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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예수님의 은혜 (롬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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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은혜  (롬 5:1-11)


1. 하나님은 최고의 미술가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다 아름답지만, 가을의 산하는 더 아름답습니다. 설악산 단풍 여행을 가지 못해도, 팔공산 단풍 구경을 하지 못했어도, 우리교회 앞, 가로수에 울긋불긋 물든 나뭇잎, 샛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보십시오.(사진1제시) 하중도의 아름다운 코스모스를 보십시오(사진2제시). 저 감나무에 주렁주얼 달린 감을 보십시오.(사진3제시) 하나님은 최고의 미술가이십니다. 자연이란 캔버스에 그린 한 폭의 수채화로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십니다. 

2. 예수님의 은혜

이 가을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뿐 아니라, 오늘 이 은혜의 자리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게 하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같이 연약한 사람, 자주 실수하는 사람, 욕심이 많은 사람, 허물이 많은 사람, 죄 많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 나의 모든 허물과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 주님의 은혜로 용서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실수할 때마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를 위하여 피 흘려 죽었노라. 내가 너의 허물을 다 담당하였노라” 하시며,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고,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관계없이 우리는 매일, 매순간 예수님의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그가 받은 예수님의 은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3-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 은혜를 받았지 않습니까? 

3. 은혜의 샘이 됩시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은혜가 메마르면, 신앙 따로, 생활 따로...... 신앙과 생활의 괴리가 생깁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495주년 기념주일입니다. 1517년 10월31일 독일의 비텐베르그 교회의 담임목사였던 마틴 루터는 자기가 시무하는 교회 문 앞에 교황청에 반대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써 붙이면서부터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95개조 반박문은 교황청에서 판매하는 면죄부가 비성경적이며, 잘못된 것임을 강하게 반박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교황 레오10세는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면죄부를 발급하였습니다. 돈을 내면, 그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는 것이 면죄부입니다. 심지어, 연옥에 가 있는 영혼들에게도 면죄부는 영향력을 미치는데, 헌금궤에 돈이 땡그랑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95개조 반박문 중에 두 개만 봅시다.
76번: 우리의 주장은 정반대로 교황의 면죄부는 아무리 하찮은 죄라도 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86번: 오늘날 최고의 부자였던 크라수스(Crassus)보다도 훨씬 부자인 교황이 가난한 신자들의 돈으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돈으로 이 성 베드로 사원을 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중세교회에는 예수님의 은혜의 샘이 말랐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죄 용서받고, 구원받는다는 성경의 진리가 교회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하고, 헌금을 많이 해야 하고, 고행을 해야 구원받는다는 잘못된 교리가 교회를 끝 모를 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착하게 살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복음을 위하여 헌금도 합니다. 그러나, 구원받기 위해 이런 것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구원받은 성도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것이 선행이요 봉사요 헌금입니다. 

루터와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이 외친 중요한 모토(motto) 네 가지가 있습니다.
① 오직 성경!- 교황의 칙서나 성직자의 말이나 교회의 전통보다도 성경이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종교개혁의 중요한 슬로건입니다. 
②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어떤 성인이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중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는 용서받았고, 하나님과 화목되었습니다. 

③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다함을 인정받습니다. 선행이나 공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습니다. 
④ 오직 하나님께 영광!- 교황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은 그 누구도 영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봉사하고, 희생하였다 할지라도, 자기의 이름을 과시하면 안됩니다. 인기를 얻기 위해서, 자기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하면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 네 가지 모토를 종합하면, “오직 예수님의 은혜” 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 목숨을 버려주신 예수님의 은혜가 늘 새롭게 우리 속에서 흘러나오기를 원합니다. 

요즘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것은 교회에, 더 구체적으로는 성도 개개인에게서 예수님의 은혜의 샘이 메말라버렸다는 반증입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솟아나는 샘구멍을 명예, 인기, 물질, 권력이 막아버렸습니다. 얼마나 가슴아픈지요?

한국교회를 회복하는 길은 단순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면서 누구를 비난하고 정죄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내 안에서 예수님의 은혜의 샘물이 계속 솟아나오면 됩니다. 
성전에서 스며나오는 물이 강물이 되어 온 땅과 바다를 살아나게 하였듯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은혜의 샘물이 우리교회를 부흥시키고, 우리 도시를 살리고, 우리나라를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의 샘이 됩시다. 은혜의 샘이 됩시다. 

4. 은혜받은 성도의 삶

예수님의 은혜를 날마다 받고 있는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은혜받은 성도의 삶을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말씀합니다. 
첫째, 화평을 누리십시오.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성경에서 화평이란 단어는 그 의미가 우리가 생각하는 국어사전적 의미보다 훨씬 크고 넓고 깊습니다. 히브리어로 “샬롬”이라고 하는 화평은 조화, 안전, 번영, 풍요, 마음의 평안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안전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잘 이룹니다. 마음이 평안합니다. 잘 됩니다. 번성합니다. 이런 화평의 복을 우리가 이미 받았습니다. 누리십시오. 

둘째, 즐거워하십시오. 
2절 “또한 그(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은혜로 인도하십니다. “이 은혜”란, 화평을 누리는 은혜입니다. 화평의 은혜를 누리는 성도는 당연히 즐거워합니다. 
잘 되고 있는데, 즐겁지 않습니까? 
번영하는데 즐겁지 않습니까?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데 기쁘지 않습니까? 

그러나, 때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환난을 당합니다.
3-4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난의 원어적인 의미는 억누르는 것들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억누르는 것들이 있습니까? 그래도 즐거워하십시오. 환난은 인내를 이루고, 인내는 연단(어려움을 잘 이겨내는 성품)을 이루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이것입니다. 
인내, 연단, 소망. 그러므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5절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 “부은 바 되었다”는 동사의 시제는 현재완료형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사랑이 한 번 부어짐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 사랑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계속 부어지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죄인을 사랑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 뿐입니다. 이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날마다, 매순간 부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죄인인 나를 위하여 흘리신 피로 나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즐거워하십시오. 

5.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늘 본문 말씀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1절) 입니다. 2절 “그로 말미암아”, 9절 “그(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10절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11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같이 못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화평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날마다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만 예수님의 은혜를 누리렵니까?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요, 평신도 신학자였던 쟈크 엘룰(Jacques Ellul)은 “교회는 진정 성자들의 호텔이 아니라, 병자들의 병원이어야만 한다”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님 주시는 화평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합시다. 
플러스 원! 
한 사람이라도 더 주님 앞에 나와, 
예수님의 은혜를 받고, 
고침 받고, 
구원 얻도록 합시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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