니까? 

첫째, 그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단 2:19). 
둘째,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드러냅니다(단 2:20-22). 
셋째, 그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단 2:23). 

당연히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달려가야 할 그가 놀랍게도 왕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먼저 달려가 하나님 얼굴 뵙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단순히 나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찬양, 영광, 감사, 세 가지 액션을 취합니다. 

그는 우선순위가 분명했습니다.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름을 높이며, 감사하는 일을 먼저 합니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항상 하나님이 먼저였습니다. 그의 이런 태도는 늘 일관성 있게 이어집니다. “이에 다니엘은 왕이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라 명령한 아리옥에게로 가서…”(단 2:24). “이에 아리옥이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 앞에 들어가서…”(단 2:25). 

다니엘은 조급하지 않으나, 아리옥은 무척이나 조급했습니다. 자칫하면 자신의 생명도 위태했기 때문입니다. 느부갓네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단 2:8,15,26). 

그런데 다니엘은 이야기를 꺼내다말고 궁금해 하는 느부갓네살 앞에서 하나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단 2:28). 29절과 30절에도 보면 이런 다니엘의 태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엄하신 왕 앞에서 이야기를 하다말고, 다시 끊고 하나님을 높이는 그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면서 그는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을 다시 한 번 드러내고, 높입니다(단 2:44-45). 이렇게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이어가며, 하나님으로 끝을 냅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일을 알게 되었고, 해석하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말 중심어린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기를 원하는 다니엘의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보다 더 신비롭고 은밀한 일을 보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를 높이십니다(단 2:48).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은 다니엘의 태도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어떻게 요약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에’ 이후에 ‘이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절박한 그에게 찾아오셔서 ‘이에’하셨습니다. 그때 그는 사람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뿐만 아니라, 아리옥과 느부갓네살, 즉 사람 앞에서까지 ‘이에’합니다. 

다음 주는 추석입니다. 가장 감사해야 할 뜻 깊은 명절입니다. 여러분들의 손에 무엇을 쥐고 있습니까? 건강, 자녀, 물질, 사업장, 직장입니까? 그것을 누가 주셨습니까? 누가 주셔서 여러분들이 지금 누리고 있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오늘 내가 이것을 이루었노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니엘은 계속하여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마치 바울 사도처럼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전 15:10)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헤롯은 하나님께로 돌려야 할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않고, 자기에게로 돌렸을 때 성경은 그가 벌레에게 먹혀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행 12:23). 이 뜻 깊은 가을, 감사의 계절에 우리 모두가 ‘이에’ 이후에 ‘이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또 ‘이에’해주실 줄 믿습니다. (옥성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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