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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냉소적인 마음을 경계하라 (말 2: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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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적인 마음을 경계하라 (말 2:17-3:6)


서론 

우리 속담 중에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속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편안한 자리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하는 말은 그 사람 마음속 진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 12:34). 

사람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는 그 사람이 평소에 하고 다니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말라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 근원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에서는 미워하시고 야곱을 사랑해서 택해주셨는데도 불구하고 택함 받은 은혜에 대해서 감사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에서가 더 훌륭해도 택하지 아니하고 야곱은 사기꾼 같아도 내가 너를 택하지 않았느냐? 택함의 은혜를 주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택한 것이 뭐가 중요합니까? 택함 받은 것이 뭐가 좋은 겁니까?”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여러 가지 폐단이 일어났습니다. 

첫째, 제사장들이 부패하고 예배가 부패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실 제물을 드렸습니다. 둘째, 그들의 가정생활이 파괴되었습니다. 이방인의 딸을 아내로 취하여 조강지처를 학대하며 이혼하고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가정생활이 피폐해졌습니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냉소적이 되었습니다. 냉소적이라는 것은 영어로 Cynical, 하나님을 향해서 비꼬고 빈정대는 그런 마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생각하면 일단 삐딱해집니다. 마음이 삐딱하니까 말도 삐딱한 말들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냉소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언어도 냉소적인 말입니다. 오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냉소적인 말을 생각해보고 그 말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대답을 하셨는가? 이것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Ⅰ. 냉소적인 말의 의미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말 2:17).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형통한 것을 보고 신앙적인 회의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기뻐하는 하나님인가? 하나님은 악인을 선하게 보시는 하나님이신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공의롭지 않은 하나님이신가? 도대체 공의로운 하나님은 어디 있는가?” 하나님을 향해서 거침없이 빈정거리고 냉소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도 성전 안에서 제사를 지내는 엄숙한 순간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행동도 조심하고 말도 조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을 벗어나서 평안한 자리에서 기록과 녹음이 되지 않고 모든 방어벽을 내려놓았을 때 불평을 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는 말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진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과연 공의로운 통치자이신가를 의심한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솔직히 악인들이 형통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때로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똑바로 통치하시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던 사람이 성경에 한 사람 더 있습니다. 그 사람은 시편 73편을 기록한 다윗 시대 성가대장 아삽이라는 사람입니다. 아삽이 성가대장으로 충성스럽게 봉사했는데 하나님이 아침마다 때리고 온종일 때리는 것입니다. 온종일 징책하는 것입니다. 

성가대장인 아삽은 매일 때리시는데 악인들은 소득도 많고 얼굴에 기름도 흐르고 장수하는 것입니다. 아삽이 자기는 성가대장으로 봉사해도 매일 혼이 나고 악인들은 잘되고 형통하고 건강하고 부자가 되니 아삽의 마음속에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 지금 똑바로 하시는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지식이 있으십니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아삽이 차마 그렇게 말은 못했습니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시 73:15). 

아삽은 속으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에 대한 의문이 많았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자기가 모르는 것도 있고 오해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말을 함부로 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속에 있는 냉소적인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그런 점이 다른 것입니다. 

둘째로 다른 점은 아삽이 마음속에 가진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성전에 가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이 응답을 해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아삽아 내가 지금은 잠자는 것 같지만 깨는 날이 올 것이다. 내가 깨면 악인들은 졸지에 황폐되고 놀람으로 전멸할 것이니라. 악인들이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아도 미끄러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니라.” 

악인들의 길은 미끄러운 길입니다. 넘어지면 졸지에 황폐하고 놀람으로 전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삽한테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종일 때리지만 죽이려고 때리는 것은 아니다. 너는 바로 잡으려고 때리는 것이고 네가 수고한 일에 대해서는 내가 깨면 다 상을 줄 것이다. 내가 너를 천국에서 영접하고 상을 줄 것이다.” 그래서 아삽은 기도 응답을 받고 시편 73편 마지막은 성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 찬양의 언어가 된 것입니다.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속에 의문이 있어도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냥 냉소적인 마음을 갖고 냉소적인 말을 마음껏 쏟아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36). 

무익한 말, 냉소적인 말들은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이고 이런 말들은 결국은 심문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에게 전도하면 교회 나오기 싫다고 합니다. 또 예수 믿기 싫다고 합니다.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면 “하나님이 진실로 살아 계시다면 왜 이 세상에서 악인들이 잘 됩니까? 왜 이렇게 이 세상에 악인들이 많습니까? 왜 이 세상에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일어나고 질병이 일어나도 하나님이 가만 계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교회 안에는 왜 그렇게 악이 많습니까? 

