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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한 사람들(2) (히 11: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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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본향을 사모한 사람들(2) (히 11:17-19)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한 사람들, 그들은 누구인가? 창세기의 주역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믿음을 따라 죽었다.
2)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나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였다.
3)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에게는 더 나은 본향,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성,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을 사모했기 때문이었다. 더 나은 본향에 대한 확신과 사모함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을 가능케 했다. 

하늘만 바라보면서 천국행 대합실에 들어가 천국행 열차가 오기만 기다린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았다. 아브라함도 열심히 살았고, 이삭도, 야곱도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족장들의 삶은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귀감이 된다. 
“야, 저렇게 살아야겠구나!” “나도 저렇게 살 수 있다!” 
자신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감동은 받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에 낙심하고 실망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무지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지식을 많고 정작 자신이 알아야 할 영적 지식에 대하여는 무지하다. 신앙적 성장은 배움을 통해 가능하다. 배워서 알면 확신 가운데 거할 수 있다. 
둘째는 세속화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분과 중심이 바로 서지 못하기 때문에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세상에 비중을 더 두게 되고 결국은 빠지게 된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족장들은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았기에 세속에 물들지 않고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삶을 통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멧세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도 지난 주와 같다. 본문은 족장들의 삶을 더욱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지난 주의 내용이 서론적이라면 오늘의 말씀은 본론이라 할 수 있다. 17-21절까지는 족장 세 사람의 믿음의 모습을 증거하고 있는데 오늘은 선두 주자로 부름을 받은 아브라함, 그의 믿음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아브라함은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절정에 이른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독자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친 사건이다.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1.시험을 극복한 신앙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17절)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

하나님은 시험(test)하시는 분이시다. 시험의 목적은 그 사람 속에 믿음의 여부를 알기 위한 것이다. 
예)학교 시험 - 월말고사, 기말고사, 졸업종합고사, 퀴즈등등...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시험은 예고 없이 갑작스레 당한 것이다. 그것도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이 닥친 것이다. 

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 명령을 들은 아브라함에게 인간적 갈등과 번뇌가 없을리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셨다. 번제란? -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고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는 제사이다(레1:3-9).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도 맞지 않는 이 일을 요구하셨는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인신제사는 이방의 왕들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켜 번제를 드렸던 극단적인 방법이었다. 성경은 인신제사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명령을 내리신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지금 하나님의 시험장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시험치고는 상식을 벗어난 어처구니 없는 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이 시험에 잘 통과했다.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창 22: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예)어느 목사님의 아들 - 입사시험, 필기시험, 면접시험을 치루는 과정에서 마지막 날 회식하는 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수험생들은 긴장이 풀어지고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미션이 수험생들에게 부과되었다. 면접관이 내일 9시까지 회사로 나오라고 한 것이다. 목사님의 아들은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9시까지 출근할 수 있었고 합격했다. 

이와 같은 시험의 목적은 그 회사가 요구하는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비윤리적이고, 모순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시험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를 이루시기 위해 특별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고, 복을 받게 할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에 걸맞는 열국의 아비가 되기 위해서라면 이와 같은 시험도 통과해야 만 했던 것이다. 

약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2.최선의 것을 드린 신앙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땅인가? 돈인가? 아니다. 아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름까지 지목하셨다. 

창 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어떤 존재인가? 100세에 얻은 아들이 아닌가? 이삭이란 이름은 “웃음”이다. 이삭을 통해서 아브라함 부부는 웃을 수 있었다. 이삭은 이들 노부부의 삶의 기쁨이자 소망이었다.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존재였다. 뿐만아니라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였다(17절). 

창 15: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예)어느 권사님의 외동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요구하실 권리가 있다. 때때로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잃고 하나님을 향하여 분노하고 원망할 때가 있다. 특별히 사랑하는 가족들을 갑작스럽게 잃을 때 절망하고 탄식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저주 아래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 주셨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전에 우리의 어머니들은 아들을 나면 하나님 앞에 드렸다. 주의 종으로 드립니다. 한나와 같은 믿음으로 드렸다. 그래서 훌륭한 믿음의 종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소중한 것들을 드리려 하지 않는다. 예루살렘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잘 사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인색했다.

고후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입술로 찬양은 하지만 실제로 주 앞에 드리는 모습은 어떤가? 주 앞에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고 기꺼이 드릴 때 하늘 문이 열린다. 심는대로 거두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소중한 것을 드리면 소중한 것을 받는다.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9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3. 부활의 신앙

히 11: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의 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통해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능히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증거를 창세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창 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5절에서, 아브라함은 “우리”라는 복수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고 있다. 둘이 갔으면 한 사람은 제물로 바치고 혼자 돌아온다는 표현으로 단수 일인칭 대명사 “내가”를 사용해야 하는데 “우리”라는 복수 대명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주의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여 마음에 확신이 생겼다. 
-“내 아들 이삭은 죽지 않는다. 죽어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다.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그러나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활을 믿기 때문이다. 성도의 능력은 부활 신앙에서 나타난다. 부활 신앙이 있는 성도는 삶의 모습에서 자신감이 넘쳐난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고전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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