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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폭풍우 중의 감사 (행 27: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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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중의 감사 (행 27:27-37)


미국 콜로라도스프링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 어린이 구호 단체인“Compassion International”이 있습니다. 이 단체는 우리나라 6.25전쟁 때,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시작된 단체입니다. 이 Compassion은 1993년 한국에서 철수하기까지 수많은 한국의 불쌍한 아이들을 도왔고, 지금도 전 세계 23개국의 수십만의 어린이들을 돕는 참으로 선한 단체입니다. 이 선교단체는 미국 시카고에서 사역하던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한국전쟁 중인 1952년도에 미군들을 위한 집회 인도를 위해 방한했습니다. 종로 부근의 어느 숙소에서 추운 겨울날 아침 창문 밖의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마침 쓰레기 트럭이 지나가면서 쓰레기를 담는데 청소부들이 던져 넣는 쓰레기 가운데 어린아이의 손이 보여 뛰어 나갔습니다. 방금 던진 쓰레기 가운데 어린아이의 손을 보았다고 손짓 발짓하며 말을 전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아이의 시신을 찾기 위해 쓰레기 위에 올라간 순간 충격을 받은 스완슨 목사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트럭 안을 살펴보니 거기에 가득 실린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지난밤 거리에서 얼어 죽은 전쟁고아들의 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는 그 자리에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었습니다. 그때 마음속으로 들려오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있었습니다.“이제 너는 어떻게 살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미국으로 돌아와 시작한 젓이“컴패션(긍휼)”사역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수십만명의 전쟁고아들이 살아가게 되었고, 새로운 삶을 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6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간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어떻게 임했는가를 한 재미교포가“미국에서 보는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을 대신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계 국가 면적 순위 109위인 조그만 한 땅덩어리 대한민국 하지만....
여기 미국에서 보는 한국은 자랑스럽습니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 
1인당 국민소득 23,749달러, 
서울 세계 10대 도시 선정, 
한글 세계 최우수 언어 선정, 
과학기술 세계 6위, 
세계 10대 무역대국,
세계 3대 가전제품 강국, 
외환보유 세계 4위, 
아시아 통화량 3위,

올림픽과 월드컵을 다 치룬 10개의 나라중 하나, 
고속철도 기술 5번째 보유국, 
아시아 60여국 중 아시안게임 2회 치룬 두 국가 중 하나, 
경제력 군사력 스포츠 전부 10위권 내에 드는 팔방미인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50여년 전에 아프리카 가나라는 나라에게, 
원조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IMF 2년 남짓 만에 극복한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요? 
60여년 만에 이렇게 발전을 이룩한 국가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뿐입니다.

이는 분명 기적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사회적인 일로 힘든 한해를 보내고는 있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들이 너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은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본문 35절~36절에“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축사”는‘감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떡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로서 음식을 먹으면서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당시의 상황은 마땅히 감사할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에는 기독교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금지된 때였습니다. 

이러한 때 바울사도는 복음을 전하다가 채포된 죄수의 몸이었습니다. 죄인 아닌 죄수 바울사도는 여러 다른 죄수들과 함께 배를 타고 로마로 호송되어 가는 중이었습니다. 지중해를 항해하는 가운데 유라굴로라 이름 붙여진 큰 태풍을 만났습니다. 이 태풍으로 인해 14일간 해와 별들을 보지 못하고 배는 표류하는 가운데 선장과 선원들, 죄수를 지키는 군인들과 죄수들 모두 죽음직전 즉 빈사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런 때에 정신을 차리고 모든 사람을 격려한 사람이 바울사도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여러분 안심하세요. 이 태풍으로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습니다. 다만 배와 물건들은 모두 잃게 될 것입니다. 어제 저녁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그렇게 말씀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음식을 먹고 기력을 되찾자고 했습니다. 이때에 음식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떡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떡을 받아먹고 힘을 얻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폭풍우 중의 감사”였습니다. 

