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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대신감사 (요 11: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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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감사 (요 11:38-44)


세상에 넓고 화려한 길이 많이 있지만 그 자매는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했기에 목회자를 내조하는 사모의 길을 걸어가리라 다짐하고 결혼했습니다. 태중에 선물을 받은 기쁨도 잠시 임신 6개월 만에 출산을 하고 말았습니다. 900g의 아이를 인큐베이터에 넣었습니다. 산모와 그런 딸을 바라보는 친정어머니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요? 

예루살렘 근교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 오라버니 나사로가 위독하여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친구로 여기시며(요 11:11), 무척 사랑하셨습니다(요 11:3).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 대접과 함께 그의 말씀을 듣기도 했습니다(눅 10:38-39). 예수님과 나사로, 예수님과 마르다, 마리아는 특별한 관계였음에 틀림없습니다. 

때문에 나사로의 일로 자매는 당연히 예수님께 위급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당연히 만사를 제쳐놓고 오실 줄 알았는데 오시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바위 무덤 주변에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1:21,32). 마치 입을 맞춘 듯 저들의 말 속에서 섭섭함과 실망스러운 그 심정을 넉넉히 읽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라’(요 11:17)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흘’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어떤 한계점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창 22:4, 출 10:22, 에 4:16, 욘 1:17). 그러므로 ‘나흘’은 인간의 한계, 능력, 가능성, 기대를 넘어서 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나흘’앞에 주님이 서계십니다. 그리고 매우 인상적인 포즈를 취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 11:41). 

첫째, ‘내 말을 들으셨다’고 하신 것은 나사로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둘째, 나사로가 아직 죽은 상태, 냄새나는 상태 그대로인데 주님은 왜 완료형으로 기도하셨을까요? 셋째, 나사로가 살아난다면 누가 진정 감사하고, 기뻐해야할까요? 당연히 이들 자매가 기뻐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감사는 저들 자매를 위한, 대신(代身)한 감사입니다. 주님은 저들 자매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고, 그 감사가 기적을 창조한다는 사실을 무덤 앞에서 저들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41절은 ‘돌을 옮겨놓으니’로 시작합니다. 주님은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습니다(요 11:38). 마르다가 망설이자 재차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축복을 진정 입기 원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해야 할 일, 그것은 내가 해야 합니다. 이렇게 내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 후, 그 다음엔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들 자매는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때문에 주님은 지금 저들을 대신하여 ‘대신감사’를 드리십니다(요 11:41). 그 ‘대신감사’는 과연 어떤 감사였습니까? 

첫째, 현 상황을 놓고 드리는 ‘놓고 감사’입니다. 벌써 냄새가 나는 절망적인 상황을 놓고 오히려 주님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다 할지라도 설령 그 상황이 심히 어렵다 할지라도 그때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났고, 자신도 성폭행을 당해 미혼모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2주 만에 죽고, 하루하루 지옥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신앙으로 살아가면서 취직되었으나 곧 좌천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는 그 좌천된 자리에서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매일 다섯 가지씩 ‘감사일기’를 써내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녀를 어떻게 대우하셨을까요? 국경과 인종, 남녀 차별을 뛰어넘어 가장 값진 성공을 이룬 스타로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둘째, ‘미리감사’입니다. 주님은 ‘들으신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일어날 줄 믿고 드리는 감사였단 말입니다. 감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때문에 감사입니다. 결과감사, 뒷북감사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흥정하는 듯 뉘앙스가 풍깁니다. ‘당신이 이만큼 해주었으니, 나도 이만큼 하겠소.’ 하나님이 이런 감사를 기쁘게 받으실까요? 또 하나의 감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불구하고 감사’입니다. 선불감사, 앞북감사라고도 합니다. 바로 ‘미리감사’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농촌에서 자랐습니다. 오늘 같은 추수감사절이 되면 예배시간에 각자 손을 들고 하나님께 드린 예물을 작정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모두 다 1년 수입의 십의 일 정도를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는 아직까지 거두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셋째, ‘응시감사’입니다. 주님께서 냄새나는 무덤에 눈길을 고정시키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바라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나의 꿈과 축복과 모든 것이 되신다는 믿음을 감사로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설령 모든 것이 다 내 곁을 떠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시니, 하나님이 나의 감사의 조건이 되는 줄 믿습니다. 

매년 추수감사절이면, 우리교회에서 떡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900g에 불과한 아이를 선물로 받은 가정에서 비용을 담당하겠다는 것입니다. 목사님과 교회에서 기도를 많이 해줘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4개월 동안 참 힘들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지난 주 집으로 데려온 것을 감사하면서 본인이 꼭 이 일을 담당하겠다는 것입니다. ‘놓고 감사’, ‘미리 감사’, ‘응시 감사’를 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 상황입니까? 믿음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감당하십시오. 주님께서 하신 ‘대신감사’를 떠올리며, 하나님을 향하여 ‘놓고 감사’, ‘미리감사’, ‘응시감사’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정의 대들보 나사로를 다시 살리셔서 마르다와 마리아 가슴에게 다시 안겨주셨듯이 오늘 우리의 문제에 주님이 개입하실 것이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이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탈무드에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태도로 이 자리에 서있습니까?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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