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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만족하십니까?(2)-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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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수 안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어릴 적부터 불러주셨어요. 예수 믿는 친구들이 많아서 교회 문턱을 쉽게 드나들 수 있었고 미션 스쿨을 졸업했기 때문에 채플시간에도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겠습니다. 교회 문턱만 더럽히며 다녔지. 채플시간에 자리만 채웠지. 제 속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격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믿지 않는 남자와 3년 간 교제 끝에 결혼하게 되었고 결혼과 동시에 저는 그나마 드나들던 교회도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77년 7월에 결혼했는데 그 때 제 남편은 28살이었고 농협의 상무고시에 합격한 상태였어요. 아마 연소자였고 미혼이었기 때문에 제주도로 발령이 났던가 봅니다. 처음에 결혼했을 때 남제주군 농협에 상무로 있다가 그 다음 해에는 성산포 지점에 지점장으로 갔습니다. 남편을 따라서 3년간 신혼 생활을 제주도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부끄럽게도 그 3년간은 우상을 짝하던 시절이었어요. 제 남편이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토속종교를 연구한다고 이곳 저곳 수 없는 절을 기웃거리게 되었고 남녀호랭교를 믿는 곳도 갔고 굿하는 곳도 다녔습니다. 이렇게 제가 결혼하자마자 우상을 짝하며 3년을 보내게 되었고 별 우상을 다 섬겼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의 모습을 무척이나 안타깝게 여기셨던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게 했던 것처럼 남편을 3년만에, 80년 2월에 농협 중앙회로 발령이 나게 하셨습니다. 농협 중앙회 저축부로 발령이 나서 서대문이 기까운 불광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보니까,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대학동창이고 농협 입사동기였던 부산시 농협에 근무하던 손세만씨라는 분이 우리와 똑같은 날 저축부로 발령이 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불광동으로 이사를 왔는데 이 친구는 남편 말로는 대학다닐 때까지만 해도 예수를 안 믿고 부산 동승교회의 장로 따님하고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사람이 갑자기 변해서, 농협은 부업으로 다니고 전도하는 것이 주업이라면서 아주 예수에 미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자기와 같은 부서에 일하게 되고 우리와 같은 동네로 이사를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같은 동네에서 살게 되자 이 친구가 얼마나 열심히 전도를 했겠습니까. 우리 남편이 진절머리가 난다면서 "세만이가 눈만 마주치면 "예수 믿으라"하는 데 내가 "하루에 담배 두갑 피우고 술도 많이 먹는데, 예수 믿어 술담배 끊으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하자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술 담배 내가 너보다 더 많이 피우고 더 많이 먹었는데 예수 믿으니까, 술 담배보다 더 재미있다"면서 예수 믿자고 한다"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세만이 그 찰거머리가 어디까지 따라와서 전도한 줄 알아?" "어디까지 따라와서 전도하던 가요?" "세상에 내가 요리조리 피해다니니까. 화장실 가려고 하면 재빨리 따라와서 화장실와서도 예수 믿으라 하는데, 여보 내가 소변볼 때는 꼼짝 없이 들어야 돼. 오줌 누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한다" 남편은 손세만씨의 그 열심있는 전도를 귀찮아 하더라구요. 그런데 하도 전도를 열심히 하니까 우리 남편이 넉 달만에 두 손을 들고 말았어요. 80년 6월 불광동 은광장로교회에 총동원전도주일이 있었는데 우리 남편에게 "친구따라 강남도 가는데,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친구야 내 소원 한 번만 들어주라. 나 따라 한 번만 교회에 앉아 있어주면 된다. 내가 한 명을 데리고 가야 하는데 서울에서 아는 사람 너밖에 없다"며 자꾸 매달리니까, 우리 남편이 조건을 걸었데요. "내가 너 따라 교회 단 한번 가 줄테니까 다시는 예수 믿으란 소리 하지 말아라. 한번만 가줄게. 가기는 가지만 예배 드리러 가는 것이 아니라 구경하러 갈게." 이렇게 말하고 30년만에 난생 처음으로 교회 문턱을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 한 시간이 우리 남편이 예수 믿게 된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로 열심히 다니지는 않았지만 친구가 교회 가자고 하면 마지못해서 따라나서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80년 12월에, 저희 남편이 고등학교 때부터 간디스토마를 앓아서 만성 간염으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제주도 살 때는 서귀포에서 치료를 받았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서대문의 고려병원, 지금은 강북삼성병원으로 바뀌었죠. 