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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 우러러 보오니 (시 8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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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우러러 보오니 (시 86:1-7)


댄 바우만(Dan Baumann)은 ‘아름다운 능력의 길 예수(A Beautiful Way)’ 라는 저서에서 1997년 이란에 단기선교를 갔다가 간첩죄로 감옥에 갇혀 지낸 9주간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는 빨리 감옥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려무나” 바우만은 묻지 않았습니다. 하루속히 나가는 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까닭이 있으리라 믿고 얼마 후에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제게 말할 수 없이 폭행하고 고문하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을 심문하던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긍휼이 마음에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도 자신을 때리고 고문하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내며 쓰러져 있는데 밖에서 간수들이 하는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나는 기독교인들을 이해할 수 없어. 매를 맞고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자꾸 오는지. 더 이상한 것은 우리가 죽이려고 하는데 왜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그는 감방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고문하던 자들과 이란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신의 소리를 다 들은 것입니다. 그때 다른 간수가 말합니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알아. 전에 들은 적이 있어’ 하면서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바우만은 깜짝 놀랐습니다. 

며칠 동안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더욱 놀란 것은 그 중에 세 사람이나 예수를 영접한 것입니다. 그들끼리 복음을 나누며 말합니다. “나도 저 사람과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싶어.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가지고 싶어’ 9주가 지났습니다. 마지막 사형판결을 받는 재판정에 그가 섰습니다.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는데 무혐의로 석방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려와 자기를 포옹하더랍니다. 그때서야 바우만은 하나님이 왜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지 그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하나님을 우러러 보는 눈이 뜨이지 않았더라면 일생에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그는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하나님을 우러러 보기 원하십니다.

다윗은 극심한 어려움 가운데도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탄원하는 기도를 드리며 자신의 상황과 심정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고백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시편 기자는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며 동시에 하나님을 우러러 보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줄을 잡아야 합니다. 삶의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주를 우러러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날개를 타고 하나님을 우러러 보며 그가 주시는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큰일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주를 우러러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를 우러러 보오니,
 
첫째로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18세기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프레이저 (James G. Frazer) 목사 부인은 악처로 유명했습니다. 프레이저 목사는 사택에 돌아오면 그녀가 있는 방으로 가지 않고 곧장 서재로 갔습니다. 아내의 온갖 악담을 들어야 하고 저주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모는 서재의 램프에 기름을 넣지 않고 난로에 석탄도 넣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프레이저 목사는 캄캄한 서재에 있을 수밖에 없었으며, 너무나 추워 손을 앞으로 뻗었다 움추렸다 하며 서재 안을 걸어 다니곤 했답니다. 얼마나 손으로 벽을 쳐댔든지 한쪽이 움푹 패여 있는 것을 그가 죽은 후에 발견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프레이저 목사가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 다른 목사들이 아내 자랑을 하는 것을 듣더니 프레이저 목사도 사모 자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아내는 여러분의 아내보다 나에게 훨씬 더 잘한답니다” 그의 사모가 악처로 소문이 나있었기에 동료 목사들은 의아해하였습니다. 그런데 프레이져 목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내가 하루에 일곱 번씩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듭니다. 그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프레이저는 진심으로 아내에게 감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우러러 보았으며 주께서 그 영혼에 기쁨을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루 24시간 하나님을 우러러 보며 그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영혼의 기쁨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적 위로를 채워 주시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즐겁게 하고 영혼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라는 강력한 고백입니다. 

영혼이 기뻐하려면 하나님을 우러러 보아야 합니다. 기쁨의 삶을 살려면 날마다 주를 찾아야 합니다. 기쁨으로 주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종된 자들의 의무라면 영혼에 기쁨이 충만함은 하나님을 우러러 보는 자들의 특권임을 믿어야 합니다. 주를 우러러 보며 영혼을 보존해 주실 뿐 아니라 영혼의 기쁨이 되어주시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죄악을 사하여 주소서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을 행할 당시 서재에 마귀가 나타났습니다. 종이에 가득 쓴 것을 루터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한참 들여다보던 루터는 맥이 풀렸습니다. 오래 전에 지은 죄를 기록해 놓은 죄의 리스트이었습니다. 뒷면을 보여주는데 거기에 요즈음 지은 죄까지 다 기록해 놓았습니다. 마귀는 비웃는 얼굴로 루터를 향해 “이 기록이 사실이냐?” 라고 물으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죄가 많은 당신이 감히 종교를 개혁한다고? 이 죄 값을 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순간 루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머리를 푹 숙이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루터야, 네 모든 죄를 내 피로 다 씻었다. 너를 정죄할 자는 아무도 없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로마서 8장 1절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루터는 책상에 놓여있던 잉크병을 던지며 외쳤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나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누가 나를 정죄할 것이냐” 그러자 마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러러 볼 때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 

