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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를 배웁시다 (대상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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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배웁시다 (대상 16:1-6)


지난 8월 7일 UPI 통신이 미국 심리학회 연례회의에 발표된 논문 한편을 보도했습니다. 그 내용의 핵심은 감사할 줄 아는 10대가 행복하고, 약물이나 알코올에 빠지거나 비행을 저지를 위험이 낮다는 것입니다.

이 논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지아코모 보노 박사 연구팀이 10-14세 학생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감사하는 마음이 큰 20%의 청소년이 감사하는 마음이 작은 20%에 비해서 다음과 같은 차이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 삶에 의미가 있다는 느낌을 15% 더 많이 가지고 있다.
 -. 인간관계에 만족하는 비율이 15% 더 높다.
 -. 행복을 느끼며 삶에 희망적인 태도가 17% 더 많다.
 -. 부정적 감정을 경험한 사례가 13% 더 적다.
 -. 우울 증상을 15% 더 적게 나타낸다.

결론적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을 더 긍정적으로 보고, 더 희망을 가지며, 더 행복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사실 불행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인생을 부정적으로 보고 희망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인간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외톨이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태어나면 ‘엄마’, ‘아빠’ 다음으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가르쳐야 합니다. 누구에겐가 선물을 받으면 꼭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누구에겐가 도움을 받으면 꼭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하나님께 헌신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교우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교회에도 봉사하고 충성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풍성한 삶을 살며, 복된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감사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교회에 대해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교우들이 서로에게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을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을 때, 반드시 감사해야 합니다. 생각지 못하던 은혜를 받았을 때, 역시 꼭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사가 더욱 풍성해 지게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가장 하나님께 감사를 잘 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다윗이 특별하게 하나님께 감사했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다윗의 감사에서 우리는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1. 마음으로 하는 감사를 배웁시다.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의 궤 즉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고자 했습니다. 대상 13:3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니까 다윗은 자기가 왕이지만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모시기 위해서 그동안 방치되었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을 뿐 아니라 백성들도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일이 추진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급하게 서두르다가 율법 규정을 어기게 되었고, 그 결과 그만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던 웃사라는 사람이 죽었고,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일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일단 다윗은 예루살렘에 왕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를 모셔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제 다윗은 재차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기를 시도합니다. 이번에는 율법의 규정대로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궤를 잘 모셔올 수 있었습니다.

대상 15:29절을 보면, 하나님의 궤가 예루살렘 다윗 성에 들어올 때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다윗이 너무 기뻐서 춤을 추었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에 모시게 된 것이 너무도 감격스러워서 춤을 추었다는 것입니다. 이제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모실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해서 춤을 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왕비 미갈이 마음에 업신여겼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으로서 춤을 춘 행동은 왕의 권위와 체통을 던져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왕으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왕의 체통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로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점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감사하되 마음을 다해 감사하는 것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빙점’ 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는 자신의 기도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은혜에 익숙해지지 않게 해 주세요.”
미우라 아야꼬는 처녀 시절에 심한 폐결핵을 앓으며 오랜 세월 병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시절 남편 미우라 미츠요를 만났습니다. 그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그리고 무려 5년이나 자신을 문병하며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병이 치유됐고, 남편과 결혼하게 됐습니다. 당시 남편에 대한 고마움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답니다. 정말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답니다.

그런데 몇 년을 같이 살다보니 점점 그 고마운 마음이 시들해 가더랍니다. 남편과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당연하게 여기게 되더랍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신경질도 내고, 화도 내고, 미워하기도 했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자신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은혜에 익숙해지지 않게 해 주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은혜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은혜에 익숙해지면 감사가 형식적이 됩니다. 다윗처럼 마음으로 감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 감격이 다 사라지고 감사가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를 배워야 합니다. 다시금 그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감격하고, 그리고 마음을 담뿍 담은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2. 나눔의 감사를 배웁시다.

