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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엉덩이 뼈가 부서지도록 (창 32: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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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뼈가 부서지도록
창세기 32:22-32

본문 창세기 32:22-32절의 말씀에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것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이삭의 둘째 아들 야곱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여기서 본문의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 ‘나의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덜 중요한 것은 내려놓고, 아니면 버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붙잡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여러분은 본문에서 불가능한 환경에서 성공한 야곱을 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성공하기에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출생했습니다. 당시에는 장자에게는 상당히 많은 특권이 주어지는 사회였습니다. 장자는 다른 형제보다도 아버지 재산을 두 배로 상속을 받고, 여러 가지로 특별한 대우를 받는 제도가 많았습니다. 장자에 대한 특별대우는 가문의 재산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장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에서가 야곱보다 먼저 출생을 했습니다. 성장하면서 야곱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장자가 되어야만 성공하는데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차자가 장자가 되려는 불가능한 일에 도전을 합니다. 

세상 순리로 보면 차자가 형님을 제치고, 장자가 된다는 것은, 역리이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야곱은 이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여 마침내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기의 뜻을 이룹니다. 호시탐탐 형의 장자의 권리를 가로 챌, 기회를 노리고 있던 야곱은, 형 에서가 사냥을 갔다 와서, 배가 고플 때에 맛있는 팥죽을 가지고, 팥죽 한 그릇으로 배고픈 형 에서의 마음을 흔들어서, 결국은 형에게서 장자의 권리를 삽니다. 

그리고 아버지인 족장 이삭이 자기의 죽을 날이 임박했음을 깨닫고는, 큰 아들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기도를 해주고자 하여, 에서에게 나가서 사냥을 하여 별미를 만들어가지고 오라고 그러면 그것을 먹고서 네게 장자의 축복기도를 해주겠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은 어머니 리브가가 작은 아들 야곱을 이삭처럼 꾸며서는 별미를 만들어가지고 아버지 이삭에게 들어가게 해서, 족장 이삭에게 장자가 받을 축복기도를 형 에서 대신 받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던 어머니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던 야곱이 야훼께서 주신 방법대로가 아니라 인간적인 방법으로 장자의 축복을 속여서 받은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여러분이 기억할 것은 야곱은 이처럼, 순리대로라면 불가능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야훼의 뜻은 아니지만 자기의 소망을 이루어가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야곱은 환경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불가능해도 자기의 뜻을 이루기까지 최선을 다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연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능력이 부족하자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소망을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루는 사람이고, 환경을 타하고 시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극복하는 사람이고, 혼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함께 협력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야곱이 형 에서를 이긴 비결입니다.       
    
(2) 그러면 야곱의 성공이 가져다 준 것은 무엇입니까?
야곱은 오랫동안 머리를 쓰고, 힘을 다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쥐기는 했지만, 실제로 장자의 권한이 야곱에게 준 혜택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야곱에게 돌아 온 것은, 아버지와 자기를 속이고, 장자의 권리를 가로 챈,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하는, 형 에서의 무서운 분노뿐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의 복수를 피하여 가족을 떠나서 외갓집으로 피난을 갑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난을 간 야곱은, 그곳에서 20여년 간 살면서 처음에는 머슴살이를 하다가, 후에는 처가살이를 하고, 나중에는 세경을 받으면서 처갓집의 양을 키웁니다. 장인 라반의 심각한 견제를 받아가면서도,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처남들의 안색이 변할 정도로 부자가 되었고, 아내도 네 사람이나 되었고, 자녀도 열 명이 넘게 됩니다. 야곱의 가축만 해도 처남들이 시기를 할 만큼 많아졌습니다. 그러니까 야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야곱은 처갓집에서 처가살이를 하면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재산을 모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와 자식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밧단아람에서의 성공 역시 야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갓집에서의 성공이 가져다 준 것은, 외삼촌 라반의 의심과 처남들의 질투와 시기 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아버지 집에서 장자의 권리를 얻고 나서 쫓겨난 것처럼, 외삼촌 집에서도 재물과 사랑하는 가족을 얻었을 때에, 더 이상 밧단아럼에는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야곱이 판단하기에는 참으로 중요한 것 같아서, 욕을 먹어 가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얻고 나면, 그것이 별로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말뿐 아니라 정붙여 살던 자리에서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두 번이나 인간적으로는 자기의 뜻을 이루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두 번 다 도망을 쳐야만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형의 복수하려는 손길에서부터 도망을 쳐야만하고, 장인과 처남들의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에서부터 달아나야만 했던 것이 야곱의 신세이고, 야곱이 성공한 결과입니다. 

