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주님의 손을 굳게 잡으라 (히 6:4-20)

첨부 1


주님의 손을 굳게 잡으라 (히 6:4-20)

오늘 본문은 매우 무겁게 시작합니다. 설교 준비도 무거웠습니다.
몸도 힘들었고, 영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아픔을 경험하였습니다. 영적 공격도 겪은 것 같습니다.  

오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던 사람이 다시 타락하여 그 구원을 잃어 버릴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대단히 민감한 문제입니다.
설교가 좀 무거울 것 같습니다. 더 집중하며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히브리서 본문에 의하면 구원받은 자라도 타락하여 구원을 잃어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새롭게 해서 회개에 이르게 할 수 없다” 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당연히 그렇지, 하는 마음보다는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속죄함을 받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누구도 구원받지 못하는 이가 없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왜 배교자가 생기며 배교한 자는 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질문 때문입니다. 

본문은 대답합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금 십자가에 못박고 욕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를 향하여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기도하셨지 않습니까? “원수도 사랑하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탕자를 받아준 아버지 이야기도 하셨고, 음탕한 고멜을 받아준 호세아 선지자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무엇 보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서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을 믿었다가 타락한 자는 새롭게 회개할 수 없다고 하십니까?

그런데 본문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그들을 새롭게 해서 회개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받아주시지 않겠다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받아 주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우의 예를 들면 남의 남자에게 가버린 여인입니다. 그녀에게 이제 다른 남자가 있는 것입니다. 받아주고 싶어도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군목 시절, 월북한 병사가 있었습니다. 이해가 안되는 일이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습ㄴ다. 그런데 올라갈 때는 마음대로 올라 갈 수 있으나 마음대로 내려 올 수 없는 것입니다. 받아 주고 싶어도 받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보호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 사는 사람만이 누리는 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왜 마귀의 유혹에서 보호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아담과 하와의 마음이 하나님을 권위를 거부하고 마귀에게로 기울어 하나님의 손을 뿌리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셨습니까? 그러나 가인이 하나님의 손을 뿌리쳤습니다. 롯의 아내도 하나님이 다 구원해 놓으신 순간에 하나님의 손을 뿌리침으로 망한 것입니다.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면 주님도 어떻게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분명히 하고 살아야 합니다. 돈도 중요하고 명예나 성공도 중요하고, 편안하게 살고 대접받고 살고, 품위를 지키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9절에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더 좋은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고 계십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중요한 줄 알아야 고난도 핍박도 유혹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돈이 중요한 사람은 돈벌려고 고생도 하고 성공하려는 사람이 비굴해지기도 하지 않습니까? 구원이 중요한 것을 알면 고난이 문제겠습니까? 

10절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더 좋은 것들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10절 “하나님은 불의하신 분이 아니므로 여러분의 행위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성도들을 섬겼으며, 또 지금도 섬기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에게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행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입니다. 예를 들어 성도들을 섬기는 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다 이와같이 생활이 변한 자가 됩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말입니다. 누구나 알게 됩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변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그 열성이 한결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1절 “여러분 각 사람은 같은 열성을 끝까지 나타내서, 소망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12절에서 영적인 게으름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12절 “여러분은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게으른 사람이 왜 문제입니까? 마음이 변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압니다. 마음이 변하면 상대방을 대하는 열성이 달라집니다. 영혼 사냥꾼인 마귀에게 사로잡혔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 안에 역사하는 마귀의 미혹도 대단합니다.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런데 한번 예수님을 믿었다가 다시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이 얼마나 큰 미혹에 사로잡히는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까요?
가룟 유다가 마귀가 주는 생각에 시달릴 때까지만 해도 주님께서 그렇게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을 뿌리치고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 버린 다음에는 주님도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은 후에 한결같은 열심과 ‘믿음과 인내’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13-17절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13-16절까지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고 복을 줄 것이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약속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늙도록 자식이 없었는데 젊어서도 못 낳은 자식을 늙어서 낳는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맹세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보다 큰 이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니 아브라함이 믿고 인내하며 기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마귀와 저주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맹세하셨습니다. 

17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상속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욱 환히 나타내 보이시려고 맹세로써 보증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 증거입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하신 것은 핍박이 오고 고난이 오고, 유혹이 올 때,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큰 위로를 받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8절 “이는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세상에서 피하여 나온 사람들인 우리가, 이 두 가지 변할 수 없는 사실 곧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를 의지하여 큰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소망은 영혼의 닻과 같습니다. 

19절 “그것은 안전하고 확실한 영혼의 닻과 같아서” 

닻은 보지 못하는 바다 속 깊이에 내려져 큰 배라도 파도나 조류에 흘러 내려가지 않도록 붙잡아 줍니다.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가 고난 당하는 성도들에게 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어서 하늘 성소의 비밀을 열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19절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20 예수께서는 앞서서 달려가신 분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거기에 들어가셔서,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여기서 휘장 안은 지성소를 말하는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하늘로부터 땅까지 찢어졌고, 예수님께서 하늘의 성소 안에 들어가셨습니다.

