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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둘을 택하여 (눅 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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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둘을 택하여 (눅 6:12-16)


지난 주 목요일에 '대입수능시험'이 있었는데, 제가 옛날에 대학교에 입학할 때에는 '예비고사'란 것을 치른 후에 '본고사'를 또 치러야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제가 지원했던 대학교에 합격하게 되자 그 행복한 기분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상아탑'에 들어와서 '지성인'이 될 수 있는 교육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하늘을 나는 듯한 느낌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대학 생활이란 것이 당시의 제 또래 중에 오직 소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기회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군대에 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약 20명 정도 되던 우리 내무반에서 대학을 졸업했던지 혹은 다니다가 군대에 온 친구는 저 외에 두 명뿐이었고, 나중에 제가 근무했던 대대본부에도 18명의 사병들 중에 '대졸'이나 '대재'는 총 세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즉 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주변에 다들 대학생 친구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느끼지 못하다가 '대한민국의 평균 남자'들이 모여 있는 군대에 가서야 비로소 제가 얼마나 소중한 특권을 누렸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직접 설립하신 교회, 곧 '열두 제자'로 구성된 아주 특별한 신앙공동체가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예루살렘교회가 신약의 첫 교회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친히 '담임목사'가 되시고 열두 명의 제자들을 '교인'으로 두셨던 이 단체야말로 그 이후에 세워질 모든 교회들의 모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교회를 통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그 얼마나 특별한 은혜요 축복인지가 바로 여기서부터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어느 날이었는지도 모르고 아무 기념사진 한 장도 남아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기록된 본문을 통하여 바로 그 요점을 정확하게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많은 교우들이 세례와 입교를 통하여 우리 경향교회의 정식 회원이 되는 특별한 주일에 저와 여러분은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교회의 한 일원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의 대상이 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한 사람이 교회의 멤버가 될 때 자동적으로 얻게 되는 엄청난 특별혜택입니다. 
바로 본문 12절에 기록하기를 "12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소에 얼마나 기도생활을 많이 하셨는지는 사복음서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본문에 기록된 기도는 특별한 목적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바로 다음날 열두 제자를 택하셔서 신약 교회를 창립하시는 이 일을 앞두고 예수님께서는 밤새도록 특별기도를 드리셨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어떤 내용으로 기도드리셨는지를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누구를 열두 제자로 택할 것인지 그것이 고민이 되어 기도하신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선택은 성부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예수님의 마음에 이미 정확하게 결정되어 있었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밤이 맟도록" 기도하셨겠습니까?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당신의 택하심을 입게 될 열두 명의 제자들을 위하여 밤새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을것이 틀림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평소에 얼마나 정성껏 기도하셨는지 이것 역시 성경에 잘 나타나 있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베드로가 배반하게 될 것을 예언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1-32)고 하셨습니다.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만찬을 나누신 후에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제자들을 위하여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되어 있는 긴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제자들을 위하여 이처럼 구체적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셨던 예수님이셨으니, 그 제자들을 택하시기 전날 밤에 그들 각자를 위하여 기도드리지 않으셨을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실로 그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 제자로 택함을 입었고 또한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 제자의 길을 따라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역시 우리가 교회의 등록교인이 됨으로써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처럼 그 주님의 기도 명단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두 제자 정도 되니까 예수님께서 특별히 기도해 주신 것이지 오늘 이 숱한 교인들을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고 기도해 주실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질 필요는 조금도 없으며 또한 가져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 열두 제자들을 위하여 마지막으로 기도할 때에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17:20)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람들만" 즉 '열두 제자들만'을 위해 기도드리신 것이 아니라,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 즉 '그 열두 제자들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 믿게 될 미래의 모든 신자들'까지 다 빠짐없이 포함해서 이미 그 다락방에서부터 기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고맙기 짝이 없는 중보기도야말로 승천하신 우리 예수님께서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한시도 쉬지 않고 행하시는 가장 대표적인 사역이 아니겠습니까?

