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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길이 참으라 (약 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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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참으라 (약 5:7-11)


보석 감정사가 되는 게 꿈이었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보석 감정사를 찾아가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늙은 보석 감정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보석 감정 기술을 배우려면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한데, 젊은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자신은 충분한 소질과 열정을 갖고 있으니 기회를 달라고 매달렸습니다. 끈덕지게 매달리는 청년을 보고 보석감정사는 내일 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청년이 찾아오자 보석 감정사는 손바닥에 작은 보석 하나를 올려 주며 의자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보석을 보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보석감정사는 청년의 손에 어제의 보석을 쥐어 주며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셋째 날도 넷째 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청년은 일주일 동안 보석을 보고 있었지만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스승님, 언제부터 기술을 배우게 됩니까?” 그러나 보석 감정사는 무뚝뚝하게 대답했습니다. “곧 배우게 될 거야” 그리고 더 이상의 말도 없이 자신의 일만 계속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열흘이 지났을 때 청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다른 감정사를 찾아가는 것이 낫지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보석 감정사가 보석을 쥐어 주며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지시하면 보석을 집어 던지며 이렇게 외치려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날 골탕 먹일 셈인가요?” 그런데 청년이 막상 보석을 집어던지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이건 어제까지 제가 보고 있던 그 보석이 아니잖아요!” 그러자 늙은 보석감정사가 말했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배우기 시작하는군.” 동일한 보석이었으나 오래 동안 바라보는 가운데 보석의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회는 끝까지 기다리는 자에게 찾아옵니다. 참고 기다리는 사람이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길이 참으시기 바랍니다. 길이 참으며 인내할 때 하나님이 복된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본문에 ‘인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길이 참으라’ ‘길이 참아’ ‘길이 참고 ’오래 참음’ ‘인내하는 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원어 성경에는 ‘마크로뒤미아’와 ‘휘포모넨’ 의 두 개의 단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마크로뒤미아’는 '관계 안에서의 인내'를 뜻합니다. 삶 가운데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지만 보복하지 않고 고통을 참아내는 것입니다. 반면에 ‘휘포모넨’은 환경 속에서의 인내입니다. 부도가 났다든지, 병에 걸렸다든지 등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참고 인내하는 모습입니다. 

야고보 기자는 관계로부터 오는 어려움이든지 환경으로부터 오는 어려움이든지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길이 참음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인내로 길이 참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를 우리에게 제시하였습니다. 과연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길이 참을 수 있습니까?  

첫째로 열매를 바라고 

중국 동부의 한 농부가 농장에 모소 (Moso Bamboo) 라는 대나무를 심고 기다렸습니다. 1년이 지났지만 아무 것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2년이 지났을 때에도 역시 아무 것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3년이 지나도, 4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5년 째 되었을 때 대나무 싹들이 지면을 뚫고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하루에 한 자가 넘게 자랐습니다. 불과 싹이 올라온 후 여섯 주 만에 대나무들은 무려 15미터 이상씩 커졌습니다. 

농부는 그 대나무를 자른 후 내다 팔아 부자가 되었습니다. ‘모소’ 대나무는 싹을 내기 전 땅속의 뿌리가 사방 수십 미터까지 뻗어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단 싹을 내면 뿌리에서 보내주는 엄청난 양분 덕에 순식간에 키가 자란다는 것입니다. 농부가 모소를 심고 4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리지 못했다면 그는 결코 부자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바라고 기다렸기에 대나무가 15미터까지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농부가 인내하며 땀을 흘리는 이유는 귀한 열매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볍씨는 심겨진 후 무려 여든 여덟 번 이상 농부의 손이 간다고 합니다. 이 같은 농부의 수고를 통해 한 알의 볍씨는 140알 이상의 쌀이 되는 것입니다. 힘이 들고 고통스럽지만, 농부는 열매가 있기에 길이 참을 수 있습니다. 인내할 때 소중한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귀한 열매를 바라는 것이 농부의 목적입니다. 마찬가지로 길이 참음 역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 성도들에게 주어질 “수고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하는 칭찬과 더불어 주어지는 상급과 면류관을 바라야 합니다. 바람의 열매가 있을 때 길이 참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원망치 말고

40년을 목회 하면서 성공적으로 사역을 마치게 된 한 목사가 자신의 목회 철학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교인 가정에 심방을 할 때나 당회를 할 때 그리고 누구를 만날 때 언제든지 성경, 찬송 외에 검정 색 표지로 된 노트 한 권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노트 표제는 ‘교인불평록’ 이었습니다. 교인 중 누가 목사를 찾아와 다른 교인의 비행이나 과오에 대하여 불평을 이야기하면 그는 불평하는 교인에게 “예, 그렇습니까?” 하며 노트를 펴고 펜으로 적을 준비를 합니다. 

