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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발을 담그라 (수 3:14-17)

첨부 1


발을 담그라 (수 3:14-17)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14)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5)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6)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17)
<여호수아 3장 14~17절>

할렐루야!
평안하셨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맛보며 사는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

하나님은 애굽(이집트)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를 세우셨습니다. 
여러 과정을 거쳐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따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40년이라는 세월을 광야에서/사막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여러 가지 기적을 통해 
때를 따라 필요한 은혜를 허락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당시, 여호수아의 입장을 생각해봅니다.
탁월한 영적 리더십을 보이며 
백성들을 이끌었던 모세는 갑자기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큰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수 1:9)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요14:18)

말씀에 힘을 얻은 여호수아는
백성의 관리들을 불러 세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수 1:11)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여호수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백성의 관리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수 1:16~18)
라고 하며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받들었습니다. 

여호수아를 새 지도자로 세웠다는 것은
다양한 변화의 바람을 맞이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수아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한 것 같이 …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백성의 관리들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년에, 우리는 ‘변화와 도전’이라는 주제로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나갈 것입니다. 
1월 1일이 되어 시작하면 되지 라고 말하지만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변화를 위한, 도전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변화하기 싫다고 … 도전하기 싫다고 …
담임목사인 저를 통해 이루어 가실 하나님의 일을 막아서는 안됩니다.
제가 제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일 하려고 
이 일, 저 일 … 벌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라는 비전을 이루어 가기 위해
‘변화와 도전’, ‘도전과 변화’라는 주제를 잡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저를 도와 주셔야 하고 따라주셔야 합니다. 

이스라엘 관리들과 온 백성이 여호수아를 받아들인 이유는 
여호수아가 잘나서가 아니었습니다. 
요즘처럼 스펙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경륜이 뛰어나고 지식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세우셨고,
여호수아를 통해 일하시기로 정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순종한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는 대외적으로 할 일이/해야 할 일이 엄청납니다.
그렇다고 정말 중요한 
기둥교회의 어떤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신뢰하고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저와 기둥교회에게 주신 비전이 있습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는 사람 
아니 마음을 하나로 모으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세우신 기둥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사람입니다.

저라고 부족한 게 없겠습니까? 많습니다.
그러나 부족함을 알려고 하지 마세요. 
저의 부족함을 많이 알면 마음 다쳐요.

건강검진을 2년마다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주 전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습니다.
간호사가 종이를 건네주며 표기하라는 겁니다.
받아든 종이에는 ‘몇 살인지, 하루에 운동은 얼마나 하는지?’… 등의 
여러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순서대로 표기해 나가던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평생토록 담배를 5갑 이상 
피워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내용의 질문앞에 주춤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담배를 5갑 이상 피워봤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간호사에게 
"35년~40년 전쯤 젊었을 때, 철없을 때 
피워봤던 것도 해당됩니까?"라는 제 물음에 
간호사는 "네 다 쓰셔야 합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간호사는 제가 기둥교회 목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잠깐 동안 5갑은 넘게 피웠다고 해도 표기해야 합니까?"
그랬더니 “다 나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검사하면 다 나온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망설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 있었으니까 있다고 표기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틀 전에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경고, 흡연금지’라고 ….
왜 그렇게 나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35년 전, 40년 전에 했던 것도 몸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여러분이 저의 실체를 알면 상처 받을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부족을 잘 알면서도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감싸주시고, 덮어 주시고, 
힘을 더해 주시고, 밀어주시기 때문에 … 
제가 <담임목사>의 일도 … <감독>의 일도 …
힘 있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기둥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함께 걸어가는 동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이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허물을 파내고, 들춰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12월 첫 주일에 당회를 하게 됩니다. 
당회를 통해 교회 안에 여러 조직의 장을 새롭게 세울 것입니다. 
집사, 권사, 장로도 세울 것입니다.