20절에서 이 사실을 말씀하면서 ‘예수께서는 앞서서 달려가신 분’ 이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가셨다는 것은 뒤따르는 이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 저와 여러분입니다. 

또 “ ...우리를 위하여 거기에 들어가셔서”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신 것은 예수님만 들어가시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그 성소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들어가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완벽하게 우리를 구원하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 나태하여져서 마음에 마귀의 역사를 분별없이 받아들여도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 때문에 우리가 보호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변하면 이 모든 것이 다 소용이 없게 되어 버립니다.

롬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안타깝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믿었다가 타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픔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이야기를 할 때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행위가 문제야!”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투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예수 믿어도 지옥갈 수 있어!” 협박 투로 말해서도 안될 말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지옥에 보낼까 우리를 노려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분입니다. 극심한 고통을 겪으시는 분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배교자도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저주까지 했습니다. 
본문 말씀을 있는대로 적용하자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회복되었습니다.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 두려움 때문이었지 마음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다시 만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실 때, 베드로는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무엇을 아신다는 말입니까? 아시는 것은 부인했다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믿었습니다. ‘주님은 나의 마음을 아신다.’
주님은 어떻게 해서든지 돌아오게 하시는 분이시지 버리려는 분이 아닙니다.

이번 주간 두 가지 의미있는 사건으로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번 주간에 꿈을 꾸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인 권사님 한 분이 한 학생에게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도 말썽을 부리고 힘들게 하니,‘너는 교회 나오지마!’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권사님을 만나보니‘목사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그랬어요.’하셨습니다. 큰 소리를 쳤습니다.“아니예요. 절대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다 힘든 것이 낫지 그런 일은 있으면 안됩니다.”그러다가. 잠에서 깨고 꿈인 줄 알면서도 한동안 잠이 들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지영이 이스라엘과 터키, 성지순례. 젊은이교회 한 자매, 내전 중인 레바논에 정탐여행 중 몸이 대단히 아파서 병원에 급히 입원, 매우 불안한 상태, 갔다 오너라, 그 자매를 데려 오너라, 
하나님의 마음, 결코 버리지 않으리라

지난 금요일 다음 세대를 위한 집회 때, 다니엘김 선교사님이 필리핀 집회 때 겪은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40여 명 한국 학생, 100여 명의 필리핀 학생들 연합집회가 있었는데, 필리핀 학생들은 마음을 열고 은혜를 충만히 받았으나 한국 학생들은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아 영적으로 너무나 답답하였답니다. 3박4일 집회가 마치던 날, 마지막 점심식사를 하는데,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고3 학생이 혼자 밥을 먹는데 가서 앉아 말을 걸었답니다.“너도 많이 힘들었겠다. 3박4일 동안 마음을 열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겠니. 끝까지 있어준 것만도 감사하다. 잘가라!”하고 일어나는데, 그 학생이 불쑥 말을 걸더랍니다.“근데요 질문하나 해도 돼요?“그래, 말해 봐.”“은혜받고 싶은데 안되는 것을 어떻게 해요. 믿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해요?” 믿어지지 않는 말을 듣고 그에게 다시 가서 말했답니다.“그런 마음이 있으면 돼, 하나님께서 이미 역사하고 계신 거야.”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답니다. 그 시간 눈물로 영접하였고, 애인도 데리고 와“얘에게도 나에게 한 것처럼 해 줘요.”하여 그 자매도 예수님을 영접하였답니다.
마음을 열면 주님은 책임져 주십니다.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가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 마음을 열면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저도 마음을 주님께 드린 후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전에는 안되던 것이 되고 좋던 것이 싫어지고 말씀대로 살아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드립니까? 마음을 꺼내 드립니까? 항상 주님을 마음에 품었을 뿐입니다. 마음이 있으면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지켜주십니다.
마음을 드리는 것이 행위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일 뿐입니다.

방선기 목사, 순복음교회가 대단히 부흥할 때, 호기심 때문에 순복음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러 간 적이 있었답니다.“내가 순복음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보니깐 많은 분들이 30분 전에 와서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일찍 교회에 가면 주보를 보든지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데 나와는 달랐다. 그때 생각하기를 내가 설교해도 은혜 받겠구나라고 생각하였다.” 

마귀는 자꾸 우리 마음에 역사하여 우리 마음에서 주님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마음을 내어주면 안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뿌리치면 하나님도 어떻게 하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였으니 24 시간 주를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내어주면 주인 자리를 내어 준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합니다.
(유기성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