그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간 치수가 높으면 약을 사먹고 그랬는데 12월에는 간치수가 너무 높아 졌다고, 이대로 두면 간경변이 될 것 같다고 했어요. 12월이 되면 농협이 너무 바쁜 철이기 때문에 이 바쁜 시간 지나고 연휴기간에 입원하면 안되겠느냐고 했더니 의사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당신, 일하고 싶소? 죽고 싶소? 간이 나쁜 사람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당신 지금 그 간을 갖고 일하다가는 죽을 거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 손세만 씨가 "친구야 병원가기 전에 나 따라 금식기도 한 번 가보자"며 "C.C.C의 금식 기도회중 12월30일에서 1월3일까지 하는 기도회가 있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제가 화를 벌컥 냈어요. "손세만 씨! 예수를 믿어도 그렇게 몰상식하게 감정으로 믿어서 되겠어요? 간 나쁜 사람은 절대 안정을 취하고 고단백을 섭취해야 하는데 간 나쁜 사람을 데리고, 지금 입원하자는 사람을 데리고 금식기도를 가자고 하는 것은 화약을 지고 불로 뛰어 드는 것 아니예요?" 제가 화를 냈더니 당연히 안 따라갈 줄 알았던 남편이 화를 내는 저를 막으면서 "금식기도가 뭔지 모르지만 한번 따라가 볼래. 우리 엄마가 절에 다닐 때 초하루가 돌아오면 꼭 불공을 드리던데 내년부터 예수 잘 믿으려면 제대로 기도하고 믿어야 될 거 아니야?" 그러면서 따라가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삼일간 금식할 자신이 있냐"고 물으니까 자기는 금식을 안하겠데요. 음식을 몰래 숨겨 가져가서 숨어서 먹겠다면서 그러다가 들켜서 안 된다고 하면 그때 내려와도 될 거 아니냐며 음식을 갖고 금식기도를 따라 갔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남편이 삼일 동안 꼬박 금식을 하고 돌아왔어요. 저에게는 남편이 삼일 동안 금식했다는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금식을 하고 돌아온 남편이 저에게 뭐라고 물었냐 하면 "너는 나보다 먼저 예수 믿었다고 했는데 내가 너에게 한 번 묻겠는데, 예수 믿은 구원의 감격이 있느냐"고 했어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어디 남편이 구원파 갔다 왔는가" 해서 놀랐어요. 그리고 내 속으로 "예수 믿으면 구원 받은 것이지 무슨 구원의 감격같은 것이 필요한가"라고요. 그렇게 생각했는데 남편이 간증을 하더군요. 사실 자기가 친구따라 교회를 다니면서 기분이 나빴데요. 그래서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까. "교회만 가면 목사님이 기도하실 때마다 우리 같은 죄인들, 장로님도 마찬가지고 찬송가도 나 같은 죄인,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도매급으로 죄인취급 당하는가? 내가 사기쳤냐, 도둑질 했냐? 왜 교인들은 입만 열면 죄인이라고 하는 거지?" 자기들이 일주일 동안 잘못하고 주일에 교회와서 용서를 비니까 죄인이지 나는 죄인 아니다." 그래서 교회가서 죄인 소리 듣는 것이 기분이 나빴는데요. 그런데 C.C.C금식기도를 가서도 회개를 위한 통성기도를 했나 봅니다. 남편은 처음 예수를 믿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 불러놓고 할 말이 없었는데 다른 참여자들은 계속 기도를 하니까. 나중에는 고개만 숙이고 있으니까 목이 아프더래요. 그래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야, 예수쟁이들 말 많다고 하더니 진짜 말 많고 죄도, 무슨 죄를 저렇게 많이 지었길래 울고 불고 난리일까?" 그래서 고개를 들고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들어보려고 살펴 보았대요. 예쁜 여자가 울면서 기도하면 남편은 "음, 저거는 남편 몰래 바람을 피웠겠구나", 남자들이 울면서 기도하면 "음, 저치는 회사 돈 띠어먹었나 보군!" 그러면서 "예수쟁이들은 말만 번지르르하지 죄만 많이 짓는 구나"라고 생각했데요. 자기는 죄를 안지었으니까. 울 일도 없고 기도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목사님께서 로마서를 강해하시면서 "의인은 하나도 없으며 우리는 다 죄인인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다."는 그 말씀 가운데 죄인이라는 말씀이 깨달아 진 거예요. 어떻게 깨달아 졌느냐하면 우리 남편이 효를 굉장히 중요시 여겼어요. 저에게 "효는 백행의 근본이다. 부모에게 잘 하지 않는 사람은 백 가지 다 잘못한다"며 결혼할 때도 "우리 부모에게 잘 할 자신이 있으면 시집 오라"고 할 정도로 부모님을 중요시 여긴 사람이예요. 그래서 하나님과 부모님을 같이 생각해보면서 이 세상에서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더라도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믿지 않고 다른 사람을 부모보다 잘 믿고 섬긴다면 그것보다 더 큰 불효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믿고 섬긴다면 그것보다 더 큰 죄인이 어디 있겠는가? 자식이 부모를 섬기지 않으면 당연히 불효자식인 것처럼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바로 죄라는 사실이 깨달아 진 것입니다. 