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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 (왕하 22:1-1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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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 (왕하 22:1-13, 23)

요시야 왕은 8세의 나이에 유다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가 여호와를 찾기 시작한 것은 16세 때였고(대하 34:3) 예루살렘에 있는 우상들을 파괴한 것은 20세였습니다(대하 34:3-4). 

그가 유다 각 지방에 있는 우상들까지 없애는 데는 그로부터 6년이 더 걸렸습니다(대하 34:3-8). 요시야 왕은 어릴 때부터 신앙이 철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의 모친 여디다는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라고 하므로 그의 신앙의 물줄기가 모계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시야 시대의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는 신명기적 사관에 의하여 더욱 빛나고 있습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당시 주변 열강들로부터 정치적, 군사적으로 많은 유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특히 앗수르의 억압적인 속국 통치가 점점 약화되어 갔다는 것을 특징적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약소국가들에게는 일대 전환점의 기회를 가지게 했던 것입니다. 

요시야 시대에 유다가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주변 정세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요시야가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고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 모든 신당을 제거하는 이른 바 종교개혁을 남유다 전역과 북이스라엘까지 확산시킨 결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축복이었습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은 우상숭배에 관련된 기명들과 산당들을 파괴하는가 하면 우상을 가루로 만들어 평민의 묘지에 뿌렸습니다. 계속해서 아세라 목상들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곳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벧엘에 있는 산당을 헐고 묘실의 해골을 취하여 그 단위에 불사르는가 하면 우상과 관계된 사람들을 용서하지 아니했습니다. 

요시야는 모든 것을 율법에 기준하여 완벽하게 시행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중세기 로마 카톨릭의 지배 아래서 죽음을 불사하고 개혁에 착수했던 개혁자들에게 상당한 교훈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종교개혁 495주년을 맞이하여 요시야 왕의 개혁운동의 면면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Ⅰ. 성전 중심의 신앙 운동이었습니다(교회중심).

열왕기하 22장 5-6절에 『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여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에게 주어 전의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되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전을 수리하게 하라 하니라 』고 했습니다. 

요시야 왕의 신앙이 성전 중심의 신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그 백성들의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출애굽기 25장 22절에 『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고 했습니다. 

요시야 왕 18년에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전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백성들이 여호와의 전에 드린 은을 계수하라고 했습니다(22:3-4). 

선대왕 요아스는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 드린 헌물로 퇴락한 성전을 수리하라고 명했습니다. 요시야는 선왕의 행위를 본받아 그대로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요아스 23년에 이르도록 성전을 수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열왕기하 12장 4-6절에 『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무릇 여호와의 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은 곧 사람의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 들여서 전의 어느 곳이든지 퇴락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더니 요아스 왕 이십 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오히려 전의 퇴락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고 했습니다.

성전이 퇴락하는데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심이 식었다는 증거입니다. 요시야 왕의 치세 동안 성전 수축이 활발했고 매년 수리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요시야 왕의 명에 따라 23년 동안 방치했던 성전 수리작업(인테리어, 리모델링)을 하는 중에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열왕기하 22장 8절에 『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고 했습니다.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은 모세 5경 전부였습니다. 이 율법책은 언약궤 옆에 비치해 두었던 성전용 율법책입니다. 

이 책은 제사장들에 의해 수시로 읽혀지던 것입니다(신 31:12,16). 그런데 극악한 므낫세 통치 시대에 누군가가 이 율법책을 보존하기 위해 성전 한 구석에 감추어 두었던 것입니다. 


Ⅱ.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신앙 운동이었습 니다(성경중심).

열왕기하 22장 10-11절에 『 또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왕의 앞에서 읽으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찢으니라 』고 했습니다. 
힐기야가 준 책을 사반이 요시야 왕 앞에서 읽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울며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요시야가 충격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 한 경우에 하나님의 징벌이 임한다는 내용 때문이었습니다(레 26:14-39; 신 28:15-18). 
옷을 찢는다는 것은 슬픔의 극치를 나타내는 행위입니다(왕하 5:7; 수 7:6; 레 10:6; 창 37:29; 민 14:6; 삿 11:35; 삼하 15:32; 에 4:1; 단 9:3; 왕하 5:7; 왕하 6:30; 11:14; 18:37; 19:1; 욥 1:20; 2:12). 

재를 뒤집어쓰는 것(욥 2:8), 얼굴과 가슴을 치는 것(눅 18:13), 정수리의 머리털을 면도해 베어 버리는 것(렘 7:29), 옷을 찢는 것은 회개와 겸손의 의미도 있습니다(왕상 21:27;왕하 22:11; 요일 2:13). 그 외에도 충격을 받을 때(사 36:22)도 옷을 찢습니다. 

