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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 그 때에 영광을 얻으신 하나님 (출 14:17-20, 요 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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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영광을 얻으신 하나님 (출 14:17-20, 요 13:31-32)

오늘을 우리교회가 창립 118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주일입니다. 118년 전 신앙의 불모지요 미개하고 가난한 나라인 이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연못골에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역사 가운데 주신 많은 분들의 수고와 눈물과 땀이 오늘날의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전통과 역사를 잘 계승하여 아름다운 교회를 다음세대에 물려주는 것이 현재적 책임입니다. 이런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영광을 얻으실 것입니다. 세세무궁토록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베르나르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라는 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하시기 때문에, 그리고 어떤 사람은 단지 하나님께서 선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첫 번째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두려워하는 노예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자신을 위해 이익을 갈망하는 장사치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그의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는 아들입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도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도 자신의 유익을 따라 행동합니다. 

그러나 아들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노예와 장사치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지 않는 자기들만의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예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장사치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것이 아닌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통하여 스스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영광은 하나님의 존재양식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의 허리를 펴주십니다. 이 여인은 허리가 펴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열 나환자가 다 고침을 받았지만 이방인인 한 사람만 고침 받은 것을 알고 예수님께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네 친구에게 의존하여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 앞에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환자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나았을 때 무리가 권능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영광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비록 고통을 당할 때이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며, 영광을 통하여 고통이 기쁨으로 변합니다. 
  
베드로전서 2:12에는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요즘에는 안티 기독교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선한 일을 행할 때에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동안 애급에서 살면서 종살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게 하시지만 애급 왕 바로는 완악하여 10가지 재앙을 내리신 다음에야 이스라엘을 해방시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끝에 애급을 탈출하였습니다. 
  
바로는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바로의 완악함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이유입니다. 악한 자가 완악할수록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악한 자가 악을 행한다 하더라도 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익한 자가 완악하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입니다. 칼뱅은 우리 주변의 세계를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극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게 하신 우리의 하나님은 지금도 영광 받으실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첫째, 하나님은 바로의 병거와 마병 때문에 영광을 얻으십니다. 
  
출애굽기 14:17 하반절에는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무리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히브리민족이 번성할 때에 바로는 히브리의 번성을 방해하려고 하였지만 히브리민족은 더욱 번성하고 흥왕하였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썼지만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내려 하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말렉에서 첫 번째 전쟁을 하지만 모세의 두 팔로 이기게 하셨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여리고를 정복할 때에 횃불과 양각나팔로 이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원수들이 괴롭힘을 당하지만 종래는 하나님이 이기시고 영광을 얻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영광을 얻으리니”라고 하십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은 곧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의미합니다. 악인의 악한 일을 통해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이름이 더욱 높이 빛나고 영광을 얻는 계기가 됩니다. 
  
바로가 하나님의 말을 잘 들었으면 애급에 대한 하나님의 재앙이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물이 피가 되는 첫 재앙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었다면 아홉 가지 재앙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가 바로 놓아주었더라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지 못하셨을 텐데 바로가 바로 놓아주지 않아서 바로의 모든 군대와 병거와 마병이 다 몰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급하고 하나님은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홍해를 건넌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합니다. 출애굽기 15:1에는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여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았고, 빌라도가 예수님을 유대인에게 넘겨주었고, 헤롯이 빌라도와 공모하여 십자가에 달게 하였고, 유대인들이 조롱하며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질렀고, 로마 군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은 예수님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고, 정치적인 고소를 하였고, 기득권자로서 시기하였습니다. 악한 자들 때문에 예수님이 죽음을 당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당시의 교권자들의 사악한 박해와 위협을 당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수많은 고난을 당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는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파선을 당하고, 죽을 뻔한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 후에 사도들이 다 고난을 당하고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카타콤의 신자들은 어둠 가운데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 외에도 초대 교부들, 순교자들 그리고 한국의 초대교회 신자들은 악한 자들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자들이었습니다. 
  
어두울 때 작은 빛은 더 빛이 납니다. 세상이 너무 어두우므로 작은 빛이 영광이 됩니다. 마태복음 5:16에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별과 같이 빛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시편 37:7에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고 합니다. 9절에는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고 합니다. 악한 자가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들 때문에 속상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악은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시대에 신사참배 강요로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일본은 교회에 불을 지르고, 복음전파를 불허하고, 많은 성도들이 순교하게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이 교회를 박해하지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공산주의의 유물론을 내세워 하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공산주의로 말미암아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근대 한국역사에서 교회는 박해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수많은 피해와 순교자를 냈고, 피난민들이 북에서 남으로 밀려왔습니다. 이런 북한 성도의 피난은 한국교회의 성장에 절대적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통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성장하였습니다. 이런 고통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도 손해 본 것이 없습니다. 바로의 군대와 병거와 마병으로 영광을 받으신 그 하나님은 지금도 악한 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십니다. 욥기 5:24에는 “네가 네 장막의 평안함을 알고 네 우리를 살펴도 잃은 것이 없을 것이며”라고 합니다. 악한 자들의 악행으로 우리는 잃을 것이 없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둘째, 하나님이 영광을 얻으실 때는 사람들이 여호와인줄 알 때입니다. 