어린아이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 나이 삼십이 되도록 진정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찾아다니며 그것이 신인양 믿고 섬겼던 자신이 가장 큰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 지면서 용서해 달라고 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마음껏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 놀라운 구원의 감격을 기뻐했더니 배가 고픈 것도 모르고 삼일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1월 3일 시무식이 끝난 뒤에 남편과 고려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갔습니다. 고려 병원에서 우리 꼴을 보더니 "그동안 입원하라고 했더니 입원도 안하고 왜 그 모양이 되도록 집에 있었습니까?"라고 물어서 금식 기도를 갔다 왔다고 했어요. 그러자 화를 벌컥 내면서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왜 그런 짓을 했느냐"며 빨리 검사를 다시 하자고 해서 다시 검사를 했는데 의사들이 모여서 수근거리리는 거예요. 저는 간경화나, 간암이 되었는가보다고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연세대학 병원은 거의 다 가 예수를 믿는 분인데 고려병원은 예수 믿는 병원이 아니었데요. 그 중에 예수 믿는 분이 한 분 계셨나봐요. 그분이 와서 "금식기도 갔다 왔다고 했죠?" 그래서 저희는 혼날 줄 알고요 조그맣게 "예"라고 했더니요, 그분이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당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남편이 집에 와서 프로헤파롬이니, 그 동안 학교 다니면서 먹던 약을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어요. 그런데 여러분 저는 먼저 예수를 믿었다는 사람이 그게 믿어지지 않아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약들을 주워서 "여보, 할렐루야는 무슨 할렐루야? 종합병원이 얼마나 오진이 많은데!" 다시 한 번 더 검사를 하자고 했어요. 서대문에 가면 고려병원 옆에 적십자 병원이 있어요 그 적십자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했습니다. 적십자 병원에서도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두 번을 확인했을 때 남편은 진짜 낳았나 보다고 했는데 여러분 제가 얼마나 의심이 많은 사람인가 하면 "삼세 번 아니냐고 한 번만 더 확인해 보자"고, 그래서 성심병원에 가서 다시 한번 확인을 했는데 성심병원에서 "언제 간이 나빴습니까? 나빴던 흔적도 없습니다"라고 했어요. 세 번을 확인한 뒤에 남편은 여보, 나는 병낫기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어. 그런데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깨달아졌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감격에 기뻐했더니 하나님께서 보너스로 내 병을 고쳐주셨어!"라며 기뻐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그때도 "아멘"을 안했어요남편에게 "여보 예수를 믿어도 점잖게 믿자"며 "예수를 믿고 기도해서 병 나았다는 사람보니까 무식해 보이던데 조용히 예수 믿자, 손세만씨처럼 저렇게 떠들며 예수 믿지 말자"고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고 하는 제가요, 오히려 우리 남편에게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제가 우리 남편 입을 단속한다고 해서 성령이 충만한 은혜를 입은 남편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예레미야가 그 중심이 뜨거워서 불붙는 것 같아서 여호와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 남편이 예수를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며 전도를 하기 시작하는 데요. 누구를 닮아가는가 하면 손세만씨를 닮아 가더라구요. 그리고는 교회를 다니는데 얼마나 열심히 다니는지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고 우리 님편의 열심에 저는 우리 아이를 업고 허겁지겁 쫓아다니기 바빴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다닌 남편은 일 년만에 세례를 받고 즉시 목사님께 찾아가서 교사하고 싶다고, 그리고 친구가 하는 성가대하고 싶다고 해서 교사, 성가대도 하게 되었습니다. 삼년 만에 남편이 집사가 되었고 남선교회 임원이 되었고 성가대 대원이 되었습니다. 나이도 어렸지만 저는 남편 덕에 집사가 되었고 여전도회 임원이 되었고, 구역의 권찰이 되었고 주일학교의 교사가 되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간증할 수 있다면 다른 간증과 뭐가 다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간증을 여기까지 하고 "해피 엔딩"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간증은 지금부터입니다. 김복남/전도사/연세의료원(이 간증은 계속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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