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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의 지팡이 vs 하나님의 지팡이 (출 4:1-9,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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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지팡이 vs 하나님의 지팡이 (출 4:1-9,18-20)
  
여러분, 성경 인물 가운데 모세를 생각하면 무엇이 오릅니까? 지팡이입니다. 지팡이를 들지 않은 모세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지팡이는 모세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의 지팡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 굉장히 궁금합니다.

먼저 본문의 역사적 배경을 잠시 말씀드리죠. 연대는 B.C. 15세기입니다. 당시 애굽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본래 그들이 애굽 이민을 갔을 때는 노예가 아니었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초청으로 갔고, 바로 왕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더니 급기야 이스라엘이 노예로 전락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할 계획을 세우십니다. 이를 위해 모세를 준비시키죠. 당시 바로 왕이 이스라엘의 번식을 견제하려고 남아산아제한법을 공포했는데, 그래도 계속 번식하니까 아예 남아살해법을 공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일 강에 띄워진 아기 모세를 바로 왕의 공주(하셉수트 Hashepsut)가 발견하도록 역사하셨고, 공주는 모세를 양자로 삼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공주라 남아살해법에 대해 초법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주에게 남자 형제가 없어서 그녀의 남편(투트모스 2세 Thutmose II)이 왕위를 이었는데, 자신도 남자 아이를 낳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나일 강에서 모세를 발견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모세는 애굽의 왕자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수년 후 그녀의 남편 투트모스 2세가 궁녀를 통해 아들을 얻게 됩니다.(그가 후일 왕위를 잇게 될 투트모스 3세Thutmose III) 그러니까 모세와 투트모스 3세가 정적 관계가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살인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투트모스 3세로서는 모세를 제거할 좋은 구실을 잡게 된 겁니다. 궁지에 몰린 모세는 하는 수 없이 미디안 광야로 도피하게 되는데, 그 때 나이가 40세였습니다. 그 후 40년이 지난 80세 때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할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그런데 광야에 묻혀 야인으로 살았던 모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계속 변명을 늘어놓으며 거절합니다. 

[1] 모세의 지팡이 : 인간의 연약한 모습

하나님과 모세가 밀고 당기는 가운데 지팡이 이야기가 등장하는 겁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는 그의 비천한 형편을 처지를 나타냅니다. 연약한 인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모세는 연약한 중에 하나님께 계속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1절.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그러자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죠? 

2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주목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보잘 것 없는 비천한 마른 막대기에 불과한데,  모세 자신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40년 있을 때는 당대 최고의 학문을 배우고 자신이 꽤 잘 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미디안 광야 40년을 통해서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임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이 맡겨주시는 일을 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되었기에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죠. “국어를 잘 하려면 주제 파악을 잘 해야 되고, 수학을 잘 하려면 분수를 잘 알아야 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주제(허물 많은 죄인이란 사실)를 파악하고 분수(연약한 인간이란 사실)를 알아야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게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 누가 뭐래? 너는 마른 막대기 지팡이 같은 존재야. 맞아! 그런데 말이야, 나 여호와 전능자 하나님이 있잖아!” 


[2] 하나님의 지팡이 :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그래서 이제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자신만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그 지팡이가 이제 앞으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굳이 지팡이를 등장시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함께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출3:11~12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 ” 이러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합니까? 

그런데도 계속 변명하고 거부하니까 그를 설득하고 확신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리저리 애쓰시는 겁니다. 모세가 구시렁거리니까 이적을 보여주십니다. 

3절~7절 보면, 두 가지 이적입니다.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니까 뱀이 되고, 뱀을 잡으라고 하니까 다시 지팡이가 됩니다. 뱀은 애굽의 우상 신과 바로 왕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그게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손을 품에 넣으라고 하니까 나병에 생기고, 다시 넣었다 빼니까 원상대로 회복됩니다. 나병은 이스라엘이 속박 가운데 고통 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 이적(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적)을 보여주신 후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8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mirakdlous sign)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표적은 이적을 의미하고, 표징은 가시적인 증거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 증거를 보고 승리를 확신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모세가 머뭇거리니까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9절.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나일 강은 애굽 사람들이 신으로 숭배하는 강이며  풍요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이게 피로 변하면 그들의 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선포하는 겁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신임을 증거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 놀라우신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신다는 증표로 지팡이를 주십니다. 출4: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miraculous signs)을 행할지니라” 물론 이 지팡이는 원래 모세가 들고 있던 것이고, 이적을 행했지만 전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예를 들어 금으로 변했다든지 ... 모양이 확 달라졌다든지 ... 그런 게 아닙니다. 여전히 마른 막대기 그대로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중요합니까? 새롭게 부여된 의미가 중요합니다.

