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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를 맺지 못한 사람들 (유 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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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맺지 못한 사람들 (유 1:10-13) 

  
이제 가을이 되었다. 새벽이 되면, 약간 추운 느낌이 든다. 가을이 되면, 산과 들이 단풍이 들고, 나무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된다. 가을에는 추수하는 기쁨이 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열매 없는 가을 나무를 말하고 있다. 우리 인생에도 열매를 있는 가을이 있다. 많은 열매를 맺기 바란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를, 나무로 비유한 곳이 많다. 선민인 이스라엘을 포도나무로, 무화과나무, 감람나무 등으로 표현한 곳이 많다. 그렇다고 나무가 나오면, 무조건 사람으로 해석하면 신천지이다. 이스라엘 나라에는, 이러한 나무들이 흔하지만, 사람에게 유익한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들이다. 
포도나무는 포도주를 만들어서, 사람을 기쁘게 한다. 무화과나무는 식용과 약용으로 쓰인다. 감람나무도 식용과 치료제로 귀하게 사용한다. 이와 같이, 이 3나무들은 열매가 있기에, 나무의 구실을 다하는 나무들이다. 

포도나무에 포도가 열리지 않으면, 포도주를 만들 수 없고,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열리지 않으면, 식용이나 약재로 쓸 수 없고,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않으면, 기름을 짤 수 없다. 나무들이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그 동산과 밭은, 땅만 차지하고 서 있을 뿐이다. 

오늘 말씀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나무를 비유로 들어 말했다. (사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며 탄식했고, 
포도원지기가, 무화과를 심은 것이 있었는데 (눅13: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고 하였다. 시장하신 예수님이 무화과를 구하다, 열매가 없어서 저주하신 일이 있다. 

(마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저주하자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다. 그러므로 많은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12) “저희는 기탄없이(두려움이 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여기서 나타난 거짓 교사들의 특징을 6가지로 말하고 있다. 

암초(성도의 신앙생활 방해하는 자),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자기 유익만 도모하는 이기주의자), 물 없는 구름(생명 없는 거짓교리를 가르치는 자), 열매 없는 가을 나무(영영 소망 없는 자),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온갖 불의가 속에 가득한 자), 유리하는 별(이리 저리 방황하는 자)이다. 
여기서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이단의 거짓 믿음을 의미한다. 주님의 책망과 저주를 받을 뿐이다. 여기서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나무’라고 지칭한, 3사람이 나온다(11). 따라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열매 없는 이 3사람을 통하여, 현재 우리의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자. 

1. 가인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아들이다. 하나님께 첫 제사를 드린 사람이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 
그런데 여호와는,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창4:4-5). 하나님은 왜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제물을 드렸다. 잘못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예배한다. 

(1) 가인의 예배는 땅의 예배였다(창4:2). 
가인은 농사하는 자(ה󰗪󰕇󰔣 ד󰔪󰘢)라고 했다. 가인은 하나님이 저주하신 땅(창3:17)을 섬기는 자로, 그 땅의 열매로 제물(ה󰖎󰘁󰗬)로 드렸다. 

어떤 사람은 3절의 제물(ה󰖎󰘁󰗬)은, 소제로도 번역되기에, 제물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께 쫓겨났기에, 소제를 드릴 수 없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헌신을 의미하는, 소제를 드릴 수 있다. 구원받지 못한 자가, 하나님께 헌신해도 소용없다. 
따라서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예배를 드리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드렸다. 가인은 ‘하나님은 죄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죄를 반듯이 용서받지 않아도, 하나님이 자기를 받아주신다고 믿었다. 

죄인의 심각성을 모르고, 죄를 아주 가볍게 여겼다. 죄의 심각성은 가인뿐만 아니라, 가인 이후의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속죄의 필요성을 말하지 않는 예배는, 이 땅의 예배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가, 몹시 잘못되어 있다. 
범죄한 아담에게, 하나님이 처음으로 가르쳐 준 제사의 제도는 이렇다.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고 했다. 이때 하나님은 아담에게, 피 흘리는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피의 제사였다. 

피가 없다면,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능력이 없다. 예배에 모든 요소가 다 갖추어져 있다할지라도, 예수님의 피가 흐르지 않고, 성령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예배다.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토해 내고, 용서의 피가 없다면,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 열매 없는 예배가 된다. 

(2) 자신을 제물로 드리지 않았다(창4:3).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다.” 가인은 자신을 드리지 않았다. (5上)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하나님은 자신을 바치지 않은, 가인의 제사도 받지 않으셨다. 
자신을 드리지 않는 예배는, 결코 하나님이 받지 않는다. 자신을 드리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 형식적이다. 자신을 드리지 않는 예배는, 다 가짜다. 형식과 의식에 사로잡혀, 내용도 없이 드리는, 아주 공허한 예배이다. 

