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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곱이 깨달은 인생의 비밀 (창 49: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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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깨달은 인생의 비밀 (창 49:1-33)

사람이 욕심이 없을때 가장 힘있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자기 자식들을 불러놓고 하는 말 만큼 진실함과 또 사랑이 담긴 말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사심없이 남김없이 자기가 한평생 살았던 자기 인생을 통해서 얻었던 교훈과 경험했던, 실패했던, 후회했던, 일들을 자식들에게 얘기 해주고 중요한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말해줄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임종의 자리입니다. 오늘 야곱은 자기의 열두 자녀들을 모아놓고 저들에게 축복 기도를 해 주면서 자기가 살았던 인생을 이제 종결하고 결론짓는 그런 부분입니다. 

야곱에게는 세가지 후회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다 죽을 때는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서 내가 좀더 일찍 이렇게 했으면 좋을뻔 했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야곱에게도 그런 후회스러운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서 자식들에게 축복기도를 해 주면서 그 후회스러운 세가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좀 더 일찍 알았으면 하는 후회스러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하는건데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는 거리가 멀었던 인생을 살았습니다. 야곱은 한마디로 자수성가한 유형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기의 주먹을 더 믿었고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자기 노력과 수고를 통해서 자기 인생을 성공적인 인생으로 만들어 보려고 열심히 달려왔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분명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면 집을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하나님이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은혜를 모르고 수고하는 것은 헛된 정도가 아니고 오히려 은혜가 역사할 기회를 방해하는 방해의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제 야곱은 이것을 죽기 바로 일보 직전에 깨닫고 자식들에게 좀 더 일찍이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살라고 그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을 많이 해서 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또 수고를 많이 하고 열심히 뛰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누워서 정신없이 달려간다고 복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중단하고 멈추고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기를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비결이요 복된 삶의 비결이라는 것을 이제 뒤늦게 깨닫고 자식들에게 그것을 전수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가장 클 때가 언제입니까? 잠잘 때라고 합니다. 일어나서 밥먹고 활동하고 뛰어 놀 때 키가 크는 것이 아니고 밤에 잘 때 아이들의 키가 자란다고 합니다. 그래서 갓난 아이들이 잠을 많이 자는 이유가 크려고 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크기 위해서는 멈춰야되요. 입을 다물어야 되요. 자야되요. 눈을 감아야 되요.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도록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원칙이며 은혜의 원리입니다. 

식물도 마찬가지 입니다. 식물이 언제 자랍니까? 잘 모르세요? 밤에 큽니다. 식물이 밤에 크는 것이 창조의 원리예요. 잘때,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물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 일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식물들이 자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법칙이예요. 

야곱이 뒤늦게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많은 일을 해서 복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도록 그 은혜의 방해자가 되지 않고 그 은혜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도록 길을 비켜드리는 것이 더 복된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 아는 거예요. 

유진 피터슨이라고 하는 목사님이 이 말씀을 가지고 아주 충격적인 해설을 우리에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 말은 바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멈출 때 쉴 때 안식할 때 입을 다물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가장 효과적으로 일하신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주 신선하게 그 말씀을 우리에게 해석해 주고 계십니다. 그것이 자연적 이치와 창조원리입니다. 아이들이 잘 때 크고 식물이 밤에 자랍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가 잘 때 우리가 멈췄을 때 우리가 중단했을 때 하나님이 해 놓은 것 위에 우리가 쌓는 것 뿐입니다. 은혜가 뒷받침 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자기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세가지 있다고 합니다. ‘돈’ 우리 맘대로 안되죠. 아무리 돈 벌려고 해도 돈이 벌어집니까? 벌어져야 벌어지지. ‘자식’ 자식도 자기 마음대로 안된데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제 맘대로 자식 제 맘대로 못 키웁니다. 대통령이라 할찌라도 자식 제맘대로 못키워요. 그리고 세번째로 자기 맘대로 안되는 것이 ‘골프’래요. 그래서 이 세가지는 싸우면 안 된데요. 싸워서 될 일이 아니라는거죠. 이건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도록 기다리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받쳐주지 않으면 돈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고 자식도 제대로 키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깨달았습니다. 그 은혜가 임할 때 받아드리고 내가 그것을 막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일을 내 인생을 통해서 하셨을텐데 이제 돌아보니까 내가 한다고 했는데 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 이거예요. 뭐가 있어요? 자식들에게 줄 것이 뭐가 있어요. 드디어 내가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영적인 축복을 해주는 것 밖에는 없구나. 야곱의 이 축복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축복기도 입니다. 내가 좀 더 이 은혜를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자녀들아 너희들은 나처럼 살지 말라 너희는 좀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살아라. 은혜보다 앞서지 말라고 부탁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가정을 세우지 않으면 세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업을 지켜주지 않으시면 그것이 보호하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은혜로 받쳐주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자랄 수가 없습니다. 이 원리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조금 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번째로 좀 더 일찍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삶을 살았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야곱은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게 뭔지 몰랐어요. 왜 자기 성을 쌓기에 너무 바빴습니다. 자기 것을 모으기에 너무 바빴어요. 그렇기 때문에 남을 축복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고 남을 축복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남에게 베풀거나 섬기거나 나누어 준다는 생각을 가질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와서 돌아보니까 자기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적이 언제 있었는가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됐습니다. 