따라서 요시야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랍사게가 하나님을 모독할 때 슬픔과 원통함을 다스릴 길이 없어 그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었습니다(왕하 19:1). 

요시야가 율법책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의 현실은 너무도 참담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현실은 거리가 너무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시야는 옷을 찢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시야는 본문 22장 13절에 『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열조가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크도다 』라고 했습니다. 

율법책에서 볼 때 나라와 백성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여호와께 알아보라는 것은 그의 말씀 제일주의의 신앙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요시야 왕은 하나님 말씀 앞에 떠는 사람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범죄, 므낫세 때 내린 유다 멸망의 예언(21: 10-15)은 요시야 왕을 두렵게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없는 것이 인간들이 겪는 패망의 마음입니다. 


Ⅲ. 요시야의 철저한 개혁주의 신앙 운동이었 습니다(신행일치).

개혁주의는 하나님 절대주권주의입니다. 하나님 절대주권주의는 신행일치에서 그 열매를 봅니다. 
1) 요시야 왕이 백성들을 모았습니다(23:1).

2) 백성들이 왕과 함께 했습니다(23:2). 

3) 요시야 왕이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에게 들리게 했습니다(23:2). 

4) 요시야 왕이 백성들 앞서 순종했습니다(23:3). 

5) 백성들이 따랐습니다(23:3). 

6) 요시야 왕이 명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해 만든 모든 기명을 여호와의 전에서 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했습니다(23:4). 

7) 옛날 선왕들이 세운 산당에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고 일월성신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했습니다(23:5). 

8)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평민의 묘에 뿌렸습니다(23:6). 

9)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던 미동(美童 남창)의 집을 헐었습니다(23:7). 

10) 유다 전 지역에 산재한 제사장들이 분향하던 산당과 그 성읍 지도자가 분향하던 산당도 헐었습니다(23:8).

11) 이교도들이 몰록을 위해 아들과 딸들을 불로 지나게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23:10).

12) 유다 왕들의 태양신 숭배를 위해 성전 입구에 있던 태양 수레를 불살랐습니다(23:11).

13) 유다 열왕이 아하스의 다락 지붕에 세운 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세운 단들을 다 헐고 빻아 가루를 내어 기드론 시내에 쏟아버렸습니다(23:12). 

14) 예루살렘 정면에 있는 멸망산에 세운 산당과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해 세웠던 석상을 깨뜨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세라 목상을 찍고 사람의 해골로 그곳을 채웠습니다(23:13-14). 

우상에 대한 원문의 뜻은 ① 똥이라는 뜻이 있습니다(겔 20:3). ② 걱정 슬픔(사 66:3) ③ 공포(레 50:38) ④ 연약함(레 19:4) ⑤ 전율케 하는 것(왕상 15:13) ⑥ 슬픔의 원인(삼상 31:9)의 뜻이 있습니다. 

우상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기 때문에 우상은 철저히 배격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그 언약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면 우상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요시야 왕은 우상을 척결하는데 자신의 모든 의지를 불태웠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시야 왕은 23년 만에 성전 수리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우리교회도 교회설립 23년 만에 교회전반에 걸쳐 리모델링(수리)을 착수했습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도 23년 만에 정착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오늘날 성경 앞에서 옷을 찢는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있는가? 오늘날 교회 중심의 삶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있는가? 

오늘날 자신의 조상들의 죄에 대해서 통회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있는가? 신행일치의 개혁주의 신앙의 과제에 대해 자신을 성찰하는 교인이 있는가? 
종교개혁은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의 종교적인 불만이 쌓여서 이것이 폭발한 것입니다. 

교회가 너무도 썩어 있었기 때문에 올바른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분노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교리적 탈선(doctrinal deviation)의 결과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의 세속화와 교황의 타락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급기야는 교회는 성스러운 성직을 서로 사고팔고 하는 성직매매 행위가 일어났고 성직자들의 부도덕은 교회를 혼탁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교회는 호색과 방자함으로 부도덕의 광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른 바 교황 축첩으로 야기되는 음행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었고 하급 성직자들은 축첩을 묵인하고 방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성스러워야 할 교회는 호색과 방탕으로 가득한 부도덕의 산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다루는데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는 사회적인 원인에서 평범하게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15세기의 유럽은 6천 5백만 내지 8천만의 인구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 60명 이상의 왕들과 왕자들 그리고 대주교들을 포함한 기타 통치자들에 의해서 주요한 권력들이 장악되고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 자본주의가 발생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이른 바 새로운 부르조아 집단이 태동되기 시작했습니다. 중세 봉건제도의 행정체계에 익숙해 있던 교회는 봉건 영주와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교황들은 부의 축적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고 그로 인하여 교회는 탐욕의 화신으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교황들의 도덕적 영향력은 땅에 떨어졌고 인문주의자들을 포함한 개혁가들은 분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 무엇보다도 교황 레오 10세의 면제부 판매에 대한 루터의 봉기였습니다. 

