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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창 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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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창 32:24)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갑자기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을 들은 주님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네게 알게 한 이는 바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으로 하여금 자신의 신적 신분에 대한 것을 정리토록 했습니다.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에서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장 1-2절에 『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Ⅰ. 그리스도가 어떤 사람으로 나타났습니다. 

본문 32장 24절에 『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 어떤 사람 』을 가리켜 야곱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성급한 결론을 내리면 『 어떤 사람 』은 신약에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선지자 호세아는 하나님과 천사를 병행교차해서 사용했습니다. 

호세아 12장 3-4절에 『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의 기업은 샀지만 그 축복이 자신에게로 옮겨오는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그는 외삼촌 집에 가서 20년 동안 품꾼의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자신의 분깃을 챙겨서 20년 만에 고향 땅으로 돌아오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갈수록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감. 점점 흥미를 느끼게 됨. 점차로 잘 되어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언제부터인가 부정적인 뜻으로 널리 속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야곱이 받을 축복의 과정은 겉으로는 부정적 의미에서 점입가경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본래 의미의 갈수록 잘 되어가는 점입가경입니다. 
그는 얍복강을 앞에 두고 그의 가족들과 모든 재산(우양)을 앞에 보내고 자기 혼자 남아 필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본문 32장 24절을 직역하면 "야곱은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날이 새기까지 그와 함께 씨름하고 있었다."로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씨름하는 주체가 한 사람이지 야곱이 아닙니다. 야곱은 한 사람의 씨름 파트너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혼자 있게 한 다음에 기도하게 하십니다. 모세도 호렙산에서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출 3:1-12). 여호수아도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수 5:13-15). 엘리야도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왕상 19:7-14).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마 6:6). 씨름하듯이 기도했습니다. 씨름이라는 뜻은 승리를 목표하고 간절히 하는 강청을 말합니다.

가나안 여자의 기도(마 15:21-28)처럼 포기할 마음을 인내하고 응답받을 때까지 하는 기도입니다. 친구를 위해 강청하는 기도입니다(눅 11:8). 불의한 재판관 앞에 응답될 때까지 매달리는 기도입니다(눅 18:1-7).

그래서 파스칼은 인생이 고난에 빠지는 원인은 고요하지 못한데 있다고 했습니다(박윤선 주석 창세기 p.333).

24절에 『 어떤 사람 』이 25절부터 32절까지는 『 그 사람 』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마침내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엉덩이 뼈가 탈골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동이 트니 나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야곱에게 묻기를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내 이름은 야곱이라고 하자 그 사람이 더 이상 야곱이라고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것이니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그 사람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고 했습니다(창 32:29).

본문 창세기 32장 30절에 『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고 했습니다. 


Ⅱ. 그리스도가 사자 혹은 천사로 나타났습니다. 

창세기 16장 7절에 『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 』라고 했습니다. 
여기 『 여호와의 사자 』는 성육신하기 이전의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 증거로는 ① 하갈이 그를 가리켜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창 16:13). ② 죄인인 인간이 성부 하나님을 볼 수 없고 본 자는 살 수 없습니다(출 19:21-24; 삿 13:22). ③ 제 3위 되신 성령은 단일성을 지닌 불가변적인 존재이므로 사람의 몸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사자의 호칭 기묘奇妙가 그리스도의 호칭과 동일한 점(삿 13:18; 사 9:6)을 감안할 때 여호와의 사자는 신약에 나타나실 제 2위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합니다. 

창세기 48장 16절에 『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 사자 』는 단순히 하나님의 천사가 아니라 아곱이 얍복강에서 씨름할 때 나타났던 그리스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출애굽기 3장 2절에 『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 』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여호와의 사자는 제 2위 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사사기 6장 12절에 『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 』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을 부르실 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는 신약에 나타나실 제 2위 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계시를 완성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는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습니다(히 1:1-2).

열왕기상 19장 5절에 『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 천사 』는 열왕기상 19장 7절에 나오는 여호와의 사자와 동일한 분입니다. 즉 신약에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Ⅲ. 그리스도가 신들의 아들과 같이 나타났습니다. 

다니엘 3장 25절에 『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라고 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로 불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느브갓네살이 본 세 사람은 결박되지 아니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 걸어다녔다고 했습니다. 

