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피차 복종하라’의 두 번째 의미 (엡 6:1-4)

첨부 1


‘피차 복종하라’의 두 번째 의미 (엡 6:1-4)


사이가 좋지 않은 집사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늘 다투며 화목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싸우기 위해 사는 가정과 같았습니다. 어느 수요일 저녁에 남편 혼자 저녁 예배에 참석하고 오더니 아내에게 잘해 주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와서 잘해 주는 남편을 보고 아내는 ‘당신 오늘 웬일이유?’ 하고 물었습니다. “오늘 예배 때에 목사님이 ‘사랑하라’고 설교하셨어”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목사님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설교하셨구나 생각을 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교회에 갈 일이 있어서 교회에 가서 목사님을 만나자 ‘목사님, 어제 저녁에 아내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설교하셨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아니요.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설교 했는데요’ 라고 말했습니다.   
 
지난주에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부부가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나눴습니다. 남편이 아내로부터 받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존경’입니다.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받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사랑’입니다. 부부의 사랑을 위해 서로 노력하며 한 주간을 사셨습니까? 수십 년간 해 오던 언어와 행동의 습관이 한 번에 쉽게 바뀔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부부가 서로 노력하는 가운데 행복한 부부의 모습으로 가정을 복되게 만들어 나가기 바랍니다. 
 
오늘도 21절의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오늘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을 다시 한 번 짚어보면 ‘피차’라는 단어는 ‘수평적인 개념’입니다. 반면에 ‘복종’이라는 ‘수직적인 개념입니다’ 상반되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피차 복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복종이라는 헬라어의 의미를 이해할 때 ‘피차 복종하라’는 뜻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복종이라는 헬라어의 뜻은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여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피차 복종하라’는 말은 ‘서로 상대방을 존중히 여기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긍정적으로 들으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복종은 힘의 논리로 말하는 세상의 복종의 개념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존중히 여기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있어서도 서로를 존중히 여기며 ‘피차 복종’하는 인격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공경함으로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라는 말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순종이라는 단어가 21절 나오는 복종이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낮은 자세로 귀를 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부모의 말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녀보다 힘이 있고, 자녀보다 아는 것이 많고, 세상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보다 힘이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세상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어도 부모님이기 때문에 존중히 여기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바른 본을 보이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을 뿐 아니라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에게도 순종했습니다. 누가복음 2장 51절에 보면 ‘예수께서 함께 내려 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예수님께서 육신이 부모님인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종하여 받들어 섬겼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님이지만 그들 또한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아야 할 구원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육신의 부모님인 요셉과 마리아에게 순종하며 받들어 섬겼습니다. 즉 순종은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힘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공하고 성공하지 못한 문제가 아닙니다. 유식하고 무식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님이기에 그 자체로 이미 존경을 해야 할 대상입니다. 
 
본문 2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공경하라’이라는 단어가 헬라어의 의미로는 ‘높이 평가하다 가치를 둔, 존경하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우리 몸의 ‘간’을 뜻하는 단어와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은 우리 내장 중에서 가장 무거운 것입니다. 즉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바로 내 몸에 없어서는 안 되는 간처럼 소중하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없으면 부모에게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꼭 지켜야 할 10 가지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십계명이라고 합니다. 1계명에서부터 4계명까지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내용입니다. 5계명에서부터 10계명까지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내용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계명 가운데 첫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축복의 약속이 있는 첫 번째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부모에게는 잘 못해도 자녀에게 지극 정성을 쏟으면 그 자녀가 나중에 자기에게 효도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어떻게 되든지 나 몰라라 하고 그저 자녀만 위하고 자녀에게 지극 정성을 다 쏟습니다. 
 