그러면 그런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야훼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생명을 걸고 마치 씨름을 하듯이, 그분의 공격을 받아서 환도뼈의 힘줄이 상해서, 위골이 될 때까지, 그분을 놓지 않고 간절하게 매달려서, 자기의 문제를 가지고 의논했던 적이 과거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시행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먼저 겸손하게 물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좋은대로만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하고, 하나님은 야곱이하고자 하는 일을 따라다니면서 도와주는 분으로만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원하는 것을 이루어도 갈등과 문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서 살지 않으면, 성공을 해도 불아내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그런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3)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야훼 하나님을 만납니다.
밧단아람에서 야곱은 성공은 했지만, 처갓집에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기도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단을 하고, 가족들과 가축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야곱이 돌아가는 고향에는, 복수의 칼을 갈고 있는 형 에서가 있습니다. 제발이 저린 야곱은 종들을 보내서 형 에서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그런데 돌아 온 종들의 보고는, 형 에서가 병사 400명을 이끌고 야곱을 맞이하러 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아니 동생을 맞으러 오는 형이 왜 병사를 400명이나 데리고 옵니까? 야곱으로서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 에서에게 많은 선물을 보내서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보려고, 자기의 소유 가운데 최상품 가축을 골라서 먼저 형 에서에게 선물로 보내고, 그 뒤에 자신의 가축과 가족을 따라 붙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가축과 가족이 얍복강을 건넌 후에도 야곱은 얍복강을 건너지 않고 강 이편에 남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공들인 탑이 물거품이 되게 되었습니다. 만일 형 에서의 병사들이 야곱을 치게 되면, 그동안 밧단아람에서 처갓집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해가며, 모은 재산과 진진한 고생을 하면서 얻은 아내와 자식들 모두를 잃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야곱은 ‘아하! 인생이 이처럼 허무한 것이구나!’라고 하면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데, 야곱의 곁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어쩌면 불안했던 야곱으로서는 그 사람이 형 에서가 보낸, 자객으로 착각을 하고,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붙잡고 생명을 건 씨름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씨름을 하다 보니, 야곱은 자기와 씨름을 하는 자가 자객이 아니라, 자기를 찾아온 하나님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야곱이 어떤 대책도 세우지 못한 채, 자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 자리로, 야곱이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자리로, 야훼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양손을 들었을 때에, 여러분을 찾아가십니다. 무엇인가 아직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대책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기의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성공할 때, 잘 나갈 때에 찾아갑니다. 실패하고 망하면 찾아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러분이 망해서 두 손을 들었을 때에 여러분을 찾아가십니다.

아무도 찾아가는 사람이 없고, 혼자만 있게 되었을 때에, 마치 예수께서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중풍병자를 찾아가시듯이, 그렇게 찾아가십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홍해 앞에 있던 이스라엘처럼 난감한 상황에 놓였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찾아가십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자신의 신령상 형편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가 여러분에게는 날씨만 궂어도 놓아버리는 존재는 아닙니까? 바람이 조금 불고, 이슬비만 내려도 놓아버리는 존재가 예수님 아닙니까? 날씨가 추워도, 아니 더워도 놓아버리고, 돈 앞에서는 거침없이 놓아 버리는 존재가 예수 아닙니까? 외면적으로 보기에는 잘 믿음생활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물질에 조금만 손해가 되어도, 놓아버리는 존재가 예수고, 조금만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놓아버리는 것이 교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서 브니엘에서 야훼를 만나기 전의 야곱과 같은 모습이 내게는 없는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내 삶에 이익이 안 되면, 언제라도 놓아버리는 사람은 아직까지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야곱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만나자 자기의 엉덩이 뼈가 으스러졌지만, 핑계하지 않고, 야훼만 붙잡았습니다. 이유는 야훼가 재산보다, 건강보다,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야훼는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주신 분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뼈가 으스러지면서도 야훼를 붙잡고 놓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야곱은  자신의 삶이 야훼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한 때, 자신의 사람은 자기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꾀를 내고, 노력을 했지만, 형에게 쫓겨나고, 처갓집에서도 동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야곱은 사람이 자신이 노력하고 수고한 것만 가지고는, 잘 살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깨닫습니다. 

