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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를 많이 맺으면 (요 1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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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많이 맺으면 (요 15:5-11)


샌프란시스코의 로스알데 힐이라는 작은 동네에 죤(John)이라고 불리는 우편배달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80여 Km에 달하는 거리를 오고가며 기계적으로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뜨겁고 건조한 오후의 한 때, 길은 휘몰아치는 바람으로 뿌연 흙먼지가 걷잡을 수 없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로 하여금 전혀 뜻밖의 생각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어쩌면 나는 내 직업을 그만두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이 흙먼지를 마시며 살아가야할지 몰라.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살아온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쳇바퀴와도 같은 삶의 반복으로부터 돌파구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이럴게 아니라 이 황폐한 길에 꽃씨를 뿌려 보자. 내게 주어진 일과 함께 한번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보자!” 그 이후 그는 주머니에 꽃씨를 가득 담아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하여 오고가는 길 양쪽에 꽃씨를 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서 꽃씨를 뿌렸습니다. 해가 거듭되면서 길 양쪽에 드디어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날이면 그의 마음은 한없이 설레고 기뻤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시사철 꽃들은 쉬지 않고 피어났습니다. 80여 Km에 펼쳐진 그 꽃들은 거리를 아름답게 꾸며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마음을 또한 풍요로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해주었습니다. 그의 삶은 더 이상 무료하거나 의미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을주민 역시 80km의 거리에 이어진 울긋불긋한 꽃길에서 우편배달을 하는 한 폭의 수채화와 같이 아름다운 요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그들도 주머니에 꽃씨를 넣어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의 씨 뿌림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포도나무 비유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강조합니다. 포도나무는 생명력이 끈질기고 왕성합니다. 그루터기만 남아도 언젠가 가지가 돋으며, 한 그루의 나무에서 난 가지들이 많은 열매들을 맺습니다. 포도나무의 가치는 꽃이나 목재나 잎이 아닙니다. 오직 열매입니다. 포도나무는 가구재로 쓸 수 없고 땔감으로도 사용할 수 없으며, 장식품의 재료로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단지 열매를 얻기 위해 필요한 나무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성도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열매가 그 영혼과 삶에 맺혀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열매를 많이 맺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포도나무 주인은 나무를 살피며 열매 맺는 가지는 더 잘 맺도록 가지를 손질하여 주고 열매가 없는 가지는 잘라서 제거해 버립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열매가 없어도 잘리지 않고 살아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아직 열매 맺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 가지된 자는 오로지 열매 맺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열매를 많이 맺으면, 
 
첫째로 영광을 돌리리라

18세기경 구두 만드는 실습생이었던 죤 와르(John Warr)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증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밑으로 다른 견습생이 고용되었고 죤은 그에게 반복하여 영적인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온 견습생은 귀찮아했습니다. 어느 날 실습생이 위조 화폐 1 쉴링을 진짜와 바꾸려다 붙잡혔습니다. 수치스런 죄책감에 사로잡힌 그는 어쩔 줄 몰랐습니다. 죤은 그를 찾아가서 기도해주고 마음을 다해 도와주었습니다. 견습생은 예수 믿게 되었고 헌신적인 제자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젊은 견습생은 후에 인도 선교사로 놀랄만한 결실을 맺은 윌리엄 캐리 (William Carrey)가 되었습니다. 그의 생애와 선교 사업은 세계복음화 전도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동료에 대한 존 와르의 영향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린 것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여기서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의 뜻은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영혼구원을 많이 한다면’ 입니다. 영혼구원의,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은 천하보다도 귀한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참여하기보다 자신의 삶을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혼구원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시는 은혜 가운데 날마다 하나님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 또한 열매를 맺을 때 제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뜻도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넘치는 열매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모름지기 성도는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둘째로 사랑에 거하리라