당시의 성베드로 대성당은 막대한 비용으로 벌써 100년 이상이나 공사를 했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레오 10세는 성당 완공 조달비를 위하여 10여년 전부터 면죄부(Indulgence)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면죄부 판매량은 날로 증가해 갔습니다. 처음에는 성당 건축이나 터어키 인에 대항하기 위한 십자군 원정 자금의 조달 명목으로 했으나 이것 또한 실제로는 교황이 자기 것으로 치부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전 유럽토지의 3분의 1은 하나님의 이름 아래 등기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유권이 교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행정 조직을 통해 독일 내 총수입의 5분의 2가 로마로 유출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이것도 부족해서 성직을 가진 자가 로마에서 사망하면 공석 중인 성직에 지명될 경우에는 그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해 첫 수입을 교황에게 바치는 것 등을 제도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성직 매매의 기회는 점차 증가해 갔습니다. 
종교가 타락하면 형식만 남게 되어 있습니다. 타락한 중세 로마 카톨릭은 계급주의적인 제도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을 통하여 종교행위를 강요해 왔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가치관이 세상 사람들과 비슷해졌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개혁의 목표는 뚜렷했습니다. 

1) 원시 기독교를 회복함에 있습니다. 

지극히 성경적인 본래의 신앙과 생활에서 이탈해 버린 중세 로마 카톨릭의 형식화된 의식적 생활에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진 나머지 형식적인 제도(Sacramental system)와 교회적 율법주의(ecclesiastical legalism)와 같은 비복음적인 전통에서 벗어나서 사도적 교회로의 환원운동입니다. 

종교개혁을 통한 신학은 16세기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새로운 신학 운동(A New Theology)도 아닙니다. 
그 신학은 이미 있어 왔으나 오랜 세월 동안 로마 카톨릭의 교권과 비복음적인 인본주의적 전통에서 가리워져 있었던 것을 다시 찾아내는 소박한 피의 운동입니다. 

2) 영적부흥에 있습니다.
 
적어도 종교개혁은 영적 갱신운동(spiritual renewal movement), 혹은 영적 부흥운동(spiritual revival movement)으로서의 개혁운동입니다. 

종교개혁을 교리적 개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종교개혁은 영적 부흥운동에 있으며 오랫동안 경직된 제도 아래서 해방인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영적인 부흥에 대한 갈급함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이 교리적 부흥이 주된 목표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로마 카톨릭이 성경에서 너무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리적 개혁의 시급한 와중에서 상대적으로 영적 부흥에 대한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 것뿐입니다. 

3) 만인 사제직의 쟁취에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목표는 오직 성경(Sola Scriptual),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의 재발견과 함께 만인 사제직의 재발견에 있습니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의 교권자체를 부인한 것이며 사제 주의를 극복한 것입니다. 사제주의는 신부는 하나님께 대하여는 신자의 영혼을 책임지고 신자에게 대하여는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한다는 그릇된 가르침을 극복한 것입니다. 

개혁자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1) 종교개혁은 성경의 근본 사상으로의 환원이라는 대업적을 남겼습니다. 

(2) 우상화와 의식화한 예배를 성경중심으로 환원했다는 것입니다. 
일반 대중이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를 사용치 않고 그 나라 대중어로 설교를 하였다는 것은 예배의 큰 혁신이었습니다. 

(3) 전체주의 신앙에서 개인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으며 개인 각자가 직접 하나님과 자유로운 신앙의 교제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 종교개혁이 경제계에 미친 영향은 봉건주의의 몰락으로 중산계급이 부흥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학문 장려와 인문주의 개혁으로 일반적 지식이 발달하여 새로운 문화의 발달을 가져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의 발달로 자본주의를 형성하였고 각종 공업이 발달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종교전쟁과 교파분립이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파분립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이지 사람들이 평가할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신앙과 신학의 명분이 뚜렷한 교파 분열은 예수님이 친히 하신 일이라고 할 때 아니요 할 자 없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진리문제 때문에 야기되는 분파나 분열은 언제나 옹호되어야 하고 여기에 대한 평가가 왜곡되어서는 안됩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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