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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맏아들의 잘못은 무엇인가 (묵 15: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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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아들의 잘못은 무엇인가 (묵 15:25-32)

우리는 지난 몇 주간 동안 탕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떠나면 안 된다.’라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린 채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탕자의 삶은 너무나 고독하고 힘들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게 된 것입니다. 결국에는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곳까지 내려간 둘째 아들이 얻은 결론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이 세상 어디에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참 기쁨, 참 평안, 참 행복이 있습니다.

내 뒤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나의 가는 길을 지켜 주십니다. 신명기 1장33절에 보면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야 할 길을 먼저 가 계실 뿐 아니라 가는 도중에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힘과 능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데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불안하고 우울한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나를 지켜 주시고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없는 삶은 정신적으로 약하고, 힘들고, 염려하는 삶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늘 기쁘게 살아가는 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앙모하며 창조주를 나의 하나님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B.C.168년에 시리아의 왕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수십만의 군대를 이끌고 애굽으로 원정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로마 황제가 포피리우스 라이나스 장군을 보내어 그 길을 막았습니다. 포피리우스는 안티오코스를 향해 “황제의 명령이니 애굽 원정을 취소하고 돌아가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안티오코스의 옆에는 수천 명의 장군들과 수십만 명의 군인들이 있었지만 무장도 하지 않은 보잘것 없는 한 사람이 당당하게 큰소리를 친 것입니다. 그러자 안티오코스는 생각하고 결정할 테니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포피리우스는 “안 됩니다. 지금 여기서 말씀해 주십시오. 로마 황제의 명령입니다. 제가 원을 그릴 테니 여기서 나가기 전에 대답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결국 안티오코스는 애굽 원정을 취소하고 되돌아갔습니다. 안티오코스는 그 장군을 겁낸 것이 아닙니다. 그의 배후에는 로마황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바로를 두려워했습니까? 다윗이 골리앗을 두려워했습니까? 다니엘이 바벨론 왕을 두려워했습니까? 우리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만군의 하나님이 배후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불평불만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절망하고, 위기와 어려움이 있고, 소망이 없는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예수님께 나오면 길이 있습니다. 호주는 영국의 흉악범들을 유배 보냈던 곳이지만 주님은 그 땅을 거룩한 축복의 땅으로, 선진국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나라도 126년 전, 가난하고 무지한 어둠의 땅이었지만 언더우드, 아펜젤러 두 분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라는 믿음으로 이 땅에 찾아와 이 나라를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흉악한 사이코패스라도, 잘못된 사람이라도 예수님이 해결하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맏아들은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맏아들이 누구입니까? 확실한 것은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감사가 없고 불평불만만 하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이웃에 대해서도 원망만 하는 형식적인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이웃과 담을 쌓고 늘 부딪히는 크리스천들, 이런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맏아들인 것입니다. 집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온 것을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 때 맏아들은 참여하지도 않고 불평하는 것을 본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25-30절에 보면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집 나간 아들보다 집안에 있는 아들에게 더 문제가 있음을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맏아들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나를 택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은혜, 늘 함께하시며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신 한량없는 은혜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기본은 감사입니다. 감사함으로 주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야 합니다

늘 함께하시고 도와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무엇으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내 죄를 사하여 주시고, 내 건강과 가정을 지켜 주시고, 영원한 천국을 주신 측량할 수 없는 그 은혜를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가정과 교회는 불평하면 안 됩니다. 늘 감사해야 합니다,

맏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고 형제에게도 불평했습니다. 동생을 “저 나쁜 놈, 창녀들하고 돈을 다 써버린 인간도 아닌 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형제간에도 너무 극단적인 표현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인격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잘못된 인격은 남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줍니다. 언제나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 용기를 주는 말, 칭찬하는 말을 하면서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말씀으로 복을 받는 종교입니다. 성도는 믿음의 말, 승리의 말, 긍정의 말을 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은혜가 되고 힘이 되는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맏아들의 말도 맞습니다. 맏아들에게 염소를 잡아주지 않은 것도, 동생이 나쁜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바른 말로 지적하면 관계가 아름답지 못합니다. 오늘 가정이 무너지는 이유도 정죄하듯이 바른 말을 내뱉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기를 때 곧이곧대로 바른 말만 하면 한 명도 잘 기를 수 없습니다. 세상을 판·검사의 눈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사랑의 눈, 감사의 눈, 믿음의 눈, 긍정의 눈, 은혜의 눈으로 보고, 모두 좋은 말만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18장 21-22절에 보면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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