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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조의 원리 (창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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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원리 (창 1:1-8)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창1;1-8)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천지는 하늘과 땅입니다. 땅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구이고, 하늘은 우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에서 놀라운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창조의 원리’ 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분의 놀라운 창조의 비밀을 어찌 다 알겠습니까 마는 작은 비밀이나마 엿보고, 깨닫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된 그분의 창조의 원리를 잘 깨닫기를 원합니다.
 
첫째날,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낮과 밤이 구별되었습니다. 
둘째 날, 궁창(=하늘)을 만드셨습니다. 궁창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뉩니다. 
셋째 날, 땅과 바다를 나뉘시고, 식물 즉, 씨 맺는 채소와 씨가진 나무를 만드십니다. 넷째날,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십니다.
다섯째 날, 물고기와 새들을 만드십니다. 
여섯째 날, 짐승과 가축과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에는 분명한 원리가 있습니다.   창조하시는 것에 하나님이 깊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창조도 질서 속에 창조되었습니다. 집을 지을 때 지붕부터 짓는 사람이 없듯이 창조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는, 고등성(高等性)입니다.

창조의 질서는 나중으로 갈수록 고등성(高等性)이 있습니다. 빛, 궁창, 땅, 바다는 무생물입니다. 식물은 생명체입니다. 무생물을 먼저 만드시고 나중에 생명체를 만드셨습니다.  또 생명체가운데 식물을 가장 먼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물고기, 새, 동물, 사람의 순으로 만드십니다. 가장 먼저 만든 식물이 가장 넓은 곳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물고기, 새, 동물, 사람의 순으로 피라밋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식물을 가장 먼저 만들었는데 식물은 살아있기는 하지만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물고기는 살아 있으면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식물보다는 물고기가 더 영리합니다. 또 물고기보다는 새가 더 발전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물고기보다 새가 더 영리합니다. 물고기가 새를 잡아먹지 않고 새가 물고기를 잡아먹습니다. 동물은 새를 잡고 물고기를 잡습니다. 식물도 먹습니다. 사람은 모든 것들을 다 잡아 먹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는 나중으로 갈수록 고등성(高等性)이 있습니다. 식물을 물고기가 이기고 먹습니다. 물고기를 새가 이기고 먹습니다. 동물이 새를, 사람이 동물을 먹고 이깁니다. 이처럼 창조물들은 고등성의 순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특히 사람의 경우를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나중에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고등한 존재는 여자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이깁니다. 그래서 집에서 아내가 남편을 이기고, 사모님들이 목사를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질서입니다.  여러분, 남자들은 여자에게 지는 것이 원리입니다. 살림살이 하는 것도 여자가 영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둘이 합하여 선을 이루라 하셨기 때문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창조의 원리는 존귀성(尊貴性)입니다. 

동물이나 새나 피조물들은 사람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나무의 열매는 아담을 위해서, 태양과 달과 별도 사람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사람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얼마나 존귀하게 여기느냐를 알 수 있습니다. 존귀함이 대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신분을 나누고, 돈으로 빈부귀천을 나누는 것은 사람을 억지로 차별하며, 존귀함을 무시하려는 범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가장 존귀하게 여겼는데 사람도 사람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여러분, 거지가 왜 불쌍합니까?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존귀하게 여김을 받지 못해서 불쌍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존귀한 존재입니다. 

세 번째, 창조의 원리는 연약성(軟弱性)입니다. 

태풍이 나고 지진 같은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면... 동물은 죽어도 식물은 살아남습니다.  나중으로 갈수록 힘과 능력이 있지만 생명력은 처음으로 갈수록 강합니다.  동물이 강한 것 같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숫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힘센 동물들이 먼저 죽습니다.  사람의 경우는 동물보다도 더 약합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남자보다 고등하고 우월하지만 연약성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의 원리는 나중으로 갈수록 고등성이 있고, 존귀성이 있지만 연약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약한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가장 고등하고 존귀하지만 가장 연약합니다. 전염병이 한 번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갑니다. 어린아이가 얼마나 귀합니까? 또한 얼마나 연약합니까?  왜 하나님께서 사람을 고등한 존재요, 존귀한 존재로 지으신 반면에 연약하게 만드셨느냐!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依支)하지 않으면 살 수 없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라고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들은 지옥에 떨어지므로 완전히 망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연약성을 주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물고기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되고, 동물을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아도 됩니다. 그들에게는 영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마지막에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뜻으로 마지막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가장고등하고 가장 존귀하지만 가장 연약하기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지옥가는 일 밖에 남는 것이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네 번째로, 창조의 원리는 “지식성(知識性)”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보면 빛을 제일 먼저 만드셨습니다. 먹어야 할 과일나무보다 빛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먹는 것이 먼저냐, 빛이 먼저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가 밖에서 열심히 놀다가 늦게 집으로 돌아와서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아이는 방에 들어가서 불을 켜고 밥상에 앉아서 먹을 것을 먹었습니다. 만약 방에 불이 없다면 진수성찬이 차려졌어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릅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김치인지, 국인지, 고기인지 알 수 없습니다.  빛이 없기 때문에 분별할 수 없어서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됩니다. 

