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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양의 문이라 (요 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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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의 문이라 (요 10:9-10)


성경에는 예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여러 가지 비유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의 비유, 포도나무 줄기와 가지의 비유, 사랑 많으신 아버지와 집을 나간 탕자의 비유, 양과 목자의 비유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본문에는“양의 문”으로 비유하여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를 밝히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주업이 목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양에 대한 비유는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적절한 비유였습니다. 

양과 목자의 비유는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신 말씀은 그 뜻이 무엇인지 얼른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 비유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문입니다. 

지금 예배드리는 우리는 모두 예배당 출입문을 통해 이 성전에 들어왔습니다. 출입문을 통해 들어온 사람만이 이 성전 내부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성전 안은 비교적 깨끗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름다운 꽃꽂이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은혜로운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전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느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8절~10절말씀에“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신 예수님을 보므로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를 볼 수 있습니다. 무덤에서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므로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성난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을 보므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귀신들린 자와 각색 병든 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을 보므로 병 고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인 것을 보므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행하신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을 자세히 보여주시는 출입문입니다. 

이 고귀한 진리를 아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시고 방황하는 심령들을 애타게 부르고 계십니다. 아가서 5장 2절에“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도 말씀하시기를“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셨습니다. 

2.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어느 나라든지 그 나라의 관문인 항구나 공항을 통해서만 그 나라에 입국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하셨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에도“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한 곳, 죄가 없는 곳입니다. 죄인은 그곳에 갈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내려오는 원죄의 피가 흐르고 있고, 우리 스스로 범한 죄가 있습니다. 이러한 죄인들로 가득한 세상을 향해 말씀하시기를“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도다.”(롬 3:10)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값없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선한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 구원 받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 값을 십자가에서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8절~9절에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고귀하신 예수님을 믿는 진리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12절에 말씀하시기를“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죄인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이치가 너무 단순하고 쉬우므로 도리어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9세기 미국의 부흥사인 무디가 어느 날 탄광촌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얻게 된다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 값도 노력도 없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무디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디에서 석탄을 캤습니까?”
“수백 미터의 지하입니다.”
“그 지하 작업장을 오르내릴 때 어떻게 합니까? 걸어서 내려갑니까? 아니면 로프를 이용합니까?”
“그 깊은 곳을 어떻게 걸어서 오르내립니까?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내려가고 올라오지요.”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의 이치가 그와 같습니다. 사람이 갈수 없는 깊은 지하까지 내려가고 올라오는 데에는 기술자들이 만들어 놓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안에서 스위치를 누르는 것뿐입니다.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죄인이 구원을 받는 데에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십자가의 공로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의 노력으로는 그 어떤 것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만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불신 영혼이 구원을 받는데 인간이 해야 할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듣도록 하려면 누군가가 전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로마서 10장 13절~15절 말씀에“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믿은 우리들이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듣지 못하면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은 생명의 씨앗입니다. 씨앗은 땅에 심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씨앗 그대로 있습니다. 땅에 심으면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력을 지닌 씨앗은 만드셨지만 땅에 심는 일은 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은 하시지 않으십니다. 씨앗을 땅에 심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할 목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생명의 능력을 나타내도록 하려면 반드시 누군가가 전해야 합니다. 전하지 않으면 구원역사는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몇 년 전 이집트에서 3천여 년 전에 살았던 한 왕의 무덤에서 완두콩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씨앗을 땅에 심었더니 싹이 났다고 해서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씨앗은 심지 않으면 수천 년이 흘러도 씨앗으로 있습니다. 그러나 땅에 심으면 싹이 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왜 전도를 해야 하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전도는 복음의 씨앗을 불신영혼의 마음 밭에 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쇼키 요코이(Shoichi Yokoi)라는 한 일본인 병사는 2차 세계 대전의 전세가 일본군에게 불리해지자 괌 섬에 있는 한 동굴로 잠적해 버렸습니다. 그는 적에게 목숨을 빼앗길까 두려워 28년 동안이나 그 정글 속에 숨어 살면서 밤에만 나와서 돌아다녔습니다. 이 은둔자는 그 오랜 세월 동안 개구리, 들쥐, 달팽이, 새우, 호두, 밤, 망고 등의 열매를 먹고 살았습니다. 또한 나무껍질에서 얻은 삼베 같은 천으로 바지와 자켓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요코이는 후에, 괌 정글 전역에 뿌려진 삐라를 보고서야 비로소 전쟁이 끝났음을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밖으로 나가면 처형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두 명의 사냥꾼이 그를 발견하여 더 이상 숨어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요코이는 자유를 얻었고, 새 옷과 음식을 얻었으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입고 있었던 옷과 녹슨 총은 박물관에 보관해 놓았습니다. 

듣지 못하면 구원은 없습니다. 들으려면 누군가가 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모든 민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마태복음 28:19). 왕이 부여하신 사명은 어떤 이유로도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수행하는 길밖에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복음증거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밝히기를“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이 사명을 거역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까 두려워 억지로라도 복음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명은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준엄한 명령입니다. 

3. 예수님은 안전하게 보호하는 문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양을 치되 낮에는 방목을 하지만, 날이 저물고 어두워지면 양들을 우리 안으로 들이게 됩니다. 양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문밖에 있는 양들이라면 위험하지만 문안에 들어온 양들은 안전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나는 양의 문이라”하신 말씀은 양과 같은 우리들의 보호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9절에“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①구원을 받고 또는 ②들어가며 나오며 ③꼴을 얻으리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보호의 세 가지 내용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구원을 받고”하신 것은 영혼이 보호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둘째,“들어가며 나오며”란 평화와 자유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양들이 풀을 뜯으며 자유롭게 우리를 드나드는 광경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평화롭습니까? 

셋째,“꼴을 얻으리라”하신 것은 필요를 따라 공급하시는 은총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도“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은 영혼은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과 만족이 가득합니다. 육신의 삶에도 풍성함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자이시며 양의 문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하셨습니다.

세상살이에 시달려 지치고 피곤할 때, 불안하고 괴로울 때, 외롭고 쓸쓸할 때, 양의 문이신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소망과 용기가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30절~31절 말씀에“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하셨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조각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커다란 대리석을 정으로 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고통스러운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조각가는 깜짝 놀라 사방을 살펴보다가 그 신음 소리가 대리석에서 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너는 왜 신음 소리를 내고 있는 거니?”“당신이 지금 날카로운 정으로 나를 쪼아서 내 살점을 뜯어내고 있으니 아파서 그럽니다.”대리석은 아파서 견딜 수 없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자 조각가는“어리석은 대리석아, 내가 네 몸을 정으로 쪼고 다듬어야 네가 걸작품이 되어 사람들에게 사랑 받게 되잖아, 너를 그냥 놔두면 너는 한낱 돌덩이에 불과하지만, 네가 정을 맞으며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잘 참기만 하면 불후의 명작이 되게 되니 조금만 참아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고난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는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우리에게 연단과 훈련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과잉보호 하시지 않습니다. 보다 강하게, 보다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시고자 때로는 시련과 연단의 골짜기로 몰아넣습니다. 성공은 고난을 참고 견디며 슬기롭게 극복한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시는 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하시는 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문이십니다. 

이토록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 정성을 다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애타게 찾으시는 길 잃은 양, 불신 영혼을 위해 힘써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리를 깊이 깨달은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말하기를“네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라. 그리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회에는 유익이 되고, 네게는 행복이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이 여러 성도님들 위에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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