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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 닛시 승리의 하나님(출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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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닛시 승리의 하나님(출 17:8-16)

하루는 아들 병아리가 아빠 닭에게 물었다.  
병아리 : 아빠, 우리는 왜 벼슬이 있어요?  
아빠닭 : 그건 적들에게 우리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서지!  
병아리 : 그럼 주둥이는 왜 뽀족하고 날카롭죠?  
아빠닭 : 그건 적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해 혼내주기 위해서지!  
병아리 : 그럼 목소리는 왜 이렇게 커요?  
아빠닭 : 그건 적들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지!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병아리가 말했습니다.  
병아리 : 그런데, 아빠?  
아빠닭 : 왜 그러니 아가야?  
병아리 : 그런 힘을 가진 우리가 지금 닭장 안에서 뭐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혹시 하나님이 주신 영적 무기들을 가지고도 힘 없이 닭장안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닭처럼 무기력하게 낙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병든 닭처럼 무기력과 패배 의식속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소개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오늘 본문 출17:15절과 16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입니다. 승리의 깃발의 하나님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 하나님의 이름은 따라해봅시다.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이신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호와 닛시, 승리의 하나님이신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하나님에게 패배가 없음을 또한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패배가 없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에게도 패배가 없음을 믿으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잠시 잠간의 후퇴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결론은 승리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이기기로 계획되어 있는 인생의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우리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결말이 승리로 결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당장 이기고 있지 못하다고 하여 우리는 지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지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처럼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 팀이 축구경기를 합니다. 그런데 어느 팀이 이길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럼 이기기로 결정되어 있는 팀에 속해 있는 선수들은 전반전에 지고 있어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 큰 기대감이 있습니다. 
3:0으로 지고 있을 때와 8:0으로 지고 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경기하는 팀과 이기기로 정해져있는 팀은 그 마음이 전혀 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경기하는 팀은 스코어가 뒤질수록 계속 불안할 것입니다. 
낙심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스스로 자포자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기기로 계획되어 있는 팀은 스코어가 지면질수록 더 큰 기대감이 있습니다. 지금 3:0으로 지고 있는데 이기려면 적어도 4골을 넣어야 하는데 누가 넣을까? 어떻게 넣게 될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경기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코어가 뒤지면 뒤질수록 더 많은 골을 넣어야 하는데 누가 넣게 될지 어떻게 넣게 될지 기대감을 가지고 남아 있는 시간들을 기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하기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스코어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과 환경이 아닙니다. 
우리 앞에 닥쳐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패배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이기게 하실 것인가에 대한 여호와 닛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기대입니다. 

오늘 아말렉 족속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승리를 허락하신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 바로 오늘 이 시대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시는 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승리로 이끌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보면서 우리도 우리의 치열한 삶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 어떤 방법들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아말렉의 공격앞에서 승리하게 하였을까요?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동역의 방법을 통하여 승리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허락하여 주실 때 어떤 때는 당신이 직접 나서셔서 승리를 허락하여 주시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우리를 통하여 승리를 이루어가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승리를 이루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직접 승리의 기쁨을 누리길 원하시는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하여 내가 직접 누리게 되는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오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어떻게 아말렉 족속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이루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두 가지 동역을 통하여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즉 서로를 통한 동역, 그리고 하나님과의 동역이었습니다. 

먼저 서로를 통한 동역을 어떻게 이루게 하셨을까요? 

자 9절 말씀을 볼까요? 먼저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야기 합니다.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나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그러자 10절에 여호수아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에이 모세여, 당신이 가서 싸워요..내가 산꼭대기에 갈께요. 나만 애들 데리고 위험한데로 보내고.. 자기는 편한데 가서 기도만하고.. 내가 갈테니까 당신이 가서 싸워요.. 이렇게 말했나요? 
아니요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여호수아는 모세가 하는 말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승리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만약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치 않고 두려워하여 전장에 나가지 않았다면 혹은 모세가 여호수아를 신뢰하지 않고 그에게 나가 싸우는 일을 맡기지 않았다면 아말렉 족속을 향하여 결코 승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실제 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서로에 대한 신뢰입니다. 부하는 상관을 신뢰해야 하고 상관은 부하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돌격 앞으로.. 했는데 너나 앞으로 나는 안 나가 
이렇게 병사들이 반응한다면 그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군인들에게는 전우애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죽음의 현장에서 서로의 목숨을 맞바꾸어서라도 서로를 먼저 살려낼 수 있는 전우애.. 상관이 부하들을 향하여.. 그리고 부하들이 상관을 향하여 가지는 전우애 이 전우애야말로 전장에서 승리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것입니다. 

