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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 있는 자 같이 하라(3) (엡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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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있는 자 같이 하라(3) (엡 5:19)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바로 왕이 군대를 이끌고 뒤를 쫓는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건넌 후에 온 백성이 소고를 치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부른 최초의 찬양입니다. 어느 시인은 땅이 꽃으로 노래를 한다고 했는데 찬양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영광 돌릴 수 있는 최고의 표현입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 부른 찬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찬송이 발전되는 과정을 보면 어려운 고비들이 많았습니다. 중세 때에 찬송은 성직자와 성가대원만 부르게 되었고 평신도는 그저 찬송을 듣는 것만으로 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6세기에 스위스의 종교개혁자인 츠빙글리는 교회 음악은 신도들의 영성을 마비시킨다고 하며 교회 음악을 거부하고 찬송을 반대했습니다. 

장로교회의 창시자이며 종교개혁자인 캘빈은 모든 악기는 가인의 유산이라 하여 악기의 사용을 못하게 했습니다. 찬송을 해도 오직 반주 없는 시편만을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만일 츠빙글리나 캘빈이 오늘의 현대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본다면 아마도 기절초풍을 할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중에 마틴 루터는 찬송을 모르고 악기를 다룰 줄 모르는 목사는 목사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교회 음악을 장려하였습니다. 그는 직접 작시 작곡한 찬송으로 신도들과 함께 합창을 하며 찬송을 장려했습니다. 

루터는 복음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듯 찬송을 부를 때 또한 믿음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찬송을 싫어하는 것은 오직 사탄과 마귀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교회음악의 값진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19절을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에게 찬송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게 노래하며 찬송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본문 전체 속에서 보면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들은 지혜 있는 자 같이 살라고 말씀하시면서 첫 번째는 세상이 악하니 세월을 아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술에 취해 방탕한 삶을 살지 말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 번째로 주시는 것이 오늘의 말씀인데 찬양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알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사람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43장 21절에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많은 사람들 가운데 부르셔서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찬송을 불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려야 할 하나님의 백성이 찬송하지 않는다면 이는 병든 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인생의 목적을 바로 알고 있다는 것이기에 그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항상’입니다. 우리의 찬송은 어떤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가 아니라 ‘항상’입니다. 좋은 일이 있는 때든지, 나쁜 일이 있을 때든지 하나님을 향해 항상 찬송하라는 말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항상’ 찬송 할 수 없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이 어려움으로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새롭게 세워주시고 일어서게 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을 때 찬송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찬송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그러기에 찬송은 입술의 열매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은 시편 103편 1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고 말합니다.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입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온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대충하거나 소극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담긴 찬양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찬송을 부릅니다. 성가대가 귀한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들이 부르는 찬양이 입술만의 찬양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 정확한 음정과 박자와 아름다운 음색과 적절한 감정의 표현이 꼭 필요합니다. 기술적인 발성과 호흡의 조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찬양을 부르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행해 얼마나 열려 있고 사모함으로 부르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활짝 열려지지 않은 찬양은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마음과 영혼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제 기억 속에 저의 어머니의 찬송하는 모습은 저에게 찬양의 영성을 보여 주신 분이십니다. 저의 어머니는 음정과 박자를 모릅니다. 저의 어머니가 부르는 찬송은 모든 곡이 거의가 같은 음정입니다. 그런데 저의 어머니가 무릎 위에 찬송가을 펴 놓고 찬송을 부르시면 찬송과 함께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있었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는 찬송 가운데 하나가 445장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입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 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 되시고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버릴 염려 없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 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광명한 그 빛 마음에 받아 찬란한 천국 바라보고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날마다 빛에 걸어가리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 속에 차고도 넘쳐 할레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저의 어머니가 이 찬송가를 부르시는 모습을 보면 온 몸으로 가사를 새기면서 부르십니다. 찬송을 부르는 입을 보면 가사 하나하나를 꼭꼭 눌려 부르십니다. 찬송을 부르실 때마다 어머니가 쓰고 있는 돋보기 위에는 언제나 눈물방울이 떨어져 있습니다. 음정이 들리고 박자가 틀려도 다윗의 고백처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라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하는 찬송의 모습입니다. 