곤고한 가운데에서 드린 감사였습니다. 배를 가볍게 하고자 물건을 모두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러나 풍랑은 계속되었습니다. 배가 침몰될지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전혀 감사할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감사할 조건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딱한 상황이었습니다. 지은 죄가 없는데 억울하게 죄수가 되었습니다. 죄수로 호송되어가는 가운데 풍랑을 만나 사경을 헤맸습니다. 어디에도 감사할 조건이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인생항로에도 누구에게나 때때로 폭풍우가 일어나는 때가 있습니다. 환난의 폭풍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재난의 폭풍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실패의 폭풍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질병의 폭풍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큰 슬픔의 폭풍우를 만나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말씀하시기를“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하셨습니다. 왜 이러한 풍랑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 말씀처럼 감사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상황을 뛰어 넘어 감사하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붙잡혀 많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에도 바울사도는 한밤중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때 옥 터가 흔들리며 옥문이 열리고, 얽매였던 수갑이 풀어지는 신비로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은 감사하는 곳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시금석입니다. 감사의 측면에서 사람의 됨됨이를 살펴보면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一. 은혜를 잊어버리고 전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자라고 합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은 한탄하시면서 이사야 1장 2절~3절에 말씀하시기를“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주인을 알아보는 소나 나귀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생활을 깊이 생각해보면, 하루하루를 평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은혜의 집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위를 볼 때 선조와 부모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옆으로 볼 때 우리들의 이웃, 사회, 나라, 우방국가, 전 세계인의 은혜가 다 모여 오늘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교회에 올 때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리한 휴대폰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유익한 시간을 갖습니다. 이러한 모든 문화적인 혜택은 얼굴도 모르는 수없이 많은 과학자들의 피땀 흘린 노고의 결과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 스승의 은혜, 나라의 은혜, 이웃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들의 마음에 가득해야 하겠습니다.

二. 은혜를 알기는 하지만 얕은 감사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주위 사람들의 은혜를 어느 정도 알기는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깊지를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맑은 날은 감사하나 흐린 날은 불평합니다. 건강할 때는 감사하지만, 병이 났을 땐 불평하며 원망합니다. 사업이 잘 될 때에는 감사하지만, 잘 안될 때에는 불평합니다. 자녀가 원하는 학교에 입학이 되면 감사하나, 잘 안되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취직이 잘되면 감사하나, 잘 안되면 불평합니다. 기분이 좋을 땐 감사하나 기분이 나쁠 땐 욕하고 미워합니다. 아마 이러한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느 선교사가 아프리카 토인 부락을 지나다가 깜짝 놀랄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 부락의 한 토인이 자기 옆에 늘 모시고 다니던 우상을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볼기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어떻게 당신이 섬기던 신상을 매달아 놓고 볼기를 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 토인의 대답이“내가 이 신상을 10년이나 섬겼는데 복은 하나도 주지 않고 화만 주니 이런 신상을 어떻게 섬기겠느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와 비슷한 신앙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三. 바울과 같이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의 교훈대로 모든 일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신앙이 곧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신앙입니다. 감사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마음은 믿음의 척도입니다. 믿음이 깊을수록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많아집니다. 
바울사도는 폭풍우 중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전혀 감사할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억울하게 죄수가 되어 로마로 호송되고 있었습니다. 호송도중 큰 풍랑을 만나 빈사상태에 놓였습니다. 폭풍의 상황에 대해 사도행전 27장 20절에“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사도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감옥에서도 감사했고, 매를 맞으면서도 감사했습니다. 재산을 몰수당하면서도 감사했습니다. 순교자로 생명이 이슬처럼 사라지면서도 감사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깊은 믿음의 사람들은 당장 눈앞의 것만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먼 것을 바라봅니다. 그 속에 숨겨진 것을 바라봅니다. 가뭄이 계속되는 여름날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번개와 천둥이 마음을 두렵게 합니다. 그러나 농부는 기뻐하며 감사합니다. 그 가운데 생명의 단비가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검은 먹구름과 천둥 번개만 바라보고 두려워하거나 불평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감춰진 생명의 단비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범사에 감사하라.”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가운데“반응”이라는 말과“응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슷한 말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어학자들은 이 둘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동물은 반응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사물의 느낌이나 어떤 작용에 대하여 나타내는 즉각적인 반사작용을 말합니다. 춥다, 덥다, 배고프다, 아프다, 라는 것은 반사이며 반응입니다. 생각하지 않고도 표현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응답이란,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고 또 마음에 새기고 그 다음에 이것에 대하여 자신의 뜻을 나타내게 되는데 이것이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 중 한 가지가, 동물은 반응으로 살아가지만, 사람은 생각한 후 나타내는 응답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즉각적인 반응으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생각이 깊지 못한 경솔한 사람, 성급한 사람으로 실수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로 인해 후회할 때가 많게 됩니다. 실패하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감사는 응답입니다. 깊이 생각한 뒤에 나타나는 응답이 감사인 것입니다. 아프면 원망하고 나으면 감사하고, 또 아프면 원망하는 것, 잘되면 감사하고 안 되면 원망하는 것은 생각이 깊지 못한 단순한 동물적인 반응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어려울 때 깊이 생각하고 그 어려움 속에서 교훈을 찾으며 감사합니다. 일이 잘 될 땐 한 번 더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응답인 것입니다. 

