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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은 가치를 남기는 것이다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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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가치를 남기는 것이다 (마 25:14-30)

D. A. 벤톤(Debra A. Benton)이라는 사람이 쓴 『CEO 정상의 법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영어 원제는 “How to think like CEO”(어떻게 CEO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입니다. 이 책의 뜻은 어떻게 하면 CEO(기업의 최고경영자, 지도자)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지도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는가? 이런 것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 중 지도자가 되는 조건 중, 처음 내용이 “연기력”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영화배우와 탤런트 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 세대를 살려면 연기력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썩 내키지 않는 내용 같은데 생각해 보니 되새길 만한 내용). 반갑지 않은 사람을 만나도 “아, 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연기력이 있어야 합니다. 

반갑지 않다고 해서 횡하고 돌아서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이 시대를 살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아, 재미있다’고 그러면서 들어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이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거 벌써 몇 백 번째 듣는 이야기인데 그만하라고 이렇게 초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밥 얻어먹지 못합니다. 그저 좀 들어주면 안 됩니까? 그것이 다 봉사인데. “아 그렇군요. 아유 재미 있네요” 그렇게 들어줘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연기력입니다. 

재미있어서가 아니란 것입니다. 재미있다고 말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저도 잘 하는 편은 못 되는데, 우리가 음식을 대할 때에 좀 맛이 없는 음식이라도 아내가 만들어 주었으면, 또 특별하게 한다고 요리책을 보고 만들었으면 “아 좋구만, 내 일생 이런 맛 처음이야” 그래야지 뭐 한 끼 잘 못 먹었다고 탈이 납니까? 

그런데 그것을 놓고 “돈 없애고 별 짓을 했다” 이거는 안 됩니다. 이런 남편은 참 문제입니다. 연기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또 결혼식에 가서 신랑 신부를 볼 때 그들에게는 무조건 예쁘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고, 신랑이 저 모양이야. 신부가 손해 봤네.” 똑똑한 것 같지만 멍청한 것입니다. 

(신랑이 못 생기고 신부가 미인 - “그 사람 능력 있네”, 반대일 경우

“신부가 돈이 많나봐”, 둘 다 못 생겼을 경우 - “제네 둘이 정말 사랑하나봐”) - 연기력이 있어야 합니다. 옳은 이야기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있습니다. 이렇게 연출, 연기를 너무 많이 하다 보면 나의 본질과 진실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연기력과 나의 진실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얼마나 바로 하느냐가 그 사람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연기력으로만 살면 위선입니다. 좋은 의미에서의 연기력, 그리고 진실을 떠나지 않는 연기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특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려고 한다면, 꼭 필요한 것이 이러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성공의 평가 기준이 어디에 있습니까? 얼마나 벌었으며, 얼마나 출세했고, 얼마나 배웠고, 얼마나 얻었는가? 그렇게 볼 것입니까? 저는 이러한 것이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의 판단 기준은 먼저 목적입니다. 얼마나 목적에 합당한 일을 했느냐? 내 생에 궁극적 목적을 지향하고 바로 살았느냐?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얼마나 기쁨을 얻었는가? 나로 인해서 내 가정이 얼마나 행복해졌는가? 나라고 하는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유익한 존재이고 덕을 끼치는 존재로 성숙했느냐, 그것을 물어야 합니다. 

여러분, 물어보십시오. 내가 행복하냐고 묻지 마시고 나로 인해서 내 남편이 금년에 얼마나 행복했나? 나로 인해서 내 아내가 얼마나 행복했나? 나로 인해서 내 자녀들이 얼마나 행복했나? 나로 인해서 교회가 얼마나 행복했나?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나? 그것이 바로 성공 여부입니다. 나로 인해서 내 이웃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했으며 얼마나 그들이 스스로 복되다고 말하게 되었는가? 판단해야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태복음 25장은 예수님이 천국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때에 천국은... ”, 

오늘 본문 말씀은 ‘열 처녀의 비유’에 이은 두 번째 비유의 말씀으로 ‘달란트 비유’라고도 하고 ‘충성된 종과 불충한 종의 비유’라고도 합니다. 