연인 둘이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링 반지를 끼워 줍니다. 그리고 결혼을 약속합니다.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항상 당신과 함께 할 겁니다.” 그러면 그 링 반지는 금은방에 있는 똑같은 링 반지들과는 전혀 다른 겁니다. ‘그대가 끼워 준 반지’거든요. 그 반지를 볼 때마다 연인의 약속을 기억하며 함께 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질이나 모양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전능자 하나님이 모세의 하나님이 되셔서 늘 함께 해 주십니다. 그 약속의 증표입니다. 모세는 그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 

20절 보면, 이스라엘 구원의 사명을 위해 애굽으로 출발하는 모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겉으로 보면 초라한 모습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위대한 모습니다. 그가 왕궁에서 혹시 바로 왕이 되었더라면 그 손에 황금 홀을 들고 있었겠죠. 그래봤자 세상나라 왕의 권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영적 권세를 갖게 된 위대한 모습입니다. 왜요? 위대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지팡이 들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모세를 붙잡고 있는 겁니다. 

다윗의 예를 생각해 보시죠.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소년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과 대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떤 복장으로 나아갑니까? 상대는 기골이 장대하고 강력한 무기를 들고 있는 장수였지만, 그는 달랑 막대기와 물매, 돌 5개만 들고 나섭니다. 사울 왕이 준 갑옷도 투구도 무기도 다 두고 나갑니다. 그러나 그는 외칩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노라!” 평소에 사용하던 보잘 것 없는 도구들이었지만,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 약속을 확신 한 겁니다. 결과는 완승! 한 방에 골리앗을 때려눕혔습니다.

이제 모세는 혼자 몸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십니다. 그를 통해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가 지팡이를 들면 홍해가 갈라지고 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치면 생수가 터져 나옵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숫자로 표현하면, 인간은 1과 같은 존재입니다. 조금 잘 났으면 2 혹은 3 정도이고, 아주 잘나봤자 10 정도 되겠죠. 그런데 하나님은 ∞(무한대)입니다. 1플러스 ∞도 ∞이고, 10 플러스 ∞도 ∞입니다. 반면 1 마이너스 ∞도 -∞이고, 10 마이너스 ∞도 -∞입니다. 인간의 능력이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위대하신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느냐 아니냐 하는 겁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모세가 위대한 것은 위대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고,  모세 자신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인간적은 능력과 장점을 얼마나 갖고 있습니까? 그것을 자랑합니까? 아니면 부족해서 위축되어 있습니까? 인간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잘나 봤자,  못나 봤자 별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팡이를 굳게 붙잡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험악한 세상을 살지라도 반드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3] 하나님의 지팡이를 든 모세 : 하나님을 믿음으로 승리하는 인생 

