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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마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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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마 11:2-6)
  

들어가는 말

가을철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가 은혜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저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내가 자랑하는 복음’이란 주제로 말씀을 준비하면서 밤이 늦는 줄도 모르고 감격하고 있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우리 교우들이 좀 더 많이 참석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다 들 피곤하고 여건이 어려우시겠지만 한번 깊이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여러분, 이번 특별새벽기도회에 다른 교회 교우들이 50여분 참석하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엄마가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먹이려고 맛있는 간식을 준비합니다.
그날따라 아이는 친구들을 데리고 왔어요.
맛있는 간식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내 아이는 다른 짓을 하고, 친구들이 그 간식을 다 먹어 치웁니다.
물론 말로는 “너희들이라도 맛있게 먹으니 보기 좋구나.”라고 하겠지만 속은 좋지 않겠지요?
요즘 저의 심정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으십시오.

오늘 말씀은 신약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지난 주간 새벽기도회에서 이 말씀을 가지고 씨름했습니다.)
본문은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의 두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질문한 내용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말을 바꾸면 이런 뜻입니다. 
“당신이 우리가 고대하던 그 메시야이십니까? 아니면 당신을 그렇게 보는 우리들이 틀렸습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기다려야 할까요?” 
사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독교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교훈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어떤 생활 방식도 아니고, 한 인격체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다룹니다.
가끔씩 이런 얘기를 듣습니다.“교회에 나가면 다 좋은 소리 듣지 나쁜 소리 듣느냐? 그러니까 너희들, 교회에 나가거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교회에 나와서 꼭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들이 죄의 짐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들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들이 유황불이 타오르는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들의 얽히고설킨 삶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성경의 진술이고, 선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데에 걸림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질문에 답변을 주시면서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풀이하면 이런 뜻입니다.
“내게서 조금도 거슬리는 것을 찾지 못하는 자는 행복하다.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자는 행복하다. 자기 자신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막힌 담이 없는 자는 행복하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데에 걸림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어떤 걸림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데 교우들의 마음속에 아무 걸림돌도 없기를 바라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걸림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는 단순히 인간입니까? 아니면 그 이상의 인물입니까?
우선, 성육신의 기적이 걸림돌이 됩니다.
신약성경은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운 아기가 영원하신 때부터 하나님의 품속에 있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주장에 의하면 이 아기는 영원의 세계에서 시간 속으로 들어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동정녀 탄생도 걸림돌이 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머니는 있어도 아버지는 없다고 합니다.
성령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임하셔서 예수님을 낳았다고 하면서 이것을 믿으라고 합니다.
이게 이해됩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걸림돌이 없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의 교리가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이 세상에 의도적으로 오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일어난 사건은 선지자 이사야의 표현을 빌린다면,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킨 것이었습니다.(사53:6)
그러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란, 인간의 죄를 용서해주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이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서는 우리들은 죄의 용서도, 구원도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가 많은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십자가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분명하게 밝히자 조금 전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까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2,000년 전 팔레스틴의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21세기에 한국 땅에 사는 나의 죄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실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의 교리가 사람들의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3. 예수님이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메시야는 순전히 정치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큰 능력을 지닌 대왕으로 군림하리라고 믿었습니다.
메시야가 오면 제일 먼저 대반란을 지휘하여 유대인들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키고, 유대인들을 세계 최강대국의 일등시민으로 만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메시야라고 주장하는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오실 메시아이며,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자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고작 그가 한 일은 장님의 눈을 뜨게 하고, 절름발이를 걷게 하고, 문둥병자들을 깨끗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그 이상의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적인 메시야가 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던 것입니다.(요19:15)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 중에 무릎을 꿇고 주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그분께 구원을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원하는 내용과 방식으로 기도응답을 하지 않습니다. 
실망합니다.
어떻게 계속 그분을 믿겠습니까?
그래서 믿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일을 하시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은 내 뜻과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 55:8-9절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의 육신에 어떤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할 때마다 이 가시가 늘 방해물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도 아닌데 가시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주님께 이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세 번이나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기대하는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만 되풀이 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항상 옳고, 선하고, 좋은 것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롬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믿음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성가-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4. 예수님은 항상 개인의 영혼 문제를 다루시기 때문에 그것이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설명이 필요하겠지요?
예수님의 교훈의 한결같은 주제는 인간의 영혼이었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영혼의 가치를 천하보다 더 귀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막8:36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예수님은 과거에도 그러셨고,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영혼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러나 개인의 영혼의 문제를 다루면 곤란해집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구원에 대하여 토론하다가, 개인을 향하여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당신을 거듭났습니까(born again)?”라고 물으면 아주 난처해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영혼 문제를 항상 그렇게 다루셨습니다.
요4장에는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오후 매우 지치고 피곤하셔서 제자들이 마을로 빵을 사러 간 사이에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

그 때 한 여인이 물을 길러 왔습니다.
예수님과 이 여인 사이에 종교적인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주제는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한참 토론이 진행될 때 예수님은 여인을 향하여 “가서 네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종교적인 논의 중에 주님은 갑자기 개인적인 문제를 들춰내셨습니다.
남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네 명이나 되던 이 여인은 얼마나 당혹스러웠겠습니까?

예수님의 접근은 항상 이랬습니다.
구원이란 우리 개인의 영혼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까?”
“당신은 당신의 삶의 주인으로 예수님을 모셨습니까?”
오늘도 예수님은 항상 개인의 영혼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것이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5. 예수님의 구원방법이 너무도 쉽고 간단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모든 사람들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함이다. 이 방법 외에는 사람들의 영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위해 준비한 유일한 방법이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여라.”
이게 복음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예수님의 구원방법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시리아의 나아만 장군 같습니다.
나아만은 문둥병자였습니다.
그는 엘리사에게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자신의 병이 낫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엘리사는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만 씻으라는 것입니다.
너무 쉽습니다.

이 말에 나아만은 역정을 부리며, 엘리사가 자신을 모욕했다고 화를 냈습니다.
그는 불쾌해져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현명한 부하가 만류했습니다.
“이처럼 간단하고 쉬운 일을 하라는 데 왜 거절하십니까?”
나아만은 너무도 간단하고 쉬운 이 일을 하고 그의 문둥병을 깨끗이 치유했습니다.

사람들은 구원을 받기 위하여 길고 힘든 프로그램을 원합니다.
그런 것을 부지런히 적어서 그대로 해보겠다고 애씁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자신들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거저 받아야 합니다. 

나가는 말

성경의 모든 메시지의 초점은 예수님입니다.
성경은 이제까지 살펴본 이런 걸림돌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단호하게 주장합니다.
추호의 주저함이 없습니다.
한 순간의 곁눈질도 없습니다.
순교를 당하면서도 선포했습니다.
요3:36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
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한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확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다음 주는 우리교회의 총력전도 주일입니다.
바로 이 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방에 선포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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