테레사 수녀 Madre Teresa)가 미국 국가 조찬 기도회에서 했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바짝 야윈 83세의 마더 테레사가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조찬 기도회 장소에 나타났습니다. 연설을 하기 위하여 간신히 마이크에다 허리를 굽힌 상태에서 했던 말은 이것입니다. “미국은 이기적인 나라가 되어서 사랑의 바른 의미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사랑은 아프기까지 주는 것입니다.” (America has become a selfish nation, in danger of losing the proper meaning of love: ‘giving until it hurts.’) 중요한 말은 ‘사랑은 아프기까지 주는 것’ 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아프다는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 예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아프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준만큼 받는 물물교환식의 거래가 아닙니다. 친구를 위하여 아프기까지 피를 흘리는 사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진정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사랑 안에 거하지 않으니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깁니다. 인생의 고통은 잘못된 목표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성공, 기쁨, 만족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잠깐 즐거움이 온 후에 길고 긴 좌절의 고통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성도의 목표는 예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예수 한 분이면 충분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다른 이의 칭찬과 인정받기를 갈망하고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좀 더 잘나야 되고 좀 더 강하게 보여 지는 일에 힘쓴 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열매를 맺는 삶이 된 이후에는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폭포수처럼 부어지니 예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며 사랑을 누리게 됩니다. 모쪼록 예수의 사랑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예수 한 분이면 충분하다는 고백이 나오는 열매 맺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기쁨이 넘치리라

아프리카 선교사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박사에게 한 부인이 다가와서 말합니다. “박사님, 당신은 위대한 학자요, 천재적인 음악가이십니다. 그런데 당신같이 훌륭하신 분이 어떻게 아프리카 오지에서 이렇게 봉사하는 삶을 사십니까?” 이 말을 들은 슈바이처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재주가 없습니다. 그래서 행동으로 감동을 주려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데 말로는 잘하지 못하니까 행동으로 표현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행동으로 표현했더니,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더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건강을 주셨습니다.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내 친구, 동료, 어느 누구보다도 나는 더 기쁨이 넘치게 삽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열매 맺는 자에게 더 좋은 것으로 보상하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열매를 맺는 능력을 주실 뿐만 아니라 열매를 맺었을 때 더 큰 기쁨도 허락하여 주십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에게도 기쁨이지만 그리스도인 자신에게도 큰 기쁨입니다. 여기서 ‘내 기쁨’ 이란 표현을 썼는데, 원문은 ‘나의 것인 그 기쁨’ 이란 뜻입니다. 즉 세상에서 누리는 기쁨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안에 내주하시는 예수로부터 샘물처럼 솟아나는 기쁨을 가리킵니다. 이는 세상의 기쁨이 아니라 천국의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맛본 사람만이 아는 지극한 기쁨입니다. 

열매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어찌 기쁠 수 있습니까?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게 되며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살라버려집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이신 예수로부터 떨어진 사람, 그 사랑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은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수확기가 되었어도 열매 없는 포도나무 가지는 초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 포도나무이신 주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주와 함께 하고, 주 안에 머무를 때 비로소 열매 맺는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소련 공산당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민위원이 집단농장을 시찰하고 일이 잘 돌아가는지 불평은 없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농부가 대답합니다.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수확은 어떤가?” “작황이 점점 개선되고 있습니다” “감자 수확은 잘 되는가?” 농부는 “감자를 수확해 쌓으면 하나님의 발끝까지 이를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인민위원이 “소련에 하나님은 없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농부가 “그렇습니다. 감자도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답니다. 하나님 없이 감자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감자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와 의논하지 않고, 예수와 동업하지 않고, 예수에게 물어보지 않고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무엇을 하느냐가 우선이 아니라, 먼저 예수 안에 거해야 합니다. 도대체 예수를 하루에 몇 번이나 생각하십니까? 얼마나 예수께 간구하십니까? 예수 없는 가정, 예수 없는 사업, 예수 없는 직장, 예수 없는 인생은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죽은 것입니다. 열매 없는 잎만 무성한 가지 일뿐입니다. 

좋은 사람이라서 예수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 믿어서 좋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존귀하여 예수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 믿은 후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식이 있어 예수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 믿어서 지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원줄기이신 예수께 붙어 있음으로 능력을 공급받아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힘써야 할 것은 생명이신 예수에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결실의 계절에 열매를 많이 맺으시기 바랍니다. 열매를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 내놓을 열매가 없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주를 떠나서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며, 무엇을 해도 결국 헛수고에 그치고 마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부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의 목적에 맞는 제자로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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