세상의 전쟁에서도 이럴진대 하물며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싸움터인 영적 전장터에서 악한 영과 대적하여 싸워야 할 우리가 서로에 대한 믿음도, 전우애도, 배려도 동역도 없이 그저 자신의 생각대로만 결정하고 행동한다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모든 일을 선택하고 행동한다면 어떻게 우리 안디옥 교회 공동체가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또 여러분 가족들 간에 이런 이런 전우애가 없다면 너는 나, 나는 나 각각 자기 중심에 옳은 대로 행한다면 어떻게 가정공동체가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안디옥 교회 성도들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그리스도의 피로 나눈 한 형제요, 자매라는 것을 또한 치열한 영적 전장에서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우기 위해 부름 받은 피를 나누어 지켜주어야 할 영적 전우라는 것을 잊지 말고 서로의 말을 존중하며 서로에게 순종하는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승리를 위한 동역의 첫걸음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전우로 아내는 남편을 전우로 생명을 바꾸어서라도 지켜주어야 할 완전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며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옆 사람을 축복하며 인사해봅시다. 당신은 완전히 소중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말에 순종하여 모세를 동역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해 모세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없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없었다면 모세의 존재이유도 없었던 것입니다. 

수 천년전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이 없는 성도들을 어찌 생각하겠으며 또한 우리 성도들이 없는 목사님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는 성도가 있을 때 행복한 것이며 성도는 목사님이 계실 때 행복할 수 있으며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약 시대 가장 위대한 인물을 들라면 우리는 누구를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을 빼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신약성경27권 중 13권을 썼으며 3층천 즉 천국을 다녀온 그야말로 영적인 지식과 체험을 두루 갖춘 신약 시대 최고의 인물로 말해도 손상이 없을 인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울이 이런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바 될 수 있었을까요? 

롬16장을 보십시오. 그것은 뵈뵈와 같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외의 수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을 위해 변함없이 기도하고 바울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던질 수 있는 수 많은 동역자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위대한 동역이 결국 위대한 사람을 탄생시키며 위대한 교회를 탄생시키게 되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복된 교회 위대한 하나님의 교회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서로가 함께 동역하는 것입니다. 성도와 목회자가 동역을 이루고 목회자와 목회자가 동역을 이루고 성도가 성도와 동역을 이룰 때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서 바르고 든든하게 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아내와 동역하고 아내가 남편과 동역할 때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원수 마귀는 너무나 잘 알기에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가 동역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우리를 유혹하고 또 시험합니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그것을 가지고 서로 오해하게 하고 화나게 하고 불신하게 합니다. 그러한 사단의 공격과 시험을 받을 때 우리는 반드시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갈등의 시간을 오래 갖으면 갖을수록 사단은 더욱 기뻐하고 하나님은 더욱 실망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부끼리 혹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갈등이 또 교회 구성원서로 간에 갈등이 전혀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직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완벽한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긴 하지만 우리 모두 아직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우리에겐 주님이 필요하고 교회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허물이 보이고 연약함이 보일때마다 그 사람을 향하여 손가락질하지말고 그 사람을 향하여 기도의 손을 들어올리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을 향하여 이렇게 지적하고 비판하는 그 순간 우리는 나 자신을 향하여 3배나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비판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해+이해=사랑입니다. 오해+오해= 열 받는거 뿐입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서로 이해하고 또 이해하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해하고 또 오해하면 열 받는거 뿐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안디옥 교회 모든 성도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서로를 한번 더 품어줄 수 있는 복된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옆에 계신 성도들과 인사해보죠. 
당신은 내가 이 세상에서 만난 사람 중의 최고입니다.
이런 서로를 향한 이해와 섬김의 동역을 통해 반드시 우리는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축복하고 섬기는 이 동역을 이루기 위해 정말 중요한 동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로 하는 동역이 아니라 행동하는 동역입니다.   
말로 하는 동역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필요한 것은 말로 하는 동역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동역입니다. 