본문 2-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이스라엘 무리 중 남녀를 막론하고 각 사람에게 떡 한 덩이와 야자열매로 만든 과자와 건포도로 만든 과자 하나씩을 나누어 주었더라”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준비된 장소에 모셔드린 후에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했습니다. 뿐 만 아니라 백성들 모두에게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에 모시게 된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춤을 추며 그 감사의 감격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윗은 그 감사를 백성들과 함께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과 영적인 복을 나누기 위해 저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과 육적인 복을 나누기 위해 저들과 음식을 함께 했습니다.

우리가 이 점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감사하되 그 감사를 이웃과 나누는 것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신 16:13-14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하나님께서 초막절 또는 수장절이라고도 하는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한 해 농사를 추수하고 이것을 거두어드린 후에 7일 동안 감사 절기를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놀라운 은혜로 거두어들인 소산물을 이웃과 나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가까이 가족과 집안의 식솔들과 감사를 나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일을 감당하는 주의 종들과 감사를 나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과 감사를 나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린 여기에서 감사의 양면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감사는 받은바 은혜에 대한 표시라는 점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다음으로 감사는 또 다른 은혜의 통로가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감사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은혜의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점입니다. 바로 감사하는 사람들의 나눔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전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의 근대적 기원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땅에 도착해 첫 번째 감사를 드린 것이 현대 교회가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된 출발점인 것입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고기를 먹습니다. 한해의 추수감사절에 약 4500만 마리의 칠면조가 식탁에 오른답니다. 그러면 도대체 미국의 추수감사절에는 왜 칠면조를 먹게 됐을까요?

청교도들이 천신만고 끝에 미국에 도착해서 정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열악한 상황 속에서 정말 간신히 첫해 추수를 끝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감사절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 때 여러모로 도움을 준 인디언 원주민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수확한 곡식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인디언 원주민들이 빈손으로 오지 않고 자신들이 즐겨 먹던 칠면조 고기를 가지고 와서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전통이 돼서 오늘도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나누어야 합니다. 나눌 때 그 감사가 더욱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3. 찬양으로 드린 감사를 배웁시다.

오늘 본문 3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 찬양대를 조직했다는 것입니다. 레위지파 사람들을 통해 찬양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이 찬양대를 조직하여 찬양으로 감사하게 한 이유입니다. 본문에서 세 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칭송하기 위해서입니다.

‘칭송한다’는 말은 원어로 ‘자카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기억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찬양대를 세워 찬양으로 감사하게 한 첫 번째 이유는 두고두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노래는 쉽게 잊혀 지지 않는 속성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불렀던 동요, 학창시절 즐겨 불렀던 노래들은 두고두고 기억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게 되면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오래 기억되게 해야 합니다. 한번 감사하고 잊어버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둘째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감사한다’는 말은 원어로 ‘호토트’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고백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찬양대를 세워서 찬양으로 감사하게 한 두 번째 이유는 감사를 구체적으로 고백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독일의 그리스도인이 혀에 암이 생겨서 고생하다가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혀를 잘라내서 다시는 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마취 주사를 든 의사가 잠시 머뭇거리며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해 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자기 입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 무엇인지 주변 사람들이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그 때 이분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답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할 수 있을 때 감사를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해야 하고, 서로에게 감사를 고백해야 합니다.
감사는 고백되어야 합니다. 마음에 담아 두고 끝나면 아직 감사가 아닙니다. 

셋째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찬양한다’는 말은 원어로 ‘할랄’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칭찬하다’, ‘자랑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찬양대를 세워서 찬양으로 감사하게 한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을 칭찬하고 자랑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할랄이라는 말을 찬양(讚揚)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 말의 뜻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찬’(讚)은 기린다는 뜻입니다. ‘훌륭한 점을 들추어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양’(揚)은 올린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를 높이 추켜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찬양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구체적이고 세밀한 일 때문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감사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며 하나님을 높이는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시냇물이 흘러 강으로 바다를 이루듯이 찬양의 강, 찬양의 바다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사가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도 배워야 합니다. 배우지 못하면 감사할 것이 있어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감사하고 싶어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다윗에게서 올바른 감사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선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 감격한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나눔의 감사, 감사를 이웃과 나누며 그 감사가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찬양으로 드리는 감사, 감사가 찬양으로 승화될 수 있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 추수감사절에 우리의 감사가 더욱 깊어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우리에게도 기쁨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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