요즘의 세태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들집에 살던 할아버지 한분이 더 이상 집에서 살지 못하겠다고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집을 나가면서 아들 앞으로 메모 한 장 남겨놓았습니다.  그 메모장에는 이렇게 쓰였다고 합니다. ‘3번아! 5번은 간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나중에 알아보니까 그 집에서 중요한 사람 순서라는 것입니다. 1번은-손자라는 것입니다. 손자가 그 집의 왕입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없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습니다. 가정의 가장 위는 손자, 손녀입니다. 2번-며느리, 3번-아들,  4번-강아지, 5번-할아버지, 할머니입니다. 그래서 집을 나가면서 ‘3번아! 5번은 간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자녀가 왕입니다. 그렇게 자녀를 왕처럼 대하며 그 자녀를 위해 지극정성을 쏟으면 그 자녀가 나중에 은혜를 알고 효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불효를 심고서 효도를 거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가정의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의 사랑입니다. 부부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살지 못하면 부모님에게도 아픔이 되고 자녀에게도 상처가 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는 모두가 소중하지만 가정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부모에게 잘해야 합니다. 자녀가 우선이 되면 가족의 질서가 깨어지고 어른을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너집니다.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절대로 자녀에게 손해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뒷전으로 하고 자녀를 위하면 결국 자녀들의 가족에 대한 생각이 왜곡되어 진정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없습니다. 
 
50대를 사는 세대들이 참으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녀들을 양육하랴, 자신들의 노후를 걱정하랴, 부모님들이 생존해 계시다면 연세가 80, 90 세가 되었는데 그 분들을 섬기랴 정말 힘겨운 모습입니다. 부모에게 효를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경제적인 투자는 미래를 위해 자녀들에게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맘껏 경제적인 지원을 해 드릴 수 없을지라도 마음과 정성은 부모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효를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그러기에 축복의 약속의 첫 번째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 두셨습니다. 행복한 교회 모든 가정마다 부모님에게 효를 다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된 자리에 세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복종하는 내용입니다. 4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는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에 우리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자녀들로 하여금 분노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부모로 인해 분노한다면 어떤 경우에 그렇겠습니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키우면서 많이 참고 삽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자녀들도 부모들을 보면서 많이 참고 삽니다. 

모르는 것 같아도 부모들의 허물을 다 알고 있습니다. 말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다 보면서 생각하며 삽니다. 그러면서 제발 엄마, 아빠가 싸우지 말고 잘살아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 알고 있지만 말을 못하고 참고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로 인해 분노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부모로부터 무시당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격이나 존재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파트리아 포테스타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라틴말인데 '아버지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옛날 로마 시대에는 아버지의 권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죽이고 살리는, 노예로 팔고 사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의 발밑에 갔다 놓았습니다. 아버지가 안아주면 사는 것이고 밟으면 죽는 것입니다. 팔면 노예가 되는 것이고 거두어주면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가정의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력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복종을 해야 합니다. 힘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에서는 인격적인 만남이 없습니다. 
 
오늘의 가정에서 로마 시대와 같은 의식을 가지고 가정을 지배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소유처럼 생각합니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따라야 합니다. 인격적인 만남과 대화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면 폭력이 일어납니다. 어머니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폭언이 쏟아집니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처럼 생각하는 가정에서는 부모의 생각과 결정은 절대적입니다. 그런 부모는 자녀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요구합니다. 부모가 원하는 대로 진행이 되면 가정이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뜻에 반하면 그 때는 분위기가 험악해 집니다. 부모가 자녀를 내 소유라고 생각하면 절대로 인격적인 관계로 대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부모님을 생각할 때 어떤 추억이 많이 남습니까? 아버지를 생각해 보면 아버지와 즐거웠던 추억이 많이 생각납니까? 아니면 좋지 않은 추억이 많이 생각납니까? 어머니를 생각해 보면 즐거웠던 추억이 많이 생각납니까? 좋지 않은 추억이 많이 생각납니까? 다시 한 가지 더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을 생각할 때 아름다운 추억을 더 많이 생각하겠습니까? 좋지 않은 추억을 더 많이 생각하겠습니까? 
 
부모님과 좋지 않은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자녀들과 좋지 않은 추억을 만들 확률이 훨씬 많습니다. 달리 말하면 부모와 행복한 관계를 맺으며 산 자녀는 자신의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많고 부모와 불행한 관계를 가지며 산 사람은 자신의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는 부모는 절대로 자녀와 인격적인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지시하든지 참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지배하든지 포기하든지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삶의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한 쪽이 옳고 한 쪽이 그른 쪽이 나옵니다. 서로 편한 상태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도 어린 자녀를 한 인격체로 여길 수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으면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으면 ‘피차 복종’할 수 없습니다. 부모와 자녀 부분은 다음 주에 한 번 더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한 주 동안 부모와 자녀가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한 인격체로 대하며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가운데 복된 가정을 만들어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