10절에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말한 대로 실제로 움직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말대로 나가서 생명을 걸고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해가 지도록 기도의 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처한 상황에서 여호수아는 칼과 창으로, 모세는 기도로 싸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제로 나가 싸우기 원하십니다. 물론 그 싸움은 우리만 하는 싸움이 아니요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며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을 때 그 싸움을 싸우시지 않습니다.  
그 싸움은 우리가 각각 받은 은사와 부르심을 따라 우리가 친히 싸우기 시작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각자의 은사와 부르심을 따라 누군가는 칼을 들고 전장으로 실제 나가야 하고  누군가는 지팡이를 들고 산 위에 올라가 기도의 손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 것이 중요할까요?
이 두 가지 모두 소중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는 각각의 은사와 부르심이 동일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의 은사로 가르치는 사역을 , 어떤 사람은 몸으로 봉사하는 사역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틈나는 대로 기도하는 기도의 사역을 합니다. 또 찬양하는 사역과 섬기는 사역 각각의 사역이 다 다릅니다.  이 중에 어느 것은 중요하고 또 어떤 것은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몸의 지체 중에 어느 것은 중요하고 어느 것은 덜 중요하다고 말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우리 모두가 소중하고 귀한 성도요, 지체들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각자의 사역역시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서로의 사역이 다르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려고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며 위로함으로 서로의 사역이 보다 더 귀한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행동하는 동역의 모습입니다.

우리 몸의 팔이 발에게 야 너 이거 들 수 있어? 하면서 물건을 집지 못한다고 뭐라고 한다면 발이 팔에게 너 이렇게 걸을 수 있어? 하면서 뭐라고 하고? 코가 귀에게 귀가 코에게 눈이 입에게 입이 눈에게 서로 너 이거 못하지? 하면서 못하는것만 말한다면 그 사람은 다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각 지체가 서로 잘 하는 것을 칭찬해준다면 야 너 눈이 없으면 나는 큰 일 나 네 눈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몰라. 귀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코가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하면서 서로가 있음으로 인해서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지 서로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면서 칭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어떤 지체의 못 하는거, 엉성한 거 부족한 거를 보기 시작하면 온통 다 부족하고 엉성하고 엉망인거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잘하는 거, 좋은 거 긍정적인 것을 보기 시작하면 잘 되는 공동체, 긍정적인 공동체가 되어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안 된다고 자꾸 말하면 자꾸 안 되고 자꾸 못한다고 하면 못하고 자꾸 할 수 없다고 말하면 할 수 없게 됩니다. 자꾸 잘 될 거라고 말하면 잘 되고 자꾸 할 수 있다고 말하면 할 수 있고 자꾸 좋아질 거야 라고 말하면 좋아지는게 하나님 나라의 영적원리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정은 안 된다고 내 남편은 내 아내는 못한다고 말하면 자꾸 안 되는 가정, 못하는 남편, 못하는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속이 상하고 아쉬움이 있어도 우리 가정은 잘 될거라고 우리 남편은 좋은 남편이 될 거라고 우리 아내는 좋은 아내가 될 것이라고 계속하여 격려하고 칭찬하면 정말 그런 가정, 그런 남편 아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디옥 교회는 반드시 잘 될 것입니다. 할 수 있습니다. 부흥할 것입니다. 좋아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칭찬받고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는 귀한 믿음의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은 잘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남편들과 자녀들은 좋은 남편, 좋은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좋은 아내가 될 것입니다. 우리 사업체와 직장은 잘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서로를 섬기는 동역은 이제 가장 중요한 동역으로 이어지게 됨을 말씀을 통해 보게 됩니다. 12절에 보니 진정한 동역의 모습 바로 기도하는 동역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기도로 동역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것은 바로 우리가 피곤하여 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렇습니다. 12절에 보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게 되자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는 이 편에서 하나는 저 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동역이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피곤하여 손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 우리가 기도의 손을 올리고 해가 지도록 손을 내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한 사람들이라면 우리에게 동역은 어쩌면 그렇게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동역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피곤하여질 수 밖에 없는 또 연약해질 수밖에 없는 부족한 존재라는 데 있는 것입니다. 
부족한 존재이기에 동역이 필요하고 협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 혹시 지친 성도들이 보이지는 않습니까? 피곤해 보이는 성도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의 손을 더 이상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낙담한 지체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런 성도들이 보인다면 그 분을 위해 돌을 가져다가 앉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 분의 기도의 손을 붙잡아 올려 주십시오.. 그 분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기도의 동역입니다. 이 기도의 동역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한 공동체로 불러주신 진정한 이유일 것입니다. 