세습하는 교회, 분열되어 싸우는 교회, 윤리가 타락한 목회자, 남의 돈 떼어먹는 성도들,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운 통치를 한다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 믿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위대한 종교개혁가인 존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공의롭게 악인을 심판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사람은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을 생각해봐야 된다.” 하나님이 공의롭게 심판하시면 나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설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이 만약 공의만 갖고 와서 심판하시면 여러분 중에 누가 하나님 공의 앞에 서서 “나는 공의로만 심판하셔도 통과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죄 지은 것은 벼락을 10번 맞아도 싼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죄인 아닙니까? 하나님이 공의롭게 재판하시면 우리가 하나님 공의 앞에 설 수 있습니까? 왜 나는 빼고 남들만 하나님이 공의롭게 재판하라고 합니까? 

그러므로 칼빈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원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검토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Self-examination” 자기 자신에 대한 검토가 결여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지금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Long-suffering”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인간의 악한 마음과 악한 말이 하나님을 괴롭게 하여도 하나님은 그 고통을 오래 견뎌내시고 참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경험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믿고 나서 보니 하나님이 나 같이 나쁜 놈, 죄인 중의 괴수를 죽이지 않고 살리신 것은 하나님이 참으로 나에 대해서 오래 참으신 은혜였구나라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 1:16). 

하나님이 자기에게 오래 참아 주셨다는 것을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에 악인이 많아도 그런 악인까지도 오래 참아주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로운 하나님인가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지만 결국 악인을 심판할 날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해서 항상 감사하고 찬양하는 마음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문이 생긴다고 냉소적인 마음을 가질 것인가? 우리는 결정을 해야 됩니다. 모르는 것이 있어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관하여 무관심하게 하는 말, 그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Ⅱ. 백성들의 말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 세 가지 

백성들은 “공의의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라고 물었고 하나님은 대답을 세 가지로 하셨습니다. 첫째, 말라기 3장 1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 3:1). 

내가 내 사자를 먼저 보내어 갈 길을 예비하게 하겠다. 내가 그냥 가면 너희도 똑같은 악인이기 때문에 다 심판할 것이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내 사자가 미리 가서 내가 갈 길을 준비할 것이다. 

이 예언은 말라기 시대로부터 460년 지난 침례 요한에 의해서 실현되었습니다. 침례 요한이 와서 예수님 오시는 길을 준비했습니다. 침례 요한의 메시지는 “회개하라. 도끼가 나무에 놓여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라.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나는 메시야가 아니니 내 뒤에 오실 메시야 그분이 너희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주고 그분이 너희에게 구원을 줄 것이다.” 

나는 그분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데 그분을 맞이할 준비는 너희도 똑같은 악인들이니까 회개하고 물 침례를 먼저 받으라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은 자기 백성, 언약의 백성보고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도 똑같은 악인들이니까 하나님을 어찌 그냥 맞이하려느냐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고 메시야를 기다려라.” 이렇게 선포했던 것입니다. 

둘째, 침례 요한이 앞길을 예비하면 너희의 구하는 주님이 홀연히 오셔서 그 분이 성전에 서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분은 언약의 사자이며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실현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약의 주가 오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자기들을 구원해주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유대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말 3:5). 

만군의 여호와가 주로 오시는데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로마 사람들을 심판하고 우리를 건져주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언약의 주가 오셔서 로마 사람들은 두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도 외식하는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일곱 번씩이나 ‘화있을진저’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의의 하나님 어디계십니까? 오십시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AD 70년 로마 장군 타이터스가 와서 100만명 이상을 죽였습니다. 100만명 이상이 죽고 성전도 완전히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진 백성이 되었습니다. 나라가 망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공의를 갖고 오시면 심판이 먼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벧전 4:17).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먼저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불신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내 사자가 먼저 가서 갈 길 예비하면 내가 가서 너희의 죄악을 심판한다는 말씀입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심판하는 것으로 끝입니까? 아닙니다. 

