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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족함 (빌 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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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함 (빌 4:10-13)


선교사에게 있어서 선교비는 총알과 같은 것이다. 어떤 선교사가 이런 말을 했다. 
“돈으로 선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교하는데 돈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1998년 IMF 구제금융 당시 선교사들에게 보내는 선교비가 중단됨으로 인해 많은 선교사들이 어려움을 겪었고, 본국으로 돌아오는 선교사들도 생겼다. 유학생들도 돌아오는 일들이 있었다. 이유는 본국의 교회들이 경제 사정으로 인해 선교비를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에 있어서도 선교비는 대단히 중요했다. 그는 자비량으로 일하면서 선교비를 충당하기도 했지만 때때로 교회들로부터 선교비를 지원받고 있었다. 그 중에 한 교회가 바로 빌립보교회였다. 그러나 어떤 사정으로 인해 선교비가 중단되었다가 다시 선교비를 받게 되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바로 10절부터 시작된다.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 그 이유는 빌립보교회가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선교비를 보내온 것을 받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바울의 기쁨은 선교비를 받은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떤 이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선교비가 한 동안 중단된 것으로 인해 바울에게 근심거리가 되고 있었다. 왜냐하면 혹 빌립보교회 안에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의 짐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 편에 편지와 선교비를 받고 그 근심이 다 해소되었다. 그뿐 아니라, 빌립보교회가 선교비를 보내지 못했던 사정을 이해하고 오히려 그들의 입장을 변명해 주고 있다.

사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선교비가 중단된 것에 대해 섭섭함과 분노의 감정을 드러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선교로 인해서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도리어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형편을 진솔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11-13절까지의 말씀이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요약하자면 “여러분이 선교비를 보내준 것이 너무 귀하고 또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나는 현재의 환경과 삶에 대하여 자족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나는 모든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속에서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증거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자족”이란 말이다. 


1.자족이란 무엇인가?

박윤선 목사, 
여기 “자족함”은 “스스로 충족함”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자연으로 돌아감을 주장한 노자의 은허주의와 같은 것도 아니고, 가난을 신성시하는 성빈주의도 아니다. 바울의 자족은 하나님 중심주의의 것이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는 가난으로 만족한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어떤 형편에서든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노자의 은허주의는 일종의 “체념”에 가까운 자족이라 할 수 있고, 성빈주의는 당시 스토아학파의 도덕적 최고의 가치였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적 노력으로 자족에 이르려하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은허주의나 성빈주의는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자족”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의 의지력으로 환경을 저항하며 스스로의 내면 세계를 구축해서 만족하려는 자세, 또는 반대로 아예 자포자기함으로 체념하는 태도는 한계가 있다. 거기에는 기쁨이 없다. 감사가 없다. 소망이 없다. 창조의 능력도 없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사도 바울의 자족은 그와 정반대이다. 그가 비록 감옥에 갇혀 있고 선교비가 중단된 상태에 있다할지라도 그런 외적 환경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 자족이다. 마음 속에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있고, 소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창조의 능력이 있다. 바울의 자족은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자족이다. 

2.자족의 비결

1)배우는 것이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의 “자족”은 그가 받은 특별한 은사가 아니고 배워서 얻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누구나 배우면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신앙생활의 연단을 가리킨다. 바울은 어떻게 자족하기를 배웠는가?
1.비천에 처하는 것
가난 때문에 낮은 자리에 처하게 됨. 예)예수님(마 8:20)

2.풍부에 처하는 것
“풍부”란, 넘쳐나다, 필요 이상으로 가진 상태. 개심 이전의 바울은, 상당한 부와 권력, 지식이 있었다. 

3.일제의 비결을 배운 것
일체, 모든 경우. 고난을 통해 터득한 것, 배부름, 배고픔, 풍부, 궁핍의 모든 환경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

2)주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능력의 원천, 바울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족하는 처신을 잘 하였다. 그러나 그런 처신은 자신의 힘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다. 주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
찬송가: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3)자신을 비우고 주님으로 채울 때 가능하다.
빌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3.자족의 유익

1)환경의 노예가 되지 않는 능력
우리의 마음은 환경의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다. 부유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재난이 닥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아무리 믿음 좋은 사람이라도 한동안은 제정신이 아니다. 기도도 안나오고 찬송도 안나온다. 탄식만 나온다. 