“자, 여기 불평록이 있으니 말씀하십시오. 여기 적어 놓겠습니다. 그리고 끝에 당신의 사인 하나만 남겨주십시오. 시간이 나는 대로 그의 잘못을 정식으로 문제 삼아 바로잡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불평하러 왔던 교인이 당황하면서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기록에 남기고 사인까지 할 만한 이야기는 못 됩니다” 하고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회 40년 동안 불평록에 단 한 줄도 교인의 허물이 불평으로 기록된 일이 없었으며 교회는 평안한 교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본문 9절입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계시니라” 여기의 ‘원망’은 투덜거림입니다. 남의 뒷전에서 불평한다든지 혹은 매사에 불만에 차서 툴툴거린다든지 또는 서로를 비난하는 경우가 포함되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원망하는 경우를 두고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원망은 인내와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만나 압박감을 제어하지 못할 때 터져 나오는 것이 원망입니다. 인내할 줄 모르는 교인은 서로 비난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투덜거림을 통하여 교회 내에 분쟁을 일으킵니다. 도화선에 불을 당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인내 없이 용서를 발휘할 수 없습니다. 인내 없이는 사랑을 나눌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길이 참아야 할 이유는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성도들과 화목할 줄 모르는 교인은 결코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심판자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서로 원망하지 말고 길이 참아야 합니다. 설령 부족한 점이 있어도 부족한 점이 보여도 서로 원망하지 말며 길이 참고 용납하여야 합니다.  

셋째로 결말을 보고

영국의 청교도 존 번연 (John Bunyan)은 복음을 전하다 투옥이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활동적인 그는 작고 냄새나는 감옥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창살을 부여잡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여, 제발 자유를 주옵소서. 하나님의 일을 자유롭게 하기 원하나이다. 이렇게 갇힌 채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 없나이다.” 그러던 어느 날 창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데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번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세 번 씩이나 같은 음성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번연은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인 줄로 깨닫고 무릎을 꿇고 감사했습니다. “비록 감옥에 있을지라도 주께서 내게 족한 은혜를 주시는구나” 이 일이 있은 후 그는 좁고 냄새나는 감옥에서 자신의 멋진 결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길이 참으며 깊이 하나님을 묵상하는 가운데 ‘천로역정 (Pilgrim Progress)’ 이란 작품을 저술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욥은 가장 최악의 비참한 상태에 내던져졌지만 인내로서 믿음을 고백함으로 결말은 최상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의 고백대로 정금과 같은 인생으로 만들어주시는 결말을 보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순종하며 길이 참았습니다.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자신의 결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주위에 일어나는 문제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결말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만사가 협력하여 유익이 된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환난과 시련의 결말을 아름다운 전화위복으로 만들어주실 것을 믿고 길이 참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어려움을 당하나 결말이 선이 되고 유익이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길이 참고 인내하는 것만이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길이 참으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결말을 보시기 바랍니다.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에게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F. del Giocondo)가 작품을 부탁했습니다. 다름 아닌 부인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것이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빈치는 1년으로도 안되니 그냥 맡겨두면 다 그린 후에 연락하겠노라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다빈치는 장장 4년이나 걸려 그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조콘다에게 그림을 건네면서 “이 그림은 아직도 미완성입니다” 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 그림이 바로 유명한 ‘모나리자(Mona Lisa)’ 입니다. 명작은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명작은 완성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명작 인생이 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길이 참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혹 참지 못하여 포기하신 것은 아닙니까? 고통이 너무나 힘들어, 사업이 너무힘들어, 직장이 너무 힘들어 더 이상 인내하지 못하고 포기하려 하십니까? 부디 열매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참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선지자처럼 끝까지 원망하지 말고 길이 참으시기 바랍니다. 욥처럼 하나님의 결말을 내다보고 길이 참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길이 참는 자가 비로소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모쪼록 길이 참음으로 하나님의 멋진 결말을 얻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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