주후 2세기 초에 유대계 기독교인 데오도션(Theodotion)의 역본사경에는 이 사람들이 걸어다니며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했습니다. 
본문의 논쟁거리는 느브갓네살이 본 신들의 아들과 같은 넷째 모양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성육신하시기 이전의 그리스도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칼빈(Calvin)을 포함한 다수 학자들은 하나님이 보낸 사자라고만 했습니다. 

박윤선 박사 주석에는 자신의 주장은 기록하지 아니했습니다. 석원태 목사도 누구라고 하는 직언을 피하고 다만 결론 부분에 불꽃 가운데서 ① 살아계신 예수 ② 결박을 풀어주신 예수 ③ 함께 걸어 다니시는 예수 ④ 구원을 주시는 예수 ⑤ 영광을 나타내시는 예수라고만 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라고 하는 자들의 주장은 28절에 그가 사자를 보내사라고 하는 말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9절에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신들이라고 복수를 사용하고 아들은 단수를 사용했습니다. 느브갓네살이 말한 신들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다신 신앙을 소유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다니엘에게 다니엘 2장 47절에 『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다니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그가 풀무불 속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외에 네 번째 모양을 보고 신들의 아들과 같다고 한 것은 냉정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의 모양과는 다른 사람 이를테면 변화산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도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마 17:2).

느브갓네살이 본 네 번째 모양을 확대해석해서는 안되지만 쉽게 해석해서도 안됩니다. 
느브갓네살이 긴장하면서 두려운 가운데 자신의 모사들에게 말한 네 번째 사람의 모양이 신들의 아들과 같다는 그 아들은 곧 신약에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합니다. 

성경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면 의문의 책이 되고 맙니다. 성경은 학문적 가치나 역사적 가치나 역사 속의 경험적 가치를 찾는데 만족하면 안됩니다. 그 이전에 자기 백성들에게 나타내시는 확실한 계시적 가치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느브갓네살을 통하여 자신의 계시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 혹은 천사를 가리켜 신들의 아들과 같다는 표현이 성경에는 없습니다. 
논쟁이 두려워서 신앙적 표현이 위축당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저는 크리소스톰이 주장한 것과 석원태 목사가 본문강해서 결론 부분에 언급한 불꽃 가운데 결박을 풀어 주시고 함께 걸어 다니시는 예수라고 굳게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 3위 중 제 2위 되시는 성자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 3:17; 11:27; 16:16; 27:54; 눅 1:35).


Ⅳ. 그리스도가 인자 같은 이로 나타났습니다. 

"인자"란 예수님의 인간되심을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즉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중에 거하는 신격의 인물임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인자는 인성보다 신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말입니다. 

1) 예수 자신이 인자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 20절에 『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7-28절에 『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64절에 『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8장 31절에 『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6장 22절에 『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8절에 『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27절에 『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53절에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3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도 예수 자신이 자신을 인자라고 한 것은 복음서에 수 없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 다니엘의 환상 중에 나타나신 인자입니다. 

다니엘 7장 13절에 『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라고 했습니다. 

여기 『 인자 같은 이 』는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게할더 보스(G. Vos) 박사는 사복음서 중에 인자라는 말이 81회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화육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입니다. 하늘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64절에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3장 26절에 『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62절에 『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했습니다(계 1:7). 사도 바울은 예수 재림과 함께 성도들이 구름 속으로 끌려 올리움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살전 4:17). 

하늘 공중에 형성되는 물리적인 구름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 구름은 초자연적인 메시야 왕국의 거룩성과 계연성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된다고 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받은 왕권과 심판의 권을 확정하기 위함입니다(단 7:13-14; 마 2:6; 요 5:22,27; 계 5:1-7).

다니엘 10장 5-6절에 『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고 했습니다. 
고레스 왕 3년 정월 이십사일에 다니엘은 큰 강 힛데겔의 강변에서 묵상 중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여기 나타난 사람이 신약에 나타날 제 2위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최후의 만찬 때 빌립은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고 했습니다(요 14:8-9).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화육하시기 전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 1:1-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교회를 두고 약속하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25절에 『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8-29절에 『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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