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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한 사람들(4) (히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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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본향을 사모한 사람들(4) (히 11:13)

히 11:13은 세 명의 족장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말씀하고 있다. 
1) 믿음을 따라 죽었고, 
2) 약속을 받지 못했으나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으며, 
3) 나그네로 살았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분은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인 야곱에 관한 것이다. 

어떤 나이 든 집사님이 말하길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여정을 글로 쓴다면 소설로 몇 권 정도 엮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말을 들었는데 야곱의 인생도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이 파란만장했다. 그가 아들 요셉으로 인해 애굽으로 이주하고 바로왕 앞에 섰을 때 이렇게 말했다.

창 47:9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험악한 세월은 그의 몸에, 그의 얼굴에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야곱의 마지막은 성자와 같은 거룩하고 경건한 모습이었다. 

스펄전, 

“신자에게 있어서 아침에는 비가 올 수 있고, 점심 때에는 천둥이 칠 수도 있으며, 오후에는 고통이 엄습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가 넘어가기 전에 신자의 날은 맑게 개일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 야곱을 두고 한 말이다. 

야곱의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았다” “약탈자”이다.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대단히 이기적이고 축복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그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음을 보게 된다.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너무나 경건하고 엄숙한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생을 마감하면서 그의 후손들에게 보여주었던 가장 아름다웠던 믿음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1.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함

요셉은 야곱이 14년 동안 고생한 끝에 얻은 첫 사랑 라헬의 소생이요 12 아들 중에 11번째 아들이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갔지만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애굽의 총리가 되어 다시 만난 각별한 아들이었다. 야곱은 요셉을 따라 애굽으로 이주해서 편안한 노후를 맞게 되었다. 그곳에서 17년을 살았다. 그리고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요셉은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 야곱을 방문하게 된다. 요셉을 축복하고 난 후에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려고 했다. 

그때 요셉은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오른손 앞에 큰 아들 므낫세를 세우고, 왼손 앞에 둘째 에브라임을 세웠다. 그런데 아버지는 손을 들어 어긋맞게 손자의 머리에 얹었다. 그것을 본 요셉이 아버지께 시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때 아버지 야곱이 말하길..

창 48:19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이것은 야곱이 비록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노쇠했으나 그의 믿음 만큼은 쇠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요셉이 비록 사랑하는 아들이었고 그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뜻이 사람의 뜻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야곱은 알았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아들의 마지막 청탁을 거절한다. 그리스도인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을 없다. 

한 유명한 설교가가 말하길, 
“인간으로서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가 마땅히 갖어야 할 위대한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고 인간으로서 또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야곱은 육적 순서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축복함으로 그의 믿음을 보여 주었다. 


2.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야곱이 죽을 때 취했던 자세, 그의 남아 있는 온 힘을 다해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경배의 자세를 보인 것이다. 이 모습을 더 상세히 이해하기 위해서 야곱이 취했던 행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 47: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요셉을 불러서 맹세를 받는 장면인데, 자신이 죽으면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는 것이다. 가나안의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막벨라 굴에 묻어 달라는 것이었다. 

요셉에게 맹세를 받을 때는 누워서 받았지만 맹세를 받은 후에는 침상 머리에서 일어나 지팡이에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경배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 맹세에는 5가지 유언적 메시지가 들어 있다.(아더 핑크)
1)언약에 있어서 아브라함이나 이삭과 하나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
2)애굽이 아닌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
3)애굽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며 때가 되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야 함을 본으로 보임.
4)자신이 그들을 대표하여 그 땅을 먼저 차지하러 가는 것 같은 뜻을 보이기 위함.
5)가나안이 “더 나은 본향”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의 영원한 안식처의 모형임을 지시하기 위함.

“지존자에게 예배하는 자는 합당한 몸의 자세로써 영혼의 내적인 경건을 나타내는 것이 합당함을 알려 주기 위한 것이다.” 

노쇠하고 불편한 몸을 일으켜 경배의 자세를 취하므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온전히 표현한 승리자의 모습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야곱의 믿음의 모습은 죽을 때에 더욱 빛이 났다.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은 예배드리다가 죽는 것이다. 예)15년 전, 할머니 성도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했다.

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나이가 들면 육신이 약해지니까 믿음도 약해지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겉사람은 낡아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속사람은 날로 날로 새로워져 숨질 때까지 예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찬송가 338장 4절, 야곱이 잠 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 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아멘


누구나 야곱과 같은 죽음을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던 사람이 아니다. 그의 처음 모습은 대단히 이기적이고 교활하고 근성있는 사람,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믿음과는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는가? 인생의 석양이 가까워 올 수록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 더욱 아름다운 인격으로 다듬어져 갈 수 있었는가? 그의 생애 가운데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출생 - 말씀을 붙잡는 신앙으로

창 25:23-34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하나님의 말씀이 리브가에 임하였다. 그리고 리브가는 야곱을 더 사랑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 - 하나님께서 작은 자가 큰 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어머니 치맛자락 붙잡고 가면서 들었을 것이다. 에서는 사냥하러 들에 갔고 야곱은 어머니의 신앙을 이어 받았다. 

야곱은 기질상 한 번 마음 먹으면 끝까지 성취하는 사람이다.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나왔다. 장자권을 확보하려고 집념을 가지고 살았다. 반면 에서는 평소에 장자를 경홀히 여겼다. 
죽 끓일 때 장자권을 팔라고 했다. 결국 야곱은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인수했다. 

남은 것은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 것이다. 아버지를 속이는 것이 비열한 짓이지만 실제적인 장자로서 결국 축복을 소유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형의 발꿈치를 붙잡듯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다. 


2) 노숙하다가 꿈 꾼 사건 - 비전의 사람으로

창 28:10-19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그가 어디로 가든지 일생을 붙잡아 주는 환상이 있었는데 벧엘의 하나님을 늘 찾았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을 늘 상기하고 살았다. 1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자식을 축복하는 모습, 가나안 땅에 장례를 유언하는 사람, 귀로 듣는 것을 보았다.

3) 얍복강가에서 씨름했던 일 - 기도의 사람으로

창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얍복강가에서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올 때, 환도뼈 부러지는 것,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다. 21절의 말씀처럼 승리자로 살았다. 

4)베냐민이 불모로 잡혀 있을 때 - 포기하는 신앙으로
창 43: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내 놓을 때 잃었던 아들 요셉도 찾게 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믿음이 좋은 사람은 없다. 교활하고 이기적인 야곱을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의 생애 가운데 많은 사건 사고를 통해 그를 단련시키셨다. 그의 말년이 더욱 빛나고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고생이나 어려움이 없기를 바란다. 그렇게 기도한다. 그러나 아름답고도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기도를 바꾸는 것이 좋다. 시련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그렇게 살았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살았고, 이삭이 그렇게 살았고, 야곱이 그렇게 살았다. 그들은 믿음을 따라 죽었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소개한 믿음의 사람들. 그들은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본 사람들” 이었다. 만약 그들이 고향을 생각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다. 

성도들은 육신의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다. 세상을 향한 집착이 크면 다시 돌아가게 된다. 육신적으로 편하고 성공은 했으나 영적으로 파산하게 된다. 

히 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1)사람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신앙
2)숨질 때 되도록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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