야곱은 그럴 겨를이 없었어요. 이제와서 축복하면서 축복의 비밀을 알게 된 거예요. 내가 한평생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언제 남에게 복을 주고 언제 남을 행복하게 해 주었는가? 없어요. 기억이 안나요. 오히려 복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아픔을 많이 줬죠. 열심히 뛰면서 남보다 앞서가야 되기 때문에 복을 주기는커녕 섬기기는커녕 행복을 주기는커녕 다른 사람에게 아픔을 주고 많은 사람들과 적이 됐어요. 형, 아버지, 삼촌 라반과도 적이 되고 자기 욕심 때문에 라엘과 레아 둘을 모두 아내로 만들어서 그 사이에서 얼마나 아픔을 많이 주었습니까. 그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아픔을 많이 주었을거예요. 왜? 성공하기 위해서. 

이 야곱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줌으로써 자기 행복을 찾은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서서 자기가 행복하기를 원했던 사람이예요. 그렇게 한평생 살았던 사람이예요. 그런데 이제 알았어요. 행복이라는 것이 내가 다른 사람 위에 서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통해서 내가 행복을 찾는 것이구나. 이 축복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해줄 수 있는게 아닙니다. 축복하는 척 한다고 되는게 아니예요. 마음으로부터 진정한 축복의 마음이 우러나와야죠. 

야곱은 좀 일찍이 젊은 나이에 양적인 성공을 맛 본 사람이예요. 열심히 했잖아요. 그런데 야곱의 인생을 돌아볼 때 그는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는 인생을 살지 못했어요. 드디어 늙어서 축복의 의미를 알았어요. 이 복을 준다는 것은 양적인 개념이 아니구나. 내가 많이 끌어 모아서 쌓아 놓고 복을 주는 것이 아니구나! 작은 것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같이 떼어주고 베풀고 그것을 통해서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복된 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게 복인데 지금까지 자기는 복을 누리기 위해서 뛰었어요. 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 산게 아니라 복을 쌓기 위해서 한평생 살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많은 복을 누리지 않아도 얼마든지 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많아서 복을 주는게 아니예요. 마음의 자세요. 남을 섬기려고 하고 작은 것이라도 줄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복된 인생을 사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 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 한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가져야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갖는 것은 오히려 야곱처럼 오히려 남에게 아픔을 주고 남의 위에 서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지 결코 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아니예요.

여러분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억하실 겁니다. 예수님이 5천명을 먹이셨어요. 그때 예수님이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쌓아놓고 오천 명을 먹이셨어요? 창고에다 예수님이 물고기와 보리떡을 쌓아놓고 5천명을 먹이셨습니까? 예수님이 하신 것 딱 한가지 밖에 없었어요. 예수님은 ‘축사’ 하셨어요. 그것밖에 안 하셨어요. 사람이 많이 가져야 복을 주는게 아니예요. 축복할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야곱이 드디어 알았어요. 그래서 자식들에게 축복해 주신 거예요. 이제는 자기 머리에만 기름을 붓는 인생이 아니라 남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인생. 마지막에 죽기 전에 축복의 원리를 배웠습니다. 