목사가 여러분의 가정에 심방을 와서 기도해 주면 여러분에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빠진 교우를 위하여 같은 구역이나 교구에 속한 교우들이 그런 형편을 알고 위하여 기도해 주는 것은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선교지에 있는 선교사님들의 사역이나 수험생들의 수능시험과 대입을 위하여 경향의 성도 전체가 금요일 밤 기도회 때에 합심으로 기도드리는 것 역시 든든한 지원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교회의 머리 되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날마다 성부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 얼마나 은혜로운 일이며 감사하기 짝이 없는 사실이겠습니까?
새벽기도회나 교구기도회 때에 교역자가 여러분 각자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 2분에 불과하지만, 주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제자로 불러 주신 택자들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는 그야말로 단 한순간도 쉼이 없는 기도입니다. 
교인들은 서로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할 것을 잊어 먹고 넘어 가는 경우도 많겠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기도 명단에 들어 있는 이름을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습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교회의 등록교인이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저와 여러분은 이처럼 예수님의 중보기도의 대상이 되는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공동체에 속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 인간사회에 온갖 단체들이 있지만 교회보다도 더 거룩하고 귀중한 모임이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은 이 교회가 바로 거룩하신 성삼위 하나님께서 창립하신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13절 상반절의 말씀에 "13a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열둘을 택하여 제자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는 특별히 택하신 열두 제자 외에 다른 제자들도 많이 있었음을 가리킵니다. 
대표적인 예를 한 가지만 들자면, 나중에 예수님께서 특별전도여행에 파송하셨던 제자들도 "칠십 인"(눅 10:1)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란 말과 '학생'이란 말의 공통점은 둘 다 '배우는 위치에 있는 자'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제자'라는 말에는 '학생'이라는 말과 약간 다른 의미가 있는데 바로 '스승과의 개인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그 말씀을 배우는 자라면 다 '제자'에 해당되는 것이었으며, 이런 의미에서의 예수님 제자들은 '열두 제자' 외에도 많이 있었고 거기에는 오늘날의 저와 여러분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예수님께서는 하필이면 "열둘을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열둘'이라는 숫자의 제자를 택하신 이유는, 바로 그것이 구약에서 야곱의 아들들로 인하여 시작된 열두 지파의 숫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로 상징되었던 구약의 '선택받은 백성'의 개념이 이제 이 신약 시대에 와서는 바로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통하여 새로이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시대를 따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당신과 교제하며 당신을 섬길 수 있게 해 주는 특별한 '공동체'를 세워 주셨습니다. 
아담 때로부터 족장 시대까지는 '가족 제단'을 통하여, 모세 때에는 성막을 중심으로 한 '광야 교회'를 통하여, 그리고 그 이후에도 성전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이라는 신앙공동체'를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밀접히 교제할 수 있는 길을 항상 열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이런 고귀한 공동체의 원래 의미를 상실하고, 그 대신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을 무슨 민족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뜻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21:43)고 선언하셨습니다. 
즉 이제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을 따라 이루어지는 민족공동체가 아니라,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뒤를 이어 이루어지는 신앙공동체를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그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민족'이요 '영원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이며, 세상에서 이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공동체는 결코 없습니다. 

사람은 이 땅에 살 동안 가능한 한 보다 수준 높은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학생들은 명문대학이라는 집단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너 나 할 것 없는 공통적인 꿈입니다. 
졸업 후에도 좋은 회사의 사원이 되고자 이력서를 제출하고 취직 시험과 면접을 본 후에 휴대폰에 입사 합격 메시지가 뜨기만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릴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더 환경이 좋은 아파트에 입주하려고 분양 신청에 줄을 서기도 하며,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은 무슨 고급 사교 클럽에 가입하려고 안달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한 교회의 일원이 되는 특권에 비길 수는 없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우리가 교회의 교인이 됨으로써 얼마나 좋은 것들을 누리고 있습니까?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구원의 확신과 함께 세상을 이길 힘을 얻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성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세상 사회에서는 누릴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대우와 존중을 받게 됩니다.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사람으로서 행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교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라는 지극히 고귀하신 성자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엄청난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다른 어떤 단체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이런 혜택이나 명예나 즐거움을 능가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고귀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특권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주권적 선택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냥 공짜로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처럼 교회의 한 일원이 된 특권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이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서 사람이 속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온갖 영육간의 은총이 넘치는, 최고로 수준 높은, 주님께서 친히 설립하신 고귀하기 짝이 없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지극히 명예롭게 여길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교회의 정회원이 되는 것은 바로 성경중심의 관할과 치리 아래 들어가게 됨을 의미합니다. 

한 공동체가 그 목적을 함께 달성하고 그 질서를 체계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슨 형태로든지 간에 어떤 권위를 중심으로 조직되어야 함이 필수적인데, 교회의 경우에는 그것이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본문 13절 하반절부터 16절에 기록하기를 "13b사도라 칭하셨으니 14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16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고 했습니다. 