분별(分別)할 수 있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먹는 것이 먼저냐, 빛이 먼저냐 에서 빛이 먼저입니다.  산에 가면 독버섯이 있습니다. 독버섯의 특징은 아름다움입니다. 예쁘기 때문에 사람이 먹습니다. 그런데 먹으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분별이 먼저입니다. 먹어도 되는지, 분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분별을 먼저 하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가는 죽습니다.  성도여러분, 빛이라는 것은 아는 것, 분별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 아느냐? 보는 것을 통해서 압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살이가 무엇이냐에 대해 ‘먹는 것이 제일이지’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웃기는 소리하지 말아라. 먹는 것이 제일이 아니라 아는 것이 제일이다. 즉 지식(知識)이 먼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사람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는 것입니다.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잠1;8-9)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9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아버지의 훈계를 들어라, 어머니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합니다.   창조의 원리에는 “지식성(知識性)”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가장 먼저 만드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천국이 있음을 아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즉 이 창조의 원리에서 먹는 것보다 아는 것이 먼저라는 지식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식이 없으면 아무리 먹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아무리 먹어도 결국에는 사망입니다. 먹을수록 죽음과 더 가까워집니다.  

성도여러분, 육체를 채우는 것으로는 인간에게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천국을 아는 것이 인간에게 행복을 줍니다.  먹지 못해도 하나님을 알면 천국에 갑니다. 그러나 배가 불러도 하나님을 모르면 지옥에 갑니다. 그래서 먹는 것보다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거지 나사로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70년 거지와 영원한 천국, 70년 부자와 영원한 지옥, 어느 것이 바른 선택입니까?  그래서 목사들이 다른 무엇보다 성경을 가까이 하라고 지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고등하고 존귀하지만 연약하여, 아는 것으로 능력을 얻고, 아는 것으로 생명을 얻으므로 이 연약성을 보충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더 가까이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다섯 번째로, 창조의 원리는 “초월성(超越性)”입니다.

태양이 있습니다. 넷째날에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식물이 있습니다. 셋째날에 이미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사과나무가 태양빛을 받지 아니하고 사과가 열리나요? 하지만 하나님은 식물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식물은 태양의 적외선을 받고 태양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빛을 받아야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식물은 반드시 빛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창조질서 가운데 태양을 먼저 만들고 식물을 만드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조질서 가운데 이것을 뒤집었습니다. 첫째날 만드신 빛이 꼭 영적인 의미의 빛만이 아니라 실지로 식물을 살게 하는 빛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태양이 없어도 식물을 먹을 수 있다는 메세지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를 찾아와서 “저는 주일을 지키지 못합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가게 문을 닫을 수 없습니다. 가게가 우리의 생명줄입니다. 가게가 우리로 하여금 먹을 가져다줍니다. 가게가 우리의 태양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게 문을 닫아도 너는 식물을 먹을 수 있다. 가게 문을 닫아도 씨 맺는 채소와 씨가진 나무를 먹을 수 있다. 하나님은 태양을 초월하셔서 역사하신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는 초월성(超越性)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초월성으로 인간의 연약성을 대치시키십니다.  너무 연약한 인간 아닙니까? 그래서 기적으로, 초월성으로 인간의 연약성을 채워나가십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의 초월성으로 인간의 연약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연약성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교인의 연약성, 목사의 연약성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해지고, 하나님은 거기에 하나님의 초월성(기사와 이적)이 더해지면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연약성은   얼마든지 채워 나갈 수 있습니다. 따라합시다.  “태양 없이도 식물을 먹을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는 사람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태양이 없어도 식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는 사람들은 주일을 거룩히 지킬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 들어와서 순종하면 태양이 없어도 얼마든지 식물을 주십니다. 
 
성도는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야 하는데 그 능력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은 세상 상식을 초월하는데서 나타납니다.  이러한 역사가 교회에서 일어나고 나에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승리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창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창세기는 온통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에 대한 기록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세상 상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책이 성경입니다.  태양이 없어도 사과를 먹을 수 있다.  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건이나 환경이 아니라 초월성으로 합니다. (빌4;13) “내게 능력주시는 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기적주시고, 초월성을 주시므로 나는 나의 연약함과 상관없이, 아니 나의 연약함 때문에 오히려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후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문다는 이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식물인 사과나무가 있고, 물고기인 잉어가 있습니다. 잉어가 창조될 때, 사과나무가 보았습니다. 또 하늘을 나는 참새를 창조하셨을 때 잉어가 보았습니다. 먼저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창조된 것은 먼저 창조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창조되었을 때,  수많은 피조물들이 사람이  창조된 것을 보았습니다. 먼저 창조 된 것은 나중에 창조된 것을 다 보았습니다. 그 창조의 현장에 천사들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사람이 창조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사람이 창조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존귀한 피조물이 창조 되었도다’ 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사과나무가 창조된 것을,  물고기가 만들어진 것을, 코끼리나 참새가 만들어졌을 때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이 ‘하나님이 태양을 창조하셨네요, 나를 위해서 태양을 만드셨네요. 하나님이 나를 위해 사과나무를 만드셨네요’ 합니다.  사람이 먼저 된 피조물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도 어떻게 그것들이 만들어진 것을 알았느냐? 영(靈)으로 안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이 물질로 만들어질 때, 물질과 영으로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눈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본 것이 아니라 영의 눈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본 것입니다.  사람이 육체의 눈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영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성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존귀하고 우월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연약한 존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지식성, 즉 하나님을 아는 만큼 그 연약성을 이길 수 있고, 또 초월성입니다. 사람의 연약함을 기적과 이적을 통해 이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육체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능력, 즉 영성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인간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안 됩니다. 또한 초월성과 영성이 있어야 인간의 연약성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인생을 사는 것도, 교회를 하는 것도 다 같은 원리입니다. 그런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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