어느 부자인 집 주인이 오랫동안 외국에 나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3명의 종들에게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이 달란트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1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이라고 합니다. 1데나리온은 일꾼들의 하루 품삯입니다. 

지금 우리의 경우로 환산해보면 일꾼 하루 품삯을 최소로 잡아 3만원씩만 잡아도 5달란트는 9억 원입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2달란트는 3억 6천만 원, 1달란트는 1억 8천만 원입니다. 결국 주인은 3명의 종들에게 자본금을 대주면서 원하는 대로 사업을 해보라고 한 것입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보니까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은 각각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칭찬했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21,23절) 

두 사람에게 똑같이 칭찬했습니다. 그것은 열심을 다해 가치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누가 더 많이 남겼느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봅니다. “천국은 가치를 남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한 달란트를 받았던 사람, 한 달란트를 도로 가지고 왔는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게으르다는 말은 인정을 하겠는데 악하다는 말은 좀 마음에 안 들고 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전을 잘라먹는 사람도 많은데, 가지고 도망가지 않았는데, 본전 가져다가 도로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왜 주인은 그를 악하다고 했을까요? 여기서 우리 깊이 이 말씀의 뜻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1) 시기와 질투의 마음 

오늘 본문에 한 달란트를 가져왔던 사람이 문제가 됩니다. 왜 땅에 묻어 놓았을까요? 심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거 분명히 심리학적 요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주면서 내게는 왜 한 달란트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입니다. 비교의식이죠? 비교해 보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예일대학의 ‘피터 살로비(Peter Salovey)’라는 교수가 범죄를 연구한 결과, 사람들이 짓는 범죄의 20%가 시기 질투로 인해서 온다고 했습니다. 

나는 나입니다. 저가 백 달란트를 받았든지 내가 한 달란트를 받았든지 내게 주어진 한 달란트가 내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생각 못하는 것입니다. 

‘그로서리 화이트(G. White)’라고 하는 사람이 쓴 ‘Clinics of Jealousy(질투의 임상학)’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질투 임상학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 책에 의하면 부부관계, 사업에 실패하는 것, 인격이 망가지는 것, 전부 질투가 원인입니다. 부부관계가 깨지는 것도 이혼하는 것도 알고 보면 전부 시기 질투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사람이 한 달란트를 받았으면 한 달란트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기회는 평등한 것입니다. 얼마를 받았든지 얼마를 가졌든지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적당히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생각해 보셨습니까? 내게 주신 바 물질과 건강과 지혜와 형편과 현실이 하나님이 내게 적당하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하나님은 내게 평등하게 역사하셨다, 그렇게 느끼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참 마음에 안 들어, 왜 저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나에게는 한 달란트인가 이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것입니다. 영원히 불만인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됩니다. 그러는 동안에 소중한 한 달란트의 가치를 땅에 묻어두고 말았습니다. 

2) 주인의 평가에 대한 불만 

또 하나는 주인의 평가에 대한 불만이 있습니다. 왜 나를 작게 평가했느냐는 것입니다. 왜 다른 사람에게 주신 재주를 내게는 안주셨는가? 다른 사람에게 주신 건강을 내게는 왜 안주시는가?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에 이의를 제기하지 맙시다. 얼마를 받았든지 그 받은 바가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부인하면 불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 씨, 자신의 몸은 뇌성마비로 팔다리를 움직이기도 힘든 처지입니다. 그리고 얼굴도 찌그러지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나에겐 남이 가진 재물도 없고, 지식도 없고, 건강도 없으나, 나는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자신이 받은 한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어 하루아침에 아름다웠던 모습을 잃어버리고 일그러진 모습을 하게 된 이지선 씨.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한 섭리’라고 간증합니다. 