이런 예배는 아무리 떠들고 소리 지르고, 법석을 떨어도, 그곳에는 하나님께서 안 계신다. 진정한 예배는 ‘자신을 잡아 쪼개서, 모든 진상을 고하게 될 때’ 진정한 예배가 된다. 자신을 드리지 않는, 희생이 없는 예배는, 쇼이며, 오락이요, 광란일 뿐이다. 먼저 자신이 죽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이 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우리는 감격하고, 기쁨을 얻는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만 죽이고 나는 죽지 않는다. 이런 예배는 모두 가짜다. “자신의 욕심과 자아가 죽을 때” 진짜 예배가 된다. 올바로 예배하면, 반드시 죽음의 현상이 나타난다. 

하나님을 만난 자는, 반드시 죽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을 들은 사람이 괴로워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죽든지, 아니면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죽이려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오히려 올바른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다. 내가 죽어야 할 부분이 죽지 않으면, 내가 예수님을 죽이게 된다. 내 고집이 죽고, 의지가 죽고, 야망이 죽고, 헛된 모든 욕망이 다 죽게 됨이 바로 예배다. 

그래서 예배를 잘 드릴 때,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죽지 않으면, 핍박자가 된다. 가인은 자신이 드린 예배가, 열납되지 못하자,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 그래서 시기심과 증오심을 이기지 못해, 결국 들판에서 동생을 쳐 죽였다. 
여기서 드린 양은, 예수님의 모형이다. 첫 새끼는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예수님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는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신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준비하신 은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주님과 함께 죽었음을 인정하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은혜를 알면, 예수님께 나의 삶을 드리게 된다. 이처럼 말씀 앞에 순종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발람(계2:14中)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고 했다. 
발람은 발라(ה󰗚󰔯, 실패하게 하다, 부패하게 하다) + 암(ם󰘞, 백성)의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실패하게 하는 자라는 뜻이다. 민22-25장, 31장에 나타난다. 발람은 돈을 사랑한 탐욕스러운 주술가요, 예언가였다. 모압왕 발락에게 매수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 했던 사람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이방부족을 물리치고, 가나안을 향하여 갔다. 그러자 모압 왕 발락은 그들이 두려워서,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한다. 발락(ק󰗛󰔯, 황폐, 무로 만듬)에게 돈에 팔려, 이스라엘 백성을 정면으로 저주를 하지만, 하나님이 저주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발람은 빨리 깨닫고, 잘못을 돌이켜야 하는데, 결국 돈 때문에 작전을 바꾼다.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법을, 바락에게 가르쳐 준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도록 만들어, 스스로 망하게 만든다. 그 계략이 곧 미인계다. 

발람의 조언을 받아들인 발락은, 자신의 나라에서 미모가 출중한 여인들을 골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보낸다. (민25:6)을 보면, 미디안 여인도 이 일에 동원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재물로 바쳤던 음식을 먹이고, 그들의 신에게 절하고, 모압 여인들과 간음하게 만든다. 
그 결과 (민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염병으로 2만 4천명이 죽는다. 그것이 발람의 길이요, 교리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범죄할 마음을 가진 탐욕이 많은 거짓 선지자였다. 많은 백성을 음행과 우상숭배를 하도록, 잘못 가르친 악한 선지자다. 돈만 주면 무슨 짓이든지 행했던, 매우 무섭고 위험한 인물이다. 그때 수령들을 목을 매어 죽임으로써, 여호와의 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선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을 속이고, 욕심을 부려, 삯꾼의 길을 걸음으로써, 백성들을 범죄하게 한 사람이었다. 오늘도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는 사람이 많이 있다. 돈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을 배반하기를 서슴지 않고, 인권을 유린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세상이다. 

탐욕의 철저한 포로가 된 사람들은, 살인, 인신매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돈을 벌려고 한다. 발람처럼 돈에 끌려, 신앙양심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나 천주교와 흡사한가? 제사를 지내게 하고, 돈으로 천국을 사려고 하지 않는가? 
중세 교회의 부패 가운데서도, 가장 지탄받은 것이 성직매매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유다는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화가 이르리라 하였다. (13)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바다는 파도와 함께 거짓된 거품을, 해변으로 쏟아낸다. 이처럼 이단은, 말과 행동으로 성도를 유혹하지만, 그들에게는 거짓된 죄악뿐이다. 그들은 ‘영원히 예비 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그들은 지금 빛을 발하는 별처럼 보이지만, 이미 진리에서 벗어난 자들이기에,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질, 존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유다서의 저자는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이다. 유다는 (마13:55)을 보면, 예수님의 막내 동생이다. 

유다는 자신의 형, 예수님의 삶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의 삶에 비춰보니, 말뿐인 거짓교사들에 삶에 대해 경고하고, 그들과 싸우기 위해 썼다. 그때 당시에, 신앙을 위협하던 이단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 영과 육을 분리시키는 ‘이원론 사상’의 영지주의로, 영적인 지식을 알면, 
무슨 짓을 해도, 구원받는다고 했다. 또한 영이 구원을 받으니, 육체는 어떤 행동을 해도, 구원과 상관이 없다고는 ‘도덕폐기론 자’였고, ‘쾌락주의 자’였다. 이런 이단들이 자기 신분을 속이고, 교회에 몰래 들어와서, 성도들에게 잘못된 신앙을 가르쳤다. 