출애굽기 14:18에는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될 때에 하나님께 대적하던 악한 자가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이 말은 14:4의 반복입니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지고, 바로와 그 군대가 전멸하므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그들이 여호와가 하나님인 줄 알게 됩니다. 악한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악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하면 하나님 아는 것이 선입니다. 
  
애급의 바로는 파멸 후에 비로소 여호와를 알았습니다. 여호와가 두려운 신인 것을 알았습니다. 애급만 그런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는 애급의 왕자에서 미디안 광야의 도망자로 전락했습니다. 그 때 참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베드로는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하고 빈 털털이가 된 후 예수님을 만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경력과 학력을 믿고 다메섹에 가다가 눈이 감기고 말에서 떨어진 후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없는 자가 모든 것을 가집니다. 낮은 자리에 앉는 자가 높은 자리에 올라갑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가 높아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완전히 낮아진 영점(零點)의 가치가 있습니다. ‘낙하점’(ground zero)으로 떨어지는 경험이 있는 자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께서 선호하시는 시작점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영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낮은 곳으로 가라”. 
  
이사야 11:9에는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고 합니다. 악한 자들은 늘 하나님의 사람을 해하고 상하게 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해함을 받지 않고 상함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불후의 명작 ‘하나님의 도성’에서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은 똑같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무슨 고통을 당하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당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똑같은 미풍이 불어오지만 오물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거룩한 기름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깁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결국 멸망합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흥왕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더 알아갑니다. 
  
경북 안동, 영주, 예천 지방의 사과나 한우는 맛이 다른 지방보다 좋다고 합니다. 그 지방은 낮과 밤의 기온 차가 다른 지방보다 더 큽니다. 일교차라는 시련을 겪었기 때문에 좋은 맛을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고난을 당하지만 그 고난은 더 좋은 열매, 더 알찬 지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가지게 합니다. 그래서 스코트 해프먼은 “고난은 마치 하나님과의 ‘뜻밖의 만남’(blind date)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갈멜산에서 영적 전투를 합니다. 엘리야는 생명을 건 전투에서 “주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소서”라고 하였고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다니엘은 포로민이었지만 굳건하게 믿음을 지키다가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를 총애하던 다리오왕은 다니엘이 있는 사자 굴에 와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고 합니다. 왕의 입으로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하게 한 것입니다. 원수의 파멸과 하나님의 사람의 승리는 정해진 것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일입니다. 애급의 파멸은 여호와와 대적하는 세력의 허무함을 알리고 여호와만이 참 신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전파하게 된 것입니다. 
  
잠언 9:10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합니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누가 만든 신이 아니라 스스로 계시기에 모든 것의 원인이며, 나의 원인이며, 나의 힘이며, 모든 것의 근원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참 지혜이며 은총입니다. 
  
바로와 이스라엘 백성의 전쟁은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되는 어른과 아이의 싸움이었습니다. 어른과 아이의 싸움보다 더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싸우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가 하나님인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결론 

제가 오래 전에 알던 신실한 집사님이 있습니다. 그 분은 아주 근면하고 성격도 긍정적이어서 사업을 잘하실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사업의 경험이 없어 공장 가동이 멈추고 회사가 부도가 나고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예배를 부탁하였습니다. 그 예배가 감사예배인데 ‘폐업감사예배’라는 것이었습니다. ‘개업감사예배’는 봤지만 ‘폐업감사예배’는 처음이라 의아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 집사님은 “개업감사예배 드렸는데 아무리 망했지만 왜 폐업감사예배 안 드리겠습니까?”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도가 나서 망해버린 회사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 예배가 얼마나 진지하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 후에 제가 미국에서 돌아오니 그 분이 다시 재기하여 구미공단에 큰 공장을 다시 일으켜 사업을 잘하고 계셨습니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찾은 분입니다. 이런 분을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병들고 나서 하나님을 가까이 찾고, 망하고 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떨어지고 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두려운 존재임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흥하고 망하는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의 잣대로 볼 때 망한 것도 다 여호와를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욥은 모진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고 회복된 후에는 하나님을 눈으로 보듯 알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가서 애급에서 종살이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살이하였지만 마지막에 형들을 만나서 “나를 보내신 이는 형님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참 신앙의 모습입니다. 성숙한 성도의 자격입니다. 호세아 6:3에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해야 합니다. 
  
원수를 괴멸하신 다음에 영광을 얻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원수들이 아무리 우리를 해롭게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끄떡하지 않습니다. 이런 고난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 하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힘써 알고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삼는 복 있는 백성이 되고,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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