여러분, 한 야구팀에는 9명의 야구선수가 있습니다. 모두가 홈련을 쳤으면 좋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 중에 누군가는 홈련을 치지만 삼진을 당하는 사람도 있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예 더블플레이를 당해 자기만 아웃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아웃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서 팀이 꼭 지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홈련을 치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 팀은 홈런을 친 그 사람으로 인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래프팅을 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래프팅을 하면 6-8명씩 팀을 이루어 노를 젓습니다. 왜 6-8명씩 팀을 이루어 한 배를 타고 가는지 아십니까? 그 중에 지치는 사람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계속해서 노를 젓게 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지치면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노를 젓고 그 사람이 지치면 내가 그 사람을 대신해서 노를 젓고 이렇게 서로를 대신해서 서로를 위해서 노를 저어 나갈 때 어느새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안디옥교회라는 한 배에 타게 하신 이유는 누군가 지쳤을 때 그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을 대신하여 기도의 노를 젓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사람의 몫까지 담당하여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언젠가 내가 지치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의 노를 저어주는 도움을 받게 될 때도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디옥 교회는 무엇보다 기도하는 기도의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 몸 된 교회 공동체를 위해 특별히 우리를 앞에서 이끌어 가시는 담임목사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모세의 팔이 피곤했을 때 아론과 훌이 그 피곤한 팔을 붙들고 함께 기도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목회자도 사람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피곤할 수 있고 또 지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많은 중보 기도가 필요합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바울도 그래서 수 많은 동역자들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담임 목사님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 성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목사님을 생각해보면서 자꾸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너무 많은 짐을 홀로 지게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수석 목사라고 있으면서 목사님의 짐을 나는 과연 얼마나 나누어지려고 했는가? 기도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국 교회 가운데 영향력을 미치는 대부분의 교회의 특징이 있다면 담임목사님을 위한 강력한 중보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의 황제라고 불리우는 스펄젼 목사님에게 목사님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강력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냐는 질문에 교회 지하로 사람들을 안내했습니다. 그 곳에는 변함없이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는 수 많은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저 분들이 저를 저 되게 하는 힘입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목회자를 바르게 세우고 든든히 세우고 능력 있게 세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시대 아론과 훌이 되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우리 주위에 연약해 보이는 성도들이 보일 때 모두가 함께 마음을 모아 지친 성도들의 팔을 들어 올려 함께 기도하는 기도가 끊이지 않는 기도의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를 위하여 여러분의 자녀와 사업장을 위하여 기도의 손을 높이 올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목사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가정을 위해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손이 내려오지 않을 때 우리 교회 우리 가정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늘 기도합니다. 기도하며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는 지 보여주십시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하는 것이 어떤 하나의 고통스런 과정이 아니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보람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신일덕 장로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대한항공 조종사로 30년 동안 계셨던 분입니다. 
목동에 있는 교회의 장로님입니다. 
그 분이 쓰신 책 제목이 <할렐루야 캡틴>입니다. 
그분은 늘 승객을 태우고 출발할 때 이렇게 인사합니다. 
“할렐루야 신일덕기장입니다. 이 비행기에는 하나님이 동승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편안한 여행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아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 분은 그런 줄 알았습니다. 
장로님이니까 당연히 그런 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신혼 여행가는 신혼부부 31쌍 약 60여명, 일반승객까지 해서 150명을 태우고 
비행기가 이륙했습니다. 사이판 공항으로 갑니다. 
그런데 공항 도착 15분 전에 이제 유압장치를 점검했더니 유압장치가 고장 났습니다. 
하이드로릭(hydraulics)이라는 이 유압장치가 고장 나면 바퀴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바퀴를 빼지 않으면 비행기가 동체착륙을 해야 합니다. 
관제소에 연락했더니 그냥 동체 착륙을 하라고 했습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기름이 떨어지면 죽으니까.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바퀴가 없이 그냥 그 쇠붙이가 땅바닥에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면 끔찍합니다.
불이 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 있습니다. 두 동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로님 마음속에 ‘적어도 내가 교회 장로인데 장로가 운전하는 이 비행기가 사고 나서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 영광을 가리지 않나? 그럴 순 없지.’ 
그는 자기 조종간을 부기장에게 맡기고 조종실 바닥에 무릎 꿇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장로가 운전하는 비행기가 고장 나면 이거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얼마 동안을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자기 몸이 붕 뜨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뇌리 속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그는 마음에 응답이 왔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부기장에게 
“여보게! 이제 한번 수동으로 조작해봐. 유압장치를 한번 조작해봐.” 
손으로 유압장치를 움직였는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퀴가 한 쪽이 빠졌습니다. 또 한쪽이 빠졌습니다. 
관제소에 연락했더니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있느냐”고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착륙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퀴를 다 펴고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기내방송을 통해 그 사실을 알렸을 때 그 안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환성을 지르면서 
서로 감격의 포옹을 했다고 합니다.