구원받은 자들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며, 하나님의 은혜를, 오히려 자기 육체의 욕망을 채우는, 방탕한 것으로 만들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로 오셨다(요1:14). 그런데 이단들은 영과 육체를 분리하여, 육신이 하는 일은 영혼에 영향을 주지 않기에, 죄가 아니라고 하였다. 
(요이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그래서 영과 육체를 분리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되게 했다(4). 이단에게 미혹되어 살지 말고, 그리스도에게 돌아 오라. 

3. 고라(민16) 

고라(ח󰙝󰙑)는 ‘대머리’라는 뜻이다. 레위 지파 고핫의 손자로, 모세의 사촌이다. 성막을 손보는 일을 맡았는데, 모세의 권위에 반역했다가, 추종하는 무리들과 함께 멸망당했다. 
고라는 같은 레위 지파인데도, 아론의 자손들에게만 세습되는 데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하던 중, 모세에게 도전하여, 정권을 잡으려 하였다. 고라는 당시 ‘유명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추종자 중에 족장이 250명이나 되었다.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려고 하였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택함 받은 대표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맡기신 직분을 인간의 힘으로 바꾸려 했다. 이는 직분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었다. 나도 지도자가 되자고 했다. 
그러자 모세가, 우리가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서 분향하고 있다면, 너희가 하나님께 분향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러니 하나님이 너를 분향하도록 세운 것인지, 레위 자손들을 분향하도록 세운 것인지, 판정을 하도록 하자고 했다. 

너희 중에 열심 있고, 위대한 이백 오십 명을 택하라. 그들로 향로를 만들어 가지고, 향로에 향을 피우고 여호와 하나님께 나와, 하나님께 제사 드리도록 해라. 또 아론도 향로를 만들어 가지고, 그 향을 피워서, 하나님 앞에 향연 제사를 드리도록 나아오라. 
그래서 하나님이 너의 제사를 받으시면, 네 말이 옳으니, 네가 앞으로 이스라엘을 다 인도하도록 하고, 또 아론 자손을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아론의 자손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하자고 하자, 그들도 좋다고 하면서, 다 모였다. 

그래서 아론에게 속한 제사장들과,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에 속한 족장들이, 서로 따로 갈라섰는데, 하나님이 땅이 갈라져, 거기에 속한 사람들과 물건과 가족들이 다 거기 섰었는데, 땅이 입을 벌려서, 그 안에 다 파묻혔다. 족장 250명이 불타 숨졌고(39), 백성 14,700명이 염병으로 죽었다(49). 
하나님의 통치 질서를 무시하고, 반역하며 회개하지 않는 죄인의 결말을, 확연히 제시한다. 이같이 인기가 있고, 명성이 있는 자들이, 언제나 반드시 현명하지는 않다. 과반수이상의 소리라도, 사탄의 소리일 경우도 있다. 숫자가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다. 

사단은 지도자를 흔든다. 특별히 주의 종들을 흔든다. 물론 주의 종들 중에도 타락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다 타락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단들은, 하나님의 종들이 다 타락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자기들에게 와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고라는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었다. 그런데도 그 직책에 만족하지 않고, 부당한 방법으로, 더 높은 지위를 얻으려다가, 결국 모두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하나님이 준 권위에 대항하거나 멸시하는 자의 형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롬13:1-2)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낮아져서, 자기 권한을 포기할 때, 참된 순종이 따르게 된다. 내 생각, 내 주장, 내 권한을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복종해야 한다. 나 자신, 가족, 재산, 사업, 시간을 주님께 맡겨야, 주님께서 온전히 인도하신다. 

하나님께 다 맡기면, 죽을 것 같고, 손해 볼 것 같고, 안될 것 같지만, 이 방법이 가장 지혜롭고 풍성하며, 제일 좋은 길로 우리 주님이 인도해 주시는 길이다. 고라가 모세의 권위에 반역함과 같이, 거짓 교사들은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죄를 범하였다. 

고라의 반역은 단순히, 모세와 아론에 대한 반역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이와 같이 거짓 교사들도, 도덕폐기론을 주장하여,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권위를, 부인하는 죄를 범했다. 지금까지 ‘열매 없는 가을나무’ 같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 3사람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여, 모두다,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았다. 끝내는 영원히 멸망을 받아, 자취도 없이, 흔적도 없이, 다 사라져 버렸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열매를 맺으라고 부르셨는데, 지금 과연 열매를 아름답게 맺고 있나요? 

올바로 예배하고 있나요? 자신을 죽이며, 보혈을 의지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돈이 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자신의 생각을 앞세워, 도전하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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