세번째로 야곱은 조금 더 일찍 용서하며 살았어야 되는데 이것을 배웠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축복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그 마음에 미움이 있고 분노가 있으면 절대로 남을 축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 마음에 상처가 있었어요. 남자들의 경우 대부분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생긴 상처와 열등감이 많습니다. 

야곱의 인생을 조사해 보면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냥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엄마는 얌전하고 여자같고 내성적인 야곱을 좋아했고 아버지는 남자답고 씩씩하고 성격도 활달한 에서를 더 좋아했던 거예요. 남자들은 아들이 좀 남자답게 크는 걸 좋아하는데 이삭도 에서하고 야곱을 볼때 에서를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에서를 사랑했다 그랬습니다. 

이 야곱의 모든 문제는 거기서 발생한 것 같아요. 야망은 열등감의 사촌이랍니다. 성취욕이 강한 사람들은 열등감이 다 그 안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역사에 유명한 독재자들을 조사해 봤대요. 히틀러, 나폴레옹 이런 사람들을 조사해 봤는데 전부 다 열등감이 엄청난 사람들이였대요. 이 열등감이 야망으로 변하는 거예요. 왜 자기가 인정받지 못한 것을 그런 것들을 통해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거예요. 보상받는 방법이예요. 사랑받지 못한 것을 물질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가지고 보상 받는 거죠. 

야곱은 angry Young man(성난 젊은이) 이였습니다. 자기와, 아버지와, 삼촌에게, 형에게, 하나님께도 도전했습니다. 그래서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할 정도로 자기 인생에 대해서 앵그리 합니다. 그렇게 많이 얻었지만 많은 소와 양과 돼지와 많은 물질을 얻었음에도 그 마음에 분노를 해결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거죠. 

그런데 오늘 여기 보면 드디어 야곱이 아버지를 용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무덤에 자기를 묻어달라고 합니다. 아버지 싫어하는 사람은 아버지 근처에도 가기 싫어해요. 그런데 아버지와 같이 묻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축복기도를 자기 조상의 축복기도 선상에 놓고 기도를 합니다. 

26절에 보니까 네 아비의 축복이 네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자기가 축복하는 것을 자기 조상의 라인에 자기를 집어넣고 있어요. 그 말은 뭐예요. 이제 더 이상 혈통으로 부터 오는 그 열등감을 이제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다 해결 됐다는 거예요. 용서했다는 거예요. 마음에 자유함이 있다는 거예요. 죽기 전에 한평생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살다가 드디어 죽기 전에 마지막에 그것을 해결한 것을 그의 축복 기도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용서하지 않으면 남을 축복할 수 없어요. 그 미움이 있고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는 동안에는 남을 축복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요. 야곱이 그랬어요. 야곱이 그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해서 아마 한평생 성공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아버지에게 나도 잘났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그렇게 살았는지 몰라요. 자식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너그럽게 살지 못하면 열등감이 생기고 아버지에게 좋게 보이기 위해서 살기 쉽습니다. 인정받으려고 용납받으려고... 그런데 야곱은 이제 그게 다 해결된 거예요. 아버지 옆에 묻히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후회를 하는 거예요. 내가 조금 더 용서를 일찍 했어야 되는데 그러면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는 삶을 살았겠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좀 더 일찍 알았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는 삶을 살고 조금 더 다른 사람들을 일찍 용서했어야 되는데 이런 후회를 하면서 축복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기도는 많은 사연이 있는 축복기도예요. 많은 눈물이 있는 축복기도예요. 


결론적으로 말씀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죄만 덮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끄러움도 덮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는 우리들의 죄만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부끄러움도 덮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하신 것은 아는데 부끄러움은 계속 가지고 살아요. 그리고 그 부끄러움 때문에 축복된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지 마십시요. 야곱처럼 늙어서 죽기 바로 직전에 깨닫지 마시고 아직 건강 있을 때 시간 있을 때 예수님께서 흘리신 그 피가 나의 죄를 덮어주실 뿐만 아니라 나의 부끄러움도 다 없애주시고 업 해주신다는 것을 믿고 이제 남은 그 힘, 시간, 물질 가지고 남에게 복이 되어주는 인생을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 은혜주셔서 시간 있을 때 건강 있을 때 물질 있을 때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뭔가 남에게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 살지 마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조건없이 사랑하시고 받아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누구한테도 아무것도 내가 증명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어요. 이제 남은 힘 가지고 복의 통로로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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