셋째, 심판은 심판 자체로서 의미가 아니라 연단이요, 그것은 잿물로 표백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연단을 통해서 정금이 나오고 잿물로 표백해서 깨끗한 옷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 3:2~3). 예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신 후 거기서 정금 같은 것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정금 같은 것이 무엇인가요?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신약 교회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신약 교회는 정금입니다. 불로 금을 연단하는 것은 금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찌꺼기를 제하고 심판하지만 정금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사자가 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정금을 끄집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판을 받았지만 그로부터 신약교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분리 작업을 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분리하는 심판의 과정이 있어야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금같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이단이 많습니다. 자기가 어머니 하나님이라는 이상한 인간들도 있고 자기가 무슨 하나님 음성을 맨날 듣는다는 이상한 사람들도 있고 신비주의자도 있고 종교 다원주의자도 있습니다. 다 예수 믿는다고 구원받느냐 딴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이상한 인간들도 있고 교권주의자도 있고 목사가 되서 맨 정치만 하고 이상한 짓만 하고 탐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성도들은 외칩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의 대답하십니다. 그것이 내가 지금 심판하는 것이다. 그걸 통해서 가짜들 걸러내는 중이다. 이단에 넘어가는 사람은 애당초 하나님 백성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역사하는 이유는 그것이 연단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있어야 가짜들은 따라 나가고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금처럼 남게 되는 것입니다. 


Ⅲ. 하나님 섭리의 위대한 원리 

하나님이 이 과정 중에서 섭리하시는 위대한 원리를 6절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말 3:6). 이 세상이 항상 악에 빠져도 하나님은 항상 참된 교회를 살려놓으셨습니다. 노아 시대에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악에 빠집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홍수로 심판하시며 노아와 여덟 명의 가족은 살려주셨습니다. 참된 교회는 살려두시는 것입니다. 숫자가 적어도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세계 종교를 하나로 만들려고 합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하나님이 뱀에게 저주하실 때 뱀아 너는 여자하고 원수가 된다. 그리고 뱀의 후손하고 여자의 후손은 원수가 된다. 참된 신앙의 사람들과 마귀의 자녀들 사이에는 적대감이 존재해야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 적대감을 없애버리고 세계 종교를 하나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세 자손들 함, 셈, 야벳의 자손들이 퍼져나갈 때 사탄이 역사하여 너희는 세계 종교를 하나로 만들라고 했고 그래서 시날 땅에다 바벨탑을 세운 것입니다. 

바벨탑을 세운 이유는 종교를 통일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종교가 아니라 귀신 숭배하는 종교로 통일을 시키려고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려와서 보시니 이들이 헛된 짓을 하는구나라며 벽돌 나르는 사람들의 언어를 바꿔버리셨습니다. 사탄은 세계 종교를 만들어서 하나로 만들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깨부수고 하나님의 참된 백성인 소수를 보호해주셨다는 말입니다. 

솔로몬이 늙어서 약해지니 여호와를 섬기는 종교와 우상숭배를 섞어서 하나로 만들어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라를 두 쪽으로 나눠서 우상숭배 하는 것은 북이스라엘,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백성은 남유다로 분리시켰습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세계 종교를 하나로 만들려고 합니다. 소위 에큐메니칼 운동이라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WCC같은 것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프리메이슨이라고 하는 아주 무서운 기구를 중세기부터 만들어 놓았습니다. 메이슨이라는 것은 원래 돌을 쪼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이상한 것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 가운데도 프리메이슨에 소속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들도 프리메이슨 소속이 많이 있습니다. 프리메이슨에 속하지 않으면 아마도 미국 대통령 되기 힘들 것입니다. 프리메이슨이 무서운 집단인 것입니다. 이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선한 일을 하는 것처럼 하지만 속으로는 사탄숭배로 세계를 통일시키려고 하는 무서운 집단인 것입니다. 이 프리메이슨이 역사상 무슨 짓을 했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역사가들도 다 알지 못합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악한 운동들이 다 일어나도 언제나 참된 백성을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변역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노아 홍수때 그랬던 것처럼, 솔로몬 때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참된 백성은 비록 소수라도 분리시켜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살게 하시고, 참된 복음을 믿고 살게 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는 소수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절대 다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소수라도 망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은 변역지 않는 하나님이 언제나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이 세상에 악이 만연하고 교회 안에 배교가 만연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해 냉소적인 마음을 갖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가라지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알곡이 가라지 때문에 “저것들은 왜 가라진가. 저것들은 왜 알곡이 아닌가. 저것들은 왜 먹어도 영양이 없는 것인가. 하나님이 잘못하시네.” 그렇게 고민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알곡은 자신이 알곡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이 이 세상에 아무리 만연해도 우리 성도들 마음속에는 냉소적인 마음을 갖지 마시고 냉소적인 말을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악인에 대해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악인을 심판하시면, 심판의 칼 공의를 대시면 졸지에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빙판에서 쭉 미끄러져서 졸지에 망하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악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은 영벌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라는 선포를 하실 날이 곧 올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는 예수 믿어 하나님의 남은 백성으로 의를 행하며 사는 참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이 세상의 악에 대해서 하나님을 냉소하지 않는, 도리어 악인에 대해서도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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