앞에서는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면서 그 가르침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다 '제자'에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 중에 특별히 택하신 열두 명의 제자들에게 여기서는 "사도"라는 이름을 더해 주셨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 '사도'라는 말의 뜻은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3장 14절에 보면 이 열둘을 세우신 이유를 가리켜 "보내사 전도하게" 하려 함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이 열두 '제자'들을 '사도'들로 파송하여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교회가 확장되게 하려는 계획을 예수님께서는 이미 세우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도'된 열두 제자들에게는 다른 일반 제자들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권위가 주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말씀의 권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석상에서 이 열두 사도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란 성령께서 친히 사도들을 감화감동시켜서 가르쳐 주실 것이라는 뜻이며,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가르쳐 주신 말씀들을 성령께서 다 기억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처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시는' 영감을 따라서 사복음서를 위시한 신약의 다른 성경들을 기록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에베소서 2장 20절은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면서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한 것입니다. 
"너희" 즉 성도들이 모여 이루어진 교회라는 신앙공동체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즉 선지자들이 기록한 구약과 사도들이 기록한 신약 성경 말씀의 터 위에 세워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세우시고 첫 신약 교회를 창립하시던 그 날부터 이미 정해져 있던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말씀에 관한 이런 권위는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것이었고, 또한 그래서 사도들의 말씀은 초대교회를 세우고 운영하는 최고의 권위가 되었습니다. 
즉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2, 20)라는 이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영접한 자들이 바로 교회의 멤버가 되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전14:37)는 이 사도적 선포의 권위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절대복종함으로써 교회의 질서가 지켜졌습니다. 
또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고전 5:5)라는 사도들의 권징을 따라 초대교회는 그 영적 순결성도 지킬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 역시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오직 기록된 성경 말씀만이 이 교회의 유일무이한 복음이요 규칙이요 법입니다. 
지상교회들 안에 어떤 문제나 시험이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그 교회가 바로 이 말씀만을 중심으로 서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당회나 제직회를 인도할 때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전혀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회의가 난장판이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바로 그 목사가 평소에 교인들을 철저한 '성경 중심'으로 교육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어떤 일을 추진하려고 해도 교인들의 마음과 힘이 전혀 하나가 되지 않고 일이 중구난방이 되고 마는 것도 그 교인들이 평소에 강단의 '말씀 선포'를 통하여 은혜와 힘을 전혀 받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하나같이 성경 말씀의 권위에 완전히 복종해야만 그 교회는 선지와 사도의 터 위에 세워지는 것이며, 그래야만 그 선지와 사도를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못하고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들 '자신의 개인 양심'만을 내세우거나 목사와 장로가 당회 안에서 '세상 사회에서 통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면 그런 교회는 필연적으로 '사공이 많은 배'가 되어 '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씀의 '관할'에 사로잡히지 못하고 성경중심의 '치리'에 붙잡히지 아니하면 그런 교인은 지상교회에 이름을 올린 교인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주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천당교회의 멤버'는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말씀의 은혜만이 진짜 택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그 발걸음과 마음이 끌리게 할 것이며, 오직 이 성경의 권위만이 그런 참된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를 중심으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게"(엡 2:21-22) 만들어 주는 것을 꼭 스스로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대학교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특권인지를 자각하지 못하기 쉬운 것처럼 기독신자가 되었으면서도 그것이 그 얼마나 엄청난 은혜요 축복인지를 별로 생각해 보지 못하는 교인들도 많을 것입니다. 
  
주일뿐 아니라 주중에도 몇 차례씩 교회에 나오고 또한 그때마다 여러 다른 교인들과 자연스럽게 만나 교제하면서 살고 있는 까닭에 그 '교회'라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단체이며 나 자신이 거기에 속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특권인지를 잘 의식하지 못하기 쉬운 것입니다. 
하지만 무슨 세계적 통계를 볼 필요도 없이 그저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만 살펴보아도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한 신앙인이 되어 교회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그야말로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누리게 된 축복임을 금세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친히 창립하셨던 '열두 제자'들의 교회와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 역시 이 경향교회를 통하여 그 얼마나 귀중하고 고상하고 멋있는 것들을 누리고 있는지를 깨달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인이 됨으로써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보좌 우편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기도를 해 주시는 놀라운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속사를 성취해 가시기 위하여 이 세상 역사의 중심에 세워 놓으신 가장 고귀한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가입되는 최고의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일원으로서 오직 말씀의 은혜에 잠기고 성경의 법을 따르기만 하면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연결되는 온전한 '지체'가 됨으로써 결국 저 영원한 '우주적 교회'(Universal Church)에 속한 성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다른 어떤 단체에 들어가서 이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65억의 인류 가운데 이런 특권적인 '14만 4천 인'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절대다수가 아니겠습니까?
교회를 통하여 우리 각자가 예수님의 중보기도를 받게 되었으며 거룩한 공회에 속한 성도가 되었으며 성경중심의 신앙과 행위를 지키게 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이를 인하여 우리 경향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또한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주님의 참된 제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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