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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삶의 고통과 단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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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형택 목사(강북제일교회) 

미국 보스턴 미술관 소장품 중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폴 고갱의 말년 작품이다. 왼쪽 상단에는 강렬한 노란색 바탕 위에 제목이 불어로 적혀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문명의 기교를 뛰어넘어 원시의 순수를 원시적 열정으로 화폭에 담은 작품이다. ‘색채를 통해 인간의 완성’을 꿈꾸게 했다는 위대한 평가를 받는 고갱은 자신을 ‘예술적 혁명가, 순교자’라고 불렀다.

밤낮으로 매달려 완성한 이 긴 제목의 걸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놀랍다. 고갱은 프랑스에서 무시받고 타히티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질병과 궁핍이 떠나지 않았다. 더욱이 가족 중 유일하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이해해 주었던 딸 알린이 죽었다는 소식이 코펜하겐에서 날아왔다. 고작 열아홉의 생명이 채 피지도 못하고 폐렴으로 스러진 것이다.

고독과 절망 가운데 삶은 자살을 꿈꾸기에도 벅찰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고갱은 죽음을 선택하기보다 견딜 수 없는 절망과 고통을 예술의 혼으로 녹여 위대한 걸작을 탄생시켰다. 1897년 타히티에 머물던 고갱이 친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 머릿속에서 맴돌던 대작을 죽기 전에 완성시키고 싶었다. 거의 실신상태의 열정으로 꼬박 한 달을 밤낮으로 작업했다.” 실신상태로 작업을 한 것이 고갱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게 된 것이다.

삶은 고통이 절반이다. 아니 절반보다 더 깊고 깊은 늪일지도 모른다. 고통의 늪은 그러나 죽음의 순간이 될 수도 있지만 인생의 걸작품이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죽음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걸작품이 되기를 선택하느냐는 우리의 몫이다. 선택 하나로 인생의 그림은 달라진다.

하나님은 욥의 인생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단련이란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단단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렇다. 단련은 정금을 위한 과정이다. 더 정밀한 두드림의 과정을 거칠수록 더 아름다운 정금은 탄생한다. 고통과 절망과 지극한 아픔은 걸작품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삶의 절반인 고난의 풀무에 눈물짓지 말라. 고통의 단련은 축복이다.

색채로 인간의 완성을 꿈꾼 화가란 말이 부럽다. 색채가 어찌 감히 인간을 완성시킬 수 있는가? 고갱을 만나면서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정금을 꿈꾸는 일 정도도 못하는 인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고통 때문에 정금의 꿈조차 꾸지 않겠다는 것은 분명 부끄러움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고 말하면서 “나를 단련하신 후에 정금”을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에게 나를 맡기는 선택 없이 인생을 살고 싶지도 않았다. 아픔으로, 고독으로, 절망으로 나를 단련하시는 하나님은, 분명 나를 최고의 인생 걸작품으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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