3) 책임 전가 

또한 자신이 일을 안 하게 된 책임을 주인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주인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곳에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곳에서 모으는 줄 알았으므로 내가 땅에 묻었다가 가지고 왔습니다.’ 책임을 주인에게 돌립니다. ‘내가 일 안한 것은 주인 때문이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주인 때문이요, 영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도로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책임을 주인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을 폭군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 조그마한 나의 행위가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 사람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고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또 이 주인을 아주 나쁜 사람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하시며 책망하십니다. ‘악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중요한 포인트. 이 비유의 말씀을 예수님이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를 생각해 보기 전에 예수님께서 항상 생각하시는 최고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 예수님의 최고의 관심사는 거짓되고, 음란하고 허무한 이 세상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모든 죄악과 비참함과 허무로부터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천국)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관심은 천국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면서 제자들과 수차례 만났는데 그때마다 나누었던 대화의 주제도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실 때 천국에 관한 개념을 좀 더 쉽게 이해시키려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사용하신 비유가 복음서를 통틀어서 약 47개가 나옵니다. 그 비유의 대부분이 바로 천국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비유에는 천국에 관한 진리 중에 중요한 진리 한 두개 씩은 꼭 담고 있습니다. 

오늘 달란트 비유에서 달란트란 무엇입니까? 천국을 완성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달란트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시간도 달란트입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시간의 달란트가 다 다릅니다. 또 재능도 달란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한 재능을 주신 반면, 어떤 사람에게는 평범한 재능을 주셨습니다. 물질의 부요함도 달란트입니다. 건강도 달란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달란트를 주신 것은 우리 모두를 통해서 하나의 큰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함입니다. “천국은 가치를 남기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인은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에게 칭찬하실 때 똑같이 칭찬하셨습니다. 많이 남겼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고 주신 달란트로 일한 것에 대한 칭찬입니다. 달란트를 얼마나 받았든지 그것을 가지고 주님을 위해 ‘충성’하기만 하면 주님의 칭찬과 상급은 주어진 달란트의 양에 관계없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전혀 차별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달란트의 양이나 이윤의 양이 아닙니다. ‘자신의 달란트를 가지고 얼마나 충성했느냐?’입니다. 

교회 안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충성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받은 것은 많은 것 같은데 주님에게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번밖에 없는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가장 보람되고 아름다운 삶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삶의 패턴이 달라집니다. 

목사로서 장례식을 많이 집례하는데, 장례를 치룰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인생이라는 시간이 짧다”라는 것입니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시간을 쪼개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물질도 쪼개어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쓰려고 애쓰고, 젊음이 다 가기 전에, 재능이 굳어지기 전에 주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충성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 투자할 일들이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특별히 부가가치가 높은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큰 유익을 가져다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부가가치를 갖고 있는 사업은 전도요, 선교입니다. 

전도는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예수님은 전도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령님도 우리 모두를 전도하는 증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2012년 10월입니다. 이 10월에 총동원 전도축제인 예수 사랑 큰 잔치를 합니다. 주일에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예배에 참석합니다. 이 인원이 3명씩만 초청해서 데리고 오면, 3000명을 초청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1명씩 만이라도 초청을 하면, 1000명입니다. 이렇게 초청할 사람을 작정해 놓고 기도합시다. 그들 중에 한 두 사람을 지목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전도 계획을 짜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실 것입니다. 중보기도를 왜 합니까? 전도하기 위해서 ...  봉사단 왜 합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리고 가치를 남기기 위해서... 여러분, “천국은 가치를 남기는 것입니다”, 

어제 유치원에서 운동회를 했습니다. 많은 학부형들이 왔습니다. 자녀는 유치원에 보내도 교회에 안 다니시는 분들이 많았기에 인사를 하고 다녔습니다. 그분들 중에 몇 분은 안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교제의 시간을 가졌고, 제 아내가 이달 말, 예수사랑 큰 잔치에 초대를 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너무나 귀한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이것을 사용합시다. 가치를 남기기 위해서 우리의 달란트를 써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재물을 쓰고, 관심을 기울이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앞장서게 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며 칭찬하시고 아낌없는 영광의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이 칭찬을 받는 멋진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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