그 찬양의 힘이 95세가 되었어도 영적으로 흐려지지 않고 건강한 생활을 하게 합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이며 신앙고백입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저와 행복한 교회 모든 성도들의 찬양이 마음이 활짝 열린 고백적인 찬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 하는 찬송의 열정을 소유하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찬양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역사합니다. 사울 왕은 귀신이 자신을 괴롭게 할 때면 다윗을 불러 찬양을 부르게 했습니다. 다윗이 비파를 치면서 찬양을 하면 사울 왕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이 도망갔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찬양은 귀신을 물리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증거 하다가 잡혀서 죽기 직전까지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들의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컷 얻어맞아 죽을 지경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옥에서 찬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찬송하는 소리를 죄수들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찬송이 아니라 입 밖으로 고백하는 큰 찬송이었습니다. 감옥 안에 갇혀 있는 다른 죄수들이 다 들을 정도로 크게 찬송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감옥 안에 찬송이 울려 퍼질 때 지진이 나며 옥 터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옥문이 열리고 발을 묶고 있는 차꼬가 풀렸습니다. 찬송과 함께 그들을 가둬 놓고, 묶어 놓았던 모든 것들이 열리고 풀어지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 처럼 찬송은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찬송은 앞에 놓인 장애물을 무너뜨리는 힘이 있습니다. 찬송은 우리를 억압하고 매이게 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능력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생활하면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원망하고, 불만이 자리 잡을 수도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면서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불만과 불평을 하면 또 다른 불평과 불만, 원망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찬송은 그 모든 고통과 불안, 불평과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찬송은 폭풍과 같은 역경 속에서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를 줍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얻을 수 없는 힘과 평안입니다.

미국 시카고에 아주 행복한 가정이 살고 있었습니다. 스펫 포드라는 사람의 가정입니다. 스펫 포드는 대학 교수이며 변호사입니다. 그는 신앙이 매우 독실해서 주위의 많은 이웃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정숙한 아내와 예쁘고 착한 네 딸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행복한 가정에 어느 날 갑자기 불행이 밀려 왔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큰 화재 피해를 냈다는 시카고 대 화재로 인해 그의 집과 모든 전 재산이 불타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아내가 자꾸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스팻 포드는 아내와 네 딸을 잠시 프랑스로 요양 차 보냈습니다.

그런데 불행은 또 이어서 덮쳐왔습니다. 여객선을 타고 프랑스로 가는 도중 안개 속에서 여객선이 영국 배와 충돌해서 226명이 죽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그 배에 스펫 포드의 아내와 네 딸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가까스로 구출됐지만 네 딸은 고스란히 바다 가운데서 죽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1873년 12월 22일 새벽 2시에 생긴 비극이었습니다.

스펫 포드는 가까스로 구출되어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아내를 데리고 미국으로 되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들이 탄 배가 딸들이 타고 있었던 배가 침몰했던 지점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배의 안내방송은 당시의 참혹한 현장을 설명했습니다. 스펫 포드 부부는 애써 침착하려고 했지만 비명에 간 어린 네 딸을 생각하며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 때 부인이 스펫 포드의 손목을 잡아 흔들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메기와 타이메와 애니와 베시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잖아요? 잠시 헤어져있을 뿐인데 우리 애들이 프랑스에 있든, 천국에 있든, 미국에 있던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스펫 포드가 아내를 꼭 껴안으면서 그 입에서 즉흥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즉흥 자작 찬송가인데 우리가 잘 아는 413장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찬송가 413장은 한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부른 찬양입니다. 평안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믿음을 가지고 평안을 노래한 찬양입니다. 이 찬송은 온갖 역경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저도 이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을 새롭게 경험했고 신학을 새롭게 하게 된 동기를 부여 받은 찬송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고 불평과 불만에 쌓이게 하여 우리의 마음과 입술에서 찬송이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어느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찬양을 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지혜로운 자는 사단의 지배가 아닌 성령님의 지배 가운데서 찬송하는 삶을 삽니다. 한 주간의 우리의 삶이 찬송과 함께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찬송의 능력이 우리 삶속에 충만하기를 사모하며 찬송가 413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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