교역자들에게 집사, 권사, 장로 후보로 세울 만한 사람을 
정리해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명단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 우리 기둥교회 성도들은 영적인 욕심이 없을까? 
열심히 신앙생활 해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겠다는 욕심이 없을까?
이왕 신앙생활 하면서 집사도 되고, 권사도 되고, 
장로가 되겠다는 열망이 없을까? 
내가 목회를 잘못했나보다’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십일조, 주일성수 잘해서 권사로 세웠더니
권사 되고 나서 십일조 안하고, 
예배에 소홀하는 분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장로 후보로 올라온 명단을 보니
예배 참석 제대로 안하고 십일조 생활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인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겠다는 영적인 욕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왕이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고 살겠다는
하나님을 부담스럽게 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년에 부서, 팀의 장을 바꿨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관리들처럼 
- 하라는 것은 다 하겠습니다.
- 보내는 곳에는 다 가겠습니다.
- 오직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라고 말하며 힘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 그 장로님이 부장하면 저는 빠지겠습니다. 
- 그 권사가 속장하면 속회 쉬겠습니다.
- 그 집사가 선교회장하면 선교회 옮기거나 참석 안하겠습니다.
그렇게 힘을 빼시겠습니까?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게 많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의 좋지 않은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첫 번째 당면한 문제

본문 여호수아 3장은
싯딤을 떠나 요단강에 이른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 동쪽 싯딤에 있었고,
이제 강만 건너면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된 후 처음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3장 15절에 보면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수 3:15) 하였습니다. 

곡식 거두는 때는 보통 3, 4월 쯤입니다. 
이스라엘의 겨울은 비가 많이 오고 
북쪽 헤르몬산(Mount Hermon)의 눈이 녹아 내려 
요단강물이 붑니다.
그래서 강폭이 늘어나고 수심도 깊어지고 물살도 빨라져 
보통 사람이 강을 건너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요단강의 평균 강폭은 30m, 깊이는 1-3m 밖에 되지 않지만
겨울에 비가 많이 오면 물의 양이 수십 배로 늘어나
곳에 따라서는 폭이 1.6km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에는 수로공사, 댐 공사를 통해 예전과는 다르지만
암튼 그때는 시기적으로 강을 건너기 어려운 때였습니다. 
또한 그 길은 이전에 가 보지 않았던 길이었습니다.(4절)

하나님은 처음부터 여호수아를 강하게 훈련시키셨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7절에 보면
“…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수 3:7)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세우시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이끄셨던 것처럼
여호수아를 통해서도 일하신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물이 많은 때 강을 건너는 것을 통해서 
내가 너를 붙드는 지도자임을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선교회장, 속장, 부장, 팀장 … 등
교회 일을 하다보면 처음부터 어려운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시작하자마자 골치아픈 일을 해결해야 할 때 있습니다.
그래도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년에 여러 가지 일 맡으신 분들/맡으실 분들은 잘 들으세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능력이 없다, 해본 적 없다,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꼭 겸손이 아니기도 합니다.
불신앙 일 수도 있고, 교만의 다른 얼굴이기도 합니다.

여호수아처럼 성실하면 됩니다. 
3장 1절에 보면
“…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수 3:1) 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6장 12절에도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7장 16절에도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8장 10절에도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여호수아는 ‘아침형, 새벽형 인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여호수아는 성실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게으름뱅이가 지도자가 된 적이 없고, 성공한 적 없습니다.
물론 부지런하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훌륭한 지도자,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 
이런 저런 일에 승리하며 살았던 사람들,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한 결 같이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
“…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살후 3:10) 하였고,
마태복음 25장 26절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을 

“… 악하고 게으른 종 …”(마 25:26) 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처럼 할 일이 있는 사람, 
기도해야 할 사람, 갈 곳이 있는 사람, 
만날 대상이 있는 사람, 기대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
무엇인가 큰 일을 해야 하는데 두려운 사람,
염려가 되는 사람, 그러나 잘해보고 싶은 사람은
설레임과 기대로 일찍 일어납니다. 