본문의 바울사도는 폭풍우중에 감사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 감사했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요, 성공과 실패의 문제도 아닙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넘어선 초연한 절대적인 감사였습니다. 환경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은 다시 환경을 보고 원망하게 됩니다. 사람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은 다시 사람을 보고 원망하게 됩니다. 

독일의 폭격으로 영국의 어느 마을이 초토화가 되었습니다. 아주 좋은 저택 하나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폐허가 된 땅에 서있는 내외분에게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서 위로하고자 이런 저런 말로 위로합니다.“아주 다 잃어 버렸군요.”“아주 다 없어지고 말았군요.”그때 남편은 아내를 위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다 잃었다고 말하지 맙시다. 당신이 있고 내가 있고, 이 땅이 있지 않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은 지혜가 있고 믿음이 있소. 이 폐허 위에 다시 집을 지을 때는 옛날보다 더 좋은 새 집을 지을 수 있지 않소? 잃어 버렸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소.”

그렇습니다. 다 잃어버린 것 가운데에서도 얻은 것이 있음을 아는 사람, 바로 그 사람만이 진정한 감사를 들릴 수 있습니다. 예날 로마의 문호 키케로는“감사한 마음은 최고의 덕일 뿐 아니라 모든 덕의 어머니다.”라고 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가듣한 사람은 남을 해치는 언행을 할 수 없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사람은 가정에서 효도합니다.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사람은 매사에 어디서나 성실합니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는 최선을 다해 봉사합니다. 
감사가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행복이란 달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많이 소유하고도 걱정에 매였다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많이 벌고도 원망과 불평이 가득 차 있다면 이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지만 감사하면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복된 사람,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계적 부호였던 록펠러는 세 가지의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선의 기록입니다. 그는 록펠러재단을 만들어 남을 위해 큰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둘째, 인생 역전의 기록입니다. 그는 매우 가난했습니다. 첫 여인에게“가능성이 없는 가난뱅이”로 몰려 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비방을 자극제로 삼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재벌로 우뚝 섰습니다. 셋째, 장수의 기록입니다. 록펠러는 98세를 살았습니다. 

그의 장수의 비결은 나눔의 삶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40대 나이에 세계적인 재벌이 되었습니다. 그는 재산을 모으고 지키는 것만 알았지 이웃과 더불어 나눌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한 록펠러에게 무서운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불면증과 함께 탈모증에 걸려 머리는 마치 문어 머리처럼 되었고 몸은 쇠약해져만 갔습니다. 의사의 진단으로는 병명조차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지금상태로는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날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성경을 펴 읽는 가운데 디모데전서 6장 10절“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하신 말씀을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그 밤중에 비서를 불러, 가장 보람되게 돈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토록 지시했습니다. 이로 인해 설립된 것이 자선 단체인 그 유명한 록펠러 재단입니다. 그리고 24개 대학과 4,928개의 교회를 지어 헌납했습니다. 이처럼 그는 열심히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사경으로 끌고 가던 질병은 자신도 알지 못한 사이에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50세를 넘기기 어렵다던 록펠러는 98세를 살았습니다. 

록펠러가 3대 기적을 창출해낸 원동력은 세 가지였다고 합니다. 첫째,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남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경건한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생 동안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셋째, 성경묵상이었습니다. 그는 아흔 살이 넘어 시력이 약해지자 사람을 고용해 성경을 읽도록 했습니다. 귀로 성경을 들으며 마음의 평안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성경을 중심한 경건생활과 선행과 감사하는 삶이 그를 건강케 했으며 그의 삶을 빛나게 했습니다. 반면 불평과 원망은 뼈를 마르게 합니다. 

서론에 드린 말씀같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육간 큰 복을 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진정으로 감사한다면 하나님의 관심사에 나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비유로, 부모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자식이라면 부모님이 무엇을 좋아 하실까를 생각해서 그것을 해드리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려 감사하는 성도라면 하나님의 관심사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지옥으로 향하는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외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보고만 있겠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3절에“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하셨습니다. 앉아서 막연하게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나가서 강권하여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고기를 잡는 어부나 낚시를 하는 사람은 물고기 한 마리를 낚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물속에 밑밥을 넣기도 하고, 물고기에 따라 적절한 낚시 밥을 바꾸기도 합니다. 우리도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과 정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혼구원에 힘쓰는 사람에게 너무도 값진 약속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 말씀에 가서 전하라 그리하면“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습니다. 
이제 새생명축제가 다음주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의 한 맺힌 소원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말씀에“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바울사도는 폭풍우 중에도 감사했습니다. 이러한 바울 사도의 감사가 우리들의 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심령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이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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