본문 5절입니다.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시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로 인하여 관계가 파괴되기를 원치 아니 하십니다. 죄를 지었을 때 회개치 않으면 고통을 가하십니다. 이는 미워해서가 아니라 돌이켜 회복되기를 원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이든지 자백하며 주를 우러러 보기 원하십니다.

다윗이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토해냈을 때 자유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죄와 허물을 하나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우러러 보며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배드릴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놀라운 사죄의 복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간구에 응답해 주소서

FKM 사장 심재수 집사는 ‘기도가 살면 기업도, 가정도 산다’ 고 주장합니다. 그의 회사는 은행 및 금융권에서 운영 중인 현금수표 자동입출금기를 제조판매 서비스하는 회사입니다. IMF로 부도가 났을 때 심재수 사장은 새벽기도를 붙들었습니다. “떡 속에 가시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축복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망각하고 잘못된 길로 갈까봐 나에게 고통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겸손의 그릇에 떡을 담아야 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다.’ 새벽기도시간에 신명기 31장 20절을 읽는 중 큰 깨달음이 왔습니다.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하나님은 새벽마다 깨달음을 주시며 지혜를 주십니다. 

‘철저하신 하나님, 섬세하신 하나님. 저의 나약한 마음을 미리 아시고 이런 처방을 준비하셨군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위대한 손길을 믿습니다.’ 그 후 공장은 1년 동안 3교대로 24시간 가동했으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가르쳐준 ‘새벽기도 경영원리’였습니다.” 그는 ‘기도가 살면 기업도 산다. 기도가 살면 가정도 산다’ 라고 외치며 새벽기도형 CEO를 꿈꾸고 있습니다. 믿을 것은 오직 기도뿐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루를 새벽기도로 시작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기대할 때마다 지혜의 말씀으로 응답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상황에 아주 적절한 나침판이 되었으며 그러한 기도 응답에 그저 놀라울 뿐이었노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하나님을 우러러 볼 때마다 기도에 은혜롭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던 다윗은 자신의 참담한 상황을 하나님께 부르짖어 고합니다. 그의 기도는 주를 우러러 보는 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가난하고 곤고하며 궁핍한 상태 가운데 있지만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을 우러러 보며 기도의 문을 열었습니다. 극한 어려움 속에 있다 해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철저하게 의뢰하며 우러러 보시기 바랍니다. 탄식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우러러 보는 신뢰의 기도를 한 다윗처럼 기도하여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한 낯선 노인이 예배당에 드나들었습니다. 교회 관리인이 “무슨 일로 날마다 오느냐?” 물었습니다. “기도하러 왔지요” “아니, 기도하는 시간만큼 교회에 있지 않잖아요?” “그래요. 나는 오래 기도할 줄 모른다오. 그래도 날마다 12시만 되면 교회에 와서 ‘예수님, 나요, 나’ 하고 부르고 가지요. 잠간 주를 바라만 보아도 나를 알아주실 것만 같다오.” 얼마 후 노인이 사고를 만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투덜대던 환자들이 변하였습니다. 간호사가 병실을 찾아와 물었습니다. 

“병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 모두 어르신 덕분이라더군요. 항상 즐거우시다면서요?” “그렇고말고. 그것은 나를 찾아오는 사람덕분이라오. 날마다 그가 나를 기쁘게 한단 말이오” “어르신을 찾아오는 사람이라고요?” 간호사는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를 면회하러 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노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날마다 12시만 되면 그분이 와서 빙긋이 웃으시며 ‘여보게 날세, 나 예수라네’ 하지 않겠소.” 

하나님을 우러러 보십니까? 부디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처해 있다 해도 주를 우러러 보는 영혼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를 우러러 볼 때마다 주님이 찾아 오실 것입니다. 주를 우러러 보며 영혼에 기쁨이 더해지시기 바랍니다. 주를 우러러 보며 죄 사함의 은혜가 더해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를 우러러 보기에 기도 응답의 은혜가 날로 더해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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