그러나 자족의 비결은 배우면 이와 같은 암담한 상황에서도 이상한 힘이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환경을 초월해서 모든 것을 다룰 수 있는 능력, 환경이 바뀔 때 마다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이 있다. 예)요셉

2)감사의 조건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
이것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감사의 조건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다. 
어떤 아버지와 아들이 목회를 하는데 한 집에서 살았다. 하루는 아들이 들어오면서 조금 이상한 듯 하면서도 상기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들: 아버지, 오늘 저에게 참 감사한 일이 생겼어요 
아버지: 그래? 무슨 일이 생겼니? 
아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께 정말, 정말 감사해요. 
아버지: 하하하. 그래. 어서 말해 보렴. 
아들: 오늘 교회에서 집으로 오다가 차가 일곱 바퀴나 굴렀어요. 그런데 상처 하나 없이 이렇게 말짱해요. 
아버지: 나는 너보다 훨씬 더 감사하구나. 
아들: 아버지는 여덟 바퀴 굴렀나요? 
아버지: 아니다. 나는 한 바퀴도 안 굴렀단다. 

3)우리를 도우시는 예수님의 능력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기를 돕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로 하여금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은 돈도 아니요, 환경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능력이 되신다. 

히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환경을 탓하지 말자. 바울은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했다.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받으면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할 수 있다는 그 비결을 경험에서 얻은 확신이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귀한 것
옛날 어느 나라에 임금님이 신하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갔다 어떤 목동을 만나게 되었다. 준수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왕은 단번에 그가 신실할 뿐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채었다. 왕은 그 목동을 왕궁으로 데리고 와서 여러 가지 일을 시켜 보았다. 생각했던 바와 같이 그는 모든 일에 충성스러웠고 지혜 있게 일을 처리했다. 

왕은 그를 크게 신임하게 되었고 드리어 그를 왕궁의 재산관리인으로 세웠다. 왕궁의 모든재산을 그가 도맡아서 관리하게 된 것이었다. 다른 신하들이 그를 질투하기 시작했다. 웬 촌 목동이 들어와 자기들을 제치고 왕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다른 신하들은 그에게서 허물을 찾아 그를 고소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의 허물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너무나도 매사에 신중하였고 충성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드디어 신하들은 그에게서 한 가지 이상한 행동을 찾아내었다. 그것은 그가 가끔씩 왕궁 꼭대기에 있는 창고에 몰래 들어갔다 한참 만에 돌아오곤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그 창고의 열쇠를 자기만 간직할 뿐 아니라 그 부근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신하들은 이제 되었다고 쾌재를 불렀다. 그가 왕의 재물을 빼돌려 그 비밀창고에 보관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왕에게 달려가 그 신하를 고발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엄히 조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신하들은 왕의 허락을 받아 왕궁 꼭대기에 있는 비밀창고의 문을 열고 그 속을 샅샅이 뒤졌다. 금은보화가 가득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귀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한쪽 구석에 다 낡아빠진 조끼 한 벌과 너덜너덜한 장화 한 켤레가 놓여 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왕은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서 그 신하를 불렀다. 
"그대는 보관하고 있는 그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무엇인고? 왜 그것을 보물처럼 감추어 두었는고?" 
그러자 그 신하는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제가 폐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그 두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폐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제 마음이 높아지려고 할 때마다 저는 그곳에 가서 저의 예 모습을 생각하며 폐하의 은혜를 다시금 생각하였습니다."

그 말은 들은 왕은 크게 기뻐하며 다 낡아빠진 조끼 한 벌과 너덜너덜한 장화 한 켤레를 국보로 정하고는 오래 토록 보존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 목동이었던 신하에게 낡아빠진 조끼 한 벌과 너덜너덜한 장화 한 켤레가 너무나 귀한 것이었다면 당신과 나에게는 너무나 귀한 낡아빠진 조끼 한 벌과 너덜너덜한 장화 한 켤레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고후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 때문에 늘 불평 원망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가진 것을 누릴 줄 안다. 참된 만족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뢰하면서 현재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만족할 때 가능하다. 

1)자족하기를 배우라
2)내게 능력을 주시는 주님을 신뢰하라
3)그리스도로 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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