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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도 가려느냐 (요 6:6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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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가려느냐 (요 6:66-71)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6:48-51)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수군거립니다. 그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살을 먹지 아니하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6:53-55).
  
본문 요한복음 6장에서 60절을 보면 “제자들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예수님의 살과 피는 그의 죽음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의 죽음과 희생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 말없이 떠난 사람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절)
  
그때란,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는 말씀을 하신 때부터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좋아하여 따르던 사람들이 쉽게 떠났습니다. 그들은 쉽게 왔다 쉽게 갑니다. 진지함이 없습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쉬 뜨거운 방 쉬 식는다.” 예수님을 쉽게 떠난 사람들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확신이 없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영적 체험이 없었습니다. 너무 쉽게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집안에 있는 어떤 사정으로 교회 안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험을 받거나 상처를 입어서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를 떠나지 맙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예수를 떠나면 안됩니다. 
  
제가 미국에 갔을 때 동성연애자들이 행진을 하는 것을 본 일 이 있습니다. 
동성연애자들에게는 커밍아웃cominng out이라는 의식이 있습니다. 자신이 동생연애자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의식입니다. 동성연애가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범죄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나는 동성연애자이다 하고 자신의 정체를 모든 사람앞에 드러냅니다. 
  
예수 믿는 것을 숨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교회 다닌다는 것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뭐가 부끄러운가? 커밍아웃 처럼 예수 믿는 사람임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신앙생활하기 바랍니다.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허락하심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지체들입니다. 교회는 부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를 떠나지 마십시오. 물고기는 물을 떠나면 죽게 되고 숯불은 화로를 떠나면 꺼집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4-5)

  
󰊲 주님 곁에 남은 제자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68절)
  
“너희도 가려느냐” 이 질문은 떠나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열두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안타까웠습니다. 
  
예수께서 물으신 질문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그가 비록 모든 제자들의 대변자는 아니었지만 스스로 대변에 나섰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이렇게 말한 것은 충성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충성된 제자의 지지요 고백입니다. “우리가 뉘 게로 가오리까” 그들은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그 분이 자기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셨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영혼에게 주신 평화를 경험하였습니다. 영생의 말씀을 예수님에게서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영생의 말씀을 들을 곳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비중이 어느 정도입니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선생으로, 어떤 이는 구세주로, 어떤 이는 지도자로 모시고 살아갑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믿고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베드로처럼 고백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1:49)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질렀습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1:24)        
  
예수께서 베다니에 살던 마리아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11:25-2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 강해지고 담대합니다. 약점도 불행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재능이나 교육보다 중요합니다. 평범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이 특별한 삶을 살아갑니다. 믿음이 무기입니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이 온 세상이기네...” 제자들은 세상을 이겼습니다.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를 떠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몸 된 교회를 떠나면 안됩니다. 끝까지 주님 곁에 남은 자 되시기 바랍니다.

  
󰊳 제자들 가운데 있던 배신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70절)  
  
“이 말씀은 가롯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자러라”(71절)
  
예수님의 제자는 모두 12명입니다. 그들을 예수님의 최측근자들이요 핵심그룹입니다. 그들 중에 배신자가 잠복해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떠날 때 떠났어야 했으나 떠나지 않고 제자들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고백할 때도 열두 사도들 중에 섞여 있었습니다. 자기도 예수님을 지지하는 것처럼 위선적으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위선자가 되려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도 다른 제자들처럼 기도했고  다른 제자들처럼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도 그때는 내적으로 진실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위선자가 되고 배신자가 된 것은 나중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한때 주님은 그를 신뢰했습니다. 금품을 수납하는 일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그 일을 하기에는 그가 적합한 사람으로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제자로 여겼으나 그는 배반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감독의 직분을 맡았어야 했으나 예수님을 팔고 돈을 받았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했으나 스스로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해야 했으나 마귀가 그 마음에 넣어준 나쁜 생각을 품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유다여! 오 유다여!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너희중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실 때 제자들은 돌아가면서 “주여 내니이까?” 물었습니다. 제자들마다 주여 내니이까?하고 물을 그때 유다는 “주여 내니이다?”라고 고백했어야 했습니다. “제가 바로 주님을 팔 자입니다”라고 했어야 했습니다.  
  
“주여 내니이까?” 이 말과 “주여 내니이다?”라는 말은 글씨 한자의 차이입니다. “내니이까라?”는 말은 ‘나는 아니라’는 부정이고 “내니이다?”라는 말은 시인하는 말입니다. 주님을 팔자가 바로 ‘나 입니다. 하는 고백이요 회개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내니이까”라는 물음이 아니라 주여 “내 니이다!”라는 자백을 듣고 싶어하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현 주소가 어디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동네냐? 사탕의 마을이냐? 이 말입니다.
나무는 시냇가에서 살아야 합니다. 시냇가를 주소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 마을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예수의 사람은 인생의 가뭄을 당해도 열매 맺습니다. 가물어도 그 뿌리가 샘물 물줄기에 박혀 있기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아서 열매를 맺습니다. 
환난을 당해도 싱싱하고 청청합니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세요.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볼테르는 성경을 비판하고 공격한 자였습니다. “두고봐라 백년 안에 성경을 읽는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그런데 현재 프랑스의 볼테르가 살던 옛 집은 “성서공회본부”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가 성경을 비판했으나 성경이 그 집을 차지했습니다.  성경 무용론자가 살던 집에 성경이 쌓여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여러분을 차지해야 합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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