하나님의 지팡이를 든 모세처럼 우리가 전능자 하나님을 굳게 믿으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우리가 비록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인간이 제 아무리 대단해도 하나님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고, 인간이 부족해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면 승리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장애가 있어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존 밀턴이 불후의 명작 「실낙원」을 쓴 것은 놀랍게도 실명한 이후였습니다.  눈이 멀어 절망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으니까 불가능이 가능케 된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인물이 있죠.  ‘하늘의 시인’이라 불리는 송명희 시인입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 중증 장애인입니다. 말 한 마디를 하려고 해도 옴 몸이 뒤틀리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 고통 가운데서 처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예수님을 통한 그 큰 사랑을 체험하고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영감 있는 시들을 쓰는지 저도 개인적으로 그분의 시를 읽을 때마다 가슴 저미는 감동을 느끼곤 합니다. 중증 장애의 몸을 가지고 어떻게 그런 시를 쓸까 정말 놀랍죠. 그 비결은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증거합니다. 고전1:27~29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심지어 약점 투성이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이탈리아 출신 바이올린의 귀재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한번은 그가 당대 저명인사들이 대거 모인 연주회에서 연주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연주 도중 줄이 하나 끊어졌습니다. 하지만 파가니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연주해 나아갔습니다. 잠시 후 또 한 줄, 잠시 후 또 한 줄이 끊어졌습니다. 이젠 한 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바라봅니다. 파가니니는 잠시 연주를 멈추고 조용히 청중을 바라보더니, 남은 한 줄로 완벽한 음악을 만들어 내며 연주를 마쳤습니다.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기적 같은 연주를 해낸 겁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파가니니의 일화를 소개하겠습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마치 악기와 같습니다. 물론 악기도 좋아야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연주자입니다. 우리 인생의 연주자는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면 얼마든지 아름답고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안질로 오랜 세월 고생만 하고 기도해도 치유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연약함 때문에 주님을 더욱 의지함으로 큰 능력을 나타낼 수 있었다는 간증입니다.  심지어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당당히 외칩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헨리에타 미어즈는 모세의 생애를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120년 생애를 3단계로 설명합니다. 1단계  40년은 모세가 자신을 과신한 시기였습니다.(I am somebody.) 2단계 40년은 자신감을 잃고 위축된 시기였습니다.(I am nobody.) 그리고 3단계 40년은 자신이 부족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존재임을 확신하게 된 시기였습니다.(I am somebody in God.) 모세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됐을 때 비로소 위대한 인생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믿었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까요? 

① 믿음으로 순종 :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순종을 통해 구체화됩니다. 모세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경을 잘 보면 모세가 행한 기적들은 모세 자신에게서 나온 게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에게서 나온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랬습니다. 

3절~4절.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지팡이를 던지라고 할 때는 순종하기 쉬웠을 겁니다. 하지만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할 때 순종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땅꾼들은 어떻게 하죠? 뱀의 목을 잡지 절대로 꼬리를 잡지 않습니다. 잘못 하면 뱀에게 물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 40년을 경험한 모세도 그런 사실을 잘 알았을 겁니다. 그런 가운데 그가 순종한 것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또 6절~7절을 보세요.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7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왔더라” 그가 순종하는 대로 놀라운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여기서도 모세가 한 것은 그저 믿음으로 순종한 것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놀라운 기적이 나타난 겁니다.  

열왕기하 5장을 보면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아람의 제2인자였지만 나병에 걸렸습니다. 소문을 듣고 엘리사를 찾아가죠. 그런데 엘리사가 만나주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몸을 7번 씻으라는 겁니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던지 그냥 돌아가려고 합니다. 다행히 신하가 설득해서 작은 믿음으로 순종했는데,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마치 어린 아이 피부처럼 깨끗이 치유됐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들으면 깨달은 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대충 하지 말고 온전히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줄로 믿습니다. 

② 믿음으로 기도 :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보면 모세에 관한 기록이 많죠. 연구해 보면 모세가 지팡이를 붙잡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많이 나타납니다. 전능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기도로 구체화됩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광야에서 아말렉과 전투가 벌어집니다. 이스라엘이 뒤에서 공격을 당한데다 군사력도 열세입니다. 그러나 대승합니다. 물론 전장에 나가 여호수아와 군인들이 나아가 싸웠지만, 결정적으로 모세의 기도가 승부를 갈랐습니다. 

출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기도할 때 이스라엘의 승리가 결정됐습니다. 

한국교회사에서 유명한 성경학자요 목회자였던 고 박윤선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는  학적이면서도 영감 있는 신구약 전권 주석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사에서는 물론이고 세계교회사 가운데도 몇 안 되는 위대한 업적입니다. 그는 그 일이 기도를 통해 이뤄졌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숭실전문에 다닐 때부터 산 기도와 골방 기도를 실천했습니다. 

특히 1941년~1944년 만주에 있을 때에는 새벽마다 사명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해방이 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써 주시라고 눈물로 간구했습니다. 정말  해방이 된 후 그가 부산 고려신학교 교수로 15년 봉직하게 됐는데,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 많은 체험 가운데 은혜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에게 학문적 능력도 있었지만 기도로 얻은 영감이 주석 집필에 기초가 됐다는 간증입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잡고 기도할 때 놀라운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험한 세상 살면서 과연 무엇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지팡이가 대단하면, 좋은 조건이 있으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가 승리한 것은 애굽의 궁궐에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광야에 있을 때 초라했지만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승리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조건들로 승리할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눈물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꼭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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