소풍가는 날, 여행가는 날, 놀러 가는 날, 
좋은 사람 만나기로 한 날 … 아침에 벌떡 벌떡 일어납니다. 
깨우기 전에 일어납니다.
우리 교회에도 
“목사님, 저는 새벽에 절대 못 일어나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단풍 구경 간다고 새벽에 모일 때면 모두 다 나오더군요.

꿈이 있고 목표가 있고 소망이 있으면 열정이 생깁니다. 
열정이 생기면 부지런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랬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는 혼자 일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일했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한 관리들(새번역-지휘관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을 백성들에게 전달했습니다.(3-4절)
또한 각 지파에서 나온 12명의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게 했습니다.(14절)
그 모든 것은 여호수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홍해입니까 요단강입니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 백성에게 전했습니다.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수 3:13)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의 궤는 언약궤입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했습니다.(참조, 삼상 4:3~8) 
그러므로 언약궤를 따르라는 명령은 
하나님을 따르라는 명령과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언약궤와의 거리를 
이천 규빗 쯤 되게 떨어져 가까이 하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규빗은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거리를 말하는데 
보통 45cm 정도 됩니다. 
따라서 이천 규빗은 약 900m 정도입니다. <비전성경사전참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 거룩한 마음으로 …
따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었습니다.
그리고 물이 넘쳐흐르는 요단강에 발을 담갔습니다. 
그러자 흐르던 강물이 멈췄고, 
백성들은 마른 땅을 밟고 요단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이집트에서 나오자마자 이른 곳이 홍해 앞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도 지도자가 되자마자
처음 당면한 문제가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둘의 차이가 있습니다.
홍해 앞에서는 하나님이 갈라놓고 가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요단강 앞에서는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게 하셨고,
그 때서야 물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단강을 홍해처럼 가르실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보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발을 담갔고,
그때서야 하나님은 요단강을 멈추셨습니다. 

제사장들이 발을 담군 곳은 졸졸 흐르는 시냇가가 아니었습니다.
물이 차오른 … 불어난 강이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였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계십니까?
홍해입니까? 요단강입니까?
갈라지는 것을 눈으로 본 후에야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물이 철철 흘러넘치더라도 …
믿음으로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내미시겠습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여러 가지 변화와 도전에 
발을 내미는 용기와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홍해인줄 착각하고 
갈라지기만을 기다린다면 건너갈 수 없습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 도전하지 않으면 …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 수 없습니다. 
물이 가득 흘러 넘쳐도 
언약궤를 등에 매고 발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변화와 도전의 삶입니다. 

과수원의 사과를 먹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입을 벌리고 사과가 땅에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손을 내밀어 사과 꼭지를 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렵니까?
물이 갈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안됩니다. 
발걸음을 떼어 발을 담가야 합니다. 
믿음의 발을 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변화와 도전 앞에 …
삶의 현장에서 … 교회에서 …
당당히 믿음으로 여러분의 믿음의 발을 내딛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예배에 참석하면 시간 낭비인 것 같고,
십일조 드리면 생활이 힘들어질 것 같고, 
봉사하면 손해보는 것 같아도 내 판단과 내 삶의 기준이 아니라 
믿고 발을 디뎌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도전입니다. 그것이 변화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의 삶에 도전과 변화를 결단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발걸음을 요단강 물에 내딛는 
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흐르는 강물, 센 물살, 넓은 강폭을 바라보고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법궤를 메고 발을 내디뎠던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믿음의 발걸음을 옮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눈에 보이는 것, 내 귀로 듣는 것, 
내가 판단한 것으로 결정짓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발을 내딛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발을 담그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들었습니다. 고개만 끄덕이고 그치는 삶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듣고 마음에 결단한 것이 있다면 
생활 속에 실천하는 여호수아와 같은 성실함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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