비행기에서 내려오면서 부기장이 기장 장로님에게 물었습니다. 
“장로님! 기장님! 정말 그 기도해서 바퀴가 빠진 것입니까?” 
“아니! 여보게! 자네 아까 옆에서 보고도 못 믿나? 하나님이 하신거야.” 
나중에 소문을 들으니 부기장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개척교회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분이 원래 불교신도였는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우리는 희망이라는 단어보다는 실망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기 너무 쉬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희망이라는 단어보다는 실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쉬운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의 손을 높이 올리는 이 일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실망, 절망의 상황을 뛰어넘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향해 기도의 손을 드는 사람 세상 그 누구 세상 그 무엇에도 손 들지 않는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무릎 꿇는 사람 세상 그 누구, 세상 그 무엇에도 무릎 꿇지 않는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손 들고 기도함으로 결국 세상 그 누구 세상 그 무엇에도 무릎 꿇지 않고 승리하는 복된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공동체 안에 있는 서로를 통한 동역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모든 동역은 바로 하나님과의 동역을 전제로 한 동역임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동역이 전제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를 통한 동역은 의미가 없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지금까지 계속해서 주어는 9절의 모세 10절의 여호수아, 11절에 모세 12절 그들, 13절에 여호수아였습니다. 

그러나 14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승리의 역사를 책에 기록하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이 어떤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합니다.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결국 이 싸움의 주인공은 군사들을 이끌고 나가 싸운 여호수아도, 산꼭대기에서 기도의 손을 올렸던 모세와 아론과 훌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 싸움의 주인공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의 동역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싸움의 주인공이 되게 하시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개인과 우리 가정과 안디옥 교회의 주인이 되시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처럼 그 분이 우리의 인생의 기록을 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가시도록 그 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동역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의 동역은 하나님만이 주인 되게 하는 일,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게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하신일을 기록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동역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동역은 곧 하나님을 향한 예배,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가 단을 쌓고 승리를 주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과의 동역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만나지 않는 사람은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승리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살면서 승리하기 원하며 기적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기 원한다면 우리는 늘 우리의 인생의 노트에 주어가 하나님으로 시작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빈 노트를 채워 가시도록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의 노트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함께 기록하며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동역하며 서로 함께 동역하는 가운데 끝내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 가정과 사업장과 남편과 자녀들의 모습속에서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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