그리고 얍복 강가에서 야훼를 만난 후에 야곱은 깨닫기를, 자기의 삶은 전적으로 야훼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내 삶은 내 손에 달렸다고 생각을 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는데, 이것은 전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야훼를 만나고 나서, 자신의 삶은 전적으로 야훼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전에 자신이 붙잡았던 장자의 권리나 돈을 붙잡았던 것보다 더 강하고 간절하게 뼈가 의스러지는 한이 있어도 야훼만을 붙잡은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삶은 다른 사람, 곧 남편이나, 자식이나, 회사 사장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야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이 시간 분명하게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엉덩이 뼈가 부서지도록 야훼만을 붙잡은 것입니다. 이제 야곱은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야곱이 그 순간에 깨달은 진리는 자신이 생명을 걸고 붙잡았던 것들이,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졌을 때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형 에서가 와서 빼앗고, 죽이면, 야곱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붙잡았던 것이, 실은 자기의 목숨을 위험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안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야훼께서 야곱을 찾아가셨습니다. 야훼께서는 야곱에게 재물과 세상 권세가 네가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죽은 후에도 가치가 있는 것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이 때 야곱은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야훼임을 발견했고, 세상에서의 성공보다 영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야곱이 발견한 진리는 인간에게 위험한 것은 재산과 가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점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엉덩이 뼈가 부서지는데도, 야훼를 붙잡고 놓지를 않은 것입니다.
 
사랑하는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지금 야곱처럼 얍복강 가에 서 있거나, 머지않아 그곳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고하고 애쓴 것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느낄 때가 올 것입니다. 복을 받아서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죽음 앞에 서면, 누구나 그 점을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바로 그런 때에, 그 쓸모없는 돈을 붙잡겠습니까? 아니면 자식을 붙잡겠습니까?

모든 것을 쓸모없는 것임을 발견하고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야훼 하나님이고,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은 후에도 여러분의 삶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만이 여러분이 세상에 남겨 두고 간, 사랑하는 자녀를 돌보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전의 야곱이라면, 야곱이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놓아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지금 막 날이 밝으면서 해가 떠오르는데, 자신이 평생을 수고해서 모은 재산인 가축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러 가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안전한가 보러 가야합니다. 그리고 만일에 형 에서가 병사와 함께 공격을 한다면, 가축 가운데 얼마라도 건져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저를 빨리 놓아주세요. 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야훼 하나님을 만난 후에 이 모든 것을 놓아버렸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굳게 붙잡았습니다. 야훼께서 자신의 엉덩이뼈를 쳐서 뼈가 위골이 되었어도 붙잡은 하나님을 놓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야훼를 붙잡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기분이 조금 나쁘다고 붙잡은 하나님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결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물질의 손해를 볼 위기라고 해서 붙잡은 하나님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불어버리시면, 돈과 성공과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마치 먼지처럼 날아갑니다. 세상 명예와 성공이라는 것 때문에 붙잡은 하나님을 놓지마세요. 세상에 속한 것은 ‘일장의 춘몽’과 같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말하기를, ‘십년가는 세도가 없고, 열흘 동안 붉은 꽃이없다.’라고 한 것입니다. 

야곱이 야훼의 손을 간절하게 붙잡았을 때에, 하나님께서도 야곱의 생명과 자녀와 아내와 가축을 붙잡아 주십니다. 야곱을 죽이려고 달려오는 형 에서의 마음을 순식간에 바꾸셔서, 야곱을 돕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처럼 위기의 얍복강 가에서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만을 붙잡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붙잡은 그리스도 예수를 놓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엉덩이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예술ㄹ 붙잡은